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3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34화(34/173)
“고마워, 플로린. 이제 조금 안심이 돼.”
이안은 해맑게 웃는 플로린과 손가락을 엮으며 마찬가지로 다정한 미소를 머금었다.
하지만 플로린이 몸을 돌려 창문에 작은 코를 바짝 붙이는 순간, 이안의 입가에 어렸던 미소는 씻은 듯 자취를 감추었다.
‘벌레 새끼들을 어찌한다. 분명 들러붙어서 시끄럽게 왱왱댈 텐데.’
오늘 연회에서 벌어질 일을 상상하던 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가주님께서 플로린에게 선택의 권리를 주셨다는 소문은 벌써 후계자 관을 몇 바퀴 돌고도 남았다. 절반은 남을 수 있다지만 나머지 절반은 후계자 자격을 박탈당하게 생겼으니 어찌 날벼락이 아닐까.
후계자 자리에 남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할 만한 녀석들이 몇 명 있어서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시기 좋게 아이다호 경이 돌아왔다.
‘며칠 내내 아이다호 경이 밀착 호위를 한 모양이네.’
한 달이 지나서 약속한 기한이 끝날 때까지 플로린의 안위는 보장할 수 없었다. 물론 미미하게 플로린에게서 마력이 감지되는 걸 보니 숙부님이 저 리본에 달린 보석 핀에 보호 마법을 걸어두신 모양이긴 하지만…….
‘그래도 숙부께서 생각보다 플로린을 많이 아껴서 다행이야.’
이안의 눈에는 보호 마법의 파동이 보였다.
언제부터 이런 것이 보였는지는 모른다. 그는 태어났을 때부터 무언가를 ‘잘 보는’ 편이었으니까.
물론 이안은 이런 자신의 능력에 대해 단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다. 앞으로도 알릴 생각 따위는 없었고.
가지고 있는 패를 전부 내보이는 건 멍청이들이나 하는 짓이니까.
“내 보석 핀, 귀엽지?”
그가 한참 쳐다보고 있는 걸 알아차렸는지 플로린이 배시시 웃으며 발을 동동 흔들었다.
그 순진함이 치사량 이상으로 귀여워서 이안은 그만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말았다.
‘하…… 정말 아무것도 모르나 본데.’
오늘 플로린은 금빛 레이스가 잔뜩 달린 하얀 드레스를 입고 세상에서 제일 깜찍한 구두를 신은 모습이었다. 구두에 달려 있는 날개 모양 장식이 금세라도 플로린을 저 하늘로 날려 보낼 것만 같았다.
거기에 금빛 리본으로 머리칼을 장식하고 마찬가지로 금실 자수가 놓인 장갑을 낀 플로린은 이안이 보기엔 꼭 황금 사과 같았다.
탐스럽게 열린 신의 과실.
모두가 욕심을 낼 만한 그런 것.
지금은 저택에 없는 그의 이부 형제들도 플로린을 보면 탐을 내겠지.
‘아, 싫어라.’
생각을 거듭하던 이안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좀 더 짙어졌다.
‘너무, 너무 싫은데. 어찌한다.’
그의 이부 형제들은 저택에 머무는 떨거지들과는 수준이 다를 것이다.
이안은 모친에 대한 기억이 별로 없었지만 딱 한 가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가주님보다도 강하다.
그런 어머니가 전쟁터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을 땐 솔직히 믿지 않았다. 지금도 믿지 않고 있는 편이고.
차라리 가주 노릇 하기가 귀찮아져서 다 내던지고 죽은 척 몸을 감췄다는 쪽이 더 납득이 가지.
아무튼 이안은 자신에게 있는 특별한 능력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임을 확신했다. 그러니 그의 이부 형제들도 무언가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힘이 있지 않겠는가.
만약 그 애들이 플로린과 결혼하고 싶어 한다면…….
“이안?”
플로린이 고개를 갸웃했다.
부옇게 일어나던 어두운 생각들을 가라앉힌 이안은 이내 자상한 표정을 지었다.
“있지, 플로린. 오늘 내가 침실까지 데려다줘도 돼?”
“나야 좋은데 그럼 이안이 피곤하잖아.”
“아냐, 전혀 안 피곤해. 난 플로린보다 두 살이나 많은걸.”
누구에게도 곁을 내어주지 않으려고 했던 삶이었다. 그래서 마음의 문을 닫아걸었다. 살아도 살아 있지 않은 사람처럼, 존재해도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그냥 그러다 소멸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번 산다는 것을, 플로린을 받아들이고 나니 그 뒤부터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플로린은 이안에게 유일무이한 것이다.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소중해져 버린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진 게 플로린 하나뿐이니까.
이안은 일부러 플로린을 제 안에서 우상화했다. 그러면 살아갈 의미와 이유가 생겼다. 종교를 믿는 자들의 심리를 알 수가 없었는데 이제 이안은 그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아, 도착했다!”
이안은 기대감에 환하게 웃는 플로린을 향해 정중히 손을 내밀었다.
“내리실까요?”
“응!”
이안의 신전은 무척 작고 좁아서 신도는 한 사람밖에 들어갈 수 없다.
그러니, 다른 후계자들은 모두 없어졌으면.
이안은 그렇게 바라며 여전히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플로린이 원한다면, 그는 언제까지고 다정한 소년일 수 있었다.
어디까지나 겉으로는.
