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53)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53화(53/173)
“참, 그러고 보니 단테. 있잖아. 요즘 병은 괜찮아?”
나는 목소리를 죽이고 단테의 귀에다 대고 소곤거렸다. 그러자 움찔하던 단테가 한발 물러서며 제 귀를 벅벅 문지르지 뭔가.
그렇게 입김이 간지러웠나 싶어 나는 조금 민망해졌다.
“괜찮아. 꽃 고마워.”
“아! 도움이 됐구나! 다행이다.”
단테의 측근 하인에게 꽃을 주긴 했지만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 건지 몰라서 걱정이었는데.
‘이제 단테한테 귓속말은 안 해야지. 많이 간지럽나 봐.’
나는 민망함을 감추고 방긋 웃었다. 그러곤 책을 꼭 껴안고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럼 난 이만 책 읽으러 갈게!”
그리고 플로린이 팔랑거리며 자리로 돌아가 책을 펼칠 때쯤.
‘진짜 조그만 게. 딸기 냄새나 풀풀 풍기면서.’
얼굴이 새빨개진 단테는 서가에 머리를 박고 서 있었다.
책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단테는 대충 창틀에 기대앉아 낮잠을 자는 척했지만 정말 잠을 잘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단테는 제 머리칼을 마구 헤집으며 짜증을 삼켰다. 그냥 이유 없이 짜증이 났다.
동그란 게 뽈뽈거리면서 그의 시야 밖으로 사라지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어디 가면 간다고 말해주지 않는 것도 싫었다.
한참 헤집고 다녔는데 서재에 있을 줄이야.
그래도 서재에 온 이유가 그와 관련이 있기에 단테는 기분이 조금 누그러졌다.
‘어차피 나랑 결혼할 거면서.’
이안인지 뭔지, 형이랍시고 행세하려 드는 게 너무 싫다.
엄마의 또 다른 아들이라는 것도 미웠고 자신보다 플로린과 먼저 알게 되었다는 건 더더욱 최악이었다. 거기다 플로린은 사사건건 이안을 챙기기까지.
‘약해빠졌던데. 그런 게 뭐가 좋아서.’
물론 그의 이부형제이니만큼 다른 애들보단 조금 나았다. 아주 조금. 요만큼. 그렇지만 약하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얼마 전, 피크닉 때 보았던 모습을 단테는 기억했다.
키락서스 숙부에게 달려들던 이안. 그건 약한 자의 싸움 방식이었다. 물러서고, 생각하고, 빈틈을 노리고, 뒤돌아서 기습하고. 숙부의 공격에 맞설 힘이 없으니까 계속 전투 방식에 변주를 주고.
“흥.”
단테는 코웃음을 치며 무릎에 팔을 얹었다. 그러곤 조그맣고 동글동글한 뒤통수나 빤히 쳐다봤다.
사실 그에게 있어 플로린은 어떤 새로운 생명체나 다름없었다.
지금까지 ‘연약한’ 사람은 아빠밖에 본 적 없었는데.
사관 학교의 생도들은 성별 관계없이 모두 튼튼했고, 엄마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말할 것도 없었다.
숙부? 숙부 같은 괴물이 또 어디 있다고.
그런데 플로린은 그 이름처럼 한 송이 꽃 같았다.
끝으로 갈수록 시럽에 담갔다 뺀 것같이 불그스름해지는 은발. 꼭 자기처럼 살랑거리는 리본 원피스. 거기에 구두.
플로린을 보고 있으면 가시가 돋았던 마음이 이상하게 괜찮아졌다.
사관 학교의 교양 과목 선생님이 기사는 항상 레이디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했는데 그땐 이유를 몰랐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런데 플로린을 보자마자 그동안 받았던 기사도에 대한 수업이 갑자기 그의 온몸을 북처럼 두드려 댔다.
친절해야지. 매너 있게 굴어야지. 위험한 건 내가 대신해 줘야지. 무거운 것도 내가 대신 들고…….
나한텐 하나도 안 위험하고, 하나도 안 무거우니까.
‘내가 꼭 지켜줘야지.’
귀까지 발갛게 달아오른 단테는 괜히 목을 가다듬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플로린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아직까지 잘 모르겠다.
단테는 플로린만 보면 관자놀이가 지끈거리고 혀가 말랐다. 속도 미슥거리는 것 같고 시선도 못 마주치겠고…….
‘내가 진짜 왜 이러지.’
그가 폭주해서 동물화를 하면 다들 무서워했는데 플로린은 달랐다.
그에게 성큼 다가오지를 않나, 꽃을 주지를 않나. 말을 걸지를 않나. 아무도 그렇게 해준 적 없었는데 플로린이 처음이었다.
