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7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71화(171/173)
‘안녕’이란 몹시 씁쓸한 일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단테에게 있어서 새 인생의 시작을 알리는 인사이기도 했다.
“그때 말했던 대로 나는 팔라딘이 되려고 해, 플로린. 나를 데려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거래.”
“언젠가…… 돌아올 거지?”
“마음 정리가 되면. 나이를 먹어야겠지만…… 언젠가 너의 사랑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 있게 되면, 그때.”
단테가 나직이 대답하며 애써 웃었다.
나는 그런 단테를 향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을 건넸다.
“네가 돌보던 아이들, 내가 끝까지 돌볼게.”
“……고마워. 믿고 있어.”
어두운 밤, 초승달이 걸려 있던 하늘.
선선한 바람과 정원의 풀 냄새가 떠오른다.
단테는 나를 한 번 끌어안고 싶은 것 같았지만 그런 마음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잠시 침묵하다 이내 고개를 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우리가 서로에게 소중한 친구로 지낼 수 있을 때 다시 만나자.”
그렇게 단테는 떠났다.
푸른 망토를 두르고, 최연소 팔라딘이 되어서.
아픈 이별을 뒤로하고 미래를 향해 나아간 것이다.
지금은 전 세계 어딘가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겠지.
무사하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공주님. 그…… 미친 황태자는 그 뒤로 소식을 들은 적이 없는 거 같습니다?”
“아, 유리 말하는 거야?”
“예. 그놈이요.”
단테를 생각하던 내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끼고 화이란이 기껏 다른 주제를 꺼냈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왜냐하면…… 모르기 때문이다.
유리가 그 날 어디에 있었는지, 무얼 했는지, 어디로 갔는지 등등.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이후로 나를 만나러 오지도 않았고 말이야.
“아버님 말씀으로는…… 유리가 약을 먹었나 봐. 애착을 끊는 약. 그리고 혼란이 좀 크대.”
거기까지가 내가 아는 것이다.
약을 먹고 나에 대한 마음이 달라졌으니까 찾아오지 않는 거겠지.
유리가 더는 내게 애착을 갖지 않는다면……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으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라라, 공주님! 편지가 온 모양인데요?”
그때, 바다 저편에서 녹색 깃발을 달고 있는 나룻배가 삐걱삐걱 다가왔다.
그건 각 섬을 연결하는 연락선이자 편지를 전달해 주는 역할도 하는 이들이었다.
“아, 이건 신관들이 보낸 거네!”
편지는 모두 두 통이었다.
나는 일단 첫 번째 편지를 열었다.
그들은 신성 제국에서 함께 마도 제국으로 왔던 신관들로, 모두 신성 제국으로 돌아가지 않기로 결의했다. 그리고 진정한 성녀로 인정받은 나를 따르기로 했지.
나는 마도 제국 내에도 천신을 기리는 대신전을 하나 짓기로 했는데, 이들은 신전이 다 지어지고 나면 그곳에서 지내게 될 터였다.
마도 제국의 1세대 신관이라고나 할까?
성녀님, 편안히 지내고 계신지요?
저는 오늘도 공사 감독에 여념이 없습니다.
신께서는 우상화를 금하라 하셨지만 솔직히 신전을 크게 짓는다니까 입이 찢어지게 좋아요.
그렇게 시작을 연 것은 당연히 샌디였다.
레티나는 글을 열심히 배우고 있고요, 저희도 마도 제국의 문화를 익히고 있어요.
아르칼리크에 언젠가는 가보고 싶습니다!
제가 가는 것보다 성녀님이 여기 오시는 게 더 빠르겠지만요.
아무튼 저희는 모두 잘 먹고 잘 지내고 있으니까 얼른 돌아오세요.
신관 일동 드림
참 샌디다운 편지다.
딱히 중요한 말은 없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보고 싶다’는 의미가 잘 전해졌다.
샌디는 이런 류의 안부를 묻는 편지를 자주 보내왔었다.
“그 신전 말인데요, 꼭대기를 금으로 덮는 건 진짜 반대십니까?”
“결사반대야.”
“칫.”
화이란이 아쉽다는 듯 혀를 찼다.
신전을 세운다는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화이란이 제일 먼저 한 말은 ‘그래요! 공주님을 우상화 하는 겁니다!’였다.
그러면서 신전의 외벽에 금을 바른다느니 천만 평의 정원에 내 모습을 본뜬 천 개의 동상을 세우자느니 하는 헛소리를 했다.
전부 다 안 된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신전 꼭대기에 금칠을 하는 건 포기를 못 한 모양이었다.
“다음 편지는 누가 보낸 겁니까?”
“아, 이건 양어머니가 쓰신 거야. 소중하니까 나 혼자만 읽을래.”
내가 내 자리를 잃었을 때, 라흰이 가짜임을 눈치챈 사람 중에는 어머니도 있었다.
역시 관록이 다르달까.
그만큼 나를 주의 깊게 보고 계셨다는 소리인지라 그저 감사했다.
“으, 이제 슬슬 다시 일하러 가자. 결재해야 할 안건이 많아.”
“그럼 기지개 한 번만 켜십쇼. 그러다 몸 굳어요.”
“잔소리쟁이.”
“어허, 이게 다 걱정입니다.”
말은 잔소리라고 했지만 사실 나는 화이란에게 몹시 고마워하고 있었다.
내가 요즘 아빠도 신경 쓰랴, 나라도 돌보랴 몸이 남아나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기분 전환을 시켜주려고 저러는 것이다.
