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5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51화(51/173)
“도차악!”
드넓은 연무장엔 한창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엔 아주 오래된 조상님 나무가 있단 말씀!
가지를 길게 늘어트린 나무가 아낌없이 내어주는 그늘로 오도도 달려가자 단테가 하는 수 없이 나를 따라왔다.
“여긴 연무장이잖아. 여기서 피크닉을 한다고?”
“응!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자, 여기 앉자!”
“하아. 비켜봐.”
단테는 장소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숨을 내뱉었지만 그래도 순순히 피크닉 매트를 깔아주었다.
투덜거려도 은근히 해줄 건 다 해준다니까.
“잠시 기다려.”
그런데 앉으려던 찰나, 단테가 재킷 단추를 풀며 나를 저지했다. 그러더니 제 옷을 매트 위에 깔아놓지 뭐야.
“여기 앉아.”
“네 옷이잖아. 그냥 매트에만 앉아도 되는걸.”
“그래도 바닥 딱딱해. 그리고 피크닉 매트는 그냥 천이고 이건 실크가 들어간 거야.”
“으음, 그렇지만…….”
“아빠가 그랬어. 아내는 항상 더 좋은 것 위에 앉혀야 한다고. 학교에서도 레이디는 찬 데 앉으면 안 된댔고.”
아하. 그러니까 더 좋은 것 위에 앉으라는 소리구나.
‘이런 게 기사도인가?’
고맙기도 하고. 찡하기도 하다.
나는 단테의 재킷 위에 얌전히 앉아선 이내 연무장의 흙바닥 쪽을 흘긋거렸다.
곧 이안이 올 시간인데.
“그래서 이제 여기서 뭘 하는 거야?”
한 번도 피크닉을 나와본 적 없을 단테가 삐죽이 묻자 나는 자신만만하게 허리춤에 손을 얹었다.
“여기서! 이제!”
뭘 하지?
“어…… 여유를 즐기는 거야. 바쁜 현대 사회의 어린이에게 필수적인 활동이지.”
내가 들어도 멍 소리였다 싶은데 단테는 의외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휴.
“와, 날씨 좋다아.”
그늘 아래에서 보는 파란 하늘은 끝장나게 아름다웠다.
나는 고개를 높이 꺾어 구름의 모양을 구경하다가 하나하나 가리키며 외쳤다.
“저건 토끼 구름. 저건 토마토 구름.”
“그런 건 왜 하는 거야?”
“응?”
“구름 모양이 토끼를 닮았다 해서 그게 토끼인 건 아닌데.”
단테가 진심으로 의아한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일순 말문이 막혔지만 나는 금세 대답할 거리를 찾아냈다.
“재, 재밌잖아!”
“그런 게 재미있어?”
“응! 사관 학교 애들은 뭐 하고 놀기에 이런 것도 몰라?”
내가 너무 어린애처럼 굴었나. 근데 나, 어린애 맞는데.
조금 민망해서 사과로 뺨을 문지르고 있는데 침묵하던 단테가 입을 열었다.
“저건 그럼 뱀 구름이네.”
“맞아! 저건 출렁다리 구름!”
어색하게나마 맞춰주려고 하는 게 귀여워서 풋 하고 웃음이 났다.
나는 단테를 꼭 끌어안곤 말랑한 뺨을 주욱 당겼다.
“아구, 귀여워.”
“난 귀여운 게 아니라 멋진 거거든?”
“응, 귀엽고 멋진 단테.”
“흥.”
사람을 대하는 게 서투를 뿐, 좋은 아이야. 이안도 단테의 이런 장점을 알아봐주면 좋겠는데.
“그런데 단테. 사관 학교에서는 정말 뭐 하고 놀았어?”
“사관 학교는 놀려고 가는 곳이 아냐.”
“어…… 그래도 친구끼리 놀긴 하잖아?”
분명 애들이 단테에 대해…….
“네. 단테는 장난기가 많았어요.”
“근데 요즘은 아무랑도 어울리려고 하지 않아요. 사춘기인가 봐요!”
