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2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21화(21/173)
가주, 임마누엘은 지금 상황이 실로 믿기지 않았다.
하긴, 딸이 전사했다는 소식 이후로 언제는 세상이 돌아간다는 게 믿어졌던가. 그와 이난나에게 있어 아리아드네는 그냥 자식이 아니었다.
그 아이 하나를 얻기 전에 계류 유산이 두 번, 아이의 형체가 빚어졌음에도 살지 못한 적이 한 번. 이난나의 몸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상태에서 찾아온 극히 귀한 생명이었다.
이제 그만 아이는 포기하자고, 우리에겐 그런 복이 없는 거라고. 그렇게 몇 번이고 되뇌면서도 포기가 안 되어서 가슴에 멍이 들던 하루하루였는데……. 그때 찾아온 아리아드네는 기적보다 더한 기적이었다.
그리고 키락서스까지 얻게 되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지.
그런 딸을 잃은 뒤, 이난나가 그대로 허물어져 버린 건 당연한 일이었다.
‘죽겠노라고, 자신을 내버려 두라고 말했던 이난나다.’
임마누엘은 물기 어린 눈으로 아내를 보았다. 온 세월을 다해 깊이 사랑한 아내는 지금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숨죽여 울고 있었다.
그래, 운다. 비로소 섧게 울고 있다.
어느 순간부터 우는 것조차 하지 않게 된 이난나는 모든 감정을 소멸시키기라도 한 듯 그렇게 말라갔었는데…….
임마누엘은 흰 담비의 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었다.
‘참으로 감사하구나. 참으로…….’
어쩌면 이난나는 저 영상을 보기 위해 내일을 살려 할지 모른다. 어쩌면 음식을 다시 먹고, 어쩌면 일어서서 그토록 좋아하던 정원으로 나올지 모른다.
그 희망이 임마누엘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이리 귀한 것을 우리에게 찾아 주었으니 상을 줘야겠지. 원하는 게 있느냐?”
그리하여 그의 목소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비단결처럼 부드러웠다.
철의 가주, 악마들의 아버지, 지옥의 파수꾼. 그런 모습의 임마누엘을 아는 사람들이 들었다면 기겁을 하며 제 귀를 막고 ‘사탄아 물럿거라!’를 외칠 만한 장면이었다.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 조금 더 생각해 바두 대요?”
“그래, 신중한 건 좋은 일이지. 이번 건에 대해선 충분한 상을 줄 생각이니 오랫동안 생각해 보거라.”
“네!”
조그마한 흰 담비가 히 웃었다.
그 모습이 참 영특하고 귀여워 보여, 임마누엘은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아, 이 아이가 인간화를 한 모습을 어서 보고 싶다고. 그리하여 이 품으로 꽉 끌어안아 주고 싶다고 말이다.
* * *
그날 밤.
가주 할아버님과 이난나 님 사이에서 저녁을 먹은 다음 산책까지 하고 돌아온 나는 인형의 산을 목격하고 입을 떡 벌렸다.
곰, 토끼, 강아지, 거북이, 코끼리……. 수많은 인형이 나를 반기듯 놓여 있어!
“이거 모야? 이거 모야?”
“가주님께서 한 시간쯤 전에 보내신 선물이에요.”
“우와!”
담비인 내 몸은 작으니까 인형이 하나만 있어도 폭 안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누가 안아준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잘은 모르지만 무척 좋으리라.
나는 인형 중에서도 커다란 이빨이 달린 검치호를 골라 옆자리를 팡팡 쳤다.
“키티 닮아쪄.”
“키락서스 님과 이 인형이 닮았나요? 어머, 이 이야길 해드리면 좋아하시겠어요.”
린다가 배시시 웃으며 내 옆에 새카만 털을 지닌 검치호 인형을 놓아주었다.
이미 양치도 다 끝냈고 배도 통통하니 불렀기에 잠이 들 시간. 하지만 흥분 때문인지 눈꺼풀이 쉬이 감기질 않았다. 오늘 있었던 일은 충격 그 자체였으니까.
‘아, 그렇구나.’
말똥말똥하니 천장을 보고 있던 난 문득 뭔가를 깨달았다.
‘난 지금 부러운 거구나.’
왜 이렇게 잠이 안 오나 했네.
내 가슴을 채우고 있는 이 기묘하고도 아픈 감정이 뭔지 정의를 내릴 수 없었는데 혼자 조용히 누워 있으니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나한텐 저렇게 울어줄 엄마가 없어.’
현실의 친척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아마 내 죽음에 전혀 슬퍼하지 않았을 거다.
빙의 트럭에 치였다며 박수를 쳤지만 사실은…… 사실은 가슴 깊숙한 곳에 눌린 진실은 아니었나 봐. 거기에 아무것도 없다는 게 어쩌면 난 싫었는지도.
‘……에이, 아냐. 지금 상황만 해도 내겐 충분히 감사한 일이지. 뭘 더 바라.’
그렇지만 키락서스가 내 양어머니가 되실 분을 찾아준댔는데.
부스럭.
이불 속에서 몸을 이리 뉘고 저리 뉘던 난 괜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정말 내 어머니가 되어주실까?’
