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7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72화(172/173)
물론 플로린은 그를 택했다.
그 난장판이었던 날, 이안은 플로린에게 결혼을 청했었고.
하지만 공식적으로 결혼하자는 청을 한 건 아니니까.
이안은 생각보다 상당히 고지식한 사내였기에 자신이 프러포즈를 하고, 플로린이 그걸 받아주어야만 결혼 준비를 시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게다가 플로린에게 있어 한평생의 추억이 될 만한 일을 두루뭉술하게 넘겨버리고 싶지 않기도 하고.’
나중에 자식들이 ‘아빠는 엄마에게 어떻게 프러포즈 했어요?’라고 물어보면 길이길이 해줄 말이 있었으면 한다.
그리하여 이안은 이를 갈며 꽃다발 만들기에 다시 도전했다.
그는 집념이 상당한 편이었기에 열 시간 후.
모두가 지쳐 하얗게 불태워져 버렸지만 이안만은 금빛 눈을 번득이며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그런 그의 주변으로 예술적으로 완성된 꽃다발이 색에 따라 정갈하게 분류되어 쌓여 있었는데, 그야말로 광기 그 자체였다.
* * *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꼭 그런 날이 있다.
아침 햇살을 맞으며 눈을 뜨자마자 갑자기 가슴 어딘가가 설레는 날.
따져보면 특별할 게 하나도 없는 하루인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든다.
“얼레, 기분 좋아 보이십니다.”
“안녕, 화이란.”
내가 들뜬 게 티가 났는지 화이란이 아침 식사 중에 은근슬쩍 말을 걸어왔다.
하지만 나라고 딱히 이 기분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건지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들뜰 뿐.
“드디어 아빠가 오시려나?”
“어휴, 왕께서 돌아오신다면 너무나 좋지요.”
“반가운 누군가가 오려나 봐. 갈매기가 오늘따라 끼룩거리네.”
에그 스크럼블과 향긋하게 구운 토마토, 생선을 야무지게 먹으며 나는 머릿속으로 오늘 봐야 하는 서류들을 정리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을 한 덕일까.
일주일쯤 뒤면 삼사 일 정도 시간이 날 것 같았다.
그때 드리블랴네에 가서 아버님도 뵙고, 어머니랑 식사도 하고 싶은데.
아, 이난나 님과 할아버님도 잊으면 안 된다.
두 분은 라흰이 가짜라는 걸 한눈에 못 알아보셔서 그걸 아직까지도 미안해하고 계시거든.
두 분의 놀란 마음을 다 어루만져 드리지도 못하고 급하게 아르칼리크로 와야 했으니까, 식사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많이 나눠야지.
하지만 역시 그 무엇보다 하고 싶은 것은 이안과 시간을 보내는 거였다.
‘어쩌다 보니 이안이 데려가주었던 바닷가의 그 집, 그때 이후로 지금껏 한 번도 쉬지를 못했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지만 이안과 함께 어디 한적한 데서 둘만 있고 싶은 마음이 하루가 지날수록 무럭무럭 커지고 있었다.
‘아, 그냥 쉬고 싶은 게 아니라…… 이안과 쉬고 싶은 거구나. 그게 중요한 거네.’
뜻밖의 깨달음에 피식 웃으며 따뜻한 토마토를 먹어치운 나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종종걸음으로 집무실에 가던 와중.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러고 보니까.’
나 결혼식은 언제 하지?
* * *
전혀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깨달은 바람에 나는 일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있지, 월휘.”
“예, 공주님.”
“보통 프러포즈를 받고 나서 언제쯤 결혼해?”
툭.
월휘가 들고 있던 깃펜이 책상에 부딪혀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갑자기 결혼 이야기를 꺼내니 깜짝 놀란 듯했다.
“뭘 그리 놀라고 그래.”
볼을 살짝 부풀리고 툴툴대자 월휘가 눈을 껌뻑였다.
“호, 혼인은 너무 이른 것 같습니다.”
“프러포즈 받으면 1년 안에 결혼하지 않아?”
“청혼을 받았다 해도 10년 뒤에 결혼해도 되는 겁니다.”
“뭐어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나는 안 되겠다 싶어서 화이란을 불렀다.
하지만 화이란은 한술을 더 뜰 뿐이었다.
“아이고오, 결혼이라니요! 제 눈에 흙이 들어가도 결혼은 안 됩니다요!”
“둘 다 정말 무슨 소리야. 어휴.”
틀렸다. 도움을 받을 사람이 없다.
나는 나중에 비슷한 나이대의 하녀들을 불러 물어보기로 결심하고 그냥 입을 닫았다.
‘아니, 그렇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최대 1년이면 결혼 준비가 끝날 텐데?’
어디 보자. 지금부터 준비하면…… 그럭저럭 내년 봄에는 식을 올릴 수 있겠다.
기왕이면 꽃이 피는 계절에 결혼하고 싶었기에 나는 마음속으로 내년 5월을 꼽아두었다.
‘이안도 똑같이 생각하는지 궁금한데.’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간편히 소통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마음이 콩밭에 간 탓에 일은 안 하고 딴생각이나 골똘히 하던 난 머릿속을 스치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럼 개발하라고 하면 되지! 마탑에!’
그런 거 하라고 있는 게 마탑이잖아?
물론 마탑은 나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아버님을 설득할 방법이야 널려 있었다.
일단 첫 메시지를 아버님께 보내겠다고 하는 거야.
편지보다 훨씬 간편하잖아!
‘왜 진작 이 생각을 못 했담?’
이제 신무기 개발도 안 하는데 실생활에 잘 쓰이는 마도구나 개발하면 되겠네.
