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5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53화(153/173)
* * *
“우욱!”
신전의 마차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나는 여행 내내 몇 번이나 멀미를 했고 마차에서 내릴 때마다 라흰을 욕했다.
‘이건 마차가 아니라 숫제 고문 도구잖아!’
얼마나 싸구려 재료로 만든 건지 흔들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탓에 잠을 잘 수도 없었다. 바퀴가 돌부리에 걸려서 크게 덜컹하는 바람에 혀를 씹은 게 몇 번인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 그나마 중간중간 마을을 들러서 다행인가.’
그마저도 쉬는 게 아니라 봉사활동을 하는 거지만.
나는 신성력으로 병자를 낫게 하고 다친 이의 상처를 돌보았다.
성녀가 마도 제국으로 가는 길에 환자를 봐준다는 소문이 어디까지 난 건지, 도착하는 마을마다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어 길이 지체될 수밖에는 없었다.
결국 목표한 일정보다 반나절씩 늦어지자 나는 초조함에 입맛마저 잃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교황이 나를 부른 것은.
“앉아, 플로린. 오랜만이지. 이렇게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건.”
반말? 교황에 대해 캐내볼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올 줄이야.
나는 교황을 뚫어져라 쳐다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겨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손톱이나 들여다보았다. 예법에 맞는 행동은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일부러 그런 거였다.
‘라흰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걸 생각하고 교황 앞에서는 라흰처럼 굴어야 해.’
보아하니 말을 편히 할 정도로 친한 사이인 모양인데……. 뭐라도 캐내려면 그래야 하지 않겠어?
“듣자 하니 네가 성실하게 변했다고들 하던데.”
“…….”
“많이 불편하지? 잠자리도, 식사도.”
이쯤에서 발끈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눈썹을 추켜세웠다.
“지금 누구 놀려?”
“아하하, 미안. 미안. 그래도 네가 기특하게 잘 따라와 줘서 나는 기쁘고 고마워.”
교황은 정말 특색 없는 얼굴이었다. 멀끔하긴 하지만 단지 그뿐.
그리고 나는 이러한 ‘평범한’ 얼굴을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아르칼리크의 기술이야. 틀림없어.’
인피면구는 아르칼리크에서 지내면서 질리도록 본 것이다.
흥미로운 물건이다 보니 내가 직접 내 것을 만들어서 써보기도 했었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오가는 시간을 빼면 마도 제국 황성에서 딱 14일간 머물게 될 거야.”
“……응.”
교황이 부드러운 말투로 속삭였다.
“거기서 네가 진짜인지, 마도 제국의 라흰이란 애가 진짜인지를 가려낼 거고.”
고작 저런 말을 하려고 따로 불렀나?
나는 교황을 노려보며 다리를 떨었다.
아주 불량하고 못 배워먹은 자세이지만 그간 샌디에게 들은 게 있었다.
‘라흰은 자주 욕설을 쓰고, 가만히 앉아 있지를 못해 몸을 배배 꼬고 다리를 떤다고 했지.’
차마 욕까지는 못하겠지만 태도쯤이야 꾸며낼 수 있다.
“하지만 하늘 아래 성녀는 하나뿐.”
“그래서? 어쩌라고?”
“어쩌기는. 네가 그 애를 죽여야 한다는 거야.”
“!”
하도 다정한 어조라 나는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의심했다.
하지만 교황은 여전히 빙그레 미소를 짓고 있었고, 자신이 한 말에 이상한 점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나는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아. 플로린.”
그때, 교황이 내 이름을 부르며 뭔가 이상하다는 듯 눈가를 살짝 찌푸렸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나는 분명히 보았다. ‘플로린’이라고 발음하며 교황이 어색해하는 것을.
“내, 내가 왜 네 명령을 따라야 해?”
“음…… 그러지 않으면 네가 죽을 거거든. 넌 아픈 거 싫어하잖아, 플……로린.”
교황이 내 이름을 입에 담으며 또다시 미간을 좁혔다. 그러더니 그의 손에 일어난 새하얀 광휘가 막을 새도 없이 내 가슴을 찔러 들어 왔다.
“윽!”
“그건 신성력으로 만들어진 시한 폭탄이야. 네 심장에 심었지.”
“너!”
“나를 위해 마도 제국의 성녀를 공격해 줘. 그러면 풀어줄게. 우린 친구니까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지?”
미친놈!
나는 가슴을 움켜쥐며 숨을 헐떡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낯선 힘이 내 심장을 옭아매고 있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건 천신의 힘이 아닌데.’
이건…… 이건 틀림없이 악신에게 받은 힘이었다.
“빛과 그림자처럼 신성력은 타인을 치료할 수도 있지만…… 공격할 수도 있지. 아마 넌 수업 시간에 자느라 전혀 듣지 않았을 이야기겠지만.”
가슴이 너무 아프다. 새카만 통증이 나를 집어삼키는 것만 같았다.
“참. 멋대로 행동하는 게 너의 사랑스러운 점이긴 하지만, 플로린. 마도 제국에서는 적당히 자제해 줬으면 좋겠어. 너무 눈에 띄면 암살하기 힘들잖아.”
