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7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70화(170/173)
천신은 장난기 어린 어조로 몇 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되살아난 이가 죽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면 그 즉시 본디 있어야 할 곳으로 가게 된단다. 망자에겐 망자가 될 권리가 있으니.
“네.”
맞는 말이다.
난 엄마가 살고 싶은지, 죽고 싶은지 몰랐다.
아빠를 다시 만나고 싶은지 아닌지도.
그래도 내 욕심으로 부르는 거였다.
정확히는 불러내는 건 아니란다. 누구든 오직 암흑밖에 없는 그 세상으로 직접 가서 데리고 나와야 해. 물론 나오는 내내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단다.
어, 나 이거 알아.
이런 신화를 하나 아는데……. 그 이야기에서는 결국 불안함에 져버린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내는 다시 저승의 일원이 되어버렸지.
나는 노파심에 아빠를 붙들고 또박또박 말했다.
“뒤를 돌아보면 안 돼. 꼭 나한테 엄마를 데리고 와줘야 해. 알았지?”
“……그래, 그러마. 약속하마.”
“엄마가 우는 것 같아도 다 가짜야. 울면 데리고 나온 다음에 눈물을 닦아주면 돼. 가기 싫다고 말하는 것도 다 거짓이야. 만약 정말 엄마가 되살아나기 싫다면 일단 나온 다음에 다시 돌아가면 돼.”
이건 독이 든 성배 같은 거였다.
분명 기회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아빠는 엄청나게 무너져 내릴 거야.
그래서 걱정이었다.
신은 항상 대가를 받아가는 교활한 성질이 있고,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빼앗아가선 두 번 다시 돌려주지 않는 냉혹한 면도 있거든.
아야. 아파라.
천신이 찔린다는 듯 무어라 말했다. 나는 한숨을 폭 내쉬고는 일단 지금 당장 눈앞의 일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빠, 여기 오른손.”
“그래.”
“아버님, 여기 왼손이에요. 꼭 잡아주세요.”
“…….”
나는 두 아버지의 손을 각기 잡았다.
한쪽 손은 우아하고 날렵했고 다른 쪽 손은 의외의 굳은살이 박여 있는 크고 단단한 손이었다.
‘나의 두 아버지.’
나를 너무나 아껴주시는 두 분의 사랑이 잡는 손에서마저 느껴져 마음이 먹먹하다.
조금 눈물이 나기도 하고, 가슴이 메기도 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두 아버지와 함께 하늘로 날아올랐다.
교황도, 라흰도 없는 지금. 이 세상에 나만 한 신성력을 가진 이는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은 내가 도와줄 테니 네 마음껏 해보렴.
천신의 힘이 내게 스며드는 게 느껴진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이라면 신성력으로 수도는 물론이고 그 주변까지도 모두 포근하게 감싸 안을 수 있을 거라고.
‘그렇다면 신성력으로 연성한 치유의 꽃을 모두에게 주고 싶어.’
나의 소망은 곧 현실이 되었다.
전신에서 은은하게 빛이 흐르기 시작한다.
두 분이 든든하게 나를 잡고 있으니 떨어질까 봐 겁이 나지도 않았다.
나는 두 눈을 조용히 눌러 감고 새하얀 꽃을 만들었다.
꽃잎의 끝에 살짝 붉은 기가 도는 하얗고 탐스러운 꽃.
마치 딸기 생크림 케이크 같은 꽃이 소담하게 쏟아져 내린다.
수천만 송이의 꽃비였다.
“와, 저것 보세요.”
“엄마! 꽃! 꽃이야!”
“이건…… 신성력이잖아! 정말…… 정말 성녀시구나…….”
“아아, 신이시여!”
무사히 숨어 있었기에 비교적 다치지 않은 사람들이 서서히 거리로 나와 손을 벌렸다.
하지만 굳이 잡으려 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아이도, 어른도, 나이 든 이도, 젊은이도. 성별도 국적도 상관없이 모두에게 공평히 한 송이씩 떨어져 내리니까.
그 꽃은 사람에게 닿자마자 봄볕 아래의 눈처럼 녹아 상처를 치료했다.
신이 직접 관여한 상황에서 펼쳐진 대규모 치유력이다 보니 놀랍게도 본래 가지고 있던 질병마저 깨끗이 나아버리는 일까지 벌어졌지만, 그걸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칭송하게 되는 건 얼마 뒤의 일이었다.
세상이 반짝거리는 빛에 휩싸였다.
저 먼 하늘에서 오늘의 태양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그로부터 한 달 뒤.
“공주니임, 날씨가 이렇게나 좋은데! 딱! 딱 하루만 놀러 나가면 안 됩니까요.”
화이란이 퍼렇게 죽어가는 얼굴로 내 책상에 와서 징징거렸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사각사각 펜을 놀렸다.
마무리해야 할 서류가 아직 남아 있었다.
“그렇게 일만 하시면 건강에 안 좋습니다. 진짜예요!”
“으음.”
“소풍도 가고, 바닷가 산책도 하시고! 수영도 좀 하시고요.”
“으으음.”
화이란이 이렇게 난리를 피우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그 날 이후, 아빠는 딱 사흘 만에 모든 걸 정리하고 저승으로 떠났다.
아빠가 연성하는 중력의 힘이 없으면 아르칼리크가 떨어져 내릴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는 데 필요한 시간이 사흘이었다.
‘아, 파도 소리 듣기 좋아.’
쏴아아, 쏴아아아.
창문 너머로 고개만 돌려도 새파란 바다가 보인다.