그렇게 말했었지.
원랜 엄청 잘 웃고 장난도 잘 치는 성격이었던 것 같은데.
“그냥…… 평범하게 공놀이나 장애물 넘기 경기나 씨름 같은 거 했어.”
“중간에 이상한 게 껴 있는데?”
“장애물 넘기 경기가 제일 재밌어. 넓은 공터에 장애물을 두고 뛰어넘는 놀이야. 해볼…… 아니다.”
약간 신이 났는지 말이 빨라지던 단테가 나를 보곤 덜컥 말을 멈췄다.
“왜! 무시하지 마! 나도…… 나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네가?”
사람 울컥하게 만드네.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 없었다.
나, 운동 별로 안 좋아하거든.
“사관 학교 애들은 위험한 놀이를 하는구나.”
“안 위험해. 재밌어.”
“구, 구름 상상하기 놀이도 재밌거든!”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람.
이안이랑 이야기할 땐 이렇게 바락바락하지 않는데, 단테랑 대화하면 어쩐지 내가 꼬맹이가 되는 기분이었다.
‘꼬맹이 맞긴 한데…… 정신연령도 꼬맹이가 되는 것 같아.’
그때 연무장 저편에서 나타난 이안이 너무 반가운 건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안! 나 왔어!”
“플로린? 여긴 위험한데 어쩐 일이야. 만나서 반갑긴 하지만.”
오늘 이안은 헐렁한 흰 셔츠에 딱 맞는 캐러멜색 바지를 입고 있었다.
쏟아지는 봄 햇살이 불그스름한 머리칼에 내려앉으면서 안 그래도 다정한 얼굴을 더욱 다정히 보여주는 마법을 부렸다.
나는 반가워하는 이안에게 총총 달려가선 손을 꼭 잡았다.
“이안이 보고 싶어서 왔어! 훈련 다 끝나면 우리 같이 피크닉 하자!”
“그럴까? 무거웠을 텐데. 저걸 다 들고 왔어?”
“단테가 들어줬어.”
“그거 다행이네.”
이안이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헤헤 웃은 나는 다시 자리로 돌아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단테가 몹시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뭐, 얼마나 실력이 좋은지 보자고.”
“이안, 엄청 강하다? 놀랄걸?”
“헹.”
단테는 코웃음을 치더니 무릎에 팔을 걸치고 앉아 이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래도 이안을 별것 아닌 취급하려는 태도와는 달리 눈빛이 꽤 복잡하네.
“여기 다 모여 있구나.”
“엥, 아버님?”
그런데 이윽고 나타난 이안의 훈련 상대는…… 다름 아닌 아버님이었다.
아버님께 개별 훈련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없는데?!
* * *
“국보급 얼굴이이이이이이이!”
한 시간 뒤.
나는 땀범벅이 된 이안의 얼굴을 부여잡고 절규하고 있었다.
“어쩜 좋아! 설마 매일 이런 식으로 훈련하는 거야?!”
멍들었잖아!
“쳇. 그 정도로 호들갑은.”
옆에서 단테가 이죽거렸다.
나는 그런 단테를 홱 째려보고는 이안의 눈가에 삶은 달걀을 살살 문질렀다.
“괜찮아. 마지막에 내가 방심하는 바람에. 마법으로 치료해 달라고 하면 돼.”
“그렇지만…… 지금 아프잖아.”
“이 아픔으로 다음에는 방심 안 할 수도 있지.”
이안이 자상하게 말하며 내 손을 쥐었다.
“이제 그만 문질러줘도 돼. 배고프지? 밥 먹자.”
“으응.”
이안과 아버님의 대련은 내 눈엔 실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너무 현란해서 나중엔 눈이 핑핑 돌기까지 했단 말이야.
단테는 어지럽지도 않은지 둘의 공방을 계속 노려보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이안이 목검으로 이마를 얻어맞자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목숨은 소중한 거야, 이안.”
“강해지려면 숙부님과 대련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니까. 괜찮아.”
