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3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33화(33/173)
이건 뭐, 전설의 이미지 마케팅 담당자도 울고 갈 억지인데 또 말이 안 되느냐고 하면 말이 되긴 해.
‘하긴 진짜 성녀인 라흰도 가짜로 만들어버리겠다고 하는 분이니까.’
절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은 인물 1위다.
‘내가 하필 드리블랴네의 창고에 갇혀 있어서 다행이었지.’
같은 편이면 이보다 더 든든할 수가 없으니까 말이야.
칭찬할 거리가 떨어지시면 다음엔 사람 몇쯤 땅에 미리 묻어놓은 뒤에 내게 파내게 하실 것 같아. 그런 다음 ‘우리 손자며느리는 사람을 살리는 재능이 있다!’고 하실 것만 같달까…….
“너는 이 가문에 필요한 천성을 지녔다. 고리타분한 늙은이의 말이라고 여길지 모르겠지만 천성은 결코 변하지 않더구나.”
“정말로 제가 가문에 도움이 되는 천성을 지녔어요?”
“그래. 그러니 네게 좀 더 명확한 신분을 줄 수 있게 된 걸 기쁘게 생각한다.”
내 머리를 양쪽으로 다 땋은 할아버님이 어디서 난 건지 모를 공단 리본으로 끝을 묶기까지 해주셨다.
나는 무심코 리본을 내려다보았다가 내 엄지 손톱만 한 루비가 리본 끝에 달랑거리고 있는 걸 보곤 기절할 뻔했다.
‘이, 이게 대체 얼마짜리인 거야?’
와, 할아버님 자주 뵈러 와야지……!
“들어오게.”
그때,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문이 다시 열렸다.
리본에 달려 있는 반짝이는 보석에서 가까스로 눈을 뗀 나는 뭔가 추워졌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설산의 찬바람을 이끌고 등장한 것만 같아.
“살로네스 아이다호. 드리블랴네의 가주를 뵙습니다.”
처음 들려온 것은 아주 차분한 말투였다. 단호하고 전달력이 강한, 힘이 있는 음성.
절도 있게 군화 뒤축을 딱 붙이는 소리부터 멋있었다.
“이야기는 대충 들었겠지. 자네 딸이 될 아이네.”
할아버님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나 역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내 눈앞에 서 계신 분께 눈길을 온통 빼앗기고 말았다.
푸르스름한 기운이 감도는 짧은 은발이 신비로웠다. 같은 은발인데 내 것과는 느낌이 완전히 달라.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눈가의 점이 가히 매혹적이다. 키락서스와 어깨를 견줄 만큼 키도 크셔.
‘거기에 북해의 빙정처럼 새파란 눈동자…….’
제복을 갖추어 입고 어깨 한쪽에는 청록색 망토를 길게 늘어트리고 있는 모습에 동경심이 일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리라.
오랜 세월 전장을 거쳐 온 육신이 이뤄내는 반듯한 자세가 이분이 강골의 무인임을 드러냈다.
‘만년설 같아.’
살로네스 아이다호 경을 처음 본 순간 나는 내가 고개를 높이 꺾어도 봉우리를 볼 수조차 없는 험준한 산속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어쩌면 한기가 감도는 페로몬이 그런 느낌을 더하는 걸지도 몰랐다.
“아, 안녕하세요!”
멍하니 있던 나는 양어머니의 시선을 받고서야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저는 플로린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립니다. 폐 끼치지 않는 딸이 될게요.”
“…….”
뭐, 뭐지. 내가 마음에 안 드시는 걸까?
할아버님의 무릎에서 벌떡 일어서서 겨우 바로 선 난 바짝 긴장한 채로 발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언제나 당당한 편인 나지만 ‘엄마’가 생기는 건 너무 오랜만의 일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 내게 부모님이 있었던 건 정말 오래전의 일인걸.
답지 않게 머뭇거리던 난 손을 배꼽에 가지런히 모으고 허리를 꾸벅 숙였다.
“제 어머니 해주셔서 감사해요. 부끄럽지 않은 딸이 될게요.”
나쁜 사람을 상대하는 건 쉬운데 좋은 사람을 대하는 건 어렵다.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서 그런가 봐.
“……없었잖습니까.”
움찔.
양어머니의 입이 무겁게 열리고, 나는 바짝 굳은 채로 어깨를 움츠렸다.
없어? 뭐가 없어요?
“이렇게 연약하고 가녀린 아이가 제 따님이 될 거라는 말은 없었잖습니까!”
쾅!
테이블을 내리친 양어머니의 푸른 눈동자에서 불꽃이 튀었다. 동시에 양어머니는 몹시 화가 난다는 듯 목청을 높였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깜찍한 아이라고 미리! 말씀을 했었어야지요! 그랬으면 어슬렁거리지 않고 재깍 왔을 텐데!”
어어?
눈 깜짝할 사이 나는 양어머니의 품에 꼭 안겨 있게 되었다.
내가 당황해서 뻣뻣하게 굳자 양어머니가 오히려 더 화들짝 놀라며 팔에서 힘을 풀었다.
“따님, 아프신가요?”
“아, 아뇨. 놀라서 조금…….”
얼떨떨해요. 갑자기, 억지로 생긴 양딸이 뭐가 예쁘다고.
그런데 할아버님은 일이 이렇게 될 줄 아셨다는 듯 아주 흐뭇한 표정이었다.
“놀랄 것 없단다, 플로린. 아이다호 경은 본래 작고 어리고 귀여운 것이면 사족을 못 쓰거든.”
“……?!”
