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19)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19화(19/173)
침실로 들어가기 전, 방에 딸린 작은 응접실에서 대기하며 나는 목에 맨 분홍색 리본을 조금 잡아당겼다. 공작 부인을 처음 뵈러 간다고 하니 잘 보여야 한다며 유모가 매어준 거였다.
“이제 들어오셔도 됩니다.”
일어선 유모는 몹시 긴장한 기색이었다. 발걸음 하나하나에 조심스러움이 묻어나서 나도 똑같이 행동하게 됐다.
‘엄청 무서운 분인 걸까?’
난 공작 부인이 실제로 어떤 분인지 모르지만 유모는 알겠지.
‘설마…… 게르드를 물어서 혼내려고 부르신 걸까?’
아니면 내가 먼저 인사를 드리겠다고 살갑게 굴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않아서?!
나름대로 눈치를 보며 걱정하고 있는데 생각보다 담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키락서스가 데려왔다는 아이로구나.”
“아, 안냐하세요.”
인사를 올리며 고개를 든 순간, 나는 두 가지에 압도되었다.
‘당장이라도 바스스 흩어지실 것처럼…… 위태로워 보여.’
모든 생명력이 소진된 사람은 저렇구나.
말 한 마디를 하는 것조차 힘겨워 보이는 메마른 입술. 전혀 꾸미지 않아 생기가 없는 피부. 그리고…… 이미 죽어버린 눈동자.
이난나 님은 살아 계시지만 그저 호흡만 하고 있을 뿐, 전혀 산 게 아닌 모습이었다.
‘그런데도.’
한평생 갖추어 온 위엄과 기품은 그대로다. 오히려 상대를 압살하기라도 할 듯 쏘아져 나오고 있었다.
꼿꼿하게 허리를 세운 채 침대에 앉아 있는 노부인의 모습에 나는 쉬이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아이인지 궁금하여 일찍 부르고 싶었으나…… 어제까지만 해도 의식이 없던 상태라 쉬이 부를 수 없었단다.”
“지금도 아푸세요……?”
“그래. 그런 셈이지. 그래도 오늘은 한결 나아. 이리 가까이 오렴. 이야기나 하자꾸나.”
고상한 말투에는 내 털 색이나 눈 색을 보고도 싫은 티가 전혀 없었다. 지금까지는 누가 나를 무시하고 혐오하든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상하게 이분이 날 밀쳐내면 조금 상처받을 것 같았다.
“에반젤린. 자네가 이 아이를 돌보는가.”
“……예, 마님.”
“자네가…… 우리 아리를 보살필 때만 해도, 이런 미래가 있을 줄은 몰랐었지…….”
미약한 탄식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유모가 어깨를 떨었다.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나는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동글 귀를 쫑긋댔다. 뭔가 위로를 하고 싶은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유모는 원래 아리아드네 님의 유모였었구나.’
새로운 사실 하나만 기억을 해둘 뿐.
“아가야. 가주께서 네게 에반젤린을 붙여준 건 이유가 있단다.”
“이유요……?”
“내 딸에 대해 알고 있니?”
누군가의 음성이 수면 아래로 깊이, 깊이 잠겨든다는 인상을 받은 적은 처음이다.
표정엔 변화가 없었지만 딸에 대해 운을 떼자마자 이난나 님의 얼굴은 빠르게 창백해졌고…… 흘러나오는 페로몬 역시 눈에 띌 정도로 약해졌다.
“네, 들었……어요.”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영민하구나. 에반젤린은 내 딸을 직접 키운 젖어미야. 그 빛나는 아이가 소가주 자리에 올랐을 때, 당연히 에반젤린도 곁에 있었지.”
“…….”
“가주께서는 네게…… 아리아드네가 가졌던 측근 세력을 주신 거란다.”
지독한 슬픔이 담긴 어조가 끝을 맺었을 때, 나는 동글 귀를 빠르게 까딱거리고 있었다.
난 이미 드리블랴네라는 이 거대한 가문 속에 여러 갈래의 세력이 있음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직까지 가주 임마누엘이 정정하기에 드러나지 않을 뿐.
