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6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65화(165/173)
쿵!
마치 귀찮은 날벌레를 쫓는 듯한 동작에 ‘라흰’이 휘청거리다 제 몸에 두른 것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엉덩방아를 찧었다.
무척이나 볼썽사나운 꼴이었으나 키락서스는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시했다. 이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푸흡!”
“큼, 크흡, 큼. 저, 저게 지금 무슨 일이죠?”
“어머나, 아프겠다. 누구라도 가서 좀 도와주세요.”
그 장면을 똑똑히 목격한 이들이 수군거리며 웃어댔다.
한순간 웃음거리로 전락해 버린 라흰을 버려두고 키락서스와 이안은 느리게 걸어 ‘플로린’에게 다가갔다.
그들의 마음이 확신하는 진짜에게로.
라흰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들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왜? 대체, 오늘 내가 왜 이런 일까지 당하는 거야?’
키락서스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라흰은 순간 이성을 잃었다.
오늘 하루 내내 쌓인 스트레스가 드디어 임계점에 달해 폭발한 것이다.
“아버님!!!”
날카롭게 외쳐서 모두의 이목을 끈 라흰은 곧장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가엾게 우는 것은 그녀의 전매특허 같은 것이었다.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저를 밀치고 일으켜주지도 않으시고……. 실망이에요!”
어떻게 내가 여기에 있는데 저 애한테 갈 수 있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다들 저 볼품없는 애에게 관심을 갖는 건지.
‘키락서스마저! 키락서스만큼은 빼앗기기 싫은데. 아무것도 갖지 못해도 키락서스 하나만 있으면 다 되는데!’
분노로 시야가 하얗게 물들었다.
라흰에게 있어 키락서스는 역린이었다.
누구도 키락서스의 곁에 다가가게 둘 수 없다. 제 것이 되지 못할 거라면 누구의 것도 되어서는 안 되는 게 키락서스란 말이다.
당연히 그가 누군가를 아끼는 꼴 역시 두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까진 볼 수 없었다.
“이안, 너도 그래! 나를, 사랑한다고 했잖아!”
눈앞이 하얗다가 붉었다가 뭉그러지기를 반복했다.
라흰은 입에서 나오는 대로 정신없이 소리치며 발악했다.
“음, 드리블랴네 가주가 왜 저러지요? 무슨 이유가 있나?”
“글쎄요. 신성 제국의 성녀가 오늘따라 과하게 주목받는 것 같지 않으세요? 물론 우리 성녀의 행태도 조금…… 그렇긴 하지만요.”
“이해가 안 되네요, 저도. 재미있으니 상관없지만.”
일단 라흰이 그렇게 내지르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던 이들이 한두 마디를 보탰다.
주로 딸을 가진 귀족들이었다.
그들은 황태자가 첫 춤을 춘 상대가 신성 제국 성녀라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던 것이다.
“라흰! 얘야. 괜찮으니?”
“이난나 니임. 흑…… 저 너무 슬퍼요. 흐윽.”
연회장 한편에서 쉬고 있다가 허둥지둥 달려온 이난나는 이게 대체 무슨 소란인지 알 수가 없었다.
왜 제 아들이 저렇게 스산하게 웃고 있는 건지. 라흰은 왜 또 이러는지.
처음부터 상황을 지켜보지 못했기에 납득이 되지를 않았다.
“키락서스, 이게 무슨 일이니? 어미가 알아야 할 문제가 있니?”
이난나는 우선 침착하게 상황을 정리하려 했다.
라흰을 일으키는 게 제일 먼저였기에 서둘러 뒤따라온 아이다호 경에게 눈짓을 했으나 여기서 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이다호 경이 이난나의 메시지를 못 본 척한 것이다.
당황한 이난나는 주름진 입가를 꾹 다물었다.
뭔가가 벌어지고 있다.
직감적으로 이 상황이 몹시 중요하다는 걸 알아차린 그녀는 딱 한 마디만을 덧붙였다.
“무슨 일이건 간에 집안의 일이라면 여기서 이럴 게 아니지 않아.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그리 밀치고…….”
이난나가 편을 들자마자 라흰은 처연하게 어깨를 떨었다.
달빛처럼 반짝이는 은발은 불쌍해 보이는 자태를 연출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도구였다.
‘더 해! 더 내 편을 들라고!’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늘어나자 키락서스의 구두가 멈춘 게 보인다.
라흰은 이를 갈며 겉으로는 가련하게 눈물을 뚝, 흘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자박자박하는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입기 싫어서 매일 저주를 퍼부었던 성녀복 자락이 시야에 들어왔다.
우는 척 고개를 숙이고 있던 라흰은 어리둥절하여 제게 뻗어진 손의 주인을 확인했다.
“……!”
그건, 플로린이었다.
‘뭐야. 이게 왜 나한테 다가와? 미쳤나?’
확 머리를 쥐어뜯을까? 성력으로 혼쭐을 내줘?
어떻게 해야 이 울분이 풀릴지 모르겠다.
하지만 라흰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키락서스가 매우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그를 오랫동안 열망하며 지켜봐 온 라흰이다.
지금 그의 청록색 눈동자에 어린 것이 경고임을 모르지 않았다.
라흰은 이를 까드득 물었다. 그러고는 플로린의 손을 낚아채듯 잡아 손톱으로 손목을 긁어내렸다.
‘너 참 좋겠다.’
미남들이 너만 보잖아.
‘오늘은 나의 날이었어야 했는데.’