물론 그 마도구는 상용화가 되어야 하며 판매는 드리블랴네에서 도맡을 것이다.
어디선가 짤랑이는 금전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는 듯한 기분에 나는 신이 나서 엉덩이를 조금 실룩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
정말이지 일에 집중이 되지 않아 나는 하는 수 없이 일어났다.
평소에 다들 산책 좀 하라고 권할 정도로 움직이지를 않는데 오늘은 내가 먼저 몸을 일으킨 것이다.
“잠깐 해안 좀 걷고 올게. 따라올 거 없어.”
“네이!”
오늘 오전에도 바다는 여전했다.
그 모습 그대로 나를 맞이하고, 인사한다.
나는 모래사장을 느리게 거닐며 많은 생각을 했다.
주로 내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렇게 한 바퀴 걷고 나니 수런거리던 마음도 가라앉아 이제 그만 발길을 돌리려던 찰나.
나는 꽃 한 송이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응?”
뭐지?
내가 떨어트린 적 없는데.
그렇다고 주변에 다른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원래 궁전이 있는 일 섬은 아무나 함부로 다닐 수 없으니까.
“예쁘다…….”
딱 내가 좋아하는 꽃이네.
새하얀 장미는 개량종인지 꽃송이가 크고 풍성했다. 그리고 꽃의 끄트머리가 붉은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나는 나처럼 생긴 꽃을 쥐고는 향기를 맡았다.
‘아, 달콤해. 딸기 생크림 케이크 냄새가 나는 것만 같아.’
너무나 이상하게도 향을 맡을수록 그리움에 취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꽃이 어디에서 온 걸까.
파도를 둥실둥실 타다가 바다에 떠밀려 온 걸지도 모른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지기에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입을 열었다.
“화이란, 어디서 꽃이 밀려왔나 봐.”
그러나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그제야 나는 이 인기척이 화이란의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쿵.
검은 구둣발을 보는 순간 내 가슴이 내려앉았다. 그러더니 콩콩거리며 심장이 엇박으로 뛰기 시작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그런데 왜 이렇게 생생하담?
“애기야, 나 안 봐줄 거야?”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달콤했다.
환청도 아니고 환각도 아니다. 내 손에 들린 꽃 한 송이는 진짜이니까.
결국 나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자 거기에는-
“이안!”
어젯밤에도 꿈에 나온 내 남자가 서 있었다.
꿈에서보다 훨씬 훤칠하고 수려한 모습으로.
“어떻게 왔어!”
나는 지체하지 않고 이안의 품에 안겼다. 이안은 오른팔로만 나를 꼭 안아주었는데, 잠시 눈 깜빡할 사이에 왼손으로 내게 꽃다발을 주느라 그런 거였다.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잘 지냈어? 매번 편지로는 잘 있다고 하니까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안이 내민 꽃다발엔 분홍색, 연보라색, 하얀색 꽃이 가득했다.
나는 그걸 품에 꼭 안고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 사랑의 향기가 난다.
행복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꽃까지 준비해 오고!”
“내가 직접 꽃다발을 만들었어. 마음에 들어?”
“직접?”
“응. 최고의 강사를 초빙해서 배웠어.”
이안의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기대가 묻어났다.
나는 꽃다발을 새삼스레 보고는 환히 웃었다.
“당연히 마음에 들지! 이런 이벤트를 해주다니. 놀랐어.”
“얼굴을 못 본 지 벌써 두 달이잖아. 혈중 플로린 농도가 다 떨어져서 움직일 수도 없었어.”
이안이 능글맞게 말하며 눈웃음을 지었다.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바다를 등지고 선 그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꿈을 꾸는 건가 싶어서 볼을 꼬집던 나는 이안의 금색 눈동자가 너무나 진지해서 이것이 현실임을 알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루라도 더 빨리 결혼하고 싶어서…… 정식으로 청혼하러 왔어.”
“!”
“평생 너를 울리지 않을 거야. 네가 내게 준 삶을 감사해하며 너에게 돌려주려고 할 거야, 플로린.”
여기까지 오는 동안 이안은 내내 청혼을 할 생각이었구나.
정식으로 청혼해 주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결혼할 사이다. 하지만 역시…… 이렇게 진지하게 말해주는 게 싫을 리가 없었다.
“플로린. 나와 결혼해 줄래?”
“응!”
나는 이안이 재킷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내 보여주기도 전에 큰 소리로 대답했다.
“내 남편이 되어줘, 이안.”
“영원히…… 너의 편이 될게.”
이안이 다정하게, 그리고 기쁘게 웃으며 일어서서 나를 꽉 껴안았다. 나 역시 이안을 꼭 끌어안고는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그리 대단하고 화려한 건 아니었다.
이어지기 위해 엄청난 고난을 겪은 것도 아니고 고통에 사무치며 겨우겨우 사랑을 알게 된 것도 아냐.
그렇지만…… 우리 둘의 역사에 있어서는 큰 사건들이었다.
여러 고비를 넘어 우린 비로소 맺어지게 되었고, 이로써 어릴 때부터 내가 짊어졌던 선택의 의무도 끝이 났다.
‘나의 선택은 이안이야.’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서로가 서로를 온 마음을 다해 아끼며 사는 부부.
이안과는 그런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행복감에 젖어 있는데 이안이 내 귀에 대고 나직하게 속삭였다.
“내가 항상 더 많이 사랑해, 애기야.”
이안은 내가 몇 살 때까지 특유의 말투로 ‘애기야’라고 불러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활짝 웃었다.
행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어느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