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5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56화(156/173)
아까 남기고 갔던 음식을 배고픈 아이에게 몽땅 넘겨준 나는 골똘히 고민했다.
이름은 중요하다.
어떻게 불리느냐가 그 사람을 규정짓기도 하니까.
지금까지 힘든 삶을 버텨낸 아이에게 최대한 좋은 이름을 주고 싶은데.
“성녀님, 꼬리를 보니까 이 아이. 여자아이네요!”
그때,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왔던 샌디가 나를 불러왔다.
“꼬리 줄이 세 개예요. 세 개는 여자아이, 두 개는 남자아이거든요.”
“아아. 그러면…… 레티나라고 지어야겠다.”
레티나라는 글자의 의미는 ‘인연’.
이 아이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야영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언덕.
바위 위에 느슨하게 올라앉아 있던 미중년의 사내가 뻗었던 손을 다시 거둬들이고 있었다.
‘이상하군.’
시간이 제법 걸리긴 했지만 키락서스는 결국 상어의 애착을 끊을 약을 구했다.
텔레포트로 집에 돌아갈 수도 있었지만 기왕 여기까지 온 것, 플로린이 마도 제국에 도착하기 전에 죽이려고 했었는데.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성은 그에게 죽이라고 했다. 그런데 결국 손끝을 멈칫하게 만든 건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가슴속의 무엇이었다.
“……플로린을 죽인다.”
키락서스는 생각을 입 밖으로 내어보았다.
헌데 너무나 불쾌했다.
‘무슨 농간을 부린 거지?’
눈살을 찌푸린 키락서스는 플로린이 어린아이에게 제 몫의 식사를 내어주는 걸 지켜보았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가 아는 플로린은 숨 쉬는 공기 하나조차 아까운 쓰레기인데.
그때였다.
“!”
눈이 마주쳤다.
아니, 거리가 있으니 그럴 리는 없고 시선이 비껴 나갔다고 봐야겠지.
그런데 순간적으로 성녀 플로린의 머리칼이 은발처럼 보였다. 가증스럽다고만 여겼던 두 눈이 체리처럼 붉은 것 같았다.
‘이건 알아볼 필요가 있겠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돌아가서 소중한 라흰을 보면 될 일이다.
그 뒤에 판단해야겠다고 생각한 키락서스는 교황 무리보다 먼저 마도 제국으로 이동했다.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았다.
* * *
두 제국의 성녀가 회담을 갖는다!
그 세기의 사건에 마도 제국의 백성들은 크게 흥분했다.
교황과 성녀, 수많은 신관의 행렬이 어떠할지 기대하기도 했고 그들이 뿌려준다는 동전을 최대한 많이 줍겠다며 벌써부터 뜀뛰기 연습을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사실 백성들 입장에서야 축제가 열린다고 하니 뭔가 대단해 보이고, 좋아 보이고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해 떠들어 댈 때, 당사자들은 그다지 편안한 하루를 보내고 있지는 않았다.
“그거 말고! 저거 보여줘.”
라흰은 신경질을 내며 하녀들을 향해 턱을 까딱였다.
일전에 한 번 하녀들을 갈아치운 뒤로 라흰은 새 하녀들을 받았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에 차지 않아 라흰은 벌써 네 번째 새 하녀를 들였다.
그리고 오늘 아침, 새 하녀가 마사지를 하다 실수로 종아리를 아프게 꾹 누르자 라흰은 소리를 지르며 길길이 날뛰었다.
치미는 짜증을 참을 수 없던 라흰이 또 하녀를 바꿔 달라고 청했는데, 이번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에 라흰은 지금 자존심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왜? 왜 안 되는데? 내가 곧 이 가문 안주인이 되는데 왜?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어이가 없네. 기가 막혀서는.
라흰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이를 박박 갈았다.
‘이안도 그래. 어떻게 내가 보낸 하녀를 다 물릴 수가 있지? 카드에도 대꾸 하나 없고? 찾아오지도 않고 말이야.’
사실 라흰이 이렇게까지 기분이 안 좋은 건 다 이유가 있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점심, 저녁 둘 다 이안에게 사람을 보냈는데 누구도 제대로 된 대답을 가져오지 못했던 것이다.
그 귀공자처럼 잘생겼다는 얼굴을 좀 보고 싶은데 코빼기도 비추지 않으니 볼 길이 없다.
식사 자리에는 원래 잘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 것 같고 말이야.
그래서 라흰은 어제 결국 아픈 척까지 했다.
골골 앓는 소리를 내며 침대에 틀어박혔는데 그래도 이안은 오지 않았다.
‘하! 황궁에 가면 황태자나 끼고 놀아야지. 나도 너 같은 거 필요 없거든?’
라흰은 씩씩거리며 백 벌도 넘는 드레스를 갈아입고 구두를 신고 머리치장을 다시 했다.
그리고 아름다운 제 모습을 거울로 보며 기분을 다스렸다.
“어때? 단테. 나 예뻐?”
그런 라흰에게 시간을 희생당한 건 하녀들만이 아니었다.
단테 역시 점심시간부터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라흰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응, 예뻐.”
“뭐가 어떻게 예쁜데?”
“어…… 그러니까…….”
사실 단테는 지금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알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라흰은 파티션 하나만 쳐놓고 그 뒤에서 계속 옷을 갈아입었다.
