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5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58화(158/173)
* * *
먼 곳에서 온 손님들이니 당연하게도 하루의 휴가를 받을 수 있었다. 공식적으로 황제와 라흰을 마주하게 되는 건 내일부터다.
‘마도 제국은 신성 제국처럼 일정을 빡빡하게 짜지 않는다는 게 이렇게 고마울 줄이야.’
버터와 향신료를 제대로 쓴 음식 또한 너무나 기뻤다.
나는 오랜만에 입에 맞는 음식을 든든히 먹었다.
다시 한번 같은 생각을 하지만, 마도 제국은 신성 제국처럼 가난하지 않기 때문에…… 나와 레티나가 나누어 먹어도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양이 아침 밥으로 나왔다.
“맛있니?”
“우아!”
“그래, 남은 건 다 먹어도 돼. 하지만 배가 아플 수 있으니 천천히 꼭꼭 씹어 먹으렴.”
레티나는 참 귀여운 아이였다. 얌전하고 말귀도 곧잘 알아들었고 과한 행동을 하지도 않았다. 같이 지내보니 만약 레티나가 원한다면 드리블랴네 저택에 하녀로 데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슬슬 준비를 해볼까.’
조금 있으면 유리가 올 것이다.
내가 할 준비라고는 이 뻣뻣한 머리칼을 빗고 성녀복을 입는 것뿐이었으므로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똑똑.
잠시 뒤, 누군가 노크를 했다.
“유리!”
반가움에 문을 활짝 열자 거기에는…….
“!”
너무나 그리웠던 사람. 보고 싶어서 차라리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이.
그 이름을 입에 담으면 눈물부터 나서 차라리 외면했던 인물이 서 있었다. 이안이었다.
* * *
이안은 새벽녘, 성녀가 탔다는 마차가 성문을 통과할 때부터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뺨을 휘감고 차가운 바람이 스친다. 바람은 이안의 손아귀에 쥐여져 있는 새카만 종이도 한 번 훑고 지나갔다. 거기에는 충실한 수하가 조사해온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고아를 구하고, 먹을 것을 양보했다고.’
게다가 신관들 사이에서 인기도 높다고 한다.
원래 그러지 않았던 성녀님이지만 신의 뜻으로 개심하였다며 칭송이 자자하다고 했다.
거기까지 읽은 이안은 확신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저 마차 안에 타고 있는 이가 그리운 여인이다. 그가 사랑하는 여자였다.
그렇게 나뭇가지 사이에 몸을 숨기고 마차를 집요하게 보고 있는데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이란이었다.
“솔직히 이게 다 뭔지 모르겠다. 공주님이 공주님이 아니라니.”
심각한 표정의 화이란을 슬쩍 돌아본 이안은 차분히 대답했다.
“아르칼리크의 왕께 연락은 하셨습니까?”
“아니, 안 했는데. 공주님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거든. 그래서 네 말을 믿어보자 싶었다.”
“잘하셨습니다.”
화이란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그는 사실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놈의 ‘선택의 날’이란 것 이후로 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안의 말대로 공주님이 가짜로 바뀐 거라면 진짜는 어디에 있단 말이고, 어떻게 해야 되돌릴 수 있는가.
사실 얼른 아르칼리크에 가서 보고를 올려야겠지만 화이란은 미적거리고 있었다.
왕께서는 진노하실 것이다.
왕께서 자연재해처럼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거든 진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말만큼은 금물이었다.
“저 교황이란 자에 대해서는 어디까지 알아보셨습니까?”
“아, 그거.”
극도로 분노한 왕의 모습을 상상하던 화이란은 부르르 떨었다. 아무튼 그것만은 안 된다.
공주님께서 무사하시다는 걸 알고 나서 보고를 올려야만 했다. 그리고 이 사항에 대한 것도.
“아르칼리크에서 추방당한 죄인 중 몇이 신성 제국에 뿌리를 내렸다는 기록은 있어. 개중 감쪽같이 사라져서 찾을 수 없는 놈들도 있지.”
이안은 화이란의 말에 집중하면서도 마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차례대로 신관들이 비틀거리며 내렸지만 성녀의 차례는 한참 뒤인 듯했다.
“교황의 정체가 아르칼리크에서 추방당한 죄인과 신성 제국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일지도 모른다. 그리 가정하면 교황의 머리카락 색이나 눈 색이 평범한 게 이해가 된다. 그게 공주님이 하신 말씀인데…… 있을 법하긴 해. 죄인들은 왕을 증오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다면 교황이 진짜를 인질로 잡고 있을 수도 있겠군요. 뭔가 술수를 부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혼이 바뀐다는 건 아무래도 주술적인 의미가 강했다.
이안의 경계 대상에 교황이 오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다만 이안보다 오래 살았고, 그래서 세상의 이면을 보다 많이 알고 있는 화이란은 그 가능성을 낮게 점쳤다.
