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2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20화(20/173)
황급히 이런 내용의 로판을 읽은 적이 있었나 하고 떠올려 봤지만 최소한 내가 본 것 중엔 없었다.
즉, 이 말도 안 되는 우연에 대해 참고할 만한 게 없다는 거다.
“아가? 왜 그러니?”
내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꼼짝도 하지 않자 걱정스러운 음성이 들려왔다. 괜찮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찰나, 꼬리가 찌릿찌릿했다.
‘뭐지? 아, 또 기억이 몰려와.’
어두워진 침실 안.
누가 봐도 비밀 모의를 하는 듯한 아리아드네와 키락서스가 보였다.
“나중에 어머니가 영상석을 보시면 깜짝 놀라시겠지? 우리 딸이 웬일이냐고 하시면서.”
“그럴 겁니다, 누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다이스도 일단 여기 넣어둬야겠어.”
“하지만…… 이건 누님께서 가져가는 게 나을 텐데요. 회복 불가한 상처를 입었을 때 다이스가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됐어, 뤼샨. 검증이 끝나지 않은 물건은 함부로 사용하는 게 아니란다. 다이스가 상성만 잘 맞으면 이큘리스를 열 배까지 증폭시켜 준다지만, 그게 목숨을 대가로 하는 것일지 어찌 알고?”
“……그런 예는 없었잖습니까.”
“게다가 우리가 그토록 오랫동안 다이스를 쫓았지만 발견한 건 두 개뿐이야. 라흰이 준 것까지 합하면 세 개가 고작이지. 신성 제국 놈들도 이걸 쫓고 있는데 전쟁터에서 빼앗기게 되면?”
아리아드네가 손을 뻗었다.
거기엔 날카롭게 깎인 보석 주사위가 놓여 있었는데, 어둠 속에서도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게 흔한 광물은 아닌 게 확실했다.
입매에 힘을 주던 키락서스는 아리아드네가 다시 한번 다정히 ‘뤼샨’이라고 부르자 하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숨기시겠습니까?”
“어머니가 발견하실 수 있어야 하면서 동시에 절대 버리지 않을 만한 가구여야 하지. 아버지가 결혼 선물로 제작한 이 화장대가 제일 적합해.”
“여기 비밀 금고가 있었습니까?”
“응. 내가 만들었거든. 어머니 몰래.”
“……누님. 이따금 덜 당당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건 우리 둘의 비밀이다? 나중에 어머니가 직접 찾아내실 때까지 보여드리지 않기로 약속해.”
“누님이 원하신다면. 약속하겠습니다.”
“누구 동생인지 착하기도 하지.”
아리아드네가 악동처럼 씩 웃으며 순금 표범을 쥐었다.
뚜둑. 꽤나 그로테스크한 모양새로 표범의 목을 돌리자 화장대의 아랫면이 열린 듯했다. 그리고 아리아드네는 거기에 편지와 영상석을…….
“허억!”
“작은 마님! 괜찮으십니까!”
헛숨을 들이켜며 벌떡 상체를 일으키자 눈앞에 유모의 얼굴이 보였다.
“방금 의식을 잃으셨어요! 세상에! 몸이 안 좋으셨나요? 어쩜 좋아. 당장 의무실로 모실게요!”
“아니, 아니, 잠깐만.”
온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풍성한 꼬리 역시 끝이 여전히 찌르르거렸다.
하지만 나는 비틀거리면서도 끝내 몸을 바로 세웠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
잠시 심호흡을 하던 나는 조그만 심장이 쿵쿵쿵 빠르게 뛰는 것을 알아차렸다.
침대 위에 계시던 이난나 님 역시 거의 몸을 반쯤 일으키고 계셨다. 내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크게 놀라신 게 틀림없었다.
‘전해드리고 싶은데…….’
아리아드네 님이 숨겨놓은 영상석.
그런데 어떻게 알았느냐고 하면 뭐라고 설명하지?
잠깐 고민하던 나는 결국 끔찍한 연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와, 와아……. 조기가 왜 반짝 하까?”
“네? 반짝이요?”
“방금 기절했을 때 목격해써. 뭔가…… 반짝반짝했어. 꼭 모가 숨겨져 있는 것처럼!”
어쩌면 이 카드를 좀 더 영악하게 사용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영상석을 주겠다며 협상을 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나는 그런 인간 이하의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요기 보세요. 표범 목이 반쨔반쨔해요!”
내가 나무였을 때 들었던 그 울음이 아직도 귓가에 선명했다. 딸을 찾으며 울부짖던 목소리가 들러붙어서 떨어지질 않아.
그래서 난 최대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인 척하며 순금 표범 장식을 가리켰다.
“응? 작은 마님, 무슨 말씀이세요? 어디가 반짝반짝하세요?”
“아이, 참. 요고 말이야. 요렇게 또독 돌리면은 댈 거 가튼데!”
유모는 의아해하면서도 일단 내가 시키는 대로 했다. 밤톨 손을 쥐었다가 폈다가를 반복하던 나는 내 키에서만 잘 보이는 화장대 아랫면이 스르르, 열리는 걸 발견했다.
