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2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25화(25/173)
“이안, 외톨이 아냐.”
슥. 이안의 옆에 가서 선 나는 힘없이 아래로 떨어져 있는 손에 내 앞발을 슬그머니 밀어 넣었다.
그 손은 너무나 차가워서 내 조그만 털뭉치론 녹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그래도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니까.
“이안, 내 미래 남편 후보야.”
크흠.
난 헛기침을 하며 예법 교사의 시선을 내게 붙들어 두었다.
그런데 ‘남편’이라는 단어를 뱉자마자 이안 역시 내게 눈길을 보내왔다.
약간의 황당함과 한 줌의 무심함, 그리고 아주 미약한…… 정의 내릴 수 없는 감정의 실타래. 그 끝이 내게 보이는 듯했다.
‘아리아드네 님 아들이면 됐지, 아빠가 적국 용병이든 기사든 무슨 상관이래?’
게다가 이안은 제게 덤벼드는 놈들을 다 쓰러트릴 만큼 강했다. 난다 긴다 하는 후계자들 여럿과 싸워서 이겼으면, 싹수가 파릇파릇한 거 아냐?
“이안, 골칫덩이 아냐.”
난 다시 한번 야무지게 선언했다. 어이가 없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예법 교사에게 또박또박.
위즐인지 그냥 즐인지, 너 딱 두고 봐.
“연회 와. 나 만나러. 내가 초대하는 거야. 벌 바들 필요 업셔. 내가 가주님한테 말씀드리 꺼야.”
이렇게까지 말하자 자신이 나설 수 있는 게 없다 싶은지 위즐이 입을 불만스레 오므렸다.
나는 그런 위즐을 향해 단호하게 쐐기를 박았다.
“이안은 알파가 될 거야.”
마치 미래를 예언하기라도 하듯이.
그에 지금껏 내내 무감하던 소년의 동공에 금빛 파문이 일었다.
반면, 위즐은 자존심이 상했다. 공식적으로 후계자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 자리를 얻기 위해 그간 얼마나 고생했던가.
명예가 높아지면 돈은 따라온다.
그런 생각 하나만으로 뒷돈을 찔러 넣고 손바닥을 땀나게 비벼 쟁취한 자리다.
여러 후계자의 부모 중 하나가 그를 추천했고 위즐은 ‘태도 점수를 높게 평가해야만’ 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를 부임 첫날부터 간파했다.
처음엔 아리아드네 님의 친자인 이안은 주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이안이 만만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리 툭 치고 저리 굴려도 그저 가만히 있었으니까.
아리아드네 님께 귀한 피를 반은 받았다지만 그 절반은 평민이니 주제를 알아서 그러는 게 아니겠는가?
위즐은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기고만장해졌다.
어차피 완벽한 드리블랴네이신 아리아드네 님은 물론이고 가주님이든 누구든 ‘후계자 관’엔 일절 간섭하지 않으셨다. 드리블랴네는 새끼들을 절벽에 던진 뒤 기어 올라오는 것만을 키우기 때문이다.
후계자 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아이들끼리 어떤 다툼이 일어나든 집안 어른은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게 규칙.
이 작은 사회 안에서 살아남고 우위를 점하는 것조차 못하면 전쟁터든 정치권이든 외교를 하는 자리든…… 그 어디서도 쓸모가 없다는 판단인 것이다.
그러므로 평소에도 약자를 짓누르는 걸 즐겼던 위즐에게 이안은 딱 알맞은 장난감이었다. 결코 본관에 입성하지 못하고 절벽 아래에서 죽어버릴 존재였으니.
‘화는 나지만…… 존 그리즐리 경이 저 담비를 지키고 있군. 내가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냐.’
여기선 물러나야 한다.
그렇게 판단한 위즐이 히죽히죽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예에, 알파가 되면 좋겠군요. 그럼 물러가보겠습니다.”
그렇게 위즐이 수염을 쓸며 사라진 뒤.
나는 곧바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뭔가 생각에 잠긴 듯하던 이안은 이내 쉰 목소리로 내게 대꾸했다.
“도와줄 필요, 없었어.”
“알아.”
“내 편 들지도 마. 필요 없으니까.”
“응. 그치만 나, 예언한 거 맞아. 이안은 알파가 되 꺼야.”
나는 이안의 매정한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이안은 아마도 사춘기가 이르게 찾아온 듯하니까…… 그냥 그러려니 해줘야지.
대신 난 이안에게 내가 널 점찍었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존! 이안, 재능이찌?”
없어도 있다고 해.
내가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돌아보자 존이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하지만 대답을 할 때에 존은 진지한 얼굴이었다.
“예. 확실히 몸을 쓰는데 재능이 있으십니다. 이것은 빈말이 아닙니다.”
