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4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45화(45/173)
“꽤 괜찮군. 3초 안에 치장을 끝내는 마법이다. 드레스와 장신구는 네 드레스 룸과 연결되어 있고.”
“린다랑 유모가 땅을 치면서 울겠는걸요……?”
근데 이거 은근히 편한걸……?
방금까지만 해도 거의 잠옷 차림이었는데 이대로 티 파티에 나가도 되겠잖아?
거실 한쪽에 놓여 있는 전신 거울 앞에서 핑그르르 돌아본 나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배꼽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별말을.”
그리하여 사관 학교에서 보내온 하녀는 하릴없이 돌아가야만 했다.
몇 시간 뒤.
“그럼 어디 가볼까.”
언제 꺼낸 건지 아버님의 손에 세련된 형태로 잘 빠진 케인이 쥐여져 있었다.
케인의 머리 부분을 장식한 새카만 검치호는 불길한 빛을 품었는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아버님과 너무나 잘 어울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플로린 님! 제가 직접 모시러 왔습…… 헉! 키, 키락서스 님?”
우리가 머문 건물의 입구에 서 있던 학장이 아버님을 보자 그대로 뒤집어질 듯 놀랐다. 마치 이런 상황을 조금도 생각지 않았다는 것처럼 수상쩍은 반응이었다.
“유령이라도 본 듯한 표정이군, 학장. 불쾌한데.”
“죄송, 죄송합니다!”
“안면 근육 관리 잘 하지.”
“예, 그러겠습니다. 아무렴요……!”
와, 학장 아저씨.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이 젖어 들어가는 게 눈에 보일 정도인데요?
‘단테, 지금은 괜찮을까.’
어젠 분명 날씨가 좋았는데 오늘은 먹구름이 껴 있다.
마치 내 머릿속처럼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는 단테를 생각했다. 뼈마디가 드러날 정도로 스스로를 물어뜯어 폭주를 멈추려 했던 그 상냥한 아이를.
* * *
행사는 솔직히 너무 싱겁게 끝났다.
어쩌면 내가 온통 단테에게 신경을 빼앗긴 탓일지도 몰라.
단테의 손목이 괜찮은지 알고 싶어서 계속 흘긋거렸지만 사관 학교의 제복은 몸을 완전히 가리는 형태이니 알 수가 없었다.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그러나 단테는 행사가 진행되는 내내 단 한 번도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최종 우승자는 C조의 빅토르 클라우딘입니다!”
와아아아!
모여 앉아 대련을 구경하던 생도들이 다 함께 발을 굴러 최종 우승자를 축하했다.
빅토르 생도에게 월계수 나무 관을 주어야 했기에 나는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우와, 엄청 귀여우신 분이네요!”
잿빛 머리칼에 좀 더 짙은 잿빛 눈동자를 지닌 빅토르 생도는 성격이 몹시 좋은 듯했다.
‘사실 알비노한테 상 같은 거 안 받는다고 할까 봐 조금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기분이 좋은지 연신 싱글거리던 빅토르 생도는 내 앞에 나오자마자 잘도 무릎을 꿇었다.
“자, 어서 칭찬해 주세요!”
“어……. 음, 정말 멋진 경기였어요. 손에 땀을 쥐는 경기였는데, 최종 우승자가 된 걸 축하해요.”
“감사합니다!”
커다란 덩치의 개를 보는 것 같아…….
아니, 진짜 개 수인인가?
“클라우딘은 회색 늑대 가문입니다. 검의 명가로 불리는 가문이지요.”
자리로 돌아가자 내 뒤에 서 있던 존이 설명을 해주었다. 그에 나는 손바닥을 탁 칠 수 있었다.
‘어쩐지!’
꼬리가 붕붕 흔들리는 착각이 들 정도였는데…… 늑대였구나!
“이거 봐라, 부럽지? 부럽지?”
“아, 재수 없어. 빅토르!”
“캬캬캬! 이게 다 평소에 훈련을 빠지지 않은 결과 아니겠냐. 저렇게 귀여우신 어린 귀부인에게 월계수 관을 받다니! 부럽지?”
“하……. 신이시여. 왜 이런 촐싹맞은 놈에게 과분한 실력을 주셨나이까…….”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빅토르 쪽을 유심히 보고 있었던지라 대화가 들려왔다. 그들이 하도 큰 소리로 떠들어댄 탓도 있었다.
“귀부인……?”
그러다 난 빅토르가 나를 호칭하는 걸 듣고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어쩜, 귀부인이래! 존, 들었어?”
“세상에서 제일 깜찍하고 앙증맞으신 귀부인이시죠.”
“나, 어른처럼 보여?”
완전 좋아!
두근두근해서 그렇게 묻자 존이 어깨를 부들부들 떨었다.
