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7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73화(173/173)
제 14장. 에필로그
시간이 또 훌쩍 흘러, 어느덧 5월.
온 세상에 꽃이 만발하는 봄이 되었다.
나는 이난나 님과 어머니, 여러 하녀에게 둘러싸인 채로 마무리 화장을 받고 있었다.
나비 날개처럼 투명한 재질의 금빛 시폰 레이스를 단 크림색의 웨딩드레스에 같은 빛깔의 구두.
섬세하게 짠 베일까지 쓰고 나니 결혼을 한다는 게 실감이 났다.
“무척 잘 어울리는구나.”
“생각한 대로에요, 따님.”
이난나 님과 어머니가 흐뭇하게 웃으며 거울을 보여주었다.
전신 거울 속의 내가 너무 예뻐서, 솔직히 조금 충격이긴 했다.
‘이렇게 공들여서 관리를 받고 신부 화장을 하고 나면 사람이 속에서부터 광채가 올라오는 느낌을 갖게 되는구나!’
나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거울을 들여다보다가 모두에게 감사를 표했다.
“결혼,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모두들 정말 고마워.”
“마지막으로는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거셔야 옳습니다.”
그때, 니나가 목걸이를 가지고 들어왔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면 몇 개가 있긴 한데 오늘은 내 눈동자 색에 맞춰서 루비를 걸 생각이었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하던 나는 상자 겉면에 쓰인 이니셜의 약자를 보고 ‘아’하고 탄성을 뱉었다.
“이건…….”
“황태자 전하께서 보내시는 선물이에요. 일찍 들어온 선물을 정리하다가 발견하고 가져왔습니다.”
니나가 의기양양하게 상자를 열어 보였다.
그러자마자 상자 안에서 빛이 일었다.
정말이지…… 휘황찬란한 목걸이가 아닐 수 없었다.
“이건 황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목걸이로군. 천사의 사랑이라 불린단다.”
“황태자 전하가 신경을 많이 쓰셨네요.”
이난나 님과 어머니가 각기 한마디씩을 하셨다.
나는 목걸이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목걸이 아래에 깔려 있는 편지로 손을 뻗었다.
이제 더는 물로 메시지를 전할 수 없게 되어서, 편지를 보내.
깔끔한 필체로 쓰인 첫 마디.
거기서 나는 담담한 얼굴로 펜을 들었을 유리가 그려지는 듯했다.
우선 제일 먼저 해야 하는 말은, 결혼 축하한다는 거겠지. 결혼 축하해, 누나. 진심으로 행복하기를 바라고 있어.
여기까지 읽고 나니 그 뒤는 소란스럽지 않은 곳에서 천천히 읽고 싶어졌다.
나는 드레스를 입은 채로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창가로 다가갔다.
편지지가 여러 장인 것을 보아서인지 다들 나를 굳이 따라오지는 않고 혼자 읽을 수 있게 배려를 해주었다.
그 애착을 끊는 약이라는 거, 참 이상하더라. 그걸 마시고 나니까 내 속에서 들불처럼 일어나던 집착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어.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그렇다면 그 이전에 내가 느낀 충동은 다 거짓인가.
그런 혼란에 빠져 있느라 여태 얼굴 한 번 보러 가지를 못했네.
미안해.
그런데 오늘도 누나를 보러 가지는 못하겠어.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여전히 나는 혼란스러워서.
그렇다면 난 누나를 조금은 진짜로 좋아했던 걸까?
유리의 고민이 엿보이는 문장이었다.
신중한 성격이니 이 글을 쓰기까지 혼자 오랫동안 고민했겠지.
그러니까 내 결혼식에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서운하진 않았다.
아, 이 목걸이는 몇 대 전 황제가 자신의 누이를 위해 만든 거야.
잘은 모르겠는데 어쩌면 나는 누나를 정말 누나로 좋아한 걸지도 모르겠어.
이성적인 감정이 아니라, 가족애로.
지금은 일단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이걸 선물로 보낸 거고.
부담스러워할까 봐 시종에게 다른 손님들 것 사이에 끼워두라고 했는데 언제쯤 발견할지 모르겠네.
무려 식전에 발견했다.
니나의 눈썰미가 대단하단 말이지.
그리고 그 날 이후, <책>은 사라졌어.
내 역할을 다 했기 때문이겠지.
여기서부터는 필체가 조금 더 가벼워졌다.
유리가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마무리를 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편지를 접고 몸을 돌렸다.
“그 목걸이를 해야겠어. 동생이 준 거니까.”
“앗, 바로 준비할게요!”
다이아몬드는 드레스와 꼭 어울렸다. 마치 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치장이 끝났으니 이제 정말 입장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아마 이안 쪽은 일찌감치 준비가 끝났을 터였다.
“저기, 플로린…….”
그때, 노크와 함께 반가운 얼굴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벨라디였다.
“벨라디! 어서 와!”
“정말 예뻐. 잘 어울려…….”
벨라디가 수줍게 웃으며 다가와 내 손을 꼭 잡았다.
벨라디와의 오해도 다 풀려서 다행이지, 원.
내가 이안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 벨라디와 나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이거, 선물이야. 네 영혼의 빛을 그렸어.”
“와아……! 대 화가님의 그림이라니. 집무실에 걸어놓을래. 고마워!”
사실 벨라디는 ‘라흰’의 영혼의 색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상황 자체가 바뀌었으니 라흰이 가짜라는 생각까지는 못 했지만, 하루아침에 타락한 걸 보고 혼자 많이 슬퍼하기도 했다나.
