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6화(16/173)
솔직히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내가 소중하다고 스스로 세뇌하고 있다는 건가? 그냥 우연히 발견한 나를 갑자기? 그럼 난 운이 억세게 좋은 건데?
‘아, 또 까먹을 뻔했네. 미친놈이 하는 미친 행동에서 개연성을 찾지 말아야 하는데.’
키락서스는 일반적인 마법을 너무나 빠르게 깨우쳤기에 심심하다는 이유로 흑마법에 손을 댄 사람이었다.
딱히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 흑마법을 익힌 게 아니다. 하다 보니 흑마법 쪽이 좀 더 상성이 잘 맞아서 아예 흑마법사가 되어버린 케이스라고 할까.
보통 사람과는 생각하는 것도 보는 시야도 모두 달랐다. 당연히 나처럼 평범한 어린애가 고매한 마탑주의 정신을 이해할 수 없겠지.
나는 키락서스를 이해하기를 포기하기로 했다.
“저어, 그론데요…….”
대신 분위기가 좋은 것 같으니 그동안 궁금했던 거나 물어볼까.
“제가…… 가짜 성녀인 게 밝혀지면 어떠케요?”
“그럴 일은 없다. 가문에서 이미 너를 성녀로 만들기로 작정했으니.”
오연한 대답이었다.
드리블랴네가 원하니까 진실이 될 것이다.
그건 황홀한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너무나 무서운 말이기도 했다. 반대로 가문에서 나를 버리겠다고 결정 내리면 그대로 내쳐진단 소리니까.
“저, 아직 정식으로 며느리가 댄 거 아니조?”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야…… 하녀들한테 인사 같은 것두 안 했구, 계약서두 안 썼구…….”
“보기보다 영리하군.”
역시나.
고용인들은 눈치가 빨랐다.
내가 받는 대우를 보고 벌써부터 내게 ‘작은 마님’이라 칭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공식적인 건 아니다.
환영회도 없었고, 가계도에 이름을 올리는 의식도 없었잖아.
“공작 부인께 인사드리고 나면 공식적으로 인정될 거란다.”
“아……!”
“다만 어머니께서 너를 보려면 시간이 좀 더 필요하실 뿐이다. 지금은 칩거 중이셔서.”
이난나 애비게일 드리블랴네.
18대 공작 부인이자 땅의 정령사.
알아보니 아리아드네가 전사한 건 작년의 일이었다.
공작 부인은 딸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는 상태이니, 당연히 며느리를 들이는 일에 크게 신경 쓰거나 관심을 두고 싶지 않을 테지.
‘괜히 쓸데없이 나서서 심기를 거스르는 일만큼은 만들지 말자.’
나는 그렇게 다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뭔가 공작 부인께 도움이 되면 좋겠지만…… 이따금 함부로 나서지 말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내가 감히 딸의 자리를 대신하겠다거나 하는 경솔한 생각은 안 하는 편이 좋았다.
“자, 그럼 이만 자거라. 오늘 고생했는데.”
“으앗!”
키락서스가 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자 나는 허공에 붕 떠올랐다.
다음엔 입안까지 화한 느낌이 들더니 1초 만에 마법으로 씻겨졌다.
김말이 튀김처럼 이불에 돌돌 말리게 된 난 항의를 하려 했지만 키락서스가 이미 불까지 다 꺼버린 뒤였다.
“좋은 꿈 꾸고.”
아니, 저기! 아직 낮이라고요!
* * *
……근데 낮이라고 바락 소리치고 싶었던 것에 비하면 심하게 잘 잤다.
다음 날이 되어 일찌감치 깨어난 나는 걱정하는 유모와 린다, 니나의 품에 안긴 채로 한참을 있어야만 했다.
“흐흑, 저희를 위해 이 아름다운 티아라를 써주세요.”
“맞아요. 이 예쁜 분홍색 망토도 둘러주시면 안심이 될 것 같아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뭔가…… 세 사람, 자기 사욕을 채우는 것 같은데……?
그래도 난 일단 티아라도 쓰고, 분홍색 망토도 둘렀다. 그런 다음엔 존이 와서 머리를 박고 사죄했는데 그 모든 게 아침 식사를 하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오늘부터 가주님의 명에 따라 작은 마님의 지도를 맡게 된 라피렌 제르바이츠입니다. 공식적인 작위는 남작이며 올빼미 수인입니다.”
“안냐세요!”
세상에! 어쩐지 아침에 배송 온 가구 중에 미니어처 책상이 있더라!
라피렌은 은테 안경을 추어올리며 책 한 권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첫 수업이니, 가볍게 드리블랴네를 이끌어가는 가치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네에……!”
“제가 먼저 읽겠습니다. 이 내용은 잊으시면 안 되오며 반드시 외워 언제 어디서든 말씀하실 수 있어야 합니다.”
라피렌의 음성은 나직하고 발음은 또렷했다. 그리고 나는 아주 영리했으므로 행간에 숨겨진 의미들을 쏙쏙 잘 알아들었다.
