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2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28화(28/173)
“…….”
역시 죽었나?
다른 몸에 빙의한 걸까.
‘아무 소리도 안 들려.’
삐이이이이.
이명음이 귀를 괴롭혔다.
두 눈을 질끈 감은 나는 와들와들 떨었다. 쇠똥구리가 되었을 내 곤충 발을 보기 싫어서 실눈조차 뜨기 싫었다.
이번 생은 그냥 이렇게 죽을래.
‘그치만…… 그치만 이제 나도 있을 곳이 생겼었는데. 잘하면 사람이 될 수도 있는 거였는데.’
억울함에 눈물이 비죽 나왔다.
뭘 굴리든 굴려서 드리블랴네에 간 다음에, 이안이 멀쩡하게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그리고 죽어야 하나?
아니, 근데 그만 죽고 싶었는데…….
“이런. 옷부터 입혀야겠군.”
수없이 뻗어 나가던 내 망상은 곤혹스럽단 투의 한 마디에 와장창 깨졌다.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걸.”
키락서스?
지금 여기서 들릴 리 없는 아버님의 목소리에 난 발딱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아무것도 안 보였지만 이상하게 미남은 잘만 보였다.
“무서웠겠구나.”
다정한 목소리가 귀를 적셨다. 눈 밑에 피곤이 짙게 깔려 있는데 그 탓인지 평소보다 좀 더 뇌쇄적이었다.
그다음엔 키락서스가 손가락 하나로 막아내고 있는 무너진 잔해들이 눈에 들어왔다.
“헉……!”
검지 끝에서 생성된 반투명한 막이 나와 존, 이안을 보호해 주었다.
그래서 죽지 않은 거구나!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왈칵 솟았다.
“흐에엥! 왜 이제 왔어요!”
난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곧장 달려가 목을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비싸 보이는 검붉은 정장에 눈물이며 콧물을 잔뜩 묻혔다.
살아 있어! 나 살아 있다!
기쁨과 두려움, 공포와 환희가 한데 섞여 다리가 덜덜 떨렸다.
“눈물이며 콧물을 어디다 닦는 거냐, 미트볼.”
“미트볼 아니야! 맨날 고기 다짐 취급하더니 이런 때에도 그래요?!”
내가 콧물을 흡 들이마시며 항의하자 키락서스가 키득 웃으며 손수건을 꺼내 대주었다.
팽 하고 힘차게 풀고 나자 나를 안아주더니 어디서 난 건지 모를 꽃 한 무더기를 불쑥 내밀었다.
“네가 무서운 것을 예쁜 것으로 바꿔놨구나. 장하기도 하지.”
“……?”
“버티느라 고생했다.”
사람들이 달려와 존과 이안을 옮기려 했다.
키락서스의 얼굴에서 눈을 뗀 다음 두 사람을 바라본 나는 이상한 점을 깨달았다.
“꽃……?”
왜 꽃 무덤에 파묻혀 있어?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들 머리 위며 어깨에도 꽃송이가 가득했다. 그 무섭던 불길은 온데간데없고, 아름다운 화원이 펼쳐져 있었다.
무척 아름다운데 또 비현실적이라 눈물이 뚝 그쳐졌다.
“네가 한 거잖느냐.”
“내가……?”
“그래. 네가.”
내가 무슨 수로요?
키락서스가 내 코끝을 톡 쳤다.
나는 어안이 벙벙해서 내 품에 안긴 알록달록한 꽃들을 바라보았다.
이게 다 무슨 일인지……는, 잠시만.
“손?!”
나, 손이 있어?
왜?!
화들짝 놀라 만세를 하자 기껏 안았던 꽃송이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자연히 시선을 아래로 내리니 앙증맞은 두 발이 보였다.
근데 사람 발이야. 털뭉치 말고, 사람 발!
‘잠깐. 근데 나 지금 옷은 입고 있나?’
너무 오랜만에 사람이 되어서 그런지 적응이 잘 안 됐다.
어색하게 가슴팍을 더듬은 나는 하늘하늘한 원피스를 입고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키……아니, 아버님이 입혀주셨어요?”
“그래, 플로린. 반갑구나.”
“플로린……!”
아기나, 담비나, 작은 마님도 아닌 ‘플로린’. 내 이름.
얼굴이 확 밝아진 나는 여전히 눈물방울이 대롱대롱 매달린 눈가를 문질러 닦았다.
그런 다음, 사색이 되어 내게 다가온 이난나 님께 팔을 뻗었다.
“이난나 님!”
“오, 세상에. 플로린, 아가!”
창백해진 얼굴에 가늘게 떨리는 팔. 이난나 님도 얼마나 놀랐는지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이 됐어요!”
일단 사람이 된 것부터 자랑한 나는 그다음엔 주변을 가리켰다.
“제가 꽃도 만들었나 봐요!”
불길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신 온 사방이 퐁신퐁신한 꽃으로 가득 찼어. 어떻게 된 일일까?
“네가 불길을 대가로 꽃을 연성한 거다.”
“연성……?”
