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8화(18/173)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받은 라피렌은 이내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안경을 추어올린 그는 헛기침을 하고는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우선, 세 명의 가주 후보 중 선택받는 건 단 한 명입니다. 그럼 나머지 둘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시겠지요.”
“응!”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변경백의 지위를 얻고 수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자식을 낳으면 그 자식을 저택에 보내오지요.”
그 자식들이 즉, 드리블랴네의 후계자들이 되는 거구나. 그래서 직계, 방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기회인 거다. 자신이 가주가 될 수는 없었어도 자식이 될 수도 있으니 그런 희망으로 반발을 누르는 걸지도.
“물론 그런 전통마저 거부하고 무력으로 가주 자리를 차지하려 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헉!”
“다만 그럴 경우에는 <팔라딘>에서 나서서 분쟁을 조정하게 됩니다.”
“팔라딘?”
“팔라딘은 전원 소드 마스터로, 열두 명의 숫자를 유지합니다. 새롭게 팔라딘이 되고 싶다면 기존의 팔라딘을 꺾어야만 하지요.”
“히야아……!”
멋있다. 원작에서는 단테가 팔라딘 중 하나였지.
“또한, 팔라딘은 그 어느 나라에도 속하지 않은 단체입니다. 국적도 성별도 종족도 그들에겐 아무 상관 없습니다. 단지 우성 알파여야 한다는 것 외엔 조건이 없지요. 제아무리 강해도 그들을 이길 수 없고, 제아무리 회유하려 해도 소용없으니 쉽게 제압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국제 무력 분쟁 조정 기구라는 거구나.
찰떡같이 알아들은 난 역시 너무 멋지다고 생각했다.
“또 궁금한 고 이써요. 가주 후보조차 못 댄 애들은요?”
본관에 입성하지 못한 애들 말이야.
“가주 후보조차 되지 못하고 탈락한 이들은 가문 내에서 요직을 맡게 됩니다. 이런저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면요.”
“아하.”
그럼 어쩌면 차라리 가주 후보가 되지 못하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변경에서 평생을 살아야 하면 너무 외로울 것 같아.
배운 것을 머릿속에 잘 넣은 뒤, 나는 슬쩍 입을 열었다. 기왕 라피렌이 시간이 내어주는 거, 궁금했던 걸 전부 물어볼 심산이었다.
“구럼요, 언제부터 며느리가 가주를 정하게 대써요?”
“그건 초대 가주 님의 유언이었습니다. 극도의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통해 가장 강한 수컷이 드리블랴네를 이끌도록 하기 위해서였지요.”
“수컷만요?”
강한 딸이 태어나면 어째?
“예. 본래 드리블랴네는 수컷만이 가주가 될 수 있었습니다. 구시대적인 발상이었지만 전통이란 이름으로 유지되어 오다가…… 그걸 깨트리신 분이 아리아드네 님이셨는데.”
일순, 라피렌이 말을 멈췄다.
그러다 다시 입을 열었을 때,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모든 것이 규격 외인 분이셨습니다, 아리아드네 님은. 아마 살아 계셨다면 혁신을 일으키셨겠지요.”
아리아드네는 자신을 어떤 기준에 맞춰서 끼워 넣는 것을 극도로 혐오한 사람이었다.
독자 입장으로 원작을 읽었을 때, 나는 라흰이 아리아드네를 미워했다고 여겼다. 라흰은 어디서든 주변에 맞춰가는 스타일이었으니까.
그러지 않아도 사랑받는 아리아드네가 부러웠을지도.
‘나는 어떠냐면…….’
아리아드네 님, 완전 멋있어!
‘살아 계셨더라면 정말 좋았을 텐데.’
라피렌은 가슴을 진정시키려는 듯 얕게 숨을 몰아쉬다가 이내 안경을 벗어서 닦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인 것 같았다.
“본래 가주 후보로 낙점된 소가주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면 내정된 안주인이 남은 후보 중에 한 명을 다시 고르게 됩니다.”
“네.”
“그러나 말씀드렸듯 19대의 경우…… 아리아드네 님이 너무 뛰어나셨기에 다른 후보 같은 건 없었습니다. 아리아드네 님을 제외한다면 그다음으로 뛰어나신 건 당연히 키락서스 님이셨지요. 그래서 키락서스 님이 말이 더 나오기 전에 얼른 소가주 자리를 승계받으셔야 했었는데…….”
“안 받구 뺀지르르.”
“맞습니다. 절대 소가주 같은 거 안 한다고 날뛰시더니 갑자기 이렇게 말을 또 바꾸시더군요.”
라피렌이 허허 웃으며 이를 바득 갈았다.
아마 키락서스가 일 안 하고 도망 다니는 동안 라피렌이 고생깨나 했나 봐.
“그래도 이제 작은 마님께서 계시니 얌전해지시겠지요.”
아, 나를 키락서스의 약점 같은 걸로 생각하는 모양인데-
‘아니에요.’
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어제 이야기 다 했다구.
‘난 그러니까, 악당 양심 수호 부적이야.’
