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47)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47화(47/173)
“크릉.”
그때였다.
촉촉한 코가 내 손을 툭 쳤다.
언제 가까이 다가왔는지 단테가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표정이 어딘가 뚱하면서도 귀여워서 난 그만 배시시 웃고 말았다.
“내 꽃이 정말 효과가 있나 봐. 다행이다.”
나는 가만히 손을 뻗어서 단테의 콧잔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단테의 털은 몹시 부드러워서 코만 만졌는데도 벌써 기분이 좋아졌다.
“할아버님도, 이난나 님도, 심지어 라피렌도…… 다 단테를 걱정하고 있어. 귀한 몸에 상처 내기 없기야, 이제.”
커다란 흑범의 얼굴을 꼭 껴안으며 나는 뺨을 비비적거렸다.
“너무 졸린데 잠깐 자도 될까?”
아버님이 오시려면 한참 남은 거 같고…… 밖에선 귀뚜라미가 우는 소리만 들리고.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아니면 어제랑 오늘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가 금세 몸이 나른해졌다.
“저기, 기대도 돼?”
폭신폭신하겠다.
난 탐욕스런 눈으로 단테의 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단테는 움찔했지만 내가 파고드는 걸 밀쳐내지는 않았다.
“조금 쌀쌀해서 추웠는데 고마워…… 하암.”
단테의 따뜻하고 푹신한 몸에 기대니까 눈앞이 가물가물해졌다.
그렇게 잠시 뒤, 나는 정말로 잠이 들고 말았다.
* * *
“……동글동글하게 생긴 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꽃에 코를 파묻다시피 하던 단테는 생각보다 훨씬 이르게 인간화를 할 수 있었다.
툭.
미끄러져 내린 플로린이 그의 허벅지를 베고 누웠다.
단테는 그런 플로린의 통통한 뺨을 쿡 하고 눌러보았다.
“으응.”
그러자 싫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칭얼거렸다.
플로린이 깰까 싶어 서둘러 손을 거둔 단테는 좁은 창밖의 하늘로 눈길을 던지며 혀를 찼다.
“쳇.”
여자애는 어렵다.
같은 생도들은 성별만 여자일 뿐 그냥 동기라는 느낌이어서 어렵지 않았는데…… 이상하게 플로린은 동기들처럼 그렇게 막 대할 수가 없었다.
“꼭 자기 같은 걸 입에다 밀어 넣고…….”
단테는 단걸 싫어했다. 그럼에도 머랭 쿠키를 뱉지 않은 건 그게 꼭 플로린 같아서였다.
작고 잘 부서지고 연약하고 달고.
‘딸기 생크림 케이크…….’
지금보다 더 어릴 때. 그의 생일을 맞아 엄마랑 아빠가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만들어줬다.
당연히 유명 셰프가 만든 것보다 맛은 덜했고 모양은 엉망이었지만 직접 만들어준 거니까 단테는 맛있게 먹어치웠다.
그리고 다음 해, 그의 생일. 엄마는 전쟁터에서 돌아오지 못했다.
‘또 만들어준다고 해놓고는…….’
아빠는 엄마가 없는 걸 견디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졸지에 엄마의 장례식도, 아빠의 장례식도 가야만 했다.
그때부터였을까. 그의 마음속이 온통 삐죽삐죽해진 것은.
사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사관 학교의 교관들이 그를 이렇게 대우하는 게 부당하다는 걸.
하지만 가만히 있었던 건…… 죄책감 때문이었다.
내가 좀 더 강했더라면.
내가 좀 더 어른이었더라면.
그러면 엄마를 지켜줬을 텐데.
‘아, 나는 분했던 거구나.’
엄마를 지키지 못해서. 아직 어리고 약한 스스로가 싫어서.
그래서 벌을 받듯이 누군가가 그를 함부로 대하는 걸 내버려 뒀다.
‘귀한 몸…….’
입속으로 플로린이 했던 말을 중얼거리던 단테는 이내 피식 웃었다.
“조그만 게. 나랑 동갑이면서 어른인 척해.”
작은 코를 살짝 꼬집었더니 또 인상을 팍 쓴다. 담비는 성질이 나쁘다더니 정말 그랬다.
“해가 뜨네.”
다리가 저렸지만 단테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어차피 기합을 받거나 훈련을 하면서 같은 자세를 반복해 유지하는 것엔 이골이 난 몸이었다.
밤새도록 플로린의 베개가 되었지만 그다지 힘든 줄도 몰랐다. 워낙 타고나기를 강골로 타고난 덕이다.
‘눈부시겠다.’
단테는 두 손을 모아 플로린의 말랑말랑한 뺨에 닿는 햇살을 가려주었다.
엄마는 존경스럽고, 멋진 분이었지만 동시에 늘 바쁜 분이기도 했다. 사실 ‘엄마’보다는 ‘소가주 님’에 더 가까웠지만…….
그래서 단테는 더더욱 기를 쓰고 엄마라고 불렀다. 어머니라고 하면 너무 먼 사이 같아서.
그래도 다행이라면 아빠가 무척이나 자상한 분이었기에 엄마의 빈자리만큼 사랑을 듬뿍 주셨다는 것이다.
태어난 이후부터 아빠에게 충분히 응석을 부리며 자란 단테는 사랑을 받은 만큼 주는 법도 알았다.