“드리블랴네는 철저한 성과제다.”
이건 오는 정 없이는 가는 정도 없다는 뜻이고-
“드리블랴네의 일원은 탐욕을 멈추지 않되 모략가의 면모를 지녀야 한다.”
멍청하게 침을 뚝뚝 흘리면서 갖고 싶다는 걸 티 내지 말고 계략적으로 거머쥐란 뜻이고-
“드리블랴네는 먹잇감을 신중히 고르고, 한번 사냥을 시작하면 숨통을 반드시 끊는다.”
쪽팔리게 찍어 먹기나 할 거면 가만히 있는 게 가문 얼굴에 먹칠을 안 하는 것이란 뜻!
‘다 너무 맞는 말이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단 말이지.’
겸손하라거나 착해야 한다거나 참고 인내하라는 말 같은 게 없어서 좋다. 처음 사는 인생이면 그럴 수 있을지 몰라도 계속 죽었다가 살아난 내 입장에선 개소리로 들리거든.
드리블랴네의 가치는 내게 꼭 알맞았다.
“드리블랴네에서 취급하는 가장 중요한 상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네.”
“그럼 이게 무엇인지 아십니까?”
나는 눈앞에 놓인 총 한 자루를 빤히 보았다.
그건 살상 무기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을 정도로 우아한 외관을 지녔다.
새카만 총신을 따라 금빛 월계수 나뭇잎 장식이 있었고, 인체 공학에 맞추어 그립감이 좋도록 특별히 설계된 물건인 듯했다.
아마 아직…… 전쟁엔 나가지 않을 신제품인 듯한데. 전쟁터에서 쓰는 용도가 아니라 장식용일까?
“이건 사용자의 이큘리스를 급속으로 마력으로 변환하여 탄환을 만드는 총입니다. 앞으로 드리블랴네에서 최고의 상품이 될 물건이지요.”
역시 신제품이었구나!
괜히 호기심이 들어서 난 앞발을 슬그머니 내밀어봤다. 물론 라피렌의 엄격한 시선에 다시 스르르 내렸지만.
“작은 마님께서는 나중에 자라시면 이 물건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되실 겁니다.”
“지쨔?”
“예. 하지만 지금은 이 물건을 방어하고 피하는 법부터 배우셔야겠지요.”
오, 그것도 흥미로운데?
난 기대감에 찬 눈으로 라피렌을 바라봤다.
실전 대비 연습도 하는 걸까?
“물론 그 또한, 작은 마님이 몇 살이신지 확인이 된 이후의 일입니다. 드리블랴네는 10세 미만의 아이에게 총기에 대한 교육을 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니까요.”
아, 그냥 맛보기였구나. 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나는 수긍했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라피렌이 품에서 또 뭔가를 꺼냈다. 이번엔 훨씬 낡아서 골동품이라 불러줘야 할 만한 총이었다.
“이건 총알이라 불리는 것에 화약 가루를 넣어서 쓰는 구식 총입니다. 사실상 마법 방어막이나 정령의 힘을 이길 수 없어 요즘은 무용지물이 되었습니다.”
“아하.”
“그래도 보셔야 하니까요. 키락서스 님께서는 이 구식 총에서…… 여기, 이 신식 총까지 발전을 시켜온 분입니다.”
신기해라.
난 장전되어 있지 않은 총을 보다가 그 옆에 놓인 꾸러미를 쿡 찔러보았다. 그러자 안에서 뭔가 매캐한 냄새가 퐁실 올라왔다.
“이건 화약입니다. 이젠 쓸 일이 없어진 물건이죠.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지만, 오늘은 말씀드렸듯 체험하는 날이니 가져왔습니다.”
이게 화약 냄새구나.
내 후각이 좋아서 그런지 코가 알싸하고 매웠다.
계피 냄새 비슷하달까?
“있자나요, 샘미(있잖아요, 선생님).”
“예.”
내가 선생님이라 부르자 라피렌의 입꼬리가 아주 살짝 달싹였다.
전부터 생각한 건데, 라피렌은 나를 좋아하면서 아닌 척하는 것 같아.
“저요, 궁금한 게 이써요.”
“말씀하십시오.”
“이제 봄이 왔자나요. 그럼 전쟁이 끈나는 거 아니에오?”
그럼 예전처럼 대량 무기 사업은 못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 군수업체가 모체인 드리블랴네는 좀 가난해지는 게 아닐까?
“그러니까 작은 마님의 말씀은, 당장은 큰 마님께서 관리하시는 비료와 씨앗 등을 판매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틀면 되지만 앞으로 군수사업은 어찌하느냐는 의미이십니까?”
“헉, 마자요!”
똑똑해. 바로 알아들었네!
라피렌은 몹시 묘한 눈으로 나를 응시하더니 이내 내게 반문했다.
“전쟁이 끝나면 무기를 팔 곳이 없다고 누가 그럽니까?”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