영혼 같은 걸 인간이 뭘 어떻게 할 수 있을 리 없다. 그게 가능했으면 왕께서는 돌아가신 왕비님의 영혼이라도 붙들어두셨으리라.
“오, 이제 내리는군.”
화이란의 한숨과 함께 마지막 남은 마차의 문이 달칵 열렸다. 거기에서 내린 여자는 이렇게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몹시 지쳐 보였다.
“…….”
이안은 그 낯선 여자를 뚫어져라 보았다. 당장 해부라도 할 것처럼 집요하고 날 선 시선이었다. 스승을 자처하는 화이란마저 쉽사리 말을 붙이기 어려울 정도로.
그리고 신성 제국에서 온 성녀가 황궁 안으로 사라졌을 때. 바로 그 순간, 화이란은 약간 충격을 받은 채 이안을 보았다.
이안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동시에 웃고 있었다.
“찾았다.”
그렇게 나직이 속삭이면서.
그게 그가 아침이 되자마자 성녀 플로린을 찾아간 이유였다.
* * *
“이, 이안. 이안……!”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어쩌지 못하고 이안의 품에 안겼다.
당장이라도 그를 이 팔 가득 끌어안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나, 나를 알아본 거야?”
“당연하지, 애기야.”
애기야.
이안만의 나를 부르는 애칭이다.
그걸 듣자마자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무너지듯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 나를 단단하게 받쳐 안은 건 이안이었다.
“내가 널 못 알아볼까 봐.”
“이안…… 이안.”
너무 감격하면 말이 안 나온다더니 지금이 딱 그랬다.
유리야 <책>이 있어서 나를 못 알아볼 리 없다지만 이안은 아닌데. 어떻게 눈치를 챈 걸까.
너무 신기하고 믿기지가 않아서 어안이 벙벙했다. 그와 동시에 주체할 수 없이 기쁨이 솟아났다.
이안은 내 등을 토닥여주고는 다정하게 속삭였다.
“우리가 여행 간 곳에서, 내가 뭘 해주었는지 기억나?”
“응! 팬케이크!”
“그래. 팬케이크야. 맞아.”
이안이 두 눈을 꾹 눌러 감았다.
나는 저도 모르게 그에게 키스할 뻔했지만 레티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보고 있었기에 간신히 진정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게, 이안. 들어올래……?”
“그게 좋겠다. 곧 사람들이 다닐 테니까.”
탁.
이안이 문을 닫고 들어왔다. 그가 여기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하나도 빠짐없이 설명해 줄래? 나는 아직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거든.”
이안이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
또 왈칵 눈물이 날 뻔했지만 꾹 참은 나는 두 눈을 또렷이 빛내며 한 자 한 자 차근히 설명했다.
이야기는 길었고 어느덧 정오에 가까워졌으나 그동안 유리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이안은 처음에는 웃는 낯이었으나 내 이야기를 듣는 동안 점차 목에 핏대가 섰다.
“많이 힘들었지, 플로린.”
라흰이 아니라, 플로린.
내 이름을 부르는 이안의 모습에 나는 그동안 고통스러웠던 것을 다 보상받기라도 하는 기분이었다.
자의도 아니고 타의로 나 자신을 잃는 건 너무나 끔찍한 기분이었다. 견디려고 애를 썼지만 원래라면 견디지 않아도 될 일이었잖아.
“난…… 라흰이 내 자리마저 그렇게 빼앗을 줄은 몰랐어.”
“걱정 마. 반드시 벌을 받게 될 테니까. 어떤 벌을 내려도 속이 시원해지지 않을 테지만…….”
빠드득.
이안이 이를 갈았다.
그러던 그는 이내 내 심장 쪽으로 서글픈 시선을 주었다. 여기에 심겨 있는 신성력 폭탄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인가, 없을 것인가. 그게 현재 당면한 문제였다.
* * *
한편, 그 시각.
유리는 재수 없게도 황제와 교황에게 붙들린 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아, 제가 요즘 신의 말씀에 관심이 많아서 말입니다.”
교황은 적당히 상대한다고 되는 상대가 아니다. 그 탓에 유리는 아침 식사 직후 플로린에게 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누나, 기다리고 있을 텐데.’
빨리 가야 한다. 불안해하고 있을 플로린을 달래주어야 했다. 하지만 능구렁이 같은 교황은 도무지 엉덩이를 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렇습니까? 그것참 기쁜 일이군요.”
“네. 그러니 신성 제국의 성녀님께 배움을 청하고자 합니다. 이 나라 성녀는 영 배울 게 없어서요.”
싱긋 웃은 유리는 들고 있던 잔을 내려놓았다. 속이 뒤틀려서 그런지 아무것도 마시고 싶지 않았다.
“계실 때만이라도 신성 제국의 성녀님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야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토록 간절하게 배움을 청하시는데 어찌 안 된다고 할까요.”
교황이 의뭉스러운 웃음을 머금었다.
당장 한 대만 때리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아, 유리는 제 주먹을 슬그머니 숨겨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