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2화(2/173)
* * *
하지만 내 절규를 들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따흐흑.
그로부터 1년 뒤. 나무였다가 방치되어 말라 죽은 뒤로 나는 멀미가 날 만큼 온갖 것들에 빙의했다.
소금쟁이, 애완 해파리, 유리 온실 속 카나리아 등등…….
죽으면 또 빙의하곤 했지만 단 한 번도 사람이 된 적은 없었다. 오래 산 적도 없었고.
‘빙의 특혜 따위는 없는 공정하고 냉정한 빙의였지…….’
고난과 역경 끝에 빙의 7회차.
드디어 수인이 되었을 때, 나는 감격으로 광란의 춤을 출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문제는 철컹철컹 상태가 됐다는 거지만.
나는 지금 커다란 우리에 갇힌 처지였다.
“헤유.”
한숨을 푹 내쉬며 쬐그마한 앞발을 내려다봤다. 하얗고 퐁실퐁실한 게 꼭 꿀타래같이 생겼다. 우물거리면 맛있을 것 같달까……?
너무 배고파서 진짜 입에 넣어본 건 안 비밀이야.
그런 다음에 난 풍성한 꼬리를 휙 흔들어봤다.
와아, 깜찍하기도 해라.
동글 귀 두 개와 꿍실한 엉덩이를 가진 난 어딜 어떻게 봐도 흰 담비였다. 그것도 아기 담비!
물론 지금은 잿가루가 묻어서 좀 꼬질꼬질 하지만……. 반대편의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 제법 귀여워요.
‘그래. 드디어 수인이 된 건 좋아. 좋거든? 근데…….’
왜 하필 그래 봤자 엑스트라야?!
훌쩍거리던 난 허름한 천장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솔직히 이쯤 됐으면 어디 좋은 댁 아가씨로 태어나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어휴, 내 팔자야.
나는 작은 주먹으로 철창을 꿍, 쳤다가 아파서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응, 얌전히 있자. 화내봤자 더 배고파지니까 나만 손해다.
‘……근데 화가 나!’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빙의한 이 흰 담비 수인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빙의를 하게 되면 기억을 전이받게 된다.
하지만 신나서 서둘러 기억을 뒤져본 나는 이내 헛웃음만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나도 악녀 잘 할 수 있는데. 그도 아니면 주인공 자리에 어울리는! 준비된 경력직 신입 빙의자인데!’
왜 굴뚝 청소부 1이냐고오오오!
쿠궁.
좌절 모드로 쓰러진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내가 빙의를 거듭하고 있는 이 『타락 성녀와 광기의 짐승들』은 스코빌 지수 350,000 SHU를 자랑하는 하바네로 고추맛 소설이었다.
여자주인공은 한국에서 늘 조연에 머무르기만 하던 한물간 청춘물 스타 라흰.
그녀는 어느 날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신의 실수로 차원을 넘게 된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크게 충격을 받은 라흰에게 신은 앞으로 무엇이든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겠노라 약속한다.
‘그리고 라흰은 첫 번째 소원으로 자신이 이 세상의 ‘성녀’가 되게 해달라고 하지.’
사실 그녀는 수많은 로판을 읽었기에 차원 이동을 했을 때 가장 살아남기 쉬운 직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똑똑하기도 하지.’
그렇게 성녀가 된 라흰은 이 수인 세계에 제 취향의 남자들이 잔뜩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내 돌아가기보다는 적응을 하게 되었다. 정말 로빈슨 크X소 못지않은 미친 적응력이었다.
자신을 좋아해 주는 수많은 사람 속에서 더할 나위 없는 인기와 역하렘을 즐기며 라흰은 신성 제국 최고의 인기 스타가 된다.
그런데 그것도 지루해진 어느 날, 라흰은 마도 제국과의 회합 장소에서 금지된 사랑에 빠지고 마는데…….
악마의 계약자란 별칭까지 있는 세계 최초 흑마법사 마탑주.
순리를 거스르는 자!
키락서스 드리블랴네를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은 쉽지 않았다. 키락서스의 누이인 소가주 아리아드네는 사사건건 라흰을 방해할 뿐 아니라 매번 시비를 걸어온다.
상처를 입었지만 진심이었기에 자신의 사랑을 전하려 한 라흰은 회합이 끝나던 마지막 날 밤 고백한다.
그러자 키락서스는 교단의 신물인 ‘다이스’를 가져오라고 하고 라흰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다이스를 가져갔다.
하지만 그 모든 건 다이스를 얻기 위한 키락서스의 계략에 불과했다.
키락서스는 다이스를 얻자마자 자신은 이미 마탑에 들어갈 때 순결 서약을 했다며 마음을 받아줄 수 없다고 한 것이다!
이후, 다이스가 없어진 걸 알아차린 신관들이 쫓아오고 헌신해도 돌아오지 않는 마음에 지친 라흰은 키락서스에게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는다면 이 세상을 겨울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서 악당인 키락서스는……!’
그러라고 했지.
‘정확히는 그러든가 말든가 네 어리광 받아줄 생각 없다고 했던가.’
충격을 크게 받은 라흰은 그 순간, 두 번째 소원을 빈다. 정말로 겨울만을 남기고 모든 계절을 없애 달라고.
그 죄로 라흰은 봉인당하게 되고, 신성 제국에서는 라흰과 같은 힘을 가진 성녀를 찾아 헤맨다. 다른 성녀가 있으면 다시 계절을 되돌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녀가 둘 있을 리는 없었어.’