‘엄마가 피곤해서 소파에 누워 계시면 아빠가 항상 무릎베개를 해줬어. 그리고 햇살이 안 닿게 이렇게 했었어.’
단테는 보고 배운 바를 충실히 이행했다.
어쨌든 플로린은 드리블랴네의 정해진 다음 대 공작 부인이고, 그가 공작이 되면…….
‘겨, 결혼하게 될 테니까.’
화르륵.
목덜미까지 발긋하게 달아오른 단테는 괜히 툴툴거렸다.
‘나도 아빠처럼 좋은 남편이 돼야지.’
단테는 당연히 자신이 공작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건 근거가 있는 오만이었다.
날고 기는 영재만이 들어온다는 사관 학교이지 않나.
그러나 또래 중에서 그를 이길 수 있는 애는 아무도 없었다.
동기의 목검은 지루할 정도로 느렸고 그나마 교관님의 검이 빠르긴 했지만 그조차도 못 피할 수준이 아니었다. 시간이 흘러 그가 C조의 선배들처럼 키가 커지고 몸이 자라면 아마 아무도 그를 이길 수 없으리라.
단테는 그걸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자신이 엄마의 피를 너무나 진하게 물려받았음에도.
‘그러니까 플로린의 남편이 되는 건 당연히 나겠지.’
그리고 플로린은 내 아내가 되고…….
아내라는 단어를 생각하자마자 가슴속에서 아까 본 꽃이 꽃망울을 마구 터트리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은 그가 조금만 잘못 움직여도 부서져 버릴 설탕과자 같아서…… 단테는 두 손으로 꼭 모아 소중히 쥐었다.
“자, 집에 가자. 꼬마들.”
그때였다.
저편에서 숙부가 나타났다. 한 손엔 피투성이가 되어 앞니까지 빠져버린 학장을 질질 끌고.
그는 상관없었지만 플로린이 보기엔 몹시 나쁜 광경이라 단테는 표정을 구겼다.
“얼씨구. 벌써 플로린이 마음에 들었느냐.”
“…….”
꿈에서 봤어. 내가 이 애를 엄청 소중하게 대하는 미래를.
단테는 그 말은 입속으로 삼켰다.
‘이런 게 욕심이라는 건가?’
플로린에 대한 걸 굳이 여기저기에 떠벌리고 싶지 않아. 오직 그만 알고 있고 싶었다.
“알고 있겠지. 플로린은 지금 네가 아니라 가문과 결혼한 상태라는 걸.”
“……알아.”
“남편이 되려면 노력 좀 해야 할 거다.”
노력? 내가?
생경한 단어에 단테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훈련이라면 안다. 꾀를 부리지 않고 정직하게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그게 훈련이니까.
하지만 노력은…… 다분히 주관적인 단어였다.
“드리블랴네에는 매 세대에 가주 후보가 못해도 두 명은 나온다.”
“내가 질 수도 있어?”
오랫동안 으르렁거리기만 하고 사람 말을 하지 않았던 단테의 목은 완전히 잠겨 낮은 쇳소리를 냈다.
잡아온 학장을 휙 내던지며 조카를 돌아본 키락서스는 기분이 상한 듯 뾰로통해진 얼굴을 보고 웃음을 꾹 눌러 참아야만 했다.
이 어린 조카는 지금껏 자신에게 대적할 만한 호적수를 만나지 못했으리라.
어제 행사를 구경하며 한 바퀴 쭉 둘러보니 쓸 만한 놈이라고는 빅토르 클라우딘. 그 한 놈 외에는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개구리가 노는 우물 속에 던져진 악어는 세상에 다른 악어가 존재한다는 걸 알지 못하게 된다.
키락서스는 영 의아한 듯 보이는 조카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었다.
“네 어머니의 아들이 너 하나는 아니지 않으냐.”
“……그래도 내가 더 강해.”
“뭐, 무력만 따지면 그렇기는 한데…… 끈기는 이안 쪽이 좀 더 있지.”
“이안?”
단테가 불만스레 눈썹을 추켜세웠다.
‘만난 적이 없나?’
키락서스는 곰곰이 과거를 되짚었다.
‘누님이 이안을 임신한 건 디엔 글란스가 열여덟 살 때의 일이다.’
당연히 정식으로 결혼하기 전이었다.
사실 디엔은 그때부터 이미 누님에게 죽을 만큼 빠져 있었지만 마음의 크기가 언제부터 꼭 같던가.
키락서스가 알기로, 누님에게 있어 디엔과의 결혼은 필요에 의한 정략혼이었다.
누님은 드리블랴네의 전통을 깨고 자신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이를 스스로 골랐고 그게 의약품 제조 및 의학으로 유명한 글란스 가家였다.
하지만 다소곳하고 정숙하고 섬세하면서 동시에 자주 삐지는 성격이었던 디엔은 솔직히 누님의 취향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
아무튼 그가 기억하기로 디엔 글란스는 이안이 없는 것처럼 굴기 일쑤였다. 괴롭히진 않았지만 보고도 무시하고 지나가곤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러니 어쩌면 디엔은 제 핏줄인 단테에게 이안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 애초에 사관 학교에 보낸 게 이안과 마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가?’
한 번도 그쪽으로 생각해 본 적 없지만 그럴 수도 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