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6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66화(166/173)
이안이 싸늘하게 읊조렸다.
그와 동시에 제 반려를 지키려는 것처럼 세 명의 맹수가 으르렁거리며 알파의 페로몬을 내뿜었다.
“……!”
순식간에 연회장 전체의 기운이 무거워졌다.
라흰은 숨통이 턱 막히는 기분에 저도 모르게 제 목을 움켜쥐었다. 빛의 낫은 어느새 스르르 사라진 채였다.
“컥……!”
라흰은 산 채로 흙 속에 파묻히는 듯한 암담함을 느꼈다.
아니,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속에 머리만 처박힌 것 같기도 했다.
가슴이 쪼개질 듯 아팠고 불쾌한 감각이 신경을 갉작거렸지만 도움을 청할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사, 살려…… 살려 줘.”
컥컥거리며 밭은 숨을 내뱉었으나 주변의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도 같은 꼴이 될까 싶어 사색이 되어 물러섰지.
라흰은 자신이 역병이라도 된 듯한 느낌에 몸서리를 쳤다.
‘뭐, 뭐야. 이건 또. 나, 나는 이런 거 몰라. 모른다고!’
예전에는 몰랐던 느낌이었다. 알 필요가 없었지. 라흰은 동물화를 하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었으니까.
하지만 상황을 바꿈으로 인해 라흰은 이제 흰 담비가 되었다.
저보다 윗 서열의 짐승이 내뿜는 기운에 별수 없이 짓눌리게 된 것이다.
‘난 이렇게 괴로운데 저 애는 왜 멀쩡……한 거야!’
라흰은 플로린을 보았다.
처음에는 가라앉은 두 눈을, 별 볼 일 없는 밤색 머리칼을.
그 뒤에야 눈에 들어온 건 저처럼 헐떡대지 않는 모습이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꼿꼿이 편 플로린은 마치 저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사람 같았다.
라흰은 그걸 견딜 수가 없었다.
“네가 지금 그렇게 괴로운 건 흰 담비가 되었기 때문이야.”
“뭐? 네가 뭔데 나를 가르치려, 들어?”
헉, 헉.
플로린이 입을 떼자 아주 잠깐 약해졌던 위압감이 이젠 더욱 교묘하고 은밀한 방식으로 다가왔다.
무릎이 후들거리는 바람에 라흰은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가를 하며 억지로 버텼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흐른다. 그러면서도 라흰은 플로린을 쏘아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마치 미워하는 걸 멈추면 자신이 지는 것처럼.
‘이렇게 될 줄 알고 있었어? 뭐라고 말이라도 좀 해봐!’
궁지에 몰린 라흰은 자신의 신을 향해 추궁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세계에서 중요한 사람이라며. 내가 없으면 안 된다며! 그렇게 날 꼬드겼잖아! 내가 지면 너도 죽는다며. 죽고 싶어서 가만히 있는 거야?’
라흰은 단 한 번도 제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 본 적이 없었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늘 누군가 저를 위해 어려운 것을 대신 해주었으니까.
라흰은 범죄자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그저 그런 잡범이 아니라 사회에 큰 물의를 빚는 사건들의 배후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언제나 하인으로 쓰는 소모품들이 옆에 있었고, 부모는 조금만 마음에 안 드는 일이 생겨도 그들에게 소리를 질러댔다.
자연히 라흰 역시 그렇게 했다.
저지른 죄가 발각되면 가장 가까운 수하에게 떠넘기고, 세금은 아까우니 내지 않고, 문제가 될 것 같으면 권력이 강한 자들과 그때그때 손을 잡는 방식으로 위기를 모면해 나가는 게 부모의 방식이었다.
라흰은 그 역시 찰떡같이 배웠다.
‘차라리 지금 다시 원래대로 돌려줘! 그럼 내가 저 자리에 서게 되잖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거야. 눈치채지 못하게 할게! 이러다가 진짜 죽겠……다고!’
어떻게든 이 순간만 모면하면 된다.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면 이 치욕도 모욕도 전부 저 애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승리자의 위치가 될 수 있었다.
– 그럴 수 없다. 넌 이미 네게 주어진 소원의 횟수를 다 썼으니.
바란 대로 신은 라흰에게 답을 주었다.
그러나 굉장히 실망스러운 답이었다.
라흰은 제게 주어진 모든 기회를 다 썼다.
이제 남은 건 지옥 불구덩이의 가장 깊숙한 곳으로 끌려가 살지도 죽지도 못하게 되는 것뿐이었다.
“거기까지.”
키락서스가 나선 건 그 순간이었다.
그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이안, 단테, 유리가 동시에 페로몬을 거둬들였다. 그에 기절하기 직전이었던 몇몇 귀족들이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이 우습지도 않은 촌극을 끝내고 원래대로 되돌릴 때가 됐군.”
이때를 위해 소원을 남겨두었던가.
키락서스는 조용히 자문해 보았다.
예상을 한 것은 아니되 만약 그가 귀하게 아끼는 아이의 인생에 큰 문제가 생기면 그때는 소원으로 해결을 보려 하긴 하였다.
지옥에 떨어진다느니 어쩐다느니 하는 건 두렵지도 않았다.
어디에 떨어지든 무슨 상관일까.
신의 목숨이라도 아득바득 취하여 살아남을 것이다. 산 몸으로 반신에 가까운 능력을 얻었는데 죽는다 한들 무엇이 다르리.
지고한 신의 자리를 제 것으로 만들 만한 인물이 바로 그인데.
“아버님, 소원은 안 돼요!”
