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2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23화(23/173)
“쳇. 그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저 난리야? 그깟 게 감히 왕자인 나를 무시했어!”
저택의 본관에서 우측으로 쭉 들어가면 작은 오솔길 너머 후계자 관이 자리한다.
대부분 여덟 살까지는 부모와 살다가 아홉에서 열 살 사이에 들어오곤 하는데 간단한 테스트를 거쳐 검술에 특별히 두각을 보인다면 사관 학교로 연계되기도 했다.
게르드의 경우엔 또래에 비해 검술이 괜찮은 편이긴 하나 그래 봐야 기사가 될 것도 아니니 사관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가 원하는 건 오직 하나. 이 가문뿐.
그래서 본국에 계신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다.
“건방진 것들.”
으드득. 게르드는 이를 갈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가주의 눈에 들려는 계획은 차근차근 잘 준비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건지도 모를 천것이 그의 이미지를 다 망쳤다. 이후로는 다른 후계자 놈들도 은근슬쩍 그를 비웃기 시작했다.
“나는 왕자란 말이다! 나보다 신분이 높은 자는 없어! 그런데 감히!”
길길이 날뛰는 그의 앞엔 리첸비움의 전통복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소년 왕자를 내려다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그러면…… 그 계획을 시행하시겠습니까.”
“그래. 그럴 테다. 은밀히 준비했겠지.”
“아무렴요. 왕자님이 꾸민 일이라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을 겁니다.”
남자는 리첸비움 왕비가 남몰래 보낸 수하였다. 아들이 수모를 겪었다는 편지를 쓰자 곧바로 조치를 취해준 것이다.
신성 제국과의 오랜 싸움으로 인해 리첸비움 역시 긴 세월 동안 여러 무기의 부품 등을 제조해야 했다. 남자는 그런 쪽으로 특수하게 배운 자였다.
‘폭탄을 터트릴 것이다. 연회는 무슨. 이건 다 그런 알비노가 이 가문에 들어온 탓에 생긴 일이라고 몰아가야지.’
게르드는 본국에서 따로따로 숨겨 온 재료들을 이곳에서 남몰래 합쳐 폭탄을 만들게 했다.
“이 보기 싫은 후계자 관을 무너트리면 왕자님 역시 피해자가 될 뻔한 것이니, 용의 선상에서 벗어납니다.”
“그래.”
“하지만 이건 시한폭탄이니 꼭 먼저 빠져나가셔야 합니다. 연회가 있는 오늘 같은 날도 연무장에 가셨다고 하는 게 좋겠군요. 수많은 이들이 왕자님을 보아야 합니다.”
“걱정 말래도. 시간에 맞춰서 터지게끔 잘 해두기나 해.”
게르드는 거드름을 피우며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럼 난 이제 나가볼 테니 시간에 맞춰 터트려.”
“예, 왕자님.”
“리첸비움을 위하여.”
“리첸비움을 위하여.”
다행히 그 무서운 소가주님이 자리를 비웠으니 조심만 하면 들킬 일은 없다. 애초에 가주는 후계자 관에 신경도 안 쓰고 있으니까.
‘나를 이렇게 대우한 걸 후회하게 해주겠어.’
게르드의 발걸음이 의기양양했다.
* * *
“으아아, 너어무 귀여우세요!”
“이 해바라기 케이프도 한 번만 써주세요! 다음엔 이 데이지 케이프도!”
“꺄아, 나 죽네!”
그 시각, 내 환영 연회를 준비하며 나는 몹시 분주했다. 니나와 린다는 내 목에 이걸 끼웠다가 저걸 끼웠다가를 반복하며 즐거워했는데 그게 벌써 100개째였다.
“역시 해바라기가 낫죠?”
“리본이 더…….”
“고르기 어렵네요. 리본이라면 빨간 리본도 있고, 분홍색 땡땡이 리본도 있는데!”
“아뇨, 역시 장미로 하죠!”
결국 린다는 참지 못하고 내게 고깔모자도 씌우고 목에 리본도 매고, 망토도 두르게 했다.
거추장스러워서 바르르 떨었지만 그래도 난 의젓하게 참아줬다. 린다가 기쁘다면야.
“진짜 세상에서 제일 귀엽고 깜찍하세요……. 엉엉.”
내 꼬리에도 리본을 감은 린다가 더 미칠 것 같다는 듯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러다간 연회 시작 전까지도 끝이 안 날 것 같은데…….
“연회의 주인공이시니 고깔모자는 꼭 씌워드리고 거기에 맞추렴.”
결국 유모가 와서 정리를 해주고서야 해결이 났다. 반짝반짝한 금빛 고깔모자에 목 뒤쪽으로 나비처럼 빨간 리본을 묶는 걸로!
거기까지 하고 나자 나는 우유에 담근 쿠키처럼 흐물흐물해져 버렸다.
“머리가 핑핑 도라…….”
“잠시 존 경과 산책을 하시겠어요?”
“우응, 그럴래.”
난 여기저기 널려 있는 케이프와 리본을 질린 눈으로 보곤 호다닥 존을 향해 달려갔다.
흐뭇한 얼굴로 나를 지켜보고 있던 존은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었다.
“작은 마님이 제 어깨에 기대고 계시면 엄청 따뜻한 거 아십니까?”
“그래?”
“예. 눈빛 공격들도 따뜻하고요.”
그건 아닌 거 같아, 존…….
존은 나를 어깨에 얹고 위풍당당하게 나섰다. 그러자 복도 곳곳에 위치한 호위병들이 하나같이 부러움 담긴 시선을 보내왔다.
사실 호위병들이야 아랫사람이니 그 정도에 그친다지만, 같은 급의 기사들은 달랐다.
“출세했다, 엉?”