장로들은 전부 딴 주머니를 차려는 꿍꿍이가 대단한 것 같던걸.
그러니까 가주 할아버님은 내게 아리아드네 님의 측근을 붙임으로써 권력을 공고히 하겠다는 다짐을 보이신 거라고 볼 수 있었다.
“감사합미다.”
“신중한 아이구나. 영리한데 현명하기까지 해. 이러한 천성은 쉬이 찾기 어려운 것이지.”
내가 모든 걸 이해했다는 걸 안다는 듯 이난나 님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아마도 웃어보려고 노력을 하신 것 같았다.
“마님, 티 준비가 다 되었습니다.”
때마침 하녀장이 은쟁반에 차와 함께 쿠키를 가지고 나타났다.
라피렌에게 캐러멜을 주었기에 조금 상심했던 마음이 위로가 될 만큼 버터 향이 물씬 나는 초코칩 쿠키였다.
“모습이 그러하니 불편하겠구나. 이큘리스를 느끼는 법은 모르겠니?”
대답을 하고 싶었지만 이미 내 볼엔 빵빵할 정도로 쿠키가 가득 들어 있었기에 난 서둘러 고개만 끄덕였다.
“이큘리스는 온 세상에 퍼져 있는 거란다. 공기 중의 이큘리스를 응집하는 법을 익히면 인간화를 할 수 있을 거다. 남들보다 배는 힘들겠지만 못할 것은 없어.”
“져마요……(정말요)?”
“그래. 본래 수인은 본능적으로 이큘리스를 느끼는데…… 알비노는 그게 태생적으로 어렵단다.”
그래서 원작에선 알비노로 태어나는 건 형벌이나 마찬가지라고 서술했었다.
나는 쿠키를 꿀꺽 삼키고는 사람 모습이 된 나를 상상해 봤다. 아무 근거는 없지만 좀 귀여울 것 같았다.
”네게 이큘리스를 느끼는 법을 가르칠 선생을 붙여주어야겠구나. 우리가 동물에서 시작하였다곤 하나 언제까지 그리 지낼 수는 없으니. 보통 너덧 살이면 인간화를 하는데…….”
헉, 그렇게만 된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아까 라피렌이 모략을 세우라곤 했지만 이렇게 분홍 배가 말랑한 흰 담비로선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으니까.
내가 몇 살인 건지도 너무 궁금하고 말이야.
“그론데…… 큰 마님. 그래두 이큘리스를 몬 느끼면은…… 인간화 모태요?”
“큰 마님?”
사실 어떻게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큰 마님? 공작 부인? 이난나 님?
그도 아니면…… 조금 정겹게 할머님?
확실히 알 수 없어서 일단 아무거나 무난한 걸로 골라 호칭해 보았는데 의아하단 반응이 돌아오자 어깨가 괜히 움츠려졌다.
역시 좀 더 격식을 지키는 게 좋았을까?
“아아, 너는 나를 그리 부를 필요 없단다. 그저 이난나 님, 그리 부르렴.”
잠시 뒤, 공작 부인이 느리게 깨달았다는 투로 되짚었다.
“그러는 편이 키락서스에게 좋겠지.”
나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 속엔 아들에 대한 염려가 배어났다.
“즈가 이난나 님과 친해 보이면요, 키티……가 아니라, 소가주님한테 도움이 대요?”
“그럼.”
“그러면 제가 매일 와서요, 재미있는 거 마니 보여드리께요!”
회사로 따지면 이난나 님은 내 직속 상관이다. 난 모르는 게 많으니까 이난나 님께 배워야 해.
그러려면 이난나 님께서 얼른 기운을 차리셔야 할 텐데…….
‘자식을 먼저 보낸 슬픔이 얼마나 큰지 나는 몰라.’
나는 의리라면 알지만 가족의 정 같은 건 배우지 못했다.
책으로 읽어서, 영화에서 봐서, 남들이 그렇다고 하니까. 그래서 가족 간의 정이라는 걸 머리로 정보화하여 알고는 있으나 실제로 그게 어떤 맛인지, 어떤 느낌인지, 어떤 법칙이 있기에 그토록 끈끈한지는 몰랐다.