탁 트여 있어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지는 풍경이었다.
집무실에만 있어도 볼 수 있는 게 바다여서 그런가. 나는 책상 앞에서 엉덩이를 떼고 싶은 마음이 도무지 들지 않았다.
‘그런 의미로 기꺼이 영해를 내어준 황제 폐하에게 만세.’
아르칼리크는 섬이다.
즉, 바다에 띄우면 띄워졌다.
아빠는 황제 폐하와 대화를 한 뒤, 아르칼리크의 일곱 섬을 모두 바다에 띄워놓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바다를 본 아르칼리크인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화이란조차 매일 수영하러 가고 싶다고 졸라댈 지경이니까.
그런데 내가 왜 여기에 있냐고?
난 아빠를 대신해서 아르칼리크의 국정을 돌보기로 했거든.
물론 아빠가 돌아오실 때까지만이다.
“며칠 내내 집무실에서 살다시피 하지 않으셨습니까. 기분 전환을 하는 건 좋은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때, 옆에서 나와 함께 서류를 보고 있던 월 섬의 주인, 월휘가 점잖게 권해왔다. 제 편이 생기자 화이란이 두 눈을 번득이며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저 일벌레가 나가보시라고 하잖습니까. 그러다 몸에 곰팡이가 필 거예요!”
“……참 나.”
그러고 보니 내가 궁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은 지…… 얼마나 됐지?
모르겠네.
잠깐 망설이던 나는 서류를 빤히 내려다보다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월휘까지 저렇게 권하는 걸 보면 나가서 걷는 게 좋긴 좋을 것 같았다.
“아빠는 언제 오시려나…….”
“곧 오시겠지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지는 모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응. 1년은 걸리려나?”
우리 아빠라면 엄마의 영혼을 만나자마자 우느라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한다고 해도 그럴 만했다.
아니면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쏟아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실패하면 엄마를 영영 잃게 되니까, 그 실패가 두려워서 어둠 속에서 차라리 나오지 않는 걸 택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결국은 돌아오실 걸 알아. 내가 여기 있으니까.’
치렁거리는 치맛단을 살짝 부여잡고 걸음을 떼자 화이란이 반색하며 뒤따라왔다.
“수 섬 사람들이 요즘 살판났어요. 살다 살다 어부가 가장 좋은 직업이 될 줄 어떻게 알았느냐고 입이 찢어져라 웃더군요.”
“다시 하늘로 돌아가기 싫을지도 모르겠어, 수 섬 사람들은.”
화이란이 요즘 아르칼리크의 각 섬 근황에 대해 말해주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이야기를 듣고는 곰곰 생각했다.
어쩌면 정말 이곳에서 섬나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중력을 거스르는 걸 유지하지 않아도 되니까 아빠도 덜 힘드실 테고.’
게다가 무엇보다 지상에서 지상인들과 어울리며 살아가려거든 지금이 기회였다.
끔찍했던 그 날, 아빠가 각 섬의 주인들을 이끌고 내려와서 보여준 무위는 거의 신의 힘에 필적했다.
그 뒤에 내가 하늘로 떠올라서 신성력을 나누어주기도 했잖아.
그 광경을 수천만 명의 백성들이 보았다.
‘게다가 그 날 내 힘이 너무 강해서 본래 갖고 있던 지병까지 싹 나았다지.’
그 덕에 지금 마도 제국 내에서는 아르칼리크인에 대한 선망이 커졌다.
흰 머리칼, 혹은 은발에 붉은 눈은 이제 더는 배척해야 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신, 성녀 등의 상징이 되었지.
또한, 특히 그 날의 장면은 좋든 나쁘든 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아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그래서 요즘 수도에서는 성녀와 기사가 되어 괴물을 물리치는 놀이가 유행이라고 했다.
그 기사란 특히 ‘팔라딘’들을 의미했는데, 다행히 그 날 수도에 그들이 있었기에 초기 피해가 최소화될 수 있었던 거였다.
그러지 않았다면 보다 많은 사람이 죽었을 테지.
‘단테…….’
나는 새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잔잔한 파도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집무실 내에서 현실에 바짝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이렇듯 비현실적인 풍경 속에 서니 머리가 텅 비어버린다.
“공주님. 또 단테 녀석을 생각 중이십니까?”
“아, 티 났어?”
“얼굴에 다 티가 나는뎁쇼. 잘 떠났으니 지금쯤 어디선가 사람을 구하고 있겠지요.”
화이란이 일부러 가벼운 말투로 말했다.
사실 화이란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어느 정도 피해가 수습되고 나자 단테는 내게 찾아와 포기 의사를 전했다.
“내겐 너를 사랑할 자격이 없어, 플로린. 아니, 네 곁에 설 자격이 없지.”
“그게 무슨 말이야, 단테.”
“나만 몰랐던 거더라. 이안 형도, 유리 놈도 다 알았는데. 그 가짜를 나만 한눈에 못 알아본 거야.”
그 딱딱하게 굳은 말투와 씁쓸한 표정이 여전히 잊히지 않았다. 그만큼 가슴이 많이 아팠다.
“다시 똑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나는 아마 또 멍청하게 속겠지. 이런 나는…… 드리블랴네라는 가문을 이을 자격이 없어. 내가 가주가 되면 가세가 기울 게 틀림없어.”
지나친 비약이라고 해주고 싶었지만 이안을 선택하겠노라고 이미 마음을 정했는데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을까, 내가.
나는 그저 묵묵히 들었다.
내 가장 소중한, 가장 친한 친구의 인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