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2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24화(24/173)
“이안 도련님.”
덤불을 밟지 않으려고 애쓰며 내게 다가온 존이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아까 우르르 도망가던 녀석들을 대할 때보다 훨씬 정중한 태도였다.
“또 괴롭힘이 있으셨습니까.”
“…….”
“어디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의무실에 가셔야 할 것 같은데…….”
“됐어.”
그러나 퍽 살갑게 구는 존과는 달리 붉은 머리 소년은 냉랭했다. 닦아도 번지기만 하는 피를 짜증스럽게 보던 이안은 내 쪽으론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일어섰다.
“알리지 마.”
“하지만, 도련님.”
이안은 걸음마다 서리가 내려앉을 것 같은 눈빛으로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런 그를 멍하니 보던 난 문득 이안의 엉덩이 골 위쪽으로 길게 뻗어져 나온…… 꼬리를 발견하고 입을 떡 벌렸다.
‘뭐야? 저거 뭐야?’
점박이 무늬 꼬리의 털 빛깔은 약간 붉은 기가 도는 금색이었다.
많이 피곤한지 어느새 사람 귀가 사라지고 표범의 귀가 솟아오른 이안은 자세히 볼 것도 없이 절뚝거리고 있었다.
인간화를 유지하기 힘들 정도로 자기도 다친 모양인데.
“의무실에 가쟈.”
종종 다가간 나는 뿌리쳐질 것을 각오하고 이안의 손을 쥐었다.
“덧나면 너만 고생해.”
집어 던져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이안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귀찮음을 드러내며 나를 슥 훑을 뿐.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곤 다시 한번 잔소리 아닌 잔소리를 했다.
“지짜야. 그리구 덧나면, 담엔 얻어맞을걸?”
“…….”
“의무실에 가기 시르면 내가 의사를 불러주께. 내가 아푸다고 거짓말해서. 응?”
이안 드리블랴네.
이빨이 크고 날카로운 검치호 족이면서 동시에 표범 수인인, 아리아드네 님의 첫아들.
이부동생들은 다 원작의 후반부에 남자주인공으로 등장하는데, 어째서인지 이안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안이 누구인지, 어떤 아이인지 궁금했다.
‘가계도에서 이름을 볼 때만 해도 이런 대우를 받고 있을 줄은 전혀 몰랐는데.’
무려 그 아리아드네 님의 아들인데! 왜 괴롭힘을 당하고 있냐고.
‘물론 일방적으로 당한 건 아니고…… 이안이 다 패버린 것 같지만.’
그래도 그 재수 없는 게르드 놈은 자기가 왕자라며 거들먹거리는데, 이안은 자기 어머니가 아리아드네 님이라는 걸 방패로 내세울 생각이 전혀 없는 듯했다.
“신경 꺼.”
잠시의 침묵이 흐른 뒤.
내가 울망울망한 눈으로 쳐다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안은 내게서 홱 몸을 돌렸다. 어느새 손도 빼낸 채였다.
‘손이 많이 차갑던데.’
나는 망연히 내 솜털 같은 앞발을 바라보다가 이안의 뒤를 졸졸 따라갔다.
“있지, 오늘 연회에 오꺼야?”
묵묵부답.
“칠면조를 굽는대! 마싯게찌!”
먹을 것으로도 회유 실패.
“약 잘 머그면 담비가 선물 주지롱!”
무시.
“아까 걔네들 말야, 내가 나중에 만나면은 꿍디라두 찰싹 해주까? 싸우지 마! 이로케.”
이번엔…… 한심하단 시선. 그래도 뭔가 반응이 있긴 했다.
이안은 천성이 착한 건지 아니면 귀찮아서인지 몰라도 여하튼 나를 내버려 둔 채 후계자 관으로 향했다.
그에 꽤 재미난 풍경이 펼쳐졌다. 이안이 선두. 세 발짝쯤 뒤에서 내가 졸졸 따라가고, 한 발짝 뒤엔 존 경이 있다.
우린 기차를 탄 것처럼 그렇게 차례대로 걸었는데 할 말이 다 떨어진 나는 눈을 굴리며 날씨 이야기마저 끌어왔다.
“와아, 날씨 조타……!”
“눈이 있으면 하늘을 봐. 흐린데.”
“…….”
보통 이 정도 무시당하면 갈 만도 하지만 나로서는 어떻게든 이안과 친해지고 싶었다.
이안, 예뻐!
저 정도면 거의 아이돌 비주얼 센터급 외모잖아.
“아이코!”
그런데 그때였다. 앞에서 이안이 갑자기 우뚝 멈춰 서는 바람에 난 단단한 종아리에 부딪쳐서 그대로 휘청거렸다.
“작은 마님!”
놀란 존이 얼른 두 손으로 받아줘서 다행이지, 엉덩방아 찧을 뻔했네.
코를 문지른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존의 어깨 위로 복귀했다.
“또 이런 야만적인 짓을 하셨습니까!”
그런데 뒤이어 들리는 섬찟한 호통에 난 눈을 댕그랗게 뜰 수밖엔 없었다.
“안주인의 선택을 받고 싶으시다면 항시 조신하게, 몸가짐은 단정히. 야만성은 버리라고 거듭 말씀드렸을 텐데요!”
뭐야, 누구야? 누군데 도련님한테 저리 소리를 질러?
“분명 싸우지 말라 하였는데도 또 싸우셨으니 오늘 저녁 연회에는 참석하지 마십시오. 벌입니다. 징벌방에서 반성문 백 장을 쓴 뒤, 회초리로 다섯 대를 맞는 벌을 내리겠습니다.”
