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5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52화(152/173)
“라흰, 괜찮아? 어디 다치진 않았어? 뼈가 부러지진 않았고?”
이윽고 침실에 도착하자 단테가 곧바로 그녀를 내려놓곤 여기저기를 살폈다.
극도의 걱정에 즐거워진 라흰은 불쌍한 척 연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응. 아프지만…… 괜찮아.”
“괜찮기는! 널 그렇게 떠밀다니!”
“뭔가 마음에 안 드셨나 봐. 난 괜찮아.”
이런 타입에겐 의젓한 체하는 게 잘 먹히지.
라흰은 음험하게 눈을 빛내며 단테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애, 키락서스랑 정말 닮게 생겼네.’
물론 키락서스가 더 매력적이지만 아쉬운 대로 이 애라도 끼고 살면 괜찮을 것 같았다.
* * *
라흰은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또 쇼핑을 나갔다.
우연히 발견한 통장에는 어마어마한 돈이 있었지만 하루에 몇억씩 쓰니 금세 탕진되었다. 당연히 사들인 물건들은 방 하나를 채우고도 모자라 몇 개의 침실을 더 창고로 만들어 넣어야만 했다.
그 물건들을 정리하던 하녀들은 조금 이상하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왜냐하면 라흰의 취향이 예전과는 판이하게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고급스럽고 희귀한 물건을 좋아하셨는데 지금은 비싸긴 하지만 대량 생산되는 것들만 사오셨다.
심지어 어떤 건 차마 말을 못 했을 뿐, 너무 촌스럽기까지 했다. 꼭 졸부들의 취향처럼 말이다.
‘취향이나 안목이라는 게 쉬이 바뀌는 건 아닌데…….’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되겠지만, 아예 다른 분 같아.’
하녀들은 서로를 돌아보며 눈빛으로만 그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거기다 선택 전에 한 후보와 유독 같이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걸 꺼리셨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 라흰은 잘 때 빼고 모든 시간을 단테 도련님과 붙어 있었다. 그 탓에 단테 도련님은 사흘째 훈련을 빠지고 있었고.
그것 또한 몹시 이상한 일이었다.
이건 단테 도련님을 선택하겠다는 모종의 뜻인가? 아니면 희망 고문인가.
오늘도 쌓여만 가는 물건들을 정리하며 하녀들은 가슴속 깊숙이 말을 삼켰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로이바이엄 가문에서 티 파티 초대장이 날아왔다. 이번에도 에스코트는 다름 아닌 단테였다.
* * *
대망의 티 파티 날.
라흰은 아침부터 몹시 들떠 있었다.
‘정말 귀족 아가씨 같아! 티 파티라니! 진작 귀족이 되게 해 달라고 할걸. 성녀로 사는 바람에 이런 재미난 걸 한 번도 못 해봤잖아.’
나풀거리는 연분홍색 드레스를 입은 라흰은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로도 모자라 티아라까지 착용했다.
모두 다이아몬드로 얼추 색은 맞추었기에 몹시 아름다웠지만 문제는…… 이건 황궁에서 열리는 무도회 같은 게 아니라는 점이었다.
티 파티는 엄연히 친구 집에 놀러 가는 것이었고,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라흰의 차림은 과했다.
“저어, 아무래도 티아라는 빼시는 게 어떨까요……?”
눈치를 보던 하녀 중 린다가 슬그머니 나섰다.
아무래도 어릴 적부터 라흰을 봐 왔던 인물이니 이 중에선 가장 안 좋은 말을 꺼내기에 적절한 위치였다.
“내가 왜?”
하지만 거울을 들여다보느라 여념이 없던 라흰은 톡 쏘아붙일 뿐이었다.
“난 공주야. 그런데 내가 왜 티아라를 빼야 하는데?”
“그, 그렇지요. 아니면 팔찌나 귀걸이를 빼시는 건 어떨까요?”
린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다시 한번 여쭈었다.
그러나 라흰은 눈을 흘길 뿐이었다.
“싫어. 다 마음에 들거든.”
“아아…….”
린다는 눈을 질끈 감았다.
요즘 아무래도 라흰 님은 늦은 사춘기가 오신 듯했다.
말려도 듣지 않을 것이 명확해지자 린다마저 결국 포기했다.
“조심히 다녀오셔요.”
“흥.”
라흰은 콧방귀를 뀌며 턱을 치켜들었다. 그러고는 린다를 노려보았다.
‘재수 없네. 해고해야겠어.’
어디 감히 하녀 주제에 이래라저래라야?
씩씩대던 라흰은 갑자기 기분이 너무 나빠져서 이를 악물었다.
‘이제 내가 아르칼리크의 공주고, 이 가문의 안주인이야. 그러니까 내 취향대로 하녀를 뽑는 게 맞지.’
잔소리는 신전의 늙은이들에게 하도 많이 들어서 이제 지긋지긋하다. 더는 싫었다.
“너희들 전부 다 해고야.”
“……네?”
“귀먹었니? 너희 다 해고라고! 다른 애들로 데려다 놔. 돌아왔을 때도 너희가 근처에 있으면 아주 혼쭐을 낼 줄 알아!”
성질대로 바락 소리를 내지른 라흰은 쿵쿵대며 발을 굴렀다. 황당하다는 표정들에 짜증이 솟았던 것이다.
시키면 시킨 대로 곱게 나갈 것이지 감히 저런 눈빛으로 나를 봐?
‘매질. 그래, 매질이라도 해야 할까?’