“아, 왜애. 이렇게 꾸미니까 어른 같은가 봐. 그러니까 나한테 귀부인이라고 하지!”
“예에, 크흠. 드리블랴네의 성을 받으셨으니 사교계에서는 귀부인으로 불리셔야 하는 게 맞긴, 크흡, 한데.”
“그럼 있지, 누가 나에게 아가씨라고 하면 무례한 거야?”
“때와 장소, 말한 사람의 의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공식적으로는 틀린 호칭이지요.”
“그렇구나!”
아직 사교 수업을 제대로 받은 게 아니라서 몰랐다.
나는 나를 귀부인으로 제대로 호칭해 준 빅토르에게 조금 호감이 생겼다.
존으로도 호위 기사는 충분하지만, 만약 한 명 더 들이게 된다면 빅토르가 좋겠어.
성격이 밝고 장난기도 있는 것 같고. 같이 있으면 주변을 환하게 만들어줄 사람이야.
“어?”
그때, 옆얼굴을 콕콕 찔러대는 시선을 느낀 나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단테가 누가 봐도 황급히 다른 쪽으로 고개를 팩 돌리는 게 아닌가.
‘날 보고 있었나?’
고개를 갸웃한 나는 집요하게 단테를 쳐다봤다. 하지만 단테는 나를 본 적 없다는 듯 고집스레 굴 뿐이었다.
‘분명 나 본 것 같은데! 맞잖아!’
행사가 끝날 때까지 단테는 무표정을 고수했다. 그러다 단테는 나는 물론이고 아버님에게도 인사 한번 없이 휙 사라져 버렸다.
‘이따 밤에 만나면 어떻게든 친해져야지.’
난 쉽게 포기하고 그러는 담비가 아니거든! 딱 두고 봐.
‘라흰이 정말 네 상처를 보듬어준 적도 없는데 그냥 여자주인공이라 모든 걸 다 차지한 거라면.’
나, 그 꼴은 두 눈 뜨고 못 봐.
물론 라흰이 엄청 착한 애일 수도 있지만……. 착한 애면 아무 생각 없이 온 세상에 겨울을 불러왔겠어?
‘난 너랑 꼭 친해질 거야.’
소꿉친구 자리를 내가 꿰차면 라흰에게 대항할 수 있겠지?
여러 작품 속에서 남자주인공의 소꿉친구는 가장 강력한 악녀로 등장하니까 말이야.
‘후후, 내가 그 여자주인공의 복장을 뒤집는 악녀가 되어주지!’
* * *
그리고 그렇게 플로린이 악녀가 되겠노라고 결연한 의지를 다지고 있던 시점.
단테는 입술을 꾹 깨문 채 뭔가에 쫓기기라도 하듯 걸음을 빨리했다.
‘그 애야. 분명 그 애라고.’
어머니의 장례식 이후, 사관 학교로 돌아온 단테는 그날 밤부터 심각한 수준의 고열을 앓았다.
드문드문 기억나는 건 당황해서 소리를 지르는 같은 방 동기의 목소리와 기숙사 사감 선생님의 파랗게 질린 얼굴뿐.
오래오래 아프고 나서 일어나자 페로몬이 씻은 듯 사라져 있었다.
다시 훈련에 복귀하며 유년반을 담당하는 선생님께 사실을 말씀드린 순간, 단테는 선생이 지은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안타까워했지만 입가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즐거움이 배어나 있었다. 친구라 생각했던 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으로 믿었던 교관님도…….
그때부터 단테는 입을 꾹 닫았다.
뭐가 뭔지 잘은 몰라도 누구도 진심으로 그를 걱정하지 않는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친구’라 칭하던 아이들을 ‘동기’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도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테는 밤만 되면 이지를 잃고 짐승처럼 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럴 때마다 단테는 누군가 자신을 껴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 들끓는 살의를 억누르려 스스로를 물어뜯을 때면 진심으로 슬퍼하는 여자의 환영이 보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새하얀색에 가까운 은발. 꼭 딸기 시럽에 담갔다 뺀 것 같은 눈동자. 가느다랗고 아름다운 목.
틀림없이 모르는 사람이다.
그런데 환영은 그를 아는 것처럼 굴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테는 꿈에서도 여자를 보았다.
이상한 점이라면 꿈에서 그는 어른이었다는 것이다. 아이가 아니라, 다 자란 수컷.
그리고 그는 그 여자를 좋아했다. 그 여자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을 만큼 좋아했다.
‘꿈에서만 나오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제 학장이 그를 불러냈을 때. 그 환한 햇살이 비치는 자리에 나타난 소녀를 마주한 바로 그 순간.
심장이 터져 나갈 뻔했다.
아니겠지.
잘못 본 거겠지.
저 애가 왜. 말도 안 돼.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단테는 또다시 입을 꾹 다물었다.
함부로 말을 하면 그 애가 사라질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