투두둑!
그와 동시에 비밀 공간에 감춰져 있던 것들이 카펫 위로 쏟아졌다. 그건 마치 자루에서 선물이 와르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저, 저게 다 무엇인가요? 마님!”
“……!”
일단 영상석부터 끌어안은 다음 난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기억 속에서 아리아드네가 말한 ‘다이스’라는 게 있으면 슬쩍 해볼 심산이었다. 그게 이큘리스를 증폭시켜 준다고 하니까.
‘응? 없네?’
하지만 아무리 돌아봐도 주사위 모양의 보석은 없었다. 혹시나 싶어서 목을 쭉 빼서 비밀 공간 안쪽을 살펴도 마찬가지였다.
‘쳇.’
혹시 그걸 갖고 있으면 인간화를 할 수 있을까 싶었더니.
속으로 혀를 찬 나는 영상석이나 껴안고 도도도 달렸다.
뒷발에 힘을 주고 톡- 토독- 뛰어오른 난 굳은 얼굴의 이난나 님 앞에 멈춰 섰다.
“이난나 님, 요게 제일 이뻐요. 요거는 보석이애오?”
“……에반젤린. 저, 저 화장대에 비밀 공간이 있었나? 그건, 나조차 몰랐음인데.”
공작 부인의 페로몬이 충격을 띠었다.
그럴 줄 알았기에 나는 일단 헤헤 웃으며 영상석을 슥 내밀었다.
그게 영상석임을 한 박자 늦게 알아챈 이난나의 손가락이 가늘게 떨렸다.
혹시, 설마.
이런 귀여운 장난을 치는 건 딸이 자주 하던 것이다.
하지만 정말로?
– 아, 엄마! 드디어 이걸 발견했네!
그러나 다음 순간.
이난나는 가슴을 움켜쥐며 쓰러지고 말았다. 영상석에 이큘리스를 주입하자마자 그리운, 죽도록 그리운 얼굴이 허공에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 * *
– 엄마, 아빠라고 부르는 건 처음인 것 같아. 이벤트 어땠어요? 깜짝 놀랐지요?
밝고 건강한 목소리가 침실 안을 메웠다. 벌써 백 번도 넘게 돌려보고 또 돌려본 영상이었다.
– 사랑해요. 이 말을 많이 못 한 것 같아서. 음, 근데 어색할 줄 알았지만 어색하네.
검고 구불거리는 머리칼을 지닌 미인은 전체적으로 냉랭한 인상에 날렵한 체격을 지녔다.
완벽하게 다져진 근육과 어릴 때부터 혹독한 훈련으로 이뤄진 바른 자세. 우월감과 실력에서 기인한 오만함 따위가 어우러져 귀족다움을 일궈낸다.
영상 속의 여인은 내가 지금까지 본 그 누구보다도 아름다웠으며 귀족다웠다. 다만 그녀에게서는 기사 특유의 털털함과 다정함도 느껴졌다.
– 오래 사세요. 기왕이면 제 아들들이 다 커서 또 손주를 낳을 때까지요.
시원스럽게 말하던 아리아드네는 웃음을 터트리곤 멋쩍게 뺨을 긁었다.
– 지금이 아니면 말하지 않을 테니 다시 한번…… 사랑해요, 엄마. 사랑해요, 아빠.
치직. 영상은 거기서 끝이었다.
여기저기서 그제야 숨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도 대략 백 번째 반복된 일이었다.
“이런 걸…… 이런 걸 숨기고 갔다니. 고얀 녀석 같으니라고…… 말은 해줘야 알 것 아니냐.”
내가 아리아드네 님의 영상석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주 할아버님은 회의마저 내팽개치고 달려왔다. 그 뒤에는 생전의 소가주를 충심으로 모시던 가신들도 물론 함께였다.
“불효막심한 녀석. 다 늙은 부모를 두고 젊은 네가 그리 먼저 가는 게 어디 있다더냐. 매번 살아 돌아왔으면서 마지막엔 왜 돌아오지를 못했어. 이 녀석아…… 이 녀석아.”
눈시울이 붉어진 가주의 탄식에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돌리며 눈물을 닦았다.
“이걸, 그래. 누가 발견했다고?”
“새 아가가 발견했어.”
“새 아가가…… 어찌 알았는고? 이런 장치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다행히 나를 추궁하거나 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난나 님도 가주 할아버님도 모두 목이 쉰 채 내게 다정히 질문하셨다. 그래도 진실을 말할 수는 없었으므로 나는 그냥 아이답게 대답했다.
“반쨔반쨔 했어요. 왠지 제 눈에 그렇게 보여서…….”
“마법이 보였던 건가? 어쩌면 네게 마법 재능이 있는 걸지도 모르겠구나.”
“잘 모루게써요…….”
일단 잡아떼자. 양심이 조금 찔렸지만 나쁜 거짓말은 아니니까.
“그래, 무엇이 중요하겠느냐. 네가 우리에게…… 딸의 생전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게 해주었는데. 우리에게 살라고 말해주는 딸아이를 보여주었어.”
그렇게 가주 할아버지의 목소리 끝이 젖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