라흰은 자신이 매우 너그럽고 착하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불쾌한데도 말로만 혼을 내잖아.
일단 지금 당장 티 파티에 가야 하니 매질을 할 시간이 없기도 했다.
“단테에! 나 안 예뻐?”
1층으로 후다닥 내려가자 단테가 마차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는 게 보였다.
라흰은 배시시 웃으며 그 앞으로 달려가 한 바퀴 빙그르르 돌았다.
“예뻐. 엄청.”
“진짜?”
“응. 진짜.”
단테가 수줍게 웃었다.
그게 참 귀여워서 라흰은 기분 좋게 마차에 올라탈 수 있었다.
‘아, 근데 잠깐만.’
분명 남편 후보는 세 명이잖아. 근데 나머지 둘은 어디로 사라졌어?
‘단테가 귀엽긴 하지만 쉽게 질리는 스타일인데.’
남몰래 입을 비죽인 라흰은 다리를 동당당거리며 단테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아, 라흰. 저기.”
“응? 왜애?”
“아무것도 아냐.”
자식, 순진하기는.
자신이 뭘 하기만 해도 시뻘게지는 얼굴이 마음에 들어, 라흰은 만족스럽게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야 좀 꿈꾸던 삶을 살게 된 것 같아 무척이나 즐거웠다.
* * *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음.”
라흰이 떠난 자리.
드리블랴네 저택에서는 임시 가족회의가 열렸다.
참가자는 네 명. 임마누엘 기욤 드리블랴네와 이난나 드리블랴네. 살로네스 아이다호. 그리고 이안이었다.
“지난 며칠간 라흰이 쓴 돈은 천문학적 수준입니다.”
원탁 테이블에는 구매 물품과 그 대금이 적힌 종이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물론 라흰이 돈을 좀 썼다고 해서 드리블랴네가 휘청거리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 하나하나가 모두 굳이 구매하지 않아도 되는, 쓸데없는 물건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이난나 님께서 한 마디 해주셔야 할 정도예요.”
굳은 표정의 이난나는 살로네스가 내미는 목록을 들여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단테가 통장에 넣어둔 돈을 전부 써버렸구나. 한 푼도 남기지 않고.”
“그런 듯합니다.”
그녀와 임마누엘이 일찍 물러나려 한 것은 라흰을 믿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라흰이 보여준 모습은 책임감 있고, 올바르며 다정하고 절제할 줄 알았으니까.
만약 라흰이 처음부터 이런 아이인 줄 알았더라면 따끔히 혼을 내서 교육을 했으리라. 물론 일찍 은퇴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때, 카나리아 한 마리가 포르르 날아오더니 반쯤 열린 창틀에 톡 내려앉았다.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걸 유심히 듣던 이안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라흰이 티 파티에 나가기 전에 하녀들을 전원 해고했다는군요.”
“뭣이라?”
이안의 말에 이난나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애를 모시는 하녀들은 충성도가 굉장히 높았다. 칼 앞에서도 결코 비밀을 실토하지 않을 그런 아이들이다. 한데 해고를 했다고?
“하녀들이 울면서 짐을 싸고 있다고 합니다.”
“허.”
이난나는 어이가 없어져 입을 벌렸다.
물론 그 하녀들은 라흰을 모시는 역할에서만 해고가 된 것뿐이다. 이 저택 내에서 내쫓기는 건 아니었다. 그럴 권한은 아직 이난나에게만 있으니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랫동안 자신을 모셔온 아이들을 무정하게 내치다니. 절도처럼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나?’
이난나는 작금의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원래 저런 애였던 건지. 아니면 잠시 미친 건지.
“아주 이상한 일이기는 하구나. 내가 아는 라흰은 저런 아이가 아니었다만.”
사람이 조금 바뀌는 것도 아니고 아예 홱 뒤집혔다.
그에 임마누엘은 끙 하는 소리를 내며 미간을 문질렀다.
이럴 때 아들놈이라도 있으면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라고 할 수 있었을 텐데.
선택의 날.
라흰이 까무러치자 아들놈은 곧 돌아갈 테니 그때 선택의 날을 다시 열자고 했다. 너무 급하게 하지 말자고.
그 말도 일리는 있었기에 임마누엘은 잠시간 선택의 날을 유보하기로 했다. 한데 바로 그날부터 라흰의 태도가 이상해졌다. 몹시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지금은 두고 보도록 하지. 하지만 쇼핑을 더 나가진 않도록 하는 게 좋겠어. 이러다 수도에 있는 모든 물건을 사들이게 생겼으니.”
고민하던 임마누엘이 다소 어렵게 결정을 내렸다. 그러고는 이안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너는 지금처럼 뒤에서 지켜보도록 하거라.”
“예.”
“이만 해산하지. 오늘 여기서 오간 이야기는 함구하도록 하고. 잠시간의 일탈일지도 모르니까.”
임마누엘은 라흰을 아꼈다.
귀엽고 작은 담비가 하는 행동마다 사랑스러우니 어찌 예뻐하지 않을까.
잠시 엇나가는 것 정도야 괜찮다. 시간을 주고 다시 돌아오도록 기다려 주는 것도 어른이 할 일 아닌가.
비록 너무 다른 사람 같긴 하지만…….
이윽고 네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근심으로 어른들의 표정이 어두웠으나 딱 한 명. 이안은 달랐다.
이안의 표정은 어둡기보다는 어딘가 화가 나 보였다. 가라앉은 금안이 매섭게 일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