이안에게 게살 샌드위치를 건넨 나는 혹시 삐질까 싶어서 단테에게도 샌드위치를 내밀었다.
“자, 구운 닭고기 샌드위치야.”
그렇게 우리는 모두 샌드위치를 하나씩 손에 쥐고 피크닉 매트 위에 둘러앉게 되었다.
내 몫의 샌드위치는 한쪽 면에는 딸기 잼을 바르고 속에는 감자 샐러드를 듬뿍 넣은 것이었다.
“맛있다!”
행복해.
양어머니께서 하신 말씀대로, ‘어쩔 수 없이’ 함께하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근데 정말 그래도 아직 한자리에 있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건 아니네.’
만약 둘이 서로를 미워하고 증오하는 수준이었더라면 단테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 텐데 그러지 않잖아.
틱틱거려도 같이 있다는 게 중요한 거지.
“플로린 건 감자 샌드위치네. 한 입만 먹어봐도 돼?”
“응? 응! 여기 새것 있어.”
모든 샌드위치는 두 쪽씩 담겨져 있었다.
아보카도가 들어간 건 아버님이 가져가 버렸고 남은 세 종류는 한쪽씩 먹었으니까, 다 남아 있지.
하지만 내가 바구니 안을 뒤적거리기도 전에 이안이 내 손에 들려 있던 걸 한입 앙 물어버렸다.
먹던 건데!
“으앗, 새것 있는데. 내 침 묻은 거, 안 더러워?”
“더럽긴. 하나도 안 더러워.”
우물거리던 이안이 엄지로 제 입가를 쓸어내며 묻은 소스를 혀로 핥았다.
조금 심란했지만 뭐, 이안이 많이 뺏어 먹은 것도 아니니까.
“여우 새끼.”
그때였다.
단테가 가여운 샌드위치를 우그러트리며 한 마디를 툭 내뱉었다.
정황상 이안에게 한 말인 것 같긴 한데…….
“나도 네 거 먹을래.”
“뭐어? 넌 네 샌드위치 있…… 없네.”
샌드위치가 있었는데요, 찌그러졌어요. 못 먹을 정도로 심각하게.
난 한숨을 푹 내쉬며 내 샌드위치를 단테의 입에다 아예 물려주었다.
“먹어, 먹어.”
왜 사람 먹던 거에 집착하고 난리람?
“난 그냥 과자나 먹을래.”
“내가어마이머어써.”
“뭐라고?”
“내가 더 많이 먹었다고.”
유치해…….
이안더러 보란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단테를 짜게 식은 눈으로 훑은 나는 그냥 달콤한 머랭 쿠키나 꺼내 들었다.
“아, 그래도 날씨 너무 좋다.”
달콤한 레몬맛 머랭을 한입에 톡 털어내고 와삭와삭 씹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나는 이안과 단테에게도 머랭을 나누어 주었는데 이번엔 단테가 자기가 더 많이 먹겠다고 떼를 쓰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왜냐면 머랭이 많이 있진 않았거든.
“있잖아, 이안.”
“응, 플로린.”
“이안 오빠라고 부를까?”
내가 먼저 오빠라고 하면 단테도 형이라고 부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불쑥 들어서 던진 말이었다.
“!”
그런데 때마침 물을 마시던 이안이 미친 듯이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괘, 괜찮아?”
“다시 불러볼래?”
“어…… 이안 오빠……?”
세상에.
사람 얼굴에 미소가 꽃처럼 피어난다는 게 그냥 시적인 묘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응, 애기야.”
이안은 정말 환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꿀이 뚝뚝 떨어지는 목소리로 대답을 해왔다.
오빠 소리가 그렇게 좋았나 봐.
“오빠는 무슨.”
옆에서 단테가 투덜거렸지만 이안은 전혀 들리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으로 나만을 바라보았다.
‘조금 더워.’
봄볕이 너무 강했던 탓일까.
나는 구두 속의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지막 머랭 쿠키를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아주, 아주 달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