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6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60화(160/173)
“아, 근데 그…… 사람의 몸으로 뭘 하는 건 아니고요. 수명으로 연성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결과적으로 연성체는 죽게 되긴 하지만, 아주 정확히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악의를 가지고 연성을 하는 거예요.”
“실체가 없는 것으로 연성을 한다고? 그게 돼?”
“놀랍게도 가능했던 자가 있었습니다.”
좋은 이야기가 아니니까 굳이 지금까지 내게 말하지 않았던 거겠지.
하지만 이 이야기를 듣자 내 머릿속에서 뭔가 폭죽이 터지는 것처럼 생각이 이리저리 엮이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라흰이 세상을 겨울로 만들었잖아. 그때 라흰을 봉인하는 데 앞장선 게…… 교황 아니었어?”
“맞아, 플로린.”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내게 이안이 대답을 해주었다. 나는 고개를 홱 들고 이안에게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이안, 혹시 신성 제국에서 광신도들을 누가 이끄는지 그 배후 세력에 대해서 알아?”
“알아볼게.”
이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곧바로 눈치챈 듯했다.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애초에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생각을 해보면 말이야.
교황이 혹 그 죄인의 후손이라면?
라흰이야말로 마음속이 악의로 가득 차 있지 않던가.
암만 봐도 연성 재료로 딱인데.
제 복수를 위해 라흰을 이용하려 한 건가?
‘예전에는 우리 아빠의 약점이 없어서, 어떻게 이 땅으로 불러낼 방법이 없었다고 치고. 그래서 기다리기 위해 라흰을 봉인했다면?’
있을 법한 이야기다.
교황은 그저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기를.
우리 아빠를 권좌에서 끌어내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를.
‘그러다가 이제 내가 나타나는 바람에 드디어 라흰이 쓸모가 있게 된 거야. 그래서 광신도들을 움직여서 라흰을 봉인에서 풀려나게 만든 거지.’
엄청난 비약일지도 모르지만 이따금 이런 게 정답일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걸 확인해 볼 방법은 하나였다.
화이란이 교황의 앞에서 알짱거리며 도발하는 거였다.
“저기, 성녀님!”
그런데 그때였다.
문밖에서 샌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쩐지 이안과 화이란이 아까부터 말이 없더라.
“응, 왜?”
자리에서 일어서서 문가로 다가간 나는 문을 열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나 이미 방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교황 성하께서 부르세요!”
“교황이?”
“아이, 참! 교황님이라고 하셔야지요. 얼른 가요! 면담하고 오시면 저랑 저녁 같이 먹어요.”
열린 창문에서 바람이 살랑살랑 들어온다.
내 어깨 너머를 빼꼼 바라보던 샌디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창문은 왜 저렇게 열어두셨어요?”
“갑갑해서.”
“하긴. 그동안 마차 여행이 너무 힘드셨죠? 그래도 내일부터는 파티래요! 아니, 여기 음식이 너무 맛있는 거예요. 내일도 저는 일단 배부터 채울 건데…….”
샌디가 종알거리며 창문을 닫았다.
나는 자기 할 말에 심취해 있는 샌디는 그대로 내버려 두고 몸을 살짝 틀어 레티나를 보았다.
‘쉿.’
비밀이야. 알지?
어차피 레티나는 말을 하지 못하기도 하고, 나를 배신할 아이는 아니기에 걱정하진 않았다.
그렇게 레티나를 두고 나는 샌디를 따라나섰다.
‘우리를 성 안에 들인 그 순간부터 황제 폐하가 주시하고 있을 텐데.’
교황이 감시당하고 있음을 모르지도 않을 테고.
그런데도 무슨 말을 지껄이려고 나를 부르는지 아주 기대가 되었다.
* * *
교황이 만남의 장소로 제시한 곳은 놀랍게도 중정이었다.
중정이란 건물의 중간중간에 배치되어 있는 작은 정원인데 대부분 동서남북 중에 세 방위가 벽으로 막혀 있는 모양새였다.
나는 슬슬 어두워진 하늘을 흘긋 보고는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어서 와, 플로린.”
“난 왜 부르는데?”
피곤한데 귀찮게 한다는 투로 툴툴거리자 먼저 와 있던 교황이 미소를 지었다.
“네가 잊고 있는 건 아닐까 해서 불렀지.”
“……안 까먹었거든?”
“그럼 다행이고.”
교황이 검지로 내 가슴 부근을 툭 쳤다. 거기에 기분이 나쁠 새도 없이 나는 숨을 헉 몰아쉬며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
쿵. 쿵. 쿵. 쿵.
가슴이 찢겨 나갈 것처럼 아팠다.
생경한 고통에 입술을 깨문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가슴팍을 움켜쥐었다.
“아프지? 가엾게도.”
교황은 그런 나를 내려다보다 슥 다가와 어깨를 토닥였다.
아무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눈이 소름이 끼쳤다.
“심장이 터져서 죽으면 얼마나 아프겠어. 그렇지?”