“신분도 정리되었고, 그동안 네가 해온 일도 있으니 이제부터 너는 우리 가문의 정식 며느리라고 말하고 다녀도 좋다.”
“헉!”
가문에서 다 알아서 정하신 거겠지만 나는 지금 내 상황의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뭐랄까, 한 차례 크게 점프한 것만 같아.
진짜 아이다호 경이 내 어머니가 되어주시는 거야? 이렇게 멋진 분이?
“앞으로 누군가 네 출신에 대해 묻거든 아이다호 가문이라 하거라. 하위 가문에서 수양딸을 들이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니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거다.”
“아이다호…….”
참 예쁜 성이었다.
나는 ‘아이다호’라고 입속으로 몇 번이고 중얼거려 보았다.
아주, 아주 커다래서 끝이 보이지 않는 호수가 떠오르는 어감이다. 살짝 얼어 있는 파란 호수 위로 막 떠오른 태양의 새벽빛이 쏟아지는 느낌이어서 가슴이 괜히 간질거렸다.
“가벼운 행사 자리에 드리블랴네의 이름으로 참석하는 것부터 해보자꾸나. 그래, 우선은…… 네 환영 연회부터 해야겠지.”
“!”
그거, 취소된 줄 알았는데!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할아버님이 씩 웃으셨는데 그 모습이 꼭 키락서스 같았다.
“다섯 배로 큰 연회를 열어주마. 기대해도 좋다.”
야호! 신난다!
* * *
그 날로부터 시간이 흘러 드디어 내 환영 연회가 열리는 날이 되었다.
이난나 님께서 내게 후계자들 중 한 명을 골라 에스코트를 받으라고 하셨는데, 내가 선택한 건 당연히 이안이었다. 그래서 이안과 나는 비슷한 옷으로 맞추어 입고 연회가 열릴 건물로 향하는 중이었다. 그것도 마차를 타고!
워낙 가문 부지가 넓다 보니 건물과 건물 사이라 해도 걸어갈 만한 거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에스코트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줘서 기뻤어.”
“나야말로 이안이랑 같이 가서 기뻐!”
오늘 이안과 내 의상은 둘 다 흰색 바탕에 금색으로 포인트를 준 것이었다.
나는 눈이 체리 레드 빛깔이고 이안은 머리칼이 붉으니까 어떤 색을 입을지 고르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물론 뭘 입을지는 엄청 오랫동안 고심해서 골라야 했지만!
‘그래도 양어머니가 계셔서 좀 더 빨리 고를 수 있긴 했어.’
하녀들에게 둘러싸여서 이것저것을 걸치는 나를 빤히 지켜보시던 양어머니는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걸 순식간에 골라내셨다.
‘비록 린다와 니나는 내게 드레스를 더 입혀보지 못해서 안달이었지만 난 빨리 끝나서 좋았어.’
앞으로도 양어머니가 옷을 골라주셨으면 좋겠다 싶을 만큼 말이야.
“어떡하지. 오늘 플로린이 너무 귀여워서 다른 애들이 한 마디라도 붙여보려고 안달일 텐데.”
그때였다.
허벅지에다 팔꿈치를 올린 채 턱을 괸 자세로 나를 물끄러미 보던 이안이 시무룩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내가 플로린의 가장 친한 친구인 거, 맞지?”
윽, 어떡해. 귀여워……!
나더러 귀엽다고 하지만 내 눈엔 이안이 훨씬 귀여웠다.
알고 보니 나는 이안의 첫 친구였다. 이안 역시 내 첫 번째 친구고.
그래서 그런지 이안은 내게 아무래도 특별했는데 정말 기분 좋은 건 이안 역시도 나를 특별 취급해 준다는 거였다.
“당연하지. 내 친구는 이안밖에 없는걸?”
“그래? 다른 애들이 찾아온 적 없어?”
“응? 없어! 뭣보다 난 그저께까지 양어머니랑 계속 같이 있었거든. 양어머니가 날 놓아주지 않으셔서 말이야.”
“아아. 아이다호 경이…….”
이안이 말꼬리를 늘이더니 이내 싱긋 웃었다. 꽤 만족스러워 보여서 나는 킥킥거리며 발을 동동 흔들었다.
얼굴에 다 티 나는 것 좀 봐. 정말 귀엽다니까.
“이안은 질투쟁이야?”
“응. 오늘 연회에서 플로린에게 나 말고 다른 친구가 생길까 봐 겁나. 아직 나랑도 다 친해진 게 아닌데.”
어휴, 솔직하기는.
이안은 드리블랴네답게 아주 조금 집착이 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나를 곤란하게 만들거나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투정을 부리거나 하진 않는 어른스러운 성격이어서 좋았다.
“질투할 것 없어. 나는 지금 당장은 이안 말고 다른 애들이랑 더 친해질 생각은 없으니까!”
“그 말, 진짜야?”
“그럼. 게다가 후계자들 중에 몇몇은 무리를 지어서 널 괴롭히기도 했잖아. 난 그런 애들은 싫어.”
나는 지금의 이안이 아닌, 나를 밀어내려 하던 이안의 눈빛을 떠올렸다.
많이 괴로워하고 힘들어 했었지.
흥 하고 콧방귀를 뀐 나는 금세 표정을 풀고는 이안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른을 기준으로 제작된 마차에 아이 둘이 타니까 서로 간에 거리가 너무 멀었다. 새끼손가락 걸고 꼭꼭 약속하고 싶은데 맞은편에 앉아서는 팔이 닿지를 않거든.
“다른 애들보다 이안이랑 더 많이 친해질게! 약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