라흰은 저와 플로린이 함께 서 있으면 당연히 자신이 주목을 받을 거라 생각했다.
비싼 걸로만 차려입은 공주님인 저와 별것 없는 성녀에 불과한 플로린.
비교조차 안 되잖아.
그런데 웬걸. 현실은 완전히 반대다.
라흰은 그게 너무나 부조리하다고 여겼다.
뭐가 부조리한지 논리적으로 설명도 못 하면서 아무튼 그렇다고 여겼다.
‘두고 봐. 네가 가진 것, 다시 내가 가질 테니까. 생각해 보면 그건 원래 내 자리였어. 그러니 내 것인 게 마땅하잖아? 네가 가진 것도 내 것이고, 내가 원래 가졌던 건 당연히 내 거야!’
간교하게 머리를 굴린 라흰은 이 상황 속에서 플로린을 쓰레기로 만들 수 있는 한 마디를 떠올려냈다. 그리고 입을 살짝 벌린 바로 그 순간……!
짜악!
통증보다는 충격이 먼저, 그 뒤에 얼얼한 느낌이 올라왔다.
“???”
‘뭐……야? 나 지금, 맞은 거야?’
너무 황당해서 라흰은 멈칫했다.
찰나 사고가 정지한 것이다.
“네가 한 짓을 생각해. 한 대로는 모자라지.”
냉랭하게 속삭인 플로린이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피하려고 했지만 뭔가에 붙들리기라도 한 듯 라흰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철썩!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플로린이 또 라흰의 뺨을 후려쳤다. 라흰은 제 뺨을 감싸 쥐고는 플로린을 쏘아보았다.
“너. 너!”
“왜, 가만두지 않겠다고 하게?”
“!!!”
커다래진 눈으로 손가락질을 하는 그녀를 보며 플로린이 픽 웃었다.
입만 뻐끔대던 라흰이 괴성을 지른 건 딱 3초 뒤의 일이었다.
“아아악!!! 네가 뭔데! 죽어! 죽어어어어어어!!!”
이젠 샘이 나는 정도가 아니라 저 계집, 플로린을 당장 찢어 죽이고 싶었다. 살의가 들끓어서 참을 수가 없다.
“세상에.”
“이게 웬 난리람?”
이런 연회장에서 결코 볼 수 없는 대난투극이 벌어지려 하자 귀족들의 두 눈이 흥미로 반짝였다.
오늘 처음 만난 두 성녀 사이에 대체 무슨 원한이 있기에 저런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지만 뭐 어떤가. 누구 말처럼 재미있기만 하면 됐지.
“그만!”
“왜 이러세요, 악!”
그러나 라흰의 손짓은 플로린에게 닿지도 못했다.
마른침을 삼키며 끼어들 틈만 노리던 신관들이 곧장 튀어 와서 둘 사이를 가로막았던 것이다.
“어휴, 여기 성녀님 성격도 장난이 아니네. 진짜.”
“그러게. 악! 내 머리털!”
“다 뽑힌다!!!”
신관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인간 벽을 만들었다. 그에 라흰의 손톱은 허공을 허우적대다가 애꿎은 신관들의 머리나 잡아당겼다.
아주…… 꼴불견이었다.
“이런, 다칠라.”
“잠깐이라도 내가 저런 애를 너라고 착각했다니…….”
이안이 플로린의 어깨를 살짝 당기며 옆에 서고, 단테가 플로린를 지키듯 앞을 가로막았다. 특히 단테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군 채였다.
“역사에 남을 명장면이로군.”
이윽고 황태자인 유리가 어슬렁거리며 가까이 왔다.
그가 손짓하자 기사들이 달려들어 미친 담비처럼 으르렁대는 라흰을 신관들에게서 떨어트려 놓았다.
그토록 자랑하며 달고 나왔던 귀걸이 한 짝의 알이 빠져서 바닥에 굴렀다. 머리칼은 흐트러졌고 쓰고 있던 티아라 역시 반쯤 미끄러진 채였다.
그러나 플로린은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았다.
완벽한 보호를 받으며 차분하게 라흰을 내려다보고 있을 뿐.
밤색 눈동자에 비친 제 꼴이 너무 초라하여 라흰은 또다시 소리를 질렀다. 이게 현실이라는 걸 믿고 싶지 않다. 그저 지독한 꿈이기를 바랄 뿐이었다.
“뭘 봐! 네가 이상한 술수를 부린 거지? 분명 악독한 저주를 건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왜 다들 네 편을 들어?”
저 신관들은 한 번도 제 편에 선 적이 없었다.
이 세계의 누구도 저를 사랑해 준 적 없다.
이딴 세계! 오고 싶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원래 세계에서도 잘 살고 있었단 말이야!’
그런데 여기에 오게 된 거면 마땅한 보상이 있어야지.
고생만 하고, 힘들기만 하고!
“그래, 너만…… 너만 없어지면 돼. 네가 좋은 걸 다 빼앗아 가서 이런 게 틀림없어.”
동공이 혼탁해진 라흰이 부들부들 떨며 두 손에 빛의 낫을 생성했다.
밉다.
저 애가 너무 미워서 창자가 비틀리는 듯했다.
“위험해요, 물러서세요!”
“저 힘은……!”
누가 봐도 위험한 기운이 풀풀 흐르는 성력에 흠칫한 신관들이 불안에 떠는 눈으로 플로린을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의 성녀가 저 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신관들의 불안은 금세 종식되었다.
“가짜 주제에. 진짜에게 건방 떨면 안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