애초에 라흰의 소원으로 성녀가 만들어진 거니까.
그렇게 9년이 지나고 세상은 몹시 황폐해졌다.
원래부터 사이가 나빴던 신성 제국과 마도 제국은 이제 더 많은 물과 식량을 얻기 위해 전쟁을 하는 중이다.
그 전쟁에서 악녀이자 드리블랴네의 소가주였던 아리아드네가 사망하게 되는데, 악녀는 그 전에 이미 아버지가 각기 다른 아들을 세 명이나 남겨놓았다.
‘이 아들들이 중요한 이유? 그건…… 이 소설이 그냥 막장이 아니기 때문이지.’
그러던 어느 날 놀랍게도 이유 없이 봄이 돌아오고 전쟁은 멈춘다.
이후로도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성녀’라는 존재가 필요해진 교단은 라흰을 봉인에서 풀어준다.
하지만 봉인에서 풀려난 라흰은 곧바로 세 번째 소원을 비는데……!
‘이게 환장 포인트였지.’
바로, 드리블랴네 가문에 원래 존재했던 것처럼 스며들게 해달라는 소원을 빌었던 것이다.
봉인되어 있었던지라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했고, 생김새도 그대로인 라흰은 그새 미중년이 된 19대 가주 키락서스와 재회한다. 그리고 장성한 아리아드네의 아들들. 즉, 세 명의 드리블랴네의 후계자들 사이에서 위험한 집착 로맨스를 다시금 겪게 된다.
헌데 문제는 이미 드리블랴네에는 전통에 따라 내정된 20대 안주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바로, 20대 가주가 될 후계자들 중 하나를 선택하여 결혼하게 된 인물이지.’
하지만 그 안주인은 라흰이 나타난 이후 완전히 존재감이 지워지다시피 하다가 홀로 불행하고 쓸쓸하게 죽는다.
결국 라흰을 사랑하게 된 드리블랴네의 후계자들끼리 치정 싸움이 나고, 드리블랴네는 폭삭 망한다. 서로 죽이려 들다가 꼴좋게 멸문한 것이다.
그 모든 걸 한심하게 지켜보던 키락서스는 마탑에 들어가 영원히 나오지 않았고…….
라흰은 끝끝내 원하던 사랑을 얻지 못한다. 라흰을 사랑하는 이들도 라흰을 독점하지 못하는 숨 막히는 피폐물!
소설 캐릭터들 중 누구도 행복하지 않지만 읽는 독자들은 행복했던 멸망 막장 소설!
……에서 악당 가문 굴뚝 청소부로 살아남는 방법을 구하시오(10점)
* * *
“하아.”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이틀째 아무것도 못 먹고 여기 갇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지만, 나는 하녀들 사이에서도 처우가 좋지 못했다.
일부 하녀들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나를 가두고 괴롭히는 것으로 풀었다. 그 이유는, 내가 그냥 털빛이 흰 동물이 아니라…… 알비노이기 때문이다.
‘이제 내 것이 된 기억이라 그런지 괜히 울컥해.’
굴뚝 청소는 동물화를 한 뒤에 재가 켜켜이 쌓여 있는 길쭉한 굴뚝으로 들어가 청소하는 가장 지저분하고 힘든 일이었다.
알비노는 이 세계에서 별종 취급을 받기에 굴뚝 청소부란 직업은 내게 딱 어울리는 것이었다. 힘들고, 숨 막히고, 고통스럽고…….
근데 그게 끝이 아니다?
‘이런 쓸데없고 과도한 정보, 필요하지 않았는데요…….’
사실…… 이 인물은…… 그러니까…….
첩자였다.
‘미친. 가지가지 해라.’
나는 빙의를 한 뒤, 기억 전이를 받으며 알게 된 정보를 애써 부정하려 노력했다.
신성 제국과 마도 제국은 수없이 전쟁을 반복하다 이제는 어린애까지 첩자로 보내기 시작했는데…… 응. 그게 바로 나란다. 응애.
굴뚝 청소를 한다는 핑계로 여기저기를 쏘다니면서 정보를 주워오는 역할이라는데 어떻게 생각해도 장수할 것 같지는 않았다.
‘……아, 그냥 빨리 죽고 다시 시작할까?’
내 처참한 미래를 그려보며 이틀 밤을 꼴딱 새운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아냐. 역시 흰 담비에 뼈를 묻자.’
더 좋은 빙의가 올 거라 믿고 기다리며 몇 회차를 거듭하다간 쇠똥구리가 될지도 몰라.
흰 담비는 최소한 깜찍하기라도 하잖아.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그리고 어쩌면…… 나한테도 잃어버린 딸을 찾고 있는 아빠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름 수인이니까?
불쌍한 처지에 놓인 어린이 수인에게 행복할 기회가 한 번은 주어지지 않을까?
어디서 내 희망을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나는 시무룩하게 담비 수염을 늘어트렸다.
‘됐어. 생각은 그만하고, 여기서 나갈 길이나 찾자.’
몇 살인지도 모르는 어린애가 된 지 48시간쯤 지나자 몸 주인의 성격과 ‘나’의 자아가 융합되어 이제 나는 똑똑한 어린이 정도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막 조금 서러울 것도 많이 서럽고 덜 억울할 것도 크게 억울하고 그래.
“크흥, 따, 따려두세오……(사, 살려주세요).”
난 추위에 부르르 떨며 내 하얀 꼬리를 꼭 끌어안았다.
“담비 따료……(담비 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