* * *
드리블랴네의 광활한 장원에는 오직 연회용으로만 쓰이는 건물이 따로 있었다. 대략 300년 전에 지어진 것인데, 건축 이유가 대단했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처럼 중요한 행사를 치를 때면 한 번이라도 눈도장을 찍기를 원하는 하급 귀족들이 줄을 지어 몰려오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지었대.”
“중요하지 않은 손님까지 모두 본관에 재울 수는 없으니까?”
“응, 맞아. 똑똑해, 플로린. 금세 유추하는구나.”
“엣헴.”
이안의 칭찬에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서 오세요, 따님.”
“앗……! 어머니!”
화려한 연회장은 입구가 두 개 있었다. 하나는 손님용이고 다른 하나는 상석과 바로 연결된 곳으로, 가문 일원은 여기로 입장한다.
두 마리의 거대한 검치호가 양각된 문 앞에 도착하자 양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다. 오늘도 양어머니는 멋진 제복 차림이셨는데, 평소보다 훨씬 자수나 장식이 많이 있는 걸 보니 예식용 제복인 듯했다.
‘정말 멋있어.’
이런 분의 딸이라고 말할 수 있다니. 다시 생각해도 큰 행운이었다.
“따님의 첫 연회네요. 긴장되지는 않나요?”
“엄청 긴장돼요!”
그래도 너무 무서워서 벌벌 떨리고 그렇진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대감으로 가슴속이 꽉 찬 느낌이야.
“그럼, 다 함께 입장할까요?”
“네!”
내 오른쪽엔 이안이, 내 왼쪽에는 양어머니가 함께 섰다.
“이안 드리블랴네 님, 플로린 드리블랴네 님, 그리고 살로네스 아이다호 경께서 입장하십니다!”
문가에 서 있던 하인이 큰 소리로 우리의 입장을 알렸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이 장내에 발을 내디딘 순간, 눈이 아릴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꾸며진 연회장 곳곳에서 흥분에 찬 속삭임이 일어났다.
‘와, 사람 진짜 많아.’
색색의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들이 수백 명 모여 있으니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노신사들은 콧수염을 빳빳하게 세웠고 젊은이 중에도 꾸미지 않은 이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나는 눈을 데로록 굴리며 내 환영 연회에 온 사람들을 구경했는데 그러고 있자니 얼마 지나지 않아 가주 할아버님과 이난나 님이 동시에 입장했다.
“어머나, 둘이 옷을 맞춰 입고 있으니 아주 귀엽구나.”
나와 이안을 발견한 이난나 님이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하셨다.
“세상에, 공작 부인이세요! 칩거 이후로 처음 나오신 연회이지요?”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가…… 장례식이었는데.”
“그때보다는 안색이 좀 좋아지셨네요. 아무래도 집안에 새로운 아이가 들어와서 그렇겠지요?”
내 귀에도 여기저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려오는데 이난나 님이 듣지 못하셨을 리 없지.
하지만 이난나 님은 아주 우아하게 모른 척하셨다.
“공작 부인께서 오랜 칩거를 깨고 처음 등장한 연회가 따님의 환영 연회에요. 이건 사교계에서 아주 큰 의미를 지닌답니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시던 양어머니가 조용히 내게 일러주셨다.
“모두가 따님에 대해 궁금해할 거예요.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누구와 더 친해 보이는지, 누구와 입장했는지……. 그리고 나갈 때는 누구와 가는지. 그 모든 걸 지켜보고 있을 거랍니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다.
양어머니는 특유의 무심한 눈길로 주변을 한 바퀴 훑은 뒤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만 걱정할 건 없어요. 보호자와 함께 연회에 왔다면, 보호자의 허락 없이 아이에게 직접 말을 거는 건 몹시 무례한 행동이니까요.”
“누가 못된 말 하면 어머니께 일러바칠게요!”
“맞아요. 그러면 된답니다. 알아야 할 내용이니 알려준 것뿐.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고 해서 따님이 위축되거나 저들의 눈치를 볼 필요는 전혀 없어요.”
“네!”
“그럼 이제 선물이 얼마나 쌓이는지 지켜볼까요?”
“엥, 선물도 있어요?”
무슨 의미의 선물이지?
‘드리블랴네 가문이 며느리를 들인 것에 대한 축하 선물……?’
원래 그런 걸 받는 건가?
“선물은 저기 있어, 플로린. 입구 쪽에.”
“헉!”
이안이 알려준 곳으로 무심코 고개를 돌린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와, 도대체 다들 언제 선물을 사 온 거지?’
저건 그냥 선물이 아니라…… 끝도 없이 쌓여 있는 선물 상자의 탑이잖아?
토도도.
난 저도 모르게 홀린 듯 치맛자락을 쥐고 선물 탑으로 달려갔다.
‘아, 이런 것 많이 받아봐서 별거 아니라는 듯이 오만하게 굴었어야 했나?’
나 지금 좀 없어 보인 것 같아.
조금 심란했지만 좋아서 입이 벌어지는 걸 막기는 어려웠다.
선물인걸! 다 내 거라는 소리잖아!
“이건 손님들이 너와 친해지고 싶다는 의미로 보낸 선물이니까 얼마든지 받아도 돼.”
저어, 우린 그런 걸 보고 뇌물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하지만 가슴이 벅찬 바람에 나는 말을 애써 삼키며 이안을 돌아봤다.
“언제 풀어볼 수 있어?”
“잠시 후에 선물을 풀어보는 시간을 공식적으로 가질 거야.”
“드리블랴네 가의 며느리가 되길 정말 잘했다…….”
내 혼잣말을 들었는지 손님들에게 받은 선물을 차곡차곡 쌓던 하인들이 웃음을 터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