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4화(4/173)
‘며느리요……? 갑자기? 아니, 그보다 나한테 그런 귀한 자리를?’
영락없이 죽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도 안 되는 제안이 들어오자 나는 당황하고 말았다.
드리블랴네엔 아주 특이한 전통이 있다.
3줄 요약하자면-
1. 다음 대 가주의 반려가 될 아이를 집안에 미리 들인다. 즉, 내정된 다음 대 안주인이다.
2. 어릴 때부터 내정된 다음 대 안주인은 일명 ‘드리블랴네의 후계자들’과 어울려 자란다.
3. 성인이 된 뒤, ‘드리블랴네의 후계자들’ 중, 우성 페로몬을 각성하고 알파 서열에 오른 자와 맺어진다. 가주는 알파만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어느 후계자와 결혼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거나 미래의 공작 부인이 먼저 정해지고, 그다음에 공작이 정해지는 순서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보통 이 3번에서 문제가 생겨.’
가주가 될 자격이 있는 자. 즉, 알파가 한 명이면 되는데…….
항상 드리블랴네는 두 명에서 최대 네 명까지 우성 페로몬을 각성하고는 했다. 그리고 알파가 여러 명이면 그중 누구를 가주로 삼을지 선택할 권리는 오로지 안주인에게 있었다.
‘그러므로 드리블랴네의 며느리는 어릴 때부터 달콤한 권력 속에서 자라나.’
만약 평범하게 살고 싶다면 그 자리는 덫이었다. 역대 드리블랴네 공작 부인치고 어릴 때 납치, 감금, 협박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다고 하니까.
‘하지만 나는…….’
깡으로라도 갖고 싶긴 해. 그 호화로운 자리, 솔직히 탐이 난단 말씀!
그렇지만 너무 덥석 받아들이면 멍청해 보일 수도 있잖아.
게다가 이게 함정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서 나는 일단 어린이답게 질문을 했다.
상대가 원작 속 키락서스 드리블랴네라는 걸 알게 된 탓에 아까보다 몸이 세 배 쯤 달달 떨렸지만 그래도 애써 괜찮은 척했다.
“며느리 하면, 모가 됴아요?”
“잘 먹고 잘 살 수 있지.”
내 질문이 우스운지 키락서스가 느른히 대꾸했다.
‘그래, 맞아. 잘 먹고 잘 살겠지.’
솔직히 나라면 원작의 인물처럼 살지 않을 것이다. 난 불행하고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을 거야.
사랑은 라흰더러 하라 그래. 그사이에 난 돈과 권력을 챙겨서 떵떵거리며 호화롭게 살 거거든.
“구로면…… 왜 즈에오(그러면 왜 저예요)?”
“나는 뒷배 없는 착한 아이가 필요하거든.”
어, 그거…… 왠지 묻어도 뒤탈 없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들리는데 제 귀가 이상한가요?
“장로 놈들의 입김이 닿지 않은 알맞은 나이대의 아이를 어디서 구하나 했는데…… 잘됐지. 귀찮게 찾을 필요가 없겠어.”
“전 첩짜인데……?”
“네가 알게 된 드리블랴네의 정보를 신성 제국에 갖다 팔 테냐?”
“아아아뇨!”
미쳤어요?
나는 대번에 정색했다.
거기서 주는 정보 값보다 여기서 며느리로 사는 게 훨씬 행복할 텐데요!
그러자 키락서스가 키득 웃었다.
“그럼 되었구나. 또?”
“음…… 그러면…… 저눈 계약 며느리에오?”
몇 년 정도, 키락서스에게 내가 쓸모가 있을 동안만 그 자리에 있는 건가? 그럼 있는 동안 최대한 돈 많이 모아야 하는데.
사실 소설의 권력자들이 뒷배가 없어서 편하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아이를 찾는 건 흔한 설정이잖아?
배신하지 않는다는 전제만 있다면 첩자라는 게 권력자 가문에서 가장 원할 만한 인재상이기도 하다.