“작은 마님. 요 둔한 놈이 뭔가 잘못을 저지른 건 없는지요? 그럼 이놈을 치우고 제가!”
“아닙니다, 제가!”
“저한테 호위를 맡겨주십시오!”
한 무리의 기사들이 연무장으로 향하다가 우리를 보곤 멈춰 섰다.
몇몇은 존의 옆구리를 쿡쿡 찔러댔고 또 몇몇은 내게 와서 목도리를 여며준다든지, 조그만 털모자를 다시 씌워준다든지 하며 부산을 떨었다.
“작은 마님, 코가 빨개지셨습니다!”
“멍청아, 담비는 원래 코가 빨개!”
“어, 그런가?”
“나무 열매 같고 귀엽단 뜻입니다. 와하하!”
조금 정신없긴 했지만 흑륜 기사단의 일원들은 모두 친절했기에 좋았다.
실컷 예쁨을 받은 뒤, 존의 어깨에 철퍼덕 늘어진 나는 ‘흐어어’하고 아저씨 같은 소리를 냈다.
“있자나, 존.”
“예, 작은 마님.”
“내가 그러케 귀여워?”
주관적으로 귀엽긴 하지.
‘근데 객관적으로도 그런가?’
나는 내 뺨을 내가 한 번 주욱 늘려보았다. 사실 어린 털 짐승이 사랑스럽지 않을 수야 없긴 한데…….
“나는 인간화 몬하는데. 그래두 나를 진심으로 귀여워하는 게 신기해. 모자란 애 취급 안 하구.”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귀엽지요.”
“지쨔? 내가 인간화 몬해두?”
“그럼요. 동물 모습이신 게 많이 신경 쓰이시는 모양입니다만…….”
“으응.”
“수인이 동물 모습의 아기를 귀여워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저희도 지금 당장 인간 모습을 버리면 동물화하지 않습니까.”
아, 그러니까 존 말은-
수인이 동물 귀여워하는 게 인간이 인간 아기 귀여워하는 거랑 똑같다는 소리구나!
‘그, 그러네?’
생각해 보니까…… 그렇잖아?
“게다가 원래 아기들은 인간화를 잘 못 하니까 동물 모습으로 더 자주 있지 않습니까. 어릴 때 인간화를 완벽하게 제어해낼 수 있는 건…… 사실 이 드리블랴네의 괴물들뿐이지요.”
존이 목소리를 낮추더니 수군거렸다.
“인간화, 다른 집 아기들은 잘 모태? 나처럼?”
“예. 보통은요. 태어날 때부터 우성 알파로 태어나기도 하는…… 그런 괴물이 득시글거리는 가문은 잘 없습니다.”
“고마오, 존. 안심대써.”
내가 좀 늦된 건 맞지만 그래도 아주 이상한 건 아니구나.
하긴, 난 아직 어린걸. 몇 살인지도 몰라.
‘그래서 다들 내게 더 친절한 걸지도 모르겠어. 어쩌면 내가 진짜 많이 아기일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괜히 기분이 좋아진 난 동글 귀를 쫑긋거렸다.
그렇게 산책을 마저 하고 있는데…… 어디서 퍽퍽 하는 시원스러운 타격음이 들려오는 건 겨울 바람이 만들어낸 착각인가?
“존?”
“가보시겠습니까?”
“무슨 일인지 아라?”
“음…… 예.”
별로 볼 것 없는 정원을 자박자박 걸어 지나치자 오솔길이 나왔다. 소리는 오솔길 왼편의 가시나무 숲에서 들려왔다. 지금도 여전히.
“으아아악!”
“괴물! 저건 괴, 괴물이야!”
그때였다. 어두운 숲 안쪽에서 코피가 터진 남자애들이 우르르 달려 나온 것은.
‘뭐, 뭐야?’
깜짝 놀란 난 그대로 얼어붙었다. 여기에 우리가 있을 줄 몰랐던지 얻어맞은 남자애들도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피했다.
“……도련님들. 또 싸우신 겁니까.”
“윽……!”
“작은 마님을 환영하는 연회가 저녁에 있다는 걸 모르진 않으실 텐데…… 어서 가서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어라, 존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엄청 차가워.
‘약간, 되게 한심해하는 투랄까.’
무슨 일인지 아는 것 같은데 난 굳이 묻기보단 직접 보는 편을 택했다.
“엇, 작은 마님!”
존의 어깨를 뽀르르 타고 내려간 나는 요령 좋게 가시나무 가지를 피해 안쪽으로 향했다.
호기심이 이끄는 대로 달려간 난 이내 얼어붙은 땅바닥에 뻗어 있는 다른 아이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혹시 그들 중 게르드가 있나 유심히 살펴봤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그렇게 피해자들을 확인한 다음, 난 시선을 올렸다.
“와.”
예쁘다.
무심코 터져 나온 감탄사였다. 어떤 계략도 재어보는 것도 없이 그냥 튀어나온 것.
우유처럼 뽀얀 피부와 긴 적갈색 속눈썹. 갸름한 얼굴형에 오밀조밀하게 박혀 있는 이목구비.
붉은 머리칼은 예쁘장한 얼굴과 너무나 잘 어울렸고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은 금색 눈동자는 마치 저 하늘의 달처럼 고고했다.
‘빈말이 아니라, 진짜 잘생기면서도 예쁘게 생겼어. 이런 걸 보고 잘생쁨이라고 하나?’
열두 살쯤 되어 보이는데 저 때 이미 완성된 미모면 크면 어떨지 상상도 안 됐다.
‘묘하게 이국적인 느낌도 들고.’
나는 생각했다.
죽사발 난 소년 하나에 무심히 걸터앉아 뺨에 튄 피를 닦고 있는 저 애가 괴물이라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괴물일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