“그래. 넌 아마 연성술사인 모양이구나. 연성술사는 핏줄로 이어지는데……. 그러하면 네 친부모도 연성술사겠지.”
“엑?”
난 멍청한 소리를 냈다.
아마 표정도 꽤 멍청하리라.
내가? 어떻게? 진짜?
“나한테도 능력이 있었어요?!”
“그래. 이젠 발음도 깨끗하구나.”
“우와! 그럼 이제 나 푸딩 열 개도 먹을 수 있어!”
배가 커졌잖아!
방금까지 위험할 뻔했던 건 모두 잊고 나는 발을 동동 굴렀다.
폴짝폴짝 뛰다가 다시 심각해진 나는 엎드려 있는 존과 주저앉은 이안에게 달려갔다.
“두 사람, 많이 다쳤어요?”
“아니. 등의 상처는 마법으로 깨끗이 치료할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다행이다.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우선 존을 꼭 껴안아주었다.
“진짜 진짜 고마워, 존. 나를 지켜줘서……!”
“……세상에. 작은 마님이십니까?”
“응! 나야!”
“……허어.”
마법으로 치료를 받던 존이 꽤나 얼빠진 얼굴을 했다.
나는 존의 상처 많은 손을 꼭 쥐고는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난 존에게 목숨의 빚을 진 거야. 앞으로 존은 내 제일 친한 친구일 거고, 내가 제일 믿는 기사일 거야.”
“영광입니다, 작은 마님. 그저 해야 할 도리를 다했을 뿐입니다.”
글쎄, 그토록 위급한 순간에 자기 자신을 내버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존은 숭고했고 사명감이 있었다. 덕분에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 있는 거고.
“고마워, 존!”
그래서 나는 존에게 기꺼이 그 경애의 표시를 전했다. 쪽. 볼에 뽀뽀를 해준 것이다.
“으억?”
놀랐는지 존이 뻣뻣하게 굳었다.
난 그다음, 바로 이안을 살피려 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마지막에 목숨을 구해준 건 나였던 것 같은데, 매우 불공평한 보상이군.”
키락서스가 나를 뒤에서 번쩍 들어 올렸다.
“작은 마님으로서 상벌은 확실해야지. 그렇지 않으냐?”
“어…….”
그, 혹시 제 뽀뽀를 원하시나요? 키락서스 드리블랴네가요?
존이야 내가 뽀뽀해 주면 으쓱대며 다닐 걸 알기에 해준 거지만, 음.
‘그렇지만 내 목숨을 구해주신 건 맞지.’
나와 눈높이를 맞추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키락서스가 무심한 얼굴로 제 뺨을 가리켰다.
오른쪽, 그리고 왼쪽.
“두 번.”
“두 번이나요?”
“가문의 기사보다 그 주인이 경애의 키스를 더 많이 받는 게 옳다.”
그건 또 맞는 말이긴 하네요.
얼른 이안을 보고 싶었던 난 더 실랑이를 하지 않고 아버님의 볼에도 쪽쪽 뽀뽀를 해줬다.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구해주세요!”
“이런 일을 두 번 만들지 않는 게 좋겠구나.”
“히. 그런데 대체 언제 오신 거예요?”
헤죽 웃은 나는 문득 키락서스가 아주 먼 곳에 갔었다는 걸 떠올렸다.
어떻게 시기 좋게 도착한 걸까?
“텔레포트는 뒀다가 수프 끓이라고 만들어진 마법이 아니다.”
“아하.”
그럼 내 어머니가 되어주실 분도 오셨을까?
기대에 차서 둘러봤지만 일단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내 관심은 바로 이안에게로 옮겨갔다.
“이안, 괜찮아? 많이 놀랐지.”
“……담비?”
“응! 담비! 나야!”
그런데 내가 대체 어떻게 생긴 건지, 그 냉랭했던 이안마저 얼빠진 표정을 짓는 게 아닌가.
“그 시끄럽고 귀찮게 매미처럼 달라붙는 그 흰 담비?”
“야.”
말이 심한데?
욱해서 뭐라 할 뻔했지만 난 간신히 참아냈다.
“이 몸이 이토록 귀엽고 앙증맞고 깜찍할 줄은 몰랐겠지!”
대신 나는 허리춤에 손을 짠 얹곤 턱을 치켜들었다.
당당하게 몰랑 배도 내밀…… 아, 이제 담비가 아니니까 이런 건 자제해야지.
“누님이라고 불러도 좋아!”
주변 사람들이 분주하게 정리를 시작했지만 이안은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도 그냥 이안 옆에 있었다. 나라도 있지 않으면 다들 이안을 내버려 두고 가버릴 것 같아서.
“……누님은 무슨. 아기 주제에.”
“뭐? 나 아기 아니거든!”
모르긴 몰라도 여덟 살은 되지 않았을까? 아홉 살일지도 몰라.
발끈해서 볼에 바람을 넣고 빵빵하게 부풀렸지만 이안은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어떻게든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 같아서 괜한 가학심이 발동했다.
확 잡아채서 내 옆에 두고 싶은데, 무슨 방법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