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4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42화(42/173)
‘낯선 침대. 린다도 없고 니나도 없고 유모도 없고…….’
몇 시간 뒤, 간단히 방에서 식사를 마친 나는 혼자 스스로 깨끗이 씻었다.
사관 학교 측에서 하녀를 보내주었지만 모르는 사람에게 시중을 받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었다.
‘괜히 코가 시큰한 걸 보니 드리블랴네에 완전히 적응했나 봐.’
나는 이불을 코까지 끌어다 덮고는 괜히 크흥 하고 소리를 냈다.
갖은 어른스러운 척은 다 해놓고 막상 사위가 고요해지고 어두워지자 혼자 있는 게 왜 이렇게 싫을까.
이런 게 바로 집이 그리운 기분인 건가?
그러고 보니 난 현실에서도 혼자 있는 걸 유독 싫어하긴 했었지, 참.
‘제국 내에서 제일 안전할 장소에, 엄청나게 안전하고 편안한 방식으로 와서 극진히 대접받고 있는데 서러워하면 안 돼.’
공식 일정이라는 허울 좋은 명목을 붙여놓긴 했지만 사실 이건 정말 별것 아닌 일이었다.
‘이런 것부터 천천히 익숙해지게 해서 성공적으로 사교계에 데뷔하고 가문의 일을 맡게 되는 거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잠이 안 온담.
이불 속에서 괜히 뒤척거리던 나는 새카만 천장을 바라보다 문득 그 날을 떠올렸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내게 메시지를 보내온 어떤 애 말이야.
‘나더러 울지 말라고 하는 걸 보면 내가 우는 게 싫은 모양이었는데.’
지금 울면 또 메시지를 보내 주나?
나는 코를 슥 문질렀다.
눈물까지 날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한 번 우는 척 해볼까 싶기도 했다. 왜냐면 분명 전에 그 특이하고 놀라운 메시지가 나타난 거, 내가 울먹거릴 때였거든.
[나 보고 싶었어요? 그런다고 진짜 울려고 그러면 어떡해요. 나 속상하게.]그때였다.
웃음기를 담은 글씨가 허공에 뽀득뽀득 쓰였다.
이불을 꼭 움켜쥔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방적인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나 반가우면 오른손 흔들어주기.]어디서 나를 보고 있기라도 한 건가?!
벌떡 몸을 일으킨 나는 일단 시키는 대로 오른손을 휙휙 흔들어 보였다.
‘말을 걸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내 쪽에서 누구냐고 물어볼 수도 없으니까 엄청 답답해!’
그래도 이 메시지는 오늘 내게 일어난 일 중 가장 좋은 일이었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면 고개를 두 번 끄덕여요.]당연히 궁금하지!
‘아니, 그런데 진짜 어디서 보고 있나?’
나는 일단 고개를 크게 두 번 끄덕였다.
그러자 허공의 글씨에 물방울이 맺히더니 스르르 흘러내려 지워지고 다시 새로 쓰였다.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정성스럽게.
[나는 미래에…….]미래에?
[플로린의 남편이에요.]……뭐? 정말?
[미래에 만나게 되겠지만, 너무 보고 싶어서요. 지금 시기의 플로린이 어떤지도 궁금하고.]좀 믿기지 않는데.
나는 이맛살을 살짝 찌푸렸다.
미래에서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는 걸까?
‘아니, 그보다……. 내 남편이 된다면 그건 후계자들 중 한 명이라는 거잖아!’
방울방울 흘러내리는 글씨.
일방적으로 나타나는 메시지.
내 남편이라는 말.
‘그리고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까지.’
그 모든 것에서 유추할 수 있는 건…….
한 사람뿐이긴 한데.
‘하지만 그 애에게 이런 특이한 능력이 있었던가?’
그때, 다시 글씨가 떠올랐다.
[나라면 절대 외롭게 두지 않을 텐데. 어딜 가든 같이 갔을 거예요.]그, 그건 좀. 내가 앤가?
‘아, 애 맞구나.’
그래도 나, 혼자서 잘 할 수 있어. 누가 꼭 같이 있어주지 않아도 돼.
어차피 전해지지 않을 말이지만 나는 그렇게 속으로 대꾸했다.
[그럼 내가 외로운 걸로 해요, 누나.]마지막 문장은 마치 눈물처럼 물방울이 방울방울 져서 흘러내렸다.
괜히 신경 쓰이게…… 게다가 누나라니.
‘나보다 어린 걸까?’
