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3화(3/173)
콧물을 훌쩍이며 입을 벌려봤지만 동물 모습으로 사람 말을 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구강 구조가 사람과 완전히 다르니까 말이야.
그래도 담비 딴에 혼신의 노력을 다한 끝에, 나는 문장 비슷한 것이나마 만들 수 있었다.
“데꾸가주, 데꾸가주!”
몇 번이고 그렇게 중얼거리던 난 이내 철퍼덕 주저앉았다.
누굴 만나게 될지 몰라도 힘껏 소리쳐서 살아남아야지. 여기서 나가기라도 해야지.
“나, 따람 말, 처음미애오. 어여삐, 바주새오(나, 사람 말 처음이에요. 예쁘게 봐주세요).”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끼이익.
꼭 내 말을 듣기라도 했던 것처럼 맞은편에 있던 책장이 통째로 돌아가더니 난데없이 비밀 통로가 나타났다.
누가 봐도 수상쩍은, 특히 첩자는 결코 목격해서는 안 될 것만 같은 그런 비밀 통로가 말이다.
‘……어?’
게다가 잠시 뒤. 그 안에서 숨이 멎을 만큼 퇴폐적인 미남이 등장했다.
새카만 흑발. 짙은 녹색이 하늘색보다 더 많이 섞여 있는 어둑한 청록안. 길고 날렵한 눈과 베일 듯한 콧날.
그리고…… 한 발 내딛는 순간부터 퍼져오는 위압적인 알파의 우성 페로몬까지.
뭘 하고 온 건지 몰라도 난잡히 흐트러진 슈트 차림의 그는 내가 이 소설의 악당이요 라고 써 붙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섹시했다. 어린애 눈물마저 뚝 그치게 할 만큼 말이다.
‘거, 검치호 족이야!’
흑발에 어두운 청록색 눈동자의 조합은 검치호 족의 특성이다. 즉, 이 저택의 주인 되는 분들 중 하나라는 소리였다.
“이런.”
순간 너무 놀라서 엎드리지도 못하고 그저 얼어붙은 나를 발견한 미남이 눈을 휘어 웃었다.
“난감하네. 누가 있을 줄이야.”
와, 죽여준다. 동굴 저음.
등 뒤에서 검은 오라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은 미친 존재감!
……에 홀릴 뻔한 나는 그가 손을 뻗자마자 퍼뜩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꽥 질렀다.
“수, 순진한 미소녀 사린 반대(순진한 미소녀예요! 죽이지 마세요)!”
솔직히 당신이 멋대로 나와놓고 나한테 비밀을 알게 된 책임을 묻는 건 좀 아니지 않아?! 게다가 따지자면 내가 며칠이나 먼저 여기에 있었거든요!
아직 책임을 묻지도 않았건만 나는 제 발 저려선 그렇게 바락바락 외쳤다.
물론 겁나니까 속으로만.
난 목숨 중한 줄 아는 담비거든.
“하.”
바짝 긴장해선 벌벌 떨며 노려보고 있자 미남이 뭐가 웃긴 건지 짤막한 웃음을 뱉었다. 뭔가 안심한 거 같기도 하고 우스운 것 같기도 한 그런 기묘한 웃음이었다.
‘처음 보는 나한테 왜 저런 표정을?’
하지만 내가 미남을 더 살펴보기도 전,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긴 그가 낮게 질문을 던졌다.
“방금 살려달라고 하지 않았니?”
무거운 음성이 내 귓가를 바위처럼 꾹 짓눌렀다. 나는 눈을 데록 굴리며 일단 대답을 내놓았다.
“마, 맞기눈 한데요……!”
미남은 태연히 비밀 통로의 문을 다시 닫더니 내게 한 발짝 더 다가왔다.
그의 얼굴에 ‘슥삭 할까, 말까’라고 쓰여 있는 듯해 주춤거리며 두 발짝 뒤로 물러섰지만 그래 봤자 우리 안이었다.
‘어, 어떡하지?’
나, 이대로 담비별에 가나요?
‘애, 애교라도 피워 볼까?’
일단 나는 그가 이 소설의 악당임을 확신했다. 왜냐면 저렇게 생긴 악당이 둘 있으면 그 소설, 주인공들이 기지개도 못 펴보고 망한다. 하품하다가 슥삭당할걸!
작은 머릿속을 필사적으로 굴리던 난 일단 침착하게 짤따란 앞발을 가져와 눈을 가렸다.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담비 암거뚜 못 바써. 기억이 안 난다요.”
그러나 미남은 키득 하고 웃더니 고개를 슬 기울였다.
“나를 마주하고 몇 초간 멍하니 있던 걸 보아 시력은 멀쩡한 모양이던데.”
“……!”
와, 재수 없는데 반박할 거리가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모른 척 잡아떼기 전법은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어쩌지! 어떡해야 살 수 있지?
‘생각해. 생각해. 난 고작 담비지만 살 길이 있을 거야.’
그런데 내가 미처 생각을 끝맺기도 전, 악당이 무릎을 굽히며 시선을 맞춰 왔다.
실로 악당답지 않게 달콤한 목소리에 그렇지 못한 맹수의 눈. 새파랗게 빛나는 냉랭한 동공이 너무 무서워서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고 말았다.
“그런데 아기가 왜 이런 곳에 있을까?”
“!”
“가엾게도…… 굴뚝 청소부로 고용된 모양인데. 어린아이를 고용하지 말라고 분명히 일러뒀음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구나. 맞니?”
쫄지 마, 나야!
맞다고 대답하는 거야.
내가 여기 있고 싶어서 있었던 게 아니라고, 하녀들이 거치적거린다고 굴뚝 청소할 때만 나오라고 했어!