교황은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냐.
그건 본능에 따른 직감이었다.
나는 뒷걸음질을 치며 교황의 막사를 빠져나왔다.
혼자가 되고 나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무시무시하던 위압감 역시 사라지자 그제야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위험해. 저자…… 눈이 돌아 있었어.’
나는 웬만한 일에는 겁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저자가 내뿜는 불온한 공기와 기세는…… 차마 무어라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나쁜 것과 악랄한 것을 한데 섞어 흰색으로 칠해둔 것만 같았으니까.
‘어차피 라흰을 없앨 계획이긴 했지만, 이렇게 협박을 받으면서 할 생각은 없었어. 게다가…….’
죽여도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간 뒤여야 한다.
지금 라흰이 죽으면 그건 아르칼리크의 공주인 라흰이 죽는 거잖아. 까딱하다간 그 자리를 영영 되찾을 수 없게 돼.
‘그리고 다시 원래대로 모든 게 돌아가기 전엔 내가 뭘 한들 라흰이 죽을 리가 없어.’
내 몸에 물리적 위해가 가해지면 아빠가 바로 알게 된다. 내겐 강력한 보호 결계가 있었다.
비록 인간이 만든 것인지라 신의 힘을 뛰어넘진 못해서 나와 라흰이 이렇게 뒤바뀌게 되었지만 물리적 공격은 무엇이 되었든 다 막아낼 수 있는 그런 결계였다.
그리고 이제 그건 라흰의 것이 되었겠지.
‘특히 죽음에 이를 만큼 큰 공격을 당하면 아빠가 바로 오실 텐데.’
교황이 천신과 악신 사이의 내기를 알고 저러는 걸까? 아니면, 개인적인 원한인가?
‘아, 맞아. 화이란에게 교황의 뒷조사를 부탁했었는데!’
설마 그 자료를 고스란히 라흰에게 가져다주진 않겠지?
* * *
그 시각. 라흰은 단테의 허벅지 위에 올라앉은 채 부끄러움도 모르고 입을 벌리고 있었다.
“음, 맛있어!”
“그래?”
“응! 단테가 주니까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
보통 티 파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또래 숙녀들이 여럿 모여 친목을 다지는 자리였다.
이 자리는 말 그대로 ‘숙녀’의 것으로 남자들이 낄 수 없었다. 숙녀들 역시 신사들만의 당구 살롱에 끼어들지 않으니까.
한데 라흰은 오늘 그런 관례를 완전히 개무시했다.
옷차림부터 너무 과해서 지적이 나올 만도 한데, 하녀조차 하지 않을 저런 망측한 짓이라니.
테이블에 둘러앉은 영애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서도 가장 표정이 안 좋은 이는 둘이었다. 바로, 라흰의 절친한 친우이자 이 자리를 연 주인인 벨라디 로이바이엄과 오래도록 단테를 짝사랑해 온 아일라 슈르츠바츠였다.
“크흠. 영애, 너무 과한 행동 아닌가요?”
결국 이 자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영애 하나가 헛기침을 하며 부채를 펼쳤다. 이제 슬슬 적당히 하라는 의미였다.
그러자 아일라 슈르츠바츠가 눈물이 고인 눈으로 라흰을 째려보며 덧붙였다.
“애정 행각은 나가서 하세요!”
이런 경우 없는 일을 처음 겪어보았기에 영애들은 지금껏 할 말을 찾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에 라흰이 그만둬 줄 거라고 믿었고.
하지만 시간이 30분이 흘렀는데도 괴상망측한 행위는 끝이 나지를 않았다. 심지어 단테마저 라흰이 하자는 대로 다 따라주고 있다는 게 기가 막혔다.
“왜. 띠껍니?”
그때였다.
냅킨으로 입가를 닦던 라흰이 아일라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피식 비웃음을 지었다.
그에 분위기가 완전히 경직되고 말았다.
띠껍냐니.
태어나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저속한 말투에 결국 아일라의 눈에서 분노에 찬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지…… 마세요, 아일라. 그리고…… 라흰. 이번엔 한 마디를…… 해야겠어.”
벨라디는 평소 말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꼭 해야 할 말만 했지.
그랬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벨라디의 한 마디는 무게감이 있었다.
“단테를 선택할 거야?”
20대 가주로 단테를 선택한 거라면 보기 싫어도 어쩔 수 없다.
벨라디는 그렇게 여겼다.
만약 라흰이 단테를 갖고 노는 게 아니라 진심이라면 참을 수 있다고.
너무 좋아서 저러는 거겠지. 단테도 좋다면 괜찮겠지.
그렇게 눈을 감고 못 본 척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너, 단테를 좋아하는구나?”
“……뭐?”
“흐응, 하지만 내가 단테를 선택하지 않아도 단테가 내 남자라는 건 변하지 않아. 어딜 넘봐?”
라흰은 마지막 화해의 제스처마저 무시해 버렸다. 아니, 짓밟고 조롱했다.
그리고 일이 그쯤 되자 제아무리 둔감한데다 라흰의 일이라면 덮어놓고 옹호하는 단테라도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