나는 화이란의 말대로 어깨도 돌리고 허리도 돌린 뒤에야 집무실로 돌아갔다.
오늘의 할 일을 다 끝내고 나면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편지에 답장을 써야지.
‘아, 이안 보고 싶어라.’
나는 어깨 너머의 바다를 흘긋 넘겨보고는 종종걸음으로 궁에 돌아갔다.
서류를 하나라도 더 많이 봐야 내 사랑하는 연인을 만날 시간을 낼 수 있었다.
이안은 지금 아버님을 도우면서 다음 가주가 되기 위해 이것저것을 배우고 있었다.
거기에 조커 일까지 겸해야 하니 아주 바쁘겠지.
나는 나대로 왕 대리 임무를 맡느라 바쁜데다, 아르칼리크의 위치는 마도 제국의 수도와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아무리 마법이라는 간편한 수단이 있어도 매일 일에 지쳐 쓰러져서야 만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무엇보다 난 좋고 예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지금처럼 피곤에 찌든 걸 보여주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난 절대 왕 같은 거 안 할 거야. 절대로.”
그렇게 다짐하며 책상 앞에 앉자 화이란이 슬그머니 와서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곧이어 나는 다시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안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 * *
한편, 그 시각.
이안은 여러 종류의 꽃을 앞에 놓고 고심 중이었다.
사실 그가 이렇게까지 고민을 하는 일은 잘 없었다.
이안의 인생은 대부분이 합리성으로 이뤄져 있었다.
단순하게 예를 들자면 음식의 맛이나 모양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의 영양이나 열량이 중요할 뿐.
그런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으니 오직 예쁜 것 외에 어떤 기능도 쓸모도 없는 꽃을 쉽게 고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분홍색이 나을 것 같은데.”
한참 침묵하던 그가 입을 열자 수하들이 빠르게 움직여 분홍색 꽃만 한쪽에 골라냈다.
“흰색을 주변에 두르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너무 단조로운 색 배치가 아닐까.”
“두 가지 색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깔끔한 꽃다발을 좋아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색 조합이 너무 단조로운 것 같아. 연한 보라색 꽃도 추가할까.”
굉장히 무거운 어조로 그렇게 말하자 수하들이 또 빠르게 움직였다.
이안은 그제야 만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미미하게 볼을 붉히고 있기도 했다.
이안의 최측근, 어릿광대는 이안의 그런 모습을 굉장히 생경하게 바라보았다.
사실 제국 최대 암살 집단의 잔혹한 수장이 연인을 위해 직접 꽃다발을 만든다고 하면…… 대체 누가 믿겠는가?
“자, 골랐으니 이 다음은 어찌해야 하지?”
이안이 부드럽게 웃으며 제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여자에게 질문했다.
제이나는 마도 제국의 수도에서 가장 유명한 플로리스트로 거액의 강습료를 차마 거절하지 못하고 이 자리 나온 인물이었다.
‘무, 무서워! 돈을 너무 많이 주기에 조금 의심하긴 했는데, 역시 입막음 비용이었잖아!’
하지만 거절하기엔 너무 많은 돈이었다.
플로리스트 제이나는 제 주변을 둘러싼 사내들을 힐끔힐끔 보며 꽃다발을 만드는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이렇게 하면…… 쨘! 이렇게 됩니다.”
“……다시.”
“아, 네. 처음엔 어려울 수 있어요. 그래도 이렇게…… 요렇게 하시면……!”
뿌득.
이안의 손에서 꽃 하나가 목이 꺾여 우그러졌다.
그랬다.
최고의 암살자. 사격의 귀재. 드리블랴네의 20대 가주가 될 사람.
그리고 플로린의 연인.
이안 드리블랴네는 사실 손재주가 끔찍하게도 없었다.
그의 섬세한 외양과 비교하자면 반전이라 할 만한 지옥의 솜씨였다.
“눈은 따라가는데…… 왜 이게 안 되는 거지.”
“그, 손에 힘을 좀 풀어보시면……?”
제이나가 마른침을 삼켰다.
강습을 시작한 지 약 두 시간째.
이안의 주변엔 가엾게 꺾여버린 꽃들이 너저분하게 떨어져 있었다.
“그…… 옆에 계신 분이 해보시겠어요?”
하다하다 안 되니 제이나는 결국 이안의 옆에 서 있던 덩치 큰 사내에게 제안을 했다.
“특히 리본 묶을 때요, 남의 목을 조르는 것처럼 그렇게 살벌하게 하시면 안 돼요. 꽃은 아주 부드럽게 다뤄야 하거든요……. 어머, 잘 하시네요?”
어릿광대의 손에서 훌륭한 꽃다발이 만들어졌다.
이안은 그 모습을 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
“요리는 잘 하는 편인데.”
“요리와 꽃다발 만들기는 또 조금 다르니까요…….”
“다시 해보지.”
이안은 플로린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고 싶었다.
직접, 자신이 만든 것으로.
그리고 그러한 일을 평생 하고 싶었다.
산 것이 아니라 만든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그가 자꾸 실패하는 건 모두 리본 때문이었다.
끈만 손에 쥐면 무의식적으로 강하게 당기는 바람에 꽃들이 그 악력을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래서야 어떻게 부케를 만들지.’
이안은 심각해지고 말았다.
사실 플로린은 모르고 있는 일이지만, 이안은 지금 비밀리에 프러포즈를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