상처받지 않는 가장 쉬운 방법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아주 어린 나이일 때부터 깨달았었다. 근데 다시 어린애가 됐다고 괜한 기대감이 들다니.
괜히 코가 매워져서 이불을 끌어당겨 올린 나는 킁 하고 소리를 내곤 눈을 감으려 했다. 눈물 때문에 털이 축축해져서 조금 싫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저게 뭐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잔잔한 빛이 일었다. 그러더니 뽀드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유리의 벽면을 손끝으로 문지르고 있는 것처럼.
[나 없는 데서 울지, 또.]명확한 의미를 담은 메시지가 오던 잠도 멀리 내쫓아 버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상체만 일으킨 게 아니라 진짜 두 발로 침대를 딛고 섰다.
‘엄마야! 이게 뭐야?!’
귀신? 유령? 미래의 나?
뭐가 됐든 가슴이 쿵쿵쿵쿵 뛰었다. 거기다 뒤이어 나타난 물기 젖은 글씨 하나는 내 심장을 더욱 요동치게 만들었다.
[내가 아닌 이유로 울지 마요. 달래주지도 못하는데.]제 2장. 남자주인공 1번을 갈아치우자!
“……따라서 알비노가 인간화를 자연스럽게 해낸 방법 중엔 극심한 생명의 위협도 있다는 결론입니다.”
“……모?”
여전히 춥지만 햇볕이 쨍해서 다른 날보단 기온이 높은 오늘이었다.
멍하니 수업을 듣고 있던 난 라피렌의 충격 발언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장로들이 작은 마님을 어느 날 갑자기 표범 우리에 집어넣는 방법을 고려해 보는 것도 제안했으나…….”
“했으나……?”
“마님이 아니라 아가씨면 그리하였겠지만 어느 집 귀한 딸인지 모르는데 그래선 안 된다고 가주님께서 기각하셨습니다.”
“가, 가주밈 만세……! 만만세!”
표범 우리에 던진다니, 너무하잖아!
육아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만약 내가 후계자들 중 하나였으면 기필코 극단적인 방법을 썼을 거란 소리니까.
바르르 떨던 나는 라피렌의 다음 말에 가출하던 정신을 간신히 붙잡아 왔다.
“단, 이큘리스를 느끼는 방법을 배우시는 게 좋겠습니다. 큰 마님의 말씀도 있으셨기에 해당 수업 시간을 따로 빼서 시간표를 짜두겠습니다.”
“네에.”
나는 다소 힘없이 대답하곤 멍하니 창문을 보았다.
시린 겨울 하늘은 회백색 구름에 둘러싸이기까지 해 볼 것도 없었으니 풍경을 눈에 담은 건 아니었다. 난 말 그대로 창문을 보고 있었다.
‘그 글씨는 그 날 이후론 나타나지 않고 있어.’
대체 뭐였던 걸까? 나한테 직접 말을 거는 것처럼 보였는데.
‘게다가 또라니? 내가 우는 걸 어디서 보기라도 한 것처럼?’
엄청 수상쩍은데 그렇다고 추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혹시 유령이 글씨를 써서 소통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냐고 물었다간 당장 정신 건강을 의심받을 것 같았다.
‘헛것을 본 건 절대 아닌데.’
유리 같은 곳에다 입김을 호 분 다음 거기다 쓴 글씨 같은 느낌이었다.
무시하려 해도 너무 신경 쓰여서 미칠 것 같아! 날 알아? 아냐고!
“이큘리스는 그 자체로 검에 입혀 검기로 발현할 수도 있습니다. 혹은 덩어리지게 하면 마나가 되고, 이큘리스를 통해 정령과 소통하면 정령술이 됩니다.”
라피렌은 내 앞에 세 장의 카드를 내밀었다. 차례대로 검, 지팡이, 날개 달린 작은 요정이 그려져 있는 카드였다.
“이 중 한 가지를 골라서 발전시켜야 하는데…… 작은 마님께서는 어떤 게 가장 끌리십니까?”
라피렌 덕분에 다시 현실로 끌려 내려온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흑마법!”
“……하필 흑마법입니까?”
“쩨일 멋져.”
그것도 적성에 맞아야 잘할 수 있게 되는 거겠지만…… 고르자면 흑마법이다. 차선은 마법이고.
위대한 마탑주인 키락서스에게 1:1 과외를 받을 수 있는 입장인데 뭘 망설이겠어?
“큭.”
그때였다. 나도 웃지 않았고 라피렌도 입매를 딱딱하게 굳히고 있는데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그 유령?!’
홱 고개를 든 나는 어디에 또 글씨가 나타나지 않는지 열심히 살폈다. 하지만 어디에도 내가 찾는 건 나오지 않았다.
“그럼……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지요.”
“네에!”
“그리고 폼폼이라 했습니까? 이 골렘, 제가 잠시 빌려도 되겠습니까.”
라피렌이 갑작스러운 요청을 했다. 나야 수업이 끝난 게 마냥 좋았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뭣보다 마음이 급했다.
‘혹시 내 침실에, 침대 위에만 글씨가 나오는 걸지도 몰라!’
얼른 가서 확인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