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6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68화(168/173)
그자가 지상에 벌어진 이변을 눈치채고 내려오는 데까지 얼마나 더 시간이 필요할까.
‘쯧, 굼뜨기는.’
키락서스는 애초에 교황을 죽이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니었다.
교황이 행여나 플로린에게 관심을 갖지 못하도록 자신에게 이목을 집중 시키려는 의도였을 뿐.
교황이 만든 구멍에서 쏟아지는 괴물들은 이성이 없었다.
본능적으로 파괴와 학살을 일삼는데 그런 건 전혀 무섭지 않았다.
놈들이 플로린을 노리는 게 아니니까.
하지만 교황이 어떤 술수를 써서 플로린을 공격한다면…… 그건 굉장히 골치가 아파진다.
그런 일만은 막아야지.
‘한 번 더 다시 사는 건 별로 하고 싶지 않거든.’
이제 키락서스의 바람은 단순했다.
플로린이 나이가 드는 것을 지켜보고 싶다.
그 아이가 저를 닮은 귀여운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나도 나이가 제법 들었지.’
삶을 다시 살았으니 그 햇수를 다 합치면 노인이 될 나이 아니던가.
손주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닐 터다.
키락서스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제 어깨를 찌르려고 하는 거대한 곤충의 머리를 터트렸다.
대체 다른 세상은 어떻게 되어 먹었기에 이딴 것들이 사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막을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섰으니 슬슬 피해가 커지겠군.’
새카만 구멍은 파악한 바로는 아마 수도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 같기는 했다.
그러나 거기서 나온 것들이 오직 수도에만 있다던가.
바로 마탑에 연락을 넣어 수도 주변에 지원을 하도록 해두었지만 그래도 모든 피해를 다 막을 수는 없었다.
연성술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원흉인 교황을 없앤다고 해서 구멍이 사라지는 건지도 모르겠고.
혹 교황이 죽었을 때 구멍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커진다면 남은 건 멸망뿐이다.
그래서 함부로 나설 수가 없었다.
연성술에 대해 잘 아는 아르칼리크의 왕이 올 때까지 그가 할 일은 시간을 끄는 것이다.
사태가 더 심각해지지는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면서.
“나타나라! 이 겁쟁이 같은 놈아!!! 나오란 말이다!”
교황이 광소를 터트리며 소리를 내질렀다.
아비규환이 된 세상이 퍽 즐거운 모양이었다.
키락서스는 실수로 교황을 죽여 버리지 않도록, 하지만 놈이 자신이 봐주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는 못하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서 공격을 가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두워진 하늘에서 갑자기 빛 한 줄기가 내리쬐었다.
그 황홀한 빛은 점점 더 넓게 퍼져 나가며 세상을 비추었는데, 거기에 닿은 괴물들은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곧바로 타서 죽어버렸다.
“끼에에엑!”
“끼아아아아아악!!!”
사람의 비명만이 낭자하던 골목골목에 이제는 괴물의 울음이 퍼졌다.
그렇게 ‘특별한 힘을 담은 햇볕’이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명쾌한 해결책이 내려온 뒤.
쿠구구구궁!
마른하늘에 갑자기 천둥과 번개가 내리쳤다.
‘드디어 오는군.’
키락서스가 느리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온 세상이 두 쪽으로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고막을 강타하고 몇 초 후.
하늘이 열렸다.
찬란한 빛에 휘감긴 은빛 머리칼의 왕과 신하들이 나타나는 모습은 꼭 신의 강림과도 같았기에 세상은 아주 잠시 침묵에 잠겼다.
* * *
나는 그 모든 광경을 보호막 안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죽어버리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그러니 아무리 돕고 싶더라도 지금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가만히 있기’였다.
“와. 우리 아빠, 정말 신 같다…….”
나는 두 팔을 벌린 아빠가 연성술을 펼치는 것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르칼리크가 추락하지 않도록 유지하면서 저게 가능하단 말이야?’
대기가 달궈지는 게 느껴진다.
아빠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로 ‘중력’을 연성할 수 있었다.
그게 아르칼리크가 하늘에 떠 있는 이유라고나 할까.
아빠는 아빠 그 자체로 이미 하나의 거대한 연성진이나 다름없었다. 그래서 함부로 지상에 내려오지 못하는 거고.
그런 아빠가 이렇게 지상에 내려왔다는 건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는 반증이다.
‘교황, 곱게는 못 죽겠네. 아니, 죽어서도 얼마나 오랫동안 고통을 받으려고 이런 짓을 벌였나 몰라.’
뚫린 구멍에서 나왔던 괴물들이 허공으로 떠올라 허우적댔다.
아빠는 괴물들을 구멍 하나하나에 쓸어 넣어버렸는데, 그러자마자 아빠의 곁에 서 있던 월 섬의 주인이 햇볕으로 구멍을 태워버렸다.
역사서에 신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왔다고 서술될 만한 장면이었다.
‘교황이 어떻게 날뛰든 아빠와 아버님, 두 사람의 상대가 되지는 못해.’
그러니 나는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그저 오랫동안 끌어왔던 문제가 드디어 해결되는 듯한 느낌일 뿐.
오히려 나의 관심사는 라흰이었다.