‘사랑하는 자식을 앞세우는 건 이토록 고통스러운 거구나.’
나는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벌써 숨을 색색거리시는 공작 부인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따끈한 찻잔의 김이 식어가는데도 손조차 들어 올리지 않는 공작 부인은 마치 제 몸에 남은 생명력을 서둘러 몰아내려는 사람 같았다.
남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테니 제 손으로 죽을 수는 없지만 누군가 얼른 말라붙은 몸에서 숨을 꺼내 가주기를 원하는 분위기라고 해야 하나.
이 자리 앉은 모두가 공작 부인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듯해 나는 숨이 턱 막혔다.
“저어, 혹시 침실을 구경해두 대까요?”
더 앉아 있기에 괜히 가슴이 아려서 나는 최대한 해맑게 웃으며 손을 반짝 들어 올렸다.
“조기 반짝반짝한 게 많아써요!”
“그래, 앉아 있기에 심심하겠지. 한번 가보려무나. 구경해도 좋단다.”
“감다합니다아!”
힘차게 인사하고 쪼르르 달려 나간 나는 이곳저곳을 요리조리 구경했다.
공작 부인의 침실 안은 으리으리했기에 보는 재미가 있는 편이었…… 응?
‘이, 이게 왜 여기 있어?’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어떤 가구를 발견하고는 숨이 멎을 듯 놀라고 말았다.
잊고 있던 기억 하나가 뇌리를 열고 불쑥 솟아올랐다. 그건 내가 빌어먹을 나무였을 때의 기억이었다.
“월귤나무에 예쁜 꽃이 피었네요, 어머니.”
날 때부터 지배자였던 사람 특유의 여유롭고 오만한 음성이었다. 그 여인은 제 어머니를 향해 씩 미소를 지었다. 아무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다녀오겠습니다. 어머니. 부디 건강히 계세요.”
“이번이 마지막 전쟁인 걸 잊지 마렴. 마지막이야. 그리고 돌아오면 늙은 어미를 가엾게 여겨 함께 산책이라도 자주 가주려무나.”
“그럴게요. 약속해요, 사랑하는 어머니.”
나무의 삶은 지루했다. 그저 듣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나는 곧 무료해졌고 나무에 완전히 동화가 된 뒤로는 내 몸속을 천천히 흐르는 수액과 진딧물 외에 느낄 수 있는 것도 없어졌다.
‘하지만…… 유독 기억에 남았던 끔찍한 울음이 있었어.’
항상 다가와서 잎을 닦아주고 물을 주던 노부인은 그날, 폐부를 토해낼 듯 울었다.
와장창!
손에 잡히는 화분이란 화분은 다 깨트렸고, 늘 단정하던 머리칼은 온통 풀어 헤쳐진 채였다.
다행히 내게 손을 대기 전에 풀썩 주저앉았지만 그 노부인이 내뿜는 비통함은 싱그럽던 내 나뭇잎을 누렇게 물들일 정도였다.
“아가! 내 아가, 내 자랑스러운 딸아……! 나도 데려가라. 나도 데려갔어야지!!!”
그 일이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말라 죽었다. 식물은 페로몬에 민감한데 온 사방에서 절제하지 않은 페로몬이 뿜어져 나와 더는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는데.’
수차례 빙의를 반복하며 자연스레 잊혔던 기억이 화려한 화장대를 보자마자 나를 강타했다.
‘순금 표범 장식.’
휙 몸을 돌리자 우아한 녹색 카우치와 푸른빛의 도자기 수집품들이 보였다.
‘왜 바로 알아보지 못했나 했더니…….’
이 방엔 더는 가족 초상화가 없다. 화분도 없었다. 식물들이 뿜어내는 청량한 공기로 가득 차 있던 곳이 지금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뿐.
나는 그 변화가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이상하기도 해. 어떻게…… 내가 첫 빙의를 한 장소로 돌아온 거야?’
어떻게 이럴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