뭐 이 새끼야?
난 두 눈을 부릅떴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어째서 무조건 혼부터 내는 거지? 무슨 일인지 들어보지도 않고?
‘게다가 누구 마음대로 연회를 가라, 마라야? 오늘 연회는 나를 위한 자리인데?’
내가 미래에 내 남편이 될지도 모를 후계자들을 만나보는 자리란 말이야. 근데 네가 왜 나서?
“저자는 후계자님들을 담당하는 예법 교사 위즐입니다.”
내 눈꼬리가 새초롬해지는 걸 알아차렸는지 존이 서둘러 설명을 해주었다.
난 팔짱을 끼곤 뒷발을 탁탁 굴렀다.
“아직 누가 먼저 때렷눈지 모를 텐데.”
점점 심기가 불편해진다.
예법 교사란 자는 무어라고 떠벌떠벌 외치고 있었고 이안은 말없이 담담히 서 있을 따름이었다. 변호도, 변명도, 핑계도 대지 않고 그냥 가만히.
그리고 난 그게 어디서 기인한 행동인지 잘 알았다.
‘기대가 없는 거야.’
누군가 자기를 도와줄 거라는 기대. 억울함을 알아줄 거란 기대. 이안에겐 믿을 곳 없는 사람 특유의 자포자기가 배어 있었다.
‘대체 왜???’
아리아드네 님의 첫아들이란 명패는 어디에다가 팔아먹고?
‘게다가 저 교사란 작자.’
“왜 나한테 인사 안 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해선 안 되긴 하는데 예법 교사란 자는 관상이 상당히 나빴다.
턱은 뾰족하고 매부리코에 눈은 찢어졌어. 눈썹은 옅고 광대는 툭 튀어 나왔고.
그는 나와 존을 한꺼번에 무시한 채 이안을 향해 무어라 지적을 해대고 있었다.
“아이고오, 이거 그리즐리 경 아니십니까!”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교사는 존을 향해 몸을 틀었다.
가볍게 손바닥을 비비던 교사는 염소 같은 제 수염을 매만지며 나를 흘긋 보았다.
“그리즐리 경이 여기 계신다는 건…… 이 조그만 분이 저희의 다음 마님이시군요?”
여러분은 예법 교사가 예법을 지키지 않는 광경을 보고 계십니다.
기가 탁 막힌 나는 무어라 지껄이나 보자 하는 표정으로 예법 교사를 훑었다.
“저는 위즐 모르멘타라 합니다.”
“근데?”
“……예?”
아, 화려한 말빨로 확 압살해 버릴 수 있는데 이 답답한 구강 구조 좀 누가 어떻게 해줘.
난 하는 수 없이 폼폼을 불러다가 탁탁 쳤다.
– 예법 교사라면서 누구에게 먼저 인사를 올려야 하는지도 모르나 보네.
당연히 내가 우선, 그다음이 존이다. 그걸 무시했다는 건 내게 우호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 이런 작자가 어째서 예법 교사로 있는 건지 모를 일이다.
“이안. 잘모탄 거 업서.”
– 이안은 여러 명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누가 어떻게 봐도 이안이 잘못한 상황이 아냐. 그런데 어째서 상황 파악도 없이 혼부터 내는 거지? 무슨 권리로?
폼폼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을 주의 깊게 듣는 듯하던 예법 교사, 위즐은 허허 웃으며 내게 다가왔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제가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부디 용서를.”
“구래.”
“그리고…… 작은 마님께선 잘 모르실 수도 있습니다만, 이안 도련님은 적국의 피가 반이나 섞여 있습니다. 아주 야만적이지요.”
“?”
“크흠, 돌아가신 아리아드네 님께서 전쟁에 나가셨다가 적국 사내의 아이를 가진 일은 유명합니다.”
얘 지금 뭐래니? 그게 뭐 어쨌다고?
마도 제국과 신성 제국이 사이가 나쁜 건 안다. 두 나라 간의 혼혈은 아마 좋은 대우를 받고 살진 못하겠지. 하지만 내가 기가 막힌 건 그 부분이 아니었다.
“엄마는 누군데?”
“예? 물론 아리아드네 님이시지요.”
“그로니꺄 지금 아리아드네 님 친아들을 때려서 가르쳐따고?”
“아니, 그러니까 이안 도련님의 절반은 적국의 기사인지 용병인지도 모릅…….”
“엄마가 누군지가 중요한 거 아냐?”
원작에서 이안이 알파가 되지 못한 건 어쩌면 이 남자 때문이 아닐까.
딱 봐도 간사하게 생긴 게, 게르드랑 짝짜꿍이 잘 맞을 것 같은데.
난 눈에 힘을 주며 이안을 쳐다보았다.
“너두 얘기해. 무슨 일이 있었눈지. 똑바로.”
“…….”
“네가 가만히 있는다구 모든 게 구냥 지나가진 아나.”
이건 사실이다.
‘나만 참으면 되겠지.’
‘나만 숙이면 평화로운데.’
‘나만 입 다물면 다들 문제없는데.’
이런 생각, 아주 잘못된 거야.
대부분의 문제는 가만히 있을수록 더 커지기만 한다. 초장에 쥐 잡듯이 잡는 게 낫지.
물론 문제가 발생하자마자 그것을 직면하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기댈 곳도 없고, 자존감도 낮은 사람이라면 많이 힘들 거야.
나는 그게 무슨 기분인지 너무나 잘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