정신이 없어서 놓쳤는데, 라흰은 지금 내 시야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안, 라흰이 어디로 갔는지 혹시 알아?”
“그 여자라면 저기로 기어가던데.”
이안이 덤벼드는 괴물의 입에 총을 박아 넣으며 발포했다. 그러면서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부서진 기둥 뒤편이었다.
교황이 라흰에게서 뽑아낸 건 뭉쳐진 악의지 심장이 아니다. 나 역시 라흰의 심장을 찌르지 못했다.
그렇다면 라흰은 지금 살아 있을까, 죽었을까.
신경이 쓰였지만 여기서는 보이지 않았다.
쾅!!!
바로 그때, 하늘에서 교황과 아빠의 격돌이 일어났다.
무심코 위를 쳐다보던 나는 입을 떡 벌렸다.
“이안, 저거! 저게 뭐야?”
“검은 구멍을 모두 합쳐서 크기를 키운 것 같아. 모조리 집어삼킬 생각인 모양인데…….”
설마 아빠를, 이 세상을 모조리 빨아들이려는 건가?
여기서 봐도 저렇게 큰 블랙홀인데 실제로 저 하늘에선 얼마나 더 클까.
온몸에 소름이 쭉 돋으면서 속이 메슥거렸다. 그리고 그런 내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었다.
블랙홀이 어마어마한 흡입력으로 모든 것을 게걸스레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플로린!”
이쪽으로 달려오던 마지막 괴물의 머리에 총을 쏜 이안이 다른 쪽 손을 내게 뻗었다. 떨리는 손으로 이안과 손을 잡은 나는 속으로 천신을 협박했다.
‘만약 여기서 내 소중한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잃는다면 난 차라리 죽어버릴 거야. 그래서 모든 걸 다시 시작할 줄 알아.’
나는 이제 모두가 없으면 살 수 없다.
그러니 책임지고 이번 생의 결말을 해피엔딩으로 내달란 말이야, 이 빌어먹을 신!
“자, 잠시만, 기다려. 살려……줘. 나, 나도 살려줘!!!”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몸이 떠오르던 찰나, 기둥 저 너머에서 누군가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나는 한순간 그게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설마…… 라흰인가?’
잿빛으로 센 머리와 툭 튀어나온 광대, 푹 꺼져버린 눈.
피부엔 주름이 자글자글했으며 검버섯이 곳곳에 피어 있어 꼭 해골처럼 보인다.
그런 라흰은 나를 향해 말라붙은 잔가지 같은 손을 내밀었다.
“내가, 내가 다 잘못했어. 나도 보호해 줘. 그러니까 나도…… 살려 달란 말이야아아아아악!!!”
라흰이 괴성을 지르며 다 빠진 손톱으로 허공을 박박 긁어댔다.
아버님이 내게 둘러주신 보호 결계는 내 주변을 돔 형태로 둘러싸고 있었다. 그러니 내게 적의를 갖고 있는 라흰은 내 발치에도 올 수 없다.
긁어봐야 내게서 한참은 떨어진 허공을 긁을 뿐.
“네 것이 다 내 것이어야 했어. 네 것이 다…….”
라흰의 집착과 아집에는 섬뜩한 면이 있었다.
저 꼴이 되어서까지 저런 소리나 하는 걸 보면 영원히 회개할 수 없는 인간이구나 싶기도 하고.
“볼 것 없어, 플로린. 남의 인생을 탐낸 자의 말로이니까.”
아, 하늘로. 하늘로 날아오른다.
나보다 위쪽에 떠 있던 이안을 올려다보던 나는 정말이지 무시무시하게 화가 난 표정의 아빠와 잠깐 눈이 마주쳤다.
아빠는 나를 보자마자 펄쩍 뛰었는데 당장 달려오고 싶은 듯 보이셨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는 게, 아마도 블랙홀로 인해 떠오른 것들을 다시 바닥으로 내리려 애를 쓰고 계신 듯했다.
‘그러면서 아르칼리크도 유지해야 하니까……. 엄청나게 힘을 쓰고 계시는 중일 거야.’
교황이 불러낸 빨아들이는 힘과 아빠가 내뿜는 끌어 내리는 힘.
그 두 가지가 치열하게 충돌하자 스산한 바람이 일었다.
“네 아버지가 신이라 불린다더니, 정말 그렇구나. 존경스러워.”
이안이 나를 부드럽게 끌어 올려 품에 안았다.
아빠가 막고 있으니 블랙홀은 아직 무엇도 빨아들이지 못한 상태였고, 우리는 여전히 허공에 떠 있었다.
그래도 불안하지 않은 건…….
‘지금 나를 안아주는 이 팔이 있기 때문이고.’
저기에서 세상을 지키려 하는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또한, 내가 할 일이 명확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그리고 위대한 영웅의 이름을 역사에 새겨야 했고, 내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들에 대해 알려주어야 했다.
그리고 나를 아끼는 분들이 지켜낸 세상을 더욱 살기 좋게 만들어야겠지.
나와 이안이 함께.
“보아하니 곧 내려갈 수 있겠는데. 땅에 닿는 순간 충격이 있을지도 몰라. 내가 안고 있을게.”
“이렇게?”
“응. 내 목에 팔을 둘러, 애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