나는 반짝이고 통통 튀는 색감으로 가득 찬 커다란 그림을 보며 잠시 감상에 젖었다.
“그러고 보니 벨라디, 정말 팔라딘 본부에 갈 거야?”
“으응.”
“순정이라니까.”
벨라디는 단테를 좋아한다.
오랫동안 기다려야 해도 상관없다고 했다.
대신, 떨어져 있는 건 아무래도 견디기 힘들어서 벨라디는 팔라딘들의 모습과 전투 활약을 그리는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했다.
특유의 빛에 대한 예술적인 감각과 독창적인 화풍으로.
나는 그런 친구를 응원할 뿐이었다.
벨라디가 찾아가면 내가 결혼했다는 소식도 자연스레 전해질 테지.
“부케, 무척 예뻐. 너랑 잘 어울려, 플로린.”
“정말? 이안이 직접 만들어준 거야. 이따 잘 받아야 해, 벨라디. 내가 이 부케를 줄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너의 사랑이 언젠가 결실을 맺기를 바란다.
내가 행복한 만큼 너도 행복해지기를.
나는 그런 바람을 담아 부케를 손에 쥐었다.
이제 식장에 입장할 시간이었다.
‘아, 경쾌한 음악. 듣기 좋아.’
우리의 결혼식은 대부분 전통을 따랐지만 몇 군데 정도는 젊고 세련된 감각을 채워 넣었다.
대표적인 게 식장의 음악이다.
나는 엄숙한 건 싫어서.
그다음은…….
“플로린.”
식장 입구에 흰 예복을 입은 붉은 머리 남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서슴없이 다가가 팔짱을 꼈다.
이게 또 조금 다른 부분이었다.
보통은 아빠의 손을 잡고 들어가잖아.
하지만 오늘까지도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내가 먼저 결혼식을 올린 걸 알면 엄청 섭섭해하시겠지만…… 그에 대한 대책으로 나는 나중에 아르칼리크 식으로 한 번 더 식을 올리기로 이안과 말을 맞추어 두었다.
“오늘, 숨을 못 쉴 만큼 아름다워.”
이안이 허리를 숙여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나는 꽃처럼 웃으며 살짝 올리고 있던 베일을 다시 내렸다.
“그럼 신부와 신랑! 입장합니다!”
문이 활짝 열린다.
모든 손님들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나와 이안은 각기 손님들에게 눈인사를 하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워낙 손님이 많았기에 주례가 있는 쪽까지 가는 길도 참 길었는데, 그동안 나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의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작고 연약한 아기 담비였을 때부터, 가주 할아버님께 인정을 받은 날, 아버님이 요술봉을 선물해 주신 날.
그리고 아빠를 만나게 된 날…….
그 모든 게 물거품처럼 떠올랐다가 퐁 하고 사라졌다.
그런 뒤에 남은 것은 바로 어른이 된 이안이었다.
마침내 주례의 앞에 선 나는 이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그는 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부드럽게 얽어왔다.
“너희를 처음 만났던 날이 아직도 생생한데…… 이렇게 부부로 맺어지게 되는 날까지 보게 되는구나.”
주례는 다름 아닌 아버님이었다.
오늘도 신랑만큼이나 멋지게 빼입은 아버님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플로린, 이안을 네 남편으로 인정하고 평생 행복하게 살겠느냐.”
“네.”
“이안. 플로린을 네 아내로 인정하고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느냐.”
“예.”
이안의 목소리가 낮고 단호했다.
아버님은 눈썹을 실룩이긴 했지만 이내 나와 이안이 공식적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언했다.
그러자마자 마법으로 만들어진 금빛 폭죽이 나와 이안의 머리 위에서 터지며 반짝이는 가루를 흩뿌렸다.
쿵쿵쿵.
행복함을 담아 가슴이 마구 뛴다.
이윽고 나는 손님들 앞에서 부케를 던지기 위해 객석을 등지고 섰다.
“벨라디, 던질게!”
전통에 따른 이 의식까지 마치고 나면 다음은 길고 긴 피로연이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고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부케를 던졌다.
“…….”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박수갈채도, 벨라디에게서 부케를 받았다는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의아하여 고개를 갸웃하고 있는데, 처음 듣는 목소리가 내 귀를 간질이는 게 아닌가.
“우리 딸. 우리 아가.”
떨리는 음성은 중년 여성의 것이었다.
몹시 고아하고 또 상냥한 어조.
그리고 내 등을 감싸 안는 손길.
나는 차마 얼굴을 보지 못하고 물었다.
“엄……마?”
“그래. 엄마야. 우리 딸……!”
어떻게 이런 기적이 다 있을까.
목구멍이 콱 틀어 막히는 듯한 기분에 나는 가쁘게 숨을 쉬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나는 엄마를 마주했다.
나처럼 동그랗고 귀엽게 생긴 엄마는 나보다 훨씬 순한 인상이었고, 선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늦지 않아 다행이구나, 딸아.”
그런 엄마의 옆에는 엄마를 무사히 구해내 온 아빠가 있었다.
‘아, 눈시울이…….’
두 분 다 눈물을 글썽이고 계신다. 나도 눈물이 났다.
행복해서, 기뻐서, 엄마 없이 지냈던 시절이 서러워서, 반가워서.
많은 이유로 눈물이 차올랐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는 날이었다.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