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59)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59화(159/173)
“하지만 공식적인 만남은 내일부터이니 내일부터 성녀님을 만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제깟 게 뭔데 허락을 하니 마니 한단 말인가.
어이가 없었지만 유리는 그저 웃는 낯을 유지할 뿐이었다.
이자 앞에서는 결코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그건 본능이 던지는 경고였다.
‘동족 혐오를 여기서 느끼게 될 줄이야.’
저 교황은 그와 결이 같은 놈이다.
제 목적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냉혈한. 타인의 약점을 잡기만 하면 그걸 이용하려 드는 잔혹한 성정.
‘상어로 태어났어야 할 놈인데.’
유리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도 제국에서 충분히 즐기고 가시기를.”
먼저 방을 나서는 그의 등에 따가운 시선이 꽂혔다.
아무래도 오늘 플로린을 만나러 가는 건 그른 일인 듯했다.
* * *
점심은 이안의 수하가 가져다준 샌드위치를 먹었고, 저녁 시간이 다 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이안과 함께 있었다.
정확히는, 이제 화이란도 함께였다.
“허어. 참으로…… 신기한 일이군요.”
화이란이 눈을 샐쭉하게 뜨며 내 머리칼을 훑어 내렸다. 은발이 아니니까 내가 진짜라는 걸 덜컥 믿기가 힘들다는 투였다.
하지만 이렇게 만날 수만 있다면 내가 진짜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은 쉬웠다.
“화이란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시루떡이야.”
“……헉, 그걸 어떻게……!”
“아르칼리크에서 내 방에 놀러 올 때면 매번 시루떡을 한 아름 싸갔잖아. 시루떡만 있으면 밥은 안 먹어도 된다고 했지. 그 외에 또 증거가 필요하다면…… 난 인피면구 만드는 법도 알아.”
줄줄 읊자 화이란의 눈이 커다래졌다. 이거야말로 내가 나라는 증거다. 아르칼리크에서 있었던 일은 라흰이 꾸며낼 수도 없고 상상조차 할 수 없을 테니까.
솔직히 라흰이 정말 내 자리를 빼앗고 싶었다면 내 기억을 소거시켰어야 했다. 아니면 암살자라도 고용해서 몸이 바뀌자마자 나를 죽이든가.
하지만 라흰에겐 그 정도 지능은 없는 듯했고, 내겐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화이란은 지금까지 결혼을 안 했어. 사랑한 사람도 없고.”
“!”
“어때, 화이란? 증거가 더 필요해?”
“아닙니다. 당신이 진짜 공주님이시군요!”
화이란이 반색을 했다.
긴장이 풀린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내 옆에서 떠나지 않는 레티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레티나는 우리가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기에 그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내가 울고, 분위기가 심각해 보이니까 덜컥 겁을 먹은 것이다.
그런 우리의 모습을 보던 이안은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쿡쿡 웃었다.
“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이렇지.”
“응? 뭐가?”
“돌보는 걸 좋아해. 불쌍한 애를 지나치지를 못하고. 그래서 나도 구해준 거잖아.”
“그, 그런가?”
내가 그런 줄은 몰랐는데.
뺨을 긁적이던 나는 문득 아직도 유리가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원래 유리가 오기로 했었는데, 오늘.”
“그래?”
“응. 지금 내가 진짜라는 걸 아는 건 모두 세 명이야.”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어떻게 원래 자리를 되찾을지 모르겠지만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더라도…… 라흰을 없앨 수는 있으리라.
그러면 자랑스러운 은발도 잃고 붉은 눈도 잃지만 그렇게라도 살아갈 수는 있었다.
물론 그런 일은 벌어지면 안 되겠지만.
‘아빠가 엄청 슬퍼하실 거야. 사흘 밤낮을 내리 우실걸. 눈에 선해.’
그러니까 지금 당장 라흰을 죽일 수 있어도 움직이지 못하는 거다.
라흰이 죽고 나면 영영 이대로일 테니까.
그때, 뭔가를 곰곰이 고민하던 화이란이 입을 열었다.
“폭탄 말인데요. 시전자 본인이 폭탄을 제거해 주는 게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 된다고 해도 아마 떠넘기기가 가능할 겁니다. 두 사람이 원위치로 돌아가게 되면요.”
낙관적인 전망이었지만 워낙 오래 살았고 별의별 일을 다 겪어 본 화이란이 하는 말인지라 신뢰감이 있었다.
“맞아. 게다가 아버님이 아직 안 돌아오셨잖아. 아버님이 이걸 제거하실 수 있을지도 몰라.”
마법과 신성력은 완전히 반대되는 힘이어서 안 될 확률도 높지만, 아버님의 힘으로 가능할지도 모르잖아.
희망의 끈을 벌써부터 놓을 필요는 없었다.
“내가 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할게. 걱정하지 말고 있어, 플로린.”
“……고마워, 이안.”