쏟아지는 창가의 햇볕으로 인해 몸의 실루엣이 다 비치니 단테로서는 곤욕스러울 따름이었다.
게다가 라흰이 새로 사들인 옷은…… 드레스에 대해 잘 모르는 단테가 봐도 망측했다.
가슴골을 잔뜩 강조하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다리가…… 저렇게까지 내보일 필요는 없지 않나.
단테는 그냥 동물화를 한 다음 눈을 감아버리고 귀도 닫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다.
“응? 어떻게 예쁘냐니까?”
하지만 라흰은 단테의 피로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그나마 제 마음대로 되는 게 단테다. 그런데 놓아줄 리가 있나.
라흰은 교활하게 눈을 빛내며 다가와 단테의 코앞에 제 가슴 둔덕을 들이밀었다.
“벗어. 안 어울리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낯선 음성 하나가 라흰의 귀를 파고들었다.
라흰은 평소 자신을 부정하는 말에 민감했으므로 당장 도끼눈을 뜨고 고개를 홱 돌렸다.
어느 새끼가 저리 건방진 말을 하는지 똑똑히 보아두려던 것이다.
하지만 라흰은 쏘아붙이려던 수많은 말 중에서 단 한 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미, 미친. 뭐 저리 잘 생겼어?’
라흰에겐 이상형이 있었다.
일단 서늘한 눈빛의 냉미남이어야만 한다. 싸가지는 조금 없어야 하고 고고하고 자존심도 세야 했다.
그런데 미남을 줄 세워 놔도 거기에서도 으뜸일 만큼 잘생겨서 얼굴만 봐도 화가 사르르 녹아야만 했다.
그런 의미로 단테는 실격이다.
잘생긴 건 맞는데 너무 다정했다.
지나치게 자상해서 그다지 동하지가 않는달까.
‘젊은 시절의 키락서스만큼이나 괜찮잖아?’
순식간에 누군가를 유혹하는 모드로 바뀐 라흰은 수줍은 척 웃으며 입을 열었다.
“왜애. 안 어울려?”
“응. 천박해 보이잖아, 라흰.”
천박이란 단어에 순간 웃는 얼굴이 깨질 뻔했지만 라흰은 참아냈다.
그럴 수 있을 만한 미남이었다.
“그럼 뭐가 어울리는지 골라줄래?”
“글쎄……. 최대한 몸을 가리는 게 좋겠지. 넌 결점이 많으니까.”
아, 근데 미남이라도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냐?
라흰은 샐쭉해져서는 눈을 흘겼다.
하지만 저 차가운 말이 싫지 않은 게 유머였다.
‘붉은 머리니까 이안 맞네. 지금까지 내 연락을 다 무시한 거, 너그럽게 용서해 줘야지.’
저런 반응인 걸 보면 플로린이 이안을 꼬시지 못한 게 분명했다.
라흰은 문가에 삐딱하게 기대어 선 미남을 향해 생글거리며 웃어 보였다.
“일단 입고 나올 테니까 단테랑 같이 봐 줘!”
하지만 상황은 결코 라흰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 * *
“이건 어때?”
“얼굴색이랑 안 맞네. 넌 좀 더 푸른 계열이 잘 맞아.”
“어…… 그럼 이건?”
“그건 프릴이 별로야. 너무 유치해.”
“이, 이건?”
“네가 입기엔 너무 싸구려 재질인 것 같은데.”
라흰과 이안의 줄다리기는 팽팽했다.
라흰은 약이 올라서 어떻게든 이안의 입에서 ‘예쁘다’는 말을 듣고 싶어 했고, 이안은 그 무엇에도 감흥 없는 표정을 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두 고래의 싸움에 등이 터져 나가는 건 단테와 하녀들이었다.
“아, 몰라! 나 안 해! 안 입어!”
결국 싸움에서 진 건 인내심 없는 라흰이었다.
쓰고 있던 티아라를 홱 벗어 던진 라흰은 눈물이 글썽글썽한 채로 이안을 노려보았다.
“이안, 미워!”
나름 비장의 수라고 던진 한 마디지만 이안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이안은 차게 식은 눈으로 입꼬리를 올리며 빙그레 웃었다.
“그럼 파르페를 먹으러 가자.”
“……파르페?”
“응. 우리가 화려한 바닷가 도시에 여행 갔던 거 기억나? 그때 제일 처음 먹은 음식이잖아. 내가 만들어준 파르페 말이야. 기억하니?”
순간적으로 라흰은 당황했다.
그건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플로린의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안은 그 찰나의 머뭇거림을 놓치지 않았다.
“응, 맞아. 맛있었지. 또 먹고 싶어!”
“그래, 그럼 나갈까.”
알맞은 대답이었나 보네.
이안의 미소가 좀 더 짙어지는 걸 보며 라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좀 짜증 나기는 했지만 뭐, 저런 미남이랑 파르페를 먹으러 나갈 수 있다면야.’
라흰은 언제 화를 냈느냐는 듯 배시시 웃었다.
“아, 그런데 안 되겠다.”
하지만 다음 순간, 이안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오늘은 황태자 전하와 만남이 있거든.”
“뭐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고개만 꺾어 툭 내뱉은 이안은 그대로 유유히 사라졌다.
남겨진 라흰은 폭발 직전의 상태가 되어 급기야 정말로 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