잠이 완전히 달아난 바람에 눈을 말똥말똥 뜬 채로 나는 좀 더 기다렸다. 다음 메시지가 또 있을 것만 같아서.
하지만 누군지 모를 남자애는 이렇게 또 사라져 버렸다.
‘그래도……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졌어.’
어떻게 알고 내가 마음이 조금 약해진 시점에 딱 맞춰 메시지를 보내준 건지.
고마운 일이었다. 누구인지 대충 알 것 같으니까 더더욱.
‘덕분에 울적함이 완전히 사라졌어. 산뜻해졌달까!’
다음에 메시지를 보내올 거면 그땐 이름을 알려줬으면 좋겠다.
‘대강 누구라고 짐작은 해도 확실하진 않으니까.’
이름을 말해주면 내가 만나러 갈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자기가 남편이라고 확신하면서 말한 건 아무래도 거짓말 같지만.’
나는 작게 키득거리다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편히 누웠다.
이제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 * *
바스락바스락.
밤이슬이 맺힌 풀이 발밑에서 부드럽게 짓눌렸다.
치맛자락에 묻은 이슬을 아무렇지 않게 털어낸 나는 환하게 떠 있는 만월을 몽롱히 바라보고는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지?’
문득 의식이 돌아왔지만 몸은 여전히 멋대로 움직였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졸려……. 여긴 어디야?’
하품이 절로 나왔다.
잠시 멈춰 서서 크게 기지개를 켠 나는 서늘한 밤 공기를 들이켜곤 살짝 정신을 차렸다.
‘……꿈인가?’
현실 감각이 조금 돌아온다.
그러나 여전히 몸을 지배하고 있는 나른함은 가시지를 않았다. 경악해야 할 상황인 것 같기는 한데 그냥 생생한 꿈인 것 같기도 하고.
‘존이 옆에 없는 걸 보면 꿈인가?’
근데 폼폼은 있네.
나는 내 주변에서 맴도는 동그란 골렘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나를 쫓아온 게 어쩐지 되게 기특해서였다.
“그르르릉.”
그때, 어디선가 낮고 거친 신음이 들려와 나는 우뚝 멈춰 섰다.
‘누군가 아파하고 있어.’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확신이 들었다. 저 아이를 위해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거라는, 그런 확신.
조심스레 발을 움직여 다가가자 수풀 너머에 새카맣고 매끈한 등이 보였다. 불만스러운 듯 바닥을 탁탁 내리찍고 있는 긴 꼬리도.
‘피 냄새.’
많이 다친 건 아닌 것 같지만 피가 적게 나는 것도 아니었다.
반들반들한 털을 지닌 거대한 흑범은 내가 다가오는 걸 알아차리자마자 목을 긁어 경고를 보냈다.
더 가까이 다가오면 물어버리겠다.
날 선 소리는 털을 쭈뼛 서게 할 만큼 매서웠지만 위압감은 전혀 없었다. 왜냐면…… 페로몬이 느껴지지 않거든.
“단테.”
결국 흑범의 앞에 선 나는 부드럽게 이름을 불렀다. 검치호 족만이 가지고 있는 날카로운 검치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증거였다.
“도와주려고 왔어.”
“크르륵.”
“너 자신을 더 이상 괴롭히지 마. 응?”
세로로 좁혀진 동공은 이미 반쯤 이지를 잃은 상태였다.
나는 뼈가 하얗게 드러날 정도로 물어뜯은 단테의 손목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저건 이성을 되찾으려고 자학을 한 흔적이다.
스스로를 물어뜯어서라도 정신을 차리려고 한 거야.
“이러지 않기로 했잖아.”
나도 모르게 입술이 벌어지더니 한 마디가 툭 떨어져 내렸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 거지? 난 오늘 단테랑 처음 만났는데.
“쓰읍, 단테. 놔.”
아플 텐데도 단테는 제 상처를 한 번 더 물었다.
나를 물지 않으려고 한 행동인 건 알지만 보고 있는 게 너무 가슴이 아팠다.
“크르르르.”
사람의 말을 하진 못했지만 단테가 욕을 하고 있다는 건 아주 잘 알겠다.
나는 단테의 상처로 다가가 자연스레 손을 내밀었다.
이러면 무슨 힘이라도 터져 나와서 단테를 치료해 줄 수 있을 것처럼 구는 스스로가 우스웠지만, 동시에 우습지 않기도 했다.
정말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그리고 내 손에서 새하얀 빛이 휘감긴 물거품 같은 게 퐁 하고 터져 나온 바로 그 순간-
“!”
눈이 완전히 맛이 가버린 단테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