죽여도 뒤탈 없고, 아는 거 없고, 귀찮게 난리 칠 만한 부모 쪽 가문 없고……?
말 그대로 ‘깨끗한’ 아이니까.
하지만 키락서스는 계약직 며느리냐는 내 질문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대신 우뚝 멈춰 선 그는 나를 어느 하녀에게 달랑 넘기려 했다.
“주인님, 그 동글동글한 건 무엇인지요?”
“첩자다.”
“그렇군요.”
스릉. 하녀는 첩자라는 말을 듣자마자 등 뒤에서 쌍칼을 꺼내 들었다.
갸악!
‘나, 나, 날 농락한 거구나! 역시 악당!!!’
틀림없이 죽을 거야!
심장이 튀어나올 뻔한 나는 하녀에게 가지 않으려고 그의 멱살을 쥐고 매달렸다. 그러자 키락서스가 짓궂게 목을 울려 웃었다. 꼭 만족스럽다는 듯이.
“하지만 지금은 내 며느리지. 귀하게 대해라. 내일 가문 회의에 데려가 정식으로 소개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그럼 아가씨의 성함은…….”
“일단은 담비라고 불러. 깨끗하게 씻기고 먹을 걸 주고.”
이 미친놈이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잖아!
그는 그렇게 간단히 명령을 내리곤 어디론가 휙 사라졌다.
남겨진 하녀는 두 손 위에 나를 얹고는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치타 수인인 니나라고 합니다. 앞으로 성심껏 모시겠습니다, 아기 담비 님.”
흠칫.
치타요?
“아, 그, 네에…….”
“제게 존대를 쓰실 필요 없으십니다. 편히 말씀해 주세요.”
2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니나는 겉모습만 따지면 상당히 귀여운 편이었다. 황갈색 머리칼을 양쪽으로 땋고 있는데다 치타답게 얼굴도 작았다.
하지만 니나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하녀조차 나보다 윗 계급의 페로몬을 지니고 있다니……! 역시 방심할 수 없는 악당 가문이야.’
지금이라도 가능하면 도망치고 싶지만 솔직히 치타보다 빨리 뛸 자신이 없었다.
‘응, 도망 포기.’
그냥 며느리가 된 다음에 행복하게 살 방법이나 고민해 보는 게 낫겠어.
‘근데 나, 알비노인데. 그것도 상관없는 건가?’
일단 제대로 된 인간화도 못 하고, 내뿜는 페로몬조차 열성인데.
왜 원래 인물이 아니라 내가 갑자기 며느리가 되게 된 걸까?
“꺄하하! 배 간질 하디 먀!”
기껏 담비 딴에 어마어마한 고뇌를 하고 있는데 니나가 자꾸 배에다 거품을 문질렀다.
그 바람에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어진 나는 조그마한 은대야 안에서 뒤집어지며 웃음을 터트렸다. 온몸에 비눗물이 묻었지만 오랜만에 씻는지라 오히려 좋았다.
“……웃으시니 더 귀여우세요. 베이비슈 같아서 한 입에 넣고 와랄랄라…….”
“……!”
“안 할게요. 죄송해요.”
니나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손길은 차분하고 섬세해서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내가 알비노인데도 경멸하는 표정을 짓지 않아서 좋았다.
“자아, 닦아드릴게요.”
“고마오요.”
“꼼꼼히 말려야 감기가 들지 않아요.”
뽀득뽀득 씻게 된 나는 내가 들어갔다 나온 은대야를 보며 부르르 떨었다.
엄청 새카마네! 그래도 이젠 나, 좀 깨끗해졌겠지?
니나가 보송보송한 천으로 물기를 닦아주는 동안 어둠이 내린 바깥을 멍하니 응시하던 나는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으로 시선을 옮겼다.