그리고…… 그리고 밥도 안 주고. 이불도 안 주고. 불도 안 때주고…….
“크흥.”
눈물이 비죽 난다. 그런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건 간 크기의 문제가 아니라 알파인 그가 내뿜는 페로몬이 나를 본능적으로 짓누른 탓이었다.
‘욱. 토할 것 같아.’
좁은 창고 안에 윗 계급 맹수의 페로몬이 넘실거린다. 담비도 맹수라지만 그래 봤자 검치호 발톱만큼도 못 되는 하위 계급. 이처럼 강한 우성 페로몬 앞에선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이런. 나는 내 질문에 답하지 못할 만큼 약한 것을 싫어하는데. 겁을 먹었니?”
딸꾹!
곤란하다는 듯한 그의 말에 나는 딸꾹질을 시작했다.
어서 대답, 대답해야 해. 어쩌면 첩자인 걸 들키지 않을지도 몰라.
그냥 맞다고 고개만 끄덕이면 될 일…….
“첩짜라소…….”
……뀩!
‘망했다!!!’
미쳤냐고, 이 빌어먹을 진실의 입!
기절초풍할 만큼 놀란 나는 내 꼬리를 움켜 안으며 와들와들 떨었다. 그의 표정을 살필 겨를은 당연히 없었다.
‘죽을 거야. 분명 죽을 거…… 악!’
딸꾹!
두 눈을 꾹 눌러 감고 뒷걸음질 치던 난 내 작은 온몸이 뒤흔들릴 정도로 크게 딸꾹질을 했다. 그 탓에 발을 헛디뎌 그대로 발라당 누워 버렸다.
마치 이대로 내 배를 가르라는 듯한 자세가 되자 모든 걸 포기한 나는 그냥 아프지 않게 죽기만을 기도하기로 했다.
‘이유를 다 떠먹여 줘도 진실을 뱉는 입이라니.’
이건 다 한평생 정직하고 올바르게 살아온 탓이다. 엉엉.
‘부디 다음 생엔 나도 먹이 계급 최상층의 수인으로 태어나게 해주세요……!’
우성 페로몬으로 저렇게 막 나가면서 살게!
“첩자라…….”
그가 느른히 말꼬리를 늘였다.
근데, 나 바로 안 죽이나?
“따꾹!”
헙!
괜히 한쪽 눈을 슬그머니 떴다가 또 거세게 딸꾹질을 했다.
난 앞발을 바둥거리며 가져와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따꾸, 딸꾸, 딸꾹!”
울고 싶을 만큼 아무 소용없었지만.
“이걸 어찌한다. 미트볼만 한 것이 첩자라니. 신성 제국도 이제 수명이 다 됐군.”
설마 지금 내가 한 입 거리라고 협박하는 건가?
‘알거든! 한 입 거리인 거 알거든!’
달랑. 손가락을 퉁기는 간단한 동작으로 우리의 윗면을 날려버린 그가 내 목덜미를 집어 들어 올렸다.
죽을 때가 되어서 이제 겁을 상실한 나는 그를 있는 힘껏 째려보며 통통한 앞발로 잽을 날렸다.
이 담비, 죽더라도 한 방은 날리고 죽는다!
“갇혀 있어서 정형 행동을 보이는 건가? 자기 학대는 좋지 않단다.”
뭐라는 거야. 난 당신을 패려고 했거든?
하지만 그런 내 말은 전혀 닿지 않은 듯했다. 페로몬을 갈무리한 퇴폐 미남이 가볍게 혀를 차며 인사를 해오는 걸 보면.
“네 이름은?”
“어, 업눈데요…….”
그랬다. 이 나쁜 놈의 신성 제국은 어린 하녀로 보내는 첩자들에게 이름 같은 걸 지어줄 만큼 자상하지 않았다.
끽 해봐야 17호, 20호 뭐 이런 번호나 붙였겠지.
“이름이 없다면 후견인도 없겠군.”
그런데 내 대답이 썩 흡족했는지 미남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러는 동안 청록빛 동공에 어린 광기가 엿보여 나는 흠칫했다.
‘나, 저 사람이 누군지 알아.’
처음엔 기겁하기만 해서 누구인지 바로 기억해내지 못했는데 한 풀 진정한 지금, 내 가슴이 외치고 있었다.
나직한 저음, 조곤조곤한 말투. 어딘가 홱 돌아 있는 청록빛 동공. 그 모든 게 가리키는 인물은 단 한 사람이었다.
“흑마법샤, 키락서스……!”
끄앙! 이 소설 속에서 기피대상 1호인 사람에게 딱 걸리다니! 내 빙의 불운은 대체 어디까지지?
“호오, 나에 대해 알고 있나? 그렇다면 이야기가 빠르겠구나.”
하지만 도망갈 길 같은 건 없었고 키락서스는 자신의 재킷 사이로 나를 곧장 구겨 넣었다. 그러니까 반쯤 벌어진 셔츠 위에 대충 걸친 조끼 속에 넣었단 소리다.
“알비노는 희귀하지. 희귀한 건 싫지 않아. 제 입으로 착하게 진실을 밝히기까지 했으니 첩자 건은 넘어가도록 할까.”
“지, 지쨔……?”
정말로? 당신이 그런 너그러움이 있는 짐승이었다고? 말도 안 돼.
믿기지 않아 눈을 댕그랗게 뜬 채 올려다보자 키락서스가 또다시 키득 웃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전혀, 조금도 웃고 있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너무 쉽게 용서하는 것일 테니 조건이 있어야겠지.”
걷다가 우뚝 멈춘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눈을 휘었다.
“아, 그래. 마침 며느리가 필요했는데…… 내 며느리가 되면 살려주고 싶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