“만약 뭔가 잘 안 풀리더라도 내가 교황을 죽이고 널 납치해 버릴 테니까, 걱정할 것 없어. 정말 만에 하나 네가 죽는다면 나도 따라 죽을게. 네가 외롭지 않게.”
역시 이안은 무척이나 다정한 어조로 무서운 말을 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이안의 손을 꼭 쥔 나는 문득 아까 있었던 일을 상기했다.
“그러고 보니…… 나, 이안을 엄청 믿고 있었나 봐. 이안이라면 당연히 나를 알아봐 줄 거라고, 아무 설명 없이도 그냥 나인 걸 알 거라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믿은 거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안의 얼굴을 보자마자 눈물이 터지면서 안겨들었겠나.
마주한 순간, 1초 만에 교환된 눈빛.
그 찰나에 나는 허물어져 내렸다.
이안에게는 유리처럼 <책>도 없는데. 나인 것을 알아보고 찾아온 게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이었을지도 모르는데도.
“최소한 라흰이 가짜라는 건 알아볼 거라고, 내가 진짜인 건 몰라도…… 두 성녀 간의 연관성을 알아차릴 거라고. 이안이라면 분명 그럴 거라 생각해서 지금껏 버틸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
이런 일이 생겼을 때 가장 믿는 사람은 아무래도 아버님이었다.
나를 위해 시간마저 돌리신 아버님을 어떻게 믿지 않겠어.
그런데 놀랍게도 그다음은…… 아빠가 아니라 이안이었다.
‘아빠, 미안.’
아무래도 아빠는 멀리 계시니까 3순위로 밀린 거 같아.
“플로린…….”
이안의 금빛 눈동자가 감동을 받은 듯 일렁였다.
그렇게 우리가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온기로 위로를 전하고 있을 때, 화이란이 큰 소리로 헛기침을 했다.
“커흠, 흠! 아무튼 계획은 이렇게 갑시다.”
첫째. 이안이 아버님께 이 모든 것을 알리고 해결책을 강구한다.
둘째. 내가 직접 교황과 다시 대면해서 폭탄을 심은 것에 대한 진의를 떠본다.
셋째. 그때, 화이란이 스쳐 지나며 교황을 도발해 본다.
넷째. 그 후, 화이란은 아르칼리크에 가서 모든 상황을 보고한다.
다섯째. 그와 동시에 내일부터 열리는 환영 파티에서 유리와 이안이 내게 과하게 잘해주는 모습을 보이면서 라흰이 ‘다시 상황이 바뀌기를’ 원하게 만들어 본다.
여섯째. 나와 라흰의 상황이 다시 원위치 되면 그때 라흰을 처리한다.
화이란이 펼친 종이에 쓰인 건 모두 여섯 가지였다.
사실 라흰이 바라면 다시 원위치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건 하나의 가정에 불과했다.
신에게 빈 소원일 텐데 이걸 무슨 수로 되돌릴 수 있을까.
아버님도 아빠도 신성력 폭탄에 대해 대처할 방법이 없을지도 몰라.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는 무계획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지만, 뭐. 한 발을 내딛는 게 우선이니까.
그래야 그다음도 있는 법이다.
나와 화이란, 이안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에게는 각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런데 화이란. 나,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제대로 들은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예?”
“죄인 말이야. 무슨 죄를 지었으면 아르칼리크에서 추방을 당해?”
지금까지는 죄인이라는 것에만 집중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태어난 것만으로 죄가 되는 사람은 없었다.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소리인데.
“일단 제일 가벼운 죄목만 말씀드리자면 살인입니다.”
“……가볍지 않은 건?”
“음. 연성술을 아주 더럽게 잘못 쓰는 경우가 있었지요.”
그러니까 그게 대체 뭔데……?
그런 눈으로 쳐다보자 화이란이 레티나를 슬쩍 보았다. 그에 나는 레티나의 두 귀를 막았다.
“자, 이제 말해봐.”
“크흠. 그러니까…… 사람으로 연성을 한 경우입니다. 그게 아르칼리크 역사상 가장 끔찍한 죄였지요.”
“!”
뭐로 뭘 해?
너무 기가 막혀서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사람을 재료로 삼아서 연성을 하면 대단한 연성을 해낼 수 있거든요.”
“허. 그건 금기 중의 금기잖아.”
연성술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으로 연성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게 바로 산목숨을 재료로 쓰는 일이었다.
사람으로 연성하는 것이 허락되는 예외는 단 하나.
더없는 고통으로 죽어가는 병자의 존엄을 지켜주기 위해 본인과 가족 모두의 동의를 얻은 뒤, 병자를 꽃으로 연성해서 하늘에 뿌려주는 일인데…….
화이란이 말하는 건 그런 예외적 허용이 아닌 듯했다.
“그러니까요. 그래서 두 번 다시는 연성술을 쓸 수 없도록 단전을 폐한 뒤, 가장 처참한 꼴로 바닥을 기어 살도록 추방했습니다.”
“…….”
확실히 애가 들으면 안 될 말이었네.
소름이 돋아서 부르르 떨자 화이란이 뒷머리를 긁으며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