나마저 버리면 진짜 나쁜 놈인데, 나를 안고 가는 것으로 약간 회개하는 느낌……이라 해야 하나?
“그럼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게르드 님에 대한 건은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응, 아니, 잠깐!”
딱 하나만 더!
나는 타닥 뛰어가 라피렌의 옷깃을 꼬옥 쥐었다.
“구럼…… 아리아드네 님 아내는 어디 이써요?”
사실 난 원작을 읽었으니 아리아드네가 누구와 결혼했는지 알고 있었지만 일부러 모른 척하고 질문했다. 이래야 나중에 내가 그 정보를 알고 있어도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지.
“아리아드네 님은 원하는 분을 직접 골라 결혼하셨습니다. 아내는 아니고, 뭐, 아내여도 아무도 뭐라 하진 않았겠지만 아무튼 남편이었습니다. 디엔 글란스 님이지요.”
“아하. 그 분은 오디 계셔요?”
디엔 글란스.
작중 ‘단테 드리블랴네’의 친부이자 아리아드네의 유일한 남편.
“그 분은 아리아드네 님과 함께 가셨습니다.”
“그, 그렇구나…….”
그랬다. 디엔 글란스는 원작에서 너무나 섬세한 감수성을 가진 여리고 예민한 사람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아리아드네가 죽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했지.
어린 아들을 사관 학교에 둔 채 생을 마감한 걸로 나와서 원작의 아리아드네 팬들이 얼마나 가슴을 쳤는지 모른다.
“그럼 이제 진짜로 가보겠습니다. 다음 일정에 이미 늦어서.”
“으응. 고마웠어요, 샘미.”
이윽고 나는 떠나는 라피렌을 향해 손을 붕붕 흔들어주었다. 누군가를 후계자 자리에서 찍어내라는 모의를 한 것치곤 꽤나 상큼하고 발랄한 인사였다.
“자, 구롬 이제 가계도 공부를 해보까!”
난 두 눈을 부릅뜨고 꼬불꼬불한 글씨를 하나하나 확인했다. 그러다 키락서스의 이름을 발견했는데, 그 아래엔 아무도 없다.
‘모, 순결 서약을 했으니깐.’
사실 서약을 했다 해도 그 키락서스가 지킬 것 같진 않았는데…… 진짜 지켰나 봐. 애가 없네.
다음으로 난 아리아드네 님 밑에 적힌 이름들을 확인했다.
이안 드리블랴네
단테 드리블랴네
유리 예레반 헬리코프리온 드리블랴네
‘어?’
이안?
‘이런 애도 있었어?’
어디서 본 것 같기는 한데…… 원작에 나온 캐릭터는 아니고.
‘흐음, 흐음.’
뭔가 생각이 날 것도 같고 아니기도 하고…….
그러나 내가 뭔가 생각을 더 잇기도 전이었다.
“작은 마님! 작은 마님!”
린다가 호들갑을 떨며 나를 불러왔다.
“왜에?”
“크, 크, 큰 마님께서 부르세요!”
“힉?!”
진짜로?!
* * *
‘대체 어디 가서 어떻게 공을 세운다?’
담비인 탓에 아무리 급하게 움직여도 사람 세 걸음에 난 한 걸음 밖에 못 갔다. 그래서 유모의 품에 답삭 안긴 채 서둘러 공작 부인을 뵈러 가는 길에도 내 작은 머릿속은 이 생각 하나로 꽉 들어차 있었다.
‘원작을 다시 읽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이맘때에 일어날 만한 국가적 재앙 같은 거 없나? 그런 걸 막아내면 어마어마하게 큰 공을 세운 거잖아.
‘솎아내기를 할 수 있는 선택의 권리는 꼭 얻어내야 해.’
그래야 게르드는 물론이고 게르드에게 줄을 대고 있을 애들도 잘라내지.
후계자 관에 있는 소년들이 전부 자기가 가주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진 않을 것이다. 가문의 요직에 들어갈 수 있길 바라면서 유력한 후계자에게 붙은 발 빠른 녀석들도 있을 터.
난 걔네들도 같이 청소하고 싶었다. 내 노……후가 아니라 이 가문에 해를 끼칠 수 있을 만한 위험 요소는 미리미리 잘라내고 싶거든.
“미리 말씀드리지만 공작 부인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십니다.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은 주의 부탁드립니다.”
나이가 많은 하녀장은 문을 열기 전, 그렇게 당부했다. 말투나 표정을 보아하니 내게 호감을 갖고 있지도, 그렇다고 나를 싫어하지도 않는 쪽인 듯했다.
‘그냥 공작 부인에 대한 걱정으로 수심이 깊은 듯해.’
역대 드리블랴네 공작 부인이 머물렀다고 알려진 침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따스한 느낌이었다.
‘와, 창문에 월귤나무 모양 스테인드글라스도 끼워져 있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화려하고 아름답고 비싸 보여. 어쩐지 발을 들이자마자 익숙한 느낌이 팍 드는 것이 참 희한했다.
난 여기 와본 적도 없을 텐데. 아니면 그냥 이 부유함이 내게 편안함을 주는 걸까?
‘나 혹시 부자 체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