난 의기양양한 얼굴이 되어 이안에게 ‘거 봐. 내가 뭐랬어?’라는 눈빛을 보냈다.
이안은 존이 그렇게 선언하자 약간 흔들리는 듯 보였는데, 머뭇거리던 그는 다시금 차갑게 이를 악물었다.
“그럼 왜 나는, 사관 학교에 가지 못했어?”
이안은 그 말을 뱉어놓고 곧장 후회하는 기색이었다.
‘아, 사관 학교…… 정말 가고 싶었구나.’
지금 이안의 이부동생인 단테가 가 있다고 했던가?
그러니 이안으로서는 자신도 추천을 받아 사관 학교에 가고 싶단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신경 쓰지 마.”
괜히 말했다는 듯 이안은 다시금 단단한 껍질 속으로 파고들려 했다.
귀를 막고 무엇도 듣지 않고, 온몸에 외피를 둘러 무엇도 느끼지 않고. 그게 이안이 살아온 방식이리라.
아리아드네 님은 자주 집을 비웠을 테고, 돌아올 땐 언제나 새 동생을 품은 채. 어린 이안은 그렇게 점점 더 가장자리로 밀려났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난 이안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무지하기에 오히려 금세 거리를 좁힐 수 있을지도 모르지. 왜냐면 나는 이안을 괴롭혀 온 사람 목록에 포함되어 있지 않으니까!
“움…… 나랑 일단은…… 친구 하자!”
“친구?”
나지막한 중얼거림에 의아함이 깃든다. 태어나 처음으로 ‘친구’라는 단어를 들어봤다는 듯 생경한 표정이었다.
그게 무엇인지도 몰라 좋은 건지 나쁜 건지조차 알지 못하는 소년은 결국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게 싫어서가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알았다.
‘나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렇게 살아왔었으니까.’
난 헛기침을 하곤 이안을 향해 두 팔을 벌렸다.
“안아죠.”
“내가, 윽, 왜?”
“친구니까!”
이건 정말 예상하지 못했는지 얼음장 같던 이안의 표정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팔로 얼굴을 가리며 무려 뒷걸음질을 친 이안은 사람 무안하게시리 그대로 건물 안으로 도망치고 말았다. 친구라는 단어가 주는 보드랍고 몽글거리는 느낌을 도무지 견딜 수가 없다는 듯이.
“이짜나, 존. 저러면 내가 못 따라가?”
“그건 아닙니다. 후계자 관에 당연히 출입하실 수 있으십니다.”
“흐응. 구럼 구경이나 할래.”
지금 돌아가 봤자 할 게 없다.
내가 인간화나 할 수 있었으면 모르겠는데 몰랑몰랑한 분홍배에 실타래 같은 앞발 뒷발이나 있는걸.
꾸밀 것도 아까 다 골라뒀고 연회가 있는 날인지라 수업도 없으니 후계자 관을 구경하는 게 나을 듯했다.
“이 건물은 처음엔 목조 건물이었습니다. 지금은 여기저기 보수를 해서 돌로 된 기둥도 세웠지만 그래도 여전히 원래의 모습을 간직한 부분이 있습니다.”
존이 이런저런 설명을 해주는 동안 나는 냄새를 맡고 있었다.
어디서 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묘한 냄새가 나.
‘매캐한 계피 가루 같은 이 냄새. 분명 맡아본 적 있는데.’
옴씰옴씰. 열심히 코를 움직이던 난 기억 저편에서 라피렌과의 수업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화약!’
그래, 맞아. 이거 분명 화약 냄새인데? 근데 여기에 화약이 왜 있어?
‘사격 수업이라도 있나?’
그냥 흔히 생각하면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난 찝찝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꼭 비 오는 날에 쫄딱 젖은 다음에 닦을 게 없어서 습기찬 상태로 내 털을 자연적으로 말려야 하는 느낌이야.
“후계자 관의 앞뜰은 이따금 작은 파티를 여는 용도로도 쓰여서 부드러운 잔디로 되어 있습니다.”
“응.”
“여기는 실내 연무장으로 비가 오는 날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지요.”
“음…….”
이안…… 화약…… 괴롭힘…… 이안.
‘근데 원작에서 이안이 언제 언급되었더라…….’
생각에 잠기자 꼬리가 까딱까딱 움직였다.
나는 머릿속 페이지를 팔락팔락 넘기며 그 애의 이름을 찾아 헤맸다.
‘아, 근데 화약 냄새는 왜 이렇게 심해?’
꼭 누가 화약 가루를 바닥에 뿌려놓기라도 한 것처……럼?
“어?”
순간, 머릿속에 글자가 확 회오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