새하얀 털. 체리 레드 컬러의 눈동자. 동글동글한 두 귀와 꼼실거리는 귀여운 코.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인간화를 하진 못한다. 우리에서 벗어났어도 여전히 동물의 모습일 뿐.
수인이 동물의 모습에서 인간화를 하려면 꼭 필요한 힘을 일컬어 <이큘리스>라고 부른다. 이 <이큘리스>는 성장한 뒤 검기, 마나, 정령술 등 어떤 것으로도 발현될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상태의 자연적 힘이었다.
하지만 알비노는 타고난 이큘리스가 너무나 적다. 거의 없다시피 하지.
강제로 외부에서 이큘리스를 채우려면 다이스를 먹으면 되긴 하지만…… 그 대단한 신물을 어떻게 구해서 심지어 먹겠어?
“담비 님은 담비 모습으로도 말씀도 잘 하시고, 영특하신 게 틀림없어요.”
내가 조금 울적해 보였나?
니나가 갑자기 칭찬을 해왔다.
꼬리의 물기를 꾹꾹 짜내고 있던 나는 그 한 마디에 기분이 좋아져선 귀를 바짝 세웠다.
“정말? 말하는 담비는…… 희귀해?”
그럼 좋겠는데. 이게 내 무기가 될지도 모르잖아.
“아무래도요. 동물 모습일 때 말할 수 있는 수인은 처음 보긴 해요. 보통은 동물화했을 땐 말을 못 하거든요. 구강 구조가 다르잖아요.”
“구롬 나 벌써 쓸모가 하나는 인는 거네!”
난 진심으로 기뻐서 환하게 웃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보는 니나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아기는 쓸모를 논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
“네, 그래요. 그러니까 오늘 밤은 무서운 생각 하지 마시고 푹 주무시는 거예요, 담비 님.”
“으응.”
“그래도 혹 무서우시면 저 줄을 당겨서 저를 부르세요. 어디에 있든 1초 안에 달려올 자신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치타니까.
내가 도망쳐도 1초 만에 잡으러 오겠지.
난 고개를 끄덕이곤 니나를 보냈다.
‘그런데 설마 여기가 키락서스의 침실은 아니겠지?’
전체적으로 푸른빛을 띠는 장엄한 인테리어가 꽤 의심스러웠지만 다행히 악당이 들어온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잠깐 긴장했으나 내 잠자리로 정해진 푹신푹신한 베개에 난 곧 헤실 웃었다.
‘너무 좋다……!’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벽난로 속 장작이 훈훈한 열기를 내어준다. 잠들기 전에 마신 꿀을 탄 우유가 달고 맛있어서 잠시나마 불안을 잊을 수 있었다.
니나가 덮어준 양털 담요 속에 파묻힌 채 나는 몸을 동그랗게 말았다.
‘어떻게 됐든 간에 살아남았네. 그럼 이번에는 오래오래 살자.’
책에 빙의한 뒤로 지금까지 나는 한순간도 마음이 편한 적 없었다.
솔직히 매일매일 죽고 싶었다가 다시 살고 싶었다가, 억울해서 죽기는 싫었다가 그냥 살기도 싫다가.
종래엔 잘 죽기 위해 살았다. 살기 위해 죽기엔 너무 억울해서.
‘조금…… 지치기는 해. 빙의 유목민 생활.’
내가 여기에 정착할 수 있을까?
나도…… 다시 한번 어른이 될 수 있는 걸까? 아니, 최소한 3개월을 넘겨서 살기라도 할 수 있을까?
‘원작에 나와 있는 신성 제국에 대한 정보, 열심히 팔아치워야지.’
키락서스가 나를 계속 살려주고 싶도록.
키락서스는 내게 정보를 요구하진 않았다. 그건 아마 나 같은 하찮은 어린애가 뭘 알겠느냐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뭔가 팔아치울 만한 걸 찾아야 해…….’
많은 일이 있었기에 금세 졸음이 몰려왔다. 정말 오랜만에 춥지 않은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