무언가를 눈치챈 ‘플로린’이 경악하며 외쳤다.
키락서스는 그걸 듣지 못한 척 악신에게 소원을 빌었다.
‘두 번째 소원을 빌지. 내가 소중히 여기는 아이를 원래대로 돌려놔라. 외모는 물론이고 신분과 평판도. 아, 당연히 심장에 박혀 있던 신성력 폭탄은 신성 제국 성녀의 것이어야겠지.’
신에게 비는 소원은 요란한 방식으로 이뤄지진 않았다. 하지만 영혼을 대가로 받아가는 만큼 확실한 방식으로 이뤄준다.
사아악.
순간, 라흰의 머리칼에서 은빛이 빠져나갔다. 그 은빛은 아름다운 빛의 가루가 되어 플로린에게 돌아왔다.
그건 제법 극적인 연출이었다.
“뭐, 뭐죠?”
“왜 갑자기 머리칼 색이 변한 걸까요?”
“아르칼리크의 공주라는 증거는 은발과 붉은 눈이잖아요! 설마…… 저 여자는 가짜인 건가요?!”
“어쩐지 이상했어요! 난데없이 저런 차림으로 이런 중요한 자리에 나서지를 않나……. 이제야 다 이해가 되는군요! 저 파렴치한 가짜가 감히!”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서로를 돌아보았다. 분개하는 이들도 있었다.
사태를 수습한 건 이안이었다.
“저자는 신성 제국의 성녀, 라흰입니다. 여태 플로린인 척 그녀의 외모를 빼앗아 지내왔지요. 진짜는 이쪽입니다.”
품위 하나 없이 제멋대로 날뛴 쪽과 이런 큰일을 겪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은 채 꼿꼿이 서 있는 쪽. 그리고 외모의 변화까지.
이안의 말을 믿지 않을 수가 없다.
키락서스는 웅성대는 사람들을 뒤로하고 플로린에게 다가가 팔을 벌렸다.
제일 먼저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마음으로 낳은 내 딸아.”
그에 플로린이 키락서스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 * *
가슴이 벅차서, 너무나 슬퍼서, 놀라서, 충격을 받아서.
그 모든 이유로 눈물이 솟았다.
울지 않으려고 입안의 여린 살을 깨물며 참았는데 아버님께 안기자마자 이렇게 툭 터져버릴 줄이야.
나는 아버님의 슈트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였다.
“고생 많았구나.”
“아버, 아버님…….”
그러자 아버님이 내 등을 토닥여주셨다. 나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으로 아버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오랜만에 뵙는 얼굴이었다.
어떻게든 아버님이 다 해결을 해주실 거라고 믿었는데 정말 그럴 줄이야.
‘하지만 소원을 쓰셨어.’
그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는 뜻이다.
신의 힘으로 한 일은 신의 힘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으니까.
“어떻게 할까, 누나.”
기사들이 밤색 머리칼로 변한 라흰을 붙들어 구속했다. 그도 모자라 손톱을 날카로운 흉기로 변화시킨 유리가 라흰의 목에 손을 대고 있었다.
내 한 마디면 목을 그어버릴 심산인 듯했다.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이렇게 죽기 싫단 말이…… 읍! 읍읍!”
“시끄럽군.”
따악.
아버님이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라흰의 입이 다물렸다.
나는 도망칠 길을 잃은 라흰을 바라보다 쓸데없는 감상을 마음속에서 지워 버렸다.
어차피 신이 정한 승자는 하나뿐.
‘그리고 그건 내가 되어야 해.’
더 소중한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서.
나는 아까 라흰이 한 것처럼 두 손에 신성력을 응집시켰다. 그러자 내 손에서 빛으로 이뤄진 창이 생성되었다.
– 나의 힘으로 악신의 성녀를 멸할 때 진정한 승리가 찾아온단다.
그때, 익숙한 속삭임이 귓가에 감돌았다. 동시에 포근하고 따스한 힘이 나를 감싸 안는 것도 느껴졌다.
“헉, 저 모습은……!”
“강림! 강림 아닌가요?”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신관들이 경악했다. 곧이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털썩 무릎을 꿇으며 기도문을 외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아주 느리게 느껴졌지만 사실 몇 초 만에 벌어진 일이다.
망설임 없이 창을 내리꽂는 내 주변으로 폭발적인 성력이 휘몰아쳤다.
이제 이렇게 너와 내가 끝을 내기를.
그 바람이 창끝에 담겨 라흰을 향해 찔러 들어갔다.
“곤란하지. 내 재료를 그렇게 쓰면.”
“!”
분명 창으로 찔렀다.
그러나 아직 승리한 것이 아니었다.
“어디 보자. 뭐가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신성력 폭탄은 이쪽에 있군.”
교황이 숨이 가늘게 붙어 헐떡거리는 라흰의 곁에 서 있었다.
대체 언제 나타난 건지 알 수 없었으나 교황이 라흰의 뒷목을 잡아 빼는 바람에 단번에 숨통을 끊지 못한 것이었다.
“살려…….”
그러나 그러는 바람에 더 끔찍한 상태가 된 라흰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래, 그래. 곧 편하게 해주마.”
아기를 달래듯 라흰을 토닥거린 교황이 이내 그녀의 심장이 있는 곳으로 손을 불쑥 집어넣었다.
이윽고 교황은 라흰의 몸 안에서 새카만 기운이 날뛰는 구슬 같은 것을 꺼내었다.
악의가 형상화 된 것.
누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이미 알 것 같았다.
저게 무엇인지. 그리고 교황이 무얼 하려고 하는지.
온 세상에 불온한 대기가 넘실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