“……나, 나한테 왜 이래. 왜 이러냐고!”
“글쎄. 요즘 살기 좋아 보여서.”
교황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러나 두 눈은 너무나 차가웠다.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잊은 듯해서 부른 거야, 플로린. 넌 언제나 네가 좋은 것만 기억하고 그러잖니.”
교황이 지금 나를 죽일 리는 없다.
그걸 알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가 스멀스멀 몰려왔다.
‘너무, 너무 아파.’
창백해진 나는 극심한 고통이 가시고 나서도 일어서지를 못했다.
갈비뼈 하나하나가 억지로 바깥으로 밀려나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아빠…… 아버님. 보고 싶어요.’
교황은 나를 일으켜 주지도 않고 스쳐 지났다.
나는 입술을 꾹 깨물고 속으로 욕을 주워 삼켰다.
‘화이란이 뭐라도 건졌어야 할 텐데.’
그래야 이 고통에 값어치가 있을 것 같았다.
* * *
성녀를 내버려 두고 나오던 길.
교황은 제 손을 내려다보며 눈가를 찡그렸다.
‘위화감. 그래, 이건 위화감이다.’
신성력 폭탄이 제대로 박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플로린을 불렀다. 고통을 주어서 라흰을 죽일 수 있도록 등을 떠밀 목적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어느 것 하나 그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은 게 없었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찝찝한 건지.
자꾸 뭔가를 놓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얼마 전에 플로린이 변덕을 부려 웬 더러운 거지 아이를 주워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느껴졌던 위화감이었다.
‘왜 이렇게 다른 사람 같은지 모르겠군.’
교황은 혀를 차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물론 플로린이 어떻든 간에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진짜 개심을 했든 아예 다른 사람이든 알 바가 아니란 뜻이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
마도 제국의 성녀라는 라흰.
증오스러운 아르칼리크의 왕의 딸이었다.
‘드디어 복수의 때가 다가왔다.’
교황, 조르주는 아주 오랜 세월 전에 이 땅에 떨어진 아르칼리크인의 아들이었다.
대부분의 아르칼리크인은 땅에 떨어진 것을 치욕적으로 여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으나 제 아버지는 달랐다.
부친은 신중하게 여인을 골라 결혼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그 행위를 수차례 반복했다.
아르칼리크인처럼 연성술을 쓸 줄 아는 자식이 태어날 때까지.
조르주는 부친의 17번째 시도의 결과물이었다.
그렇게 조르주는 아버지에게서 연성술을 배웠다. 동시에 아르칼리크가 어떤 나라인지, 그곳에 똬리를 틀고 있는 늙은 괴물인 ‘왕’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왕은 보수적이다. 진화를 싫어한다. 강한 힘을 오직 저만 독차지하려 한다.
그랬기에 그의 부친이 쫓겨난 것이다.
“조르주, 기억하거라. 그 잘난 왕은 아르칼리크 내에서만 강한 힘을 발휘한다. 하계에 내려오면 본래 가진 힘의 절반도 못 미쳐.”
“예, 아버지.”
“그러니 놈을 이 땅에 끌어내릴 기회를 엿보아라. 나는 단전이 파괴되어 본래 주어진 생명보다 일찍 죽지만 너는 아닐 것이다. 아르칼리크인답게 긴 세월을 살아갈 테니 내 복수를 대신해 다오.”
조르주는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겼다.
자신에게 신성력 또한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성인이 된 이후였다.
조르주는 신성력으로 이 땅에서 권력을 쥐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처음에는 변변찮은 힘이었기에 하급 신관으로 시작해야만 했다.
조르주는 윗 계급 신관들의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해 주며 신전의 비리에 대해 배웠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죽은 것으로 위장하고 새 인피면구를 뒤집어쓴 다음, 다시 신전에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세월이 쌓이니 조르주는 늙지 않는데 신관들은 늙어서 죽어 나갔다.
100년쯤 지나니 조르주보다 신전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그쯤부터 조르주는 자신을 교황으로 만들기 위해 작전을 짰다.
그의 손아귀에는 여러 사람들의 약점이 있었으므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부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교황으로 얼마나 살았을까.
갑자기 세상에 ‘성녀’가 내려왔다.
동물화를 하지 않는 완전한 인간.
지금은 그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다지만 당시에 플로린은 말 그대로 대격변이었으며 신의 거대한 뜻이었다.
게다가 플로린의 신성력은 너무나 강력했다.
신전에서는 플로린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껌벅 죽었고 다소 버르장머리 없는 건 다른 세계에서 왔기 때문이라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는 눈치를 채고 말았다.
성녀라는 플로린의 마음속에 도사린 악의를.
플로린은 그가 여태 보았던 그 누구보다도 순수하게 악랄했다.
저렇게까지 동정심, 인류애, 사랑, 인내심, 상냥함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인간은 또 처음 보았다.
멍청한 것들은 플로린이 순수 선이라 믿었지만 조르주만큼은 그녀를 순수 악으로 규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