‘가슴이 이상해.’
앞으로도 나만 걱정해줬으면 좋겠다. 다른 애 말고 나랑만 놀았으면 좋겠다. 내가 제일 재밌게 해줄 텐데. 내가 제일…….
“이안인지 뭔지만 없었어도.”
스윽.
고개를 든 단테의 눈빛이 사느랗게 식어 있었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신성력에 관한 책은 내게 별 도움이 안 되었다.
하지만 재미는 있었어.
[……그리하여 일곱째 날, 천신이 보시기에 세상이 마땅하더라. 그러나 만족하며 천신이 잠이 든 바로 다음 날, 땅속 깊은 곳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그 웃음소리는 불길하고 불온하며 그악스러워 듣는 자의 귀를 상하게 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더라.
하여 천신이 주신 깨끗한 마음이 더러워진 이들이 끝내 굴복하여 땅 아래로 찾아가매, 그들의 앞에 선 자가 이르되 자신을 일컬어 악신이라 하였다.
천신의 쌍둥이 동생인 악신은 모든 것이 그의 형과는 반대였다. 그는 정돈된 것보다는 혼란을 좋아했으며 아름다운 것보다는 지저분한 것을 보기 좋다 하였다.
여덟째 날, 악신은 세상의 일부를 제 힘으로 뒤덮었으며 아홉째 날, 악신을 숭배하는 무리가 생겨났더라.
잠에서 깨어나 이 모든 광경을 보게 된 천신은 탄식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바다를 이루어 그곳에서도 새 생명이 태어났는데 그것이 대양의 지배자인 뿔고래 족이었노라.
지켜보던 악신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제 형의 피조물과 닮았으나 온화한 성질을 반대로 뒤집어 새로운 생명을 창조했다.
그것이 바로 톱니상어 족이다.
두 신은 자신의 마지막 피조물을 두고 내기를 하였다. 더 강성해지는 쪽이 이 세계에 남고, 다른 하나는 이곳을 떠나자고.
그러나 이제 막 태어난 미물에 불과한 그들이 이지를 갖추고 성장하려면 도움이 필요했다.
그리하여 두 신은 자신들의 어머니 신인 고대 자연의 가이아노스를 찾아갔다.
어머니, 어찌하면 피조물에게 생각하는 힘을 줄 수 있나이까.
천신이 예를 갖추어 여쭈니 가이아노스가 이르되 이미 나의 생각하는 피조물이 있노라. 그들을 보아라 하였다…….]
여기까지 정말 흥미로웠는데, 중간이 찢겨 나가고 없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시작된 두 신의 내기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적절한 때가 되면 두 신은 자신이 창조한 것을 화신으로 택하여 온갖 사랑을 주고 힘을 주어 겨루게 한다.
화신이 여자일 경우엔 성녀가, 남자일 경우엔 성자가 되어 악신의 화신과 겨루어야 하는데…… (중략)…… 끝내 승리한 화신의 신만이 세계에 남을 수 있다고 전해진다.
신들의 내기는 인간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으리만치 오랜 시간 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책의 서문을 여는 이 신화가 재미있었다.
‘다만 의아한 건, 왜 중간 부분이 찢어지고 없냐는 거야.’
그래서 그 이미 존재하던 가이아노스의 생각하는 피조물이 뭔지 궁금한데!
하필 딱 중간 부분이 찢겨져 있을 게 뭐람.
“힝. 아쉬워.”
이 책 외에 신성력에 관한 건 더 찾아볼 수 없었다.
마르코 할아범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할아범 역시 이 책 외에는 신성력에 대해 나와 있는 게 더 없다고 했다.
‘신성력에 대한 책을 구하려면 신성 제국에 가야 하나 봐.’
……그건 무리니까 포기하자.
나는 침대에 누운 채로 뒹굴거리며 책을 다시 펼쳤다.
‘신에 대해선 안 가르쳐 주니까 이 세계의 신화가 어떤지 전혀 몰랐어.’
신화가 없는 세상은 없는데 말이지.
“그럼 신은 총 세 명인 거네.”
태초 신이자 자연의 신인 가이아노스.
쌍둥이 중 형인 천신. 쌍둥이 중 동생인 악신.
‘천신이 신성 제국을 세우고 악신이 마도 제국을 세운 기원이나 다름없는 거구나.’
그럼 자연신 가이아노스는 어느 나라를 세운 거지?
‘아, 혹시 라피렌은 알까?’
내일 수업 시간에 물어봐야지!
* * *
“모릅니다.”
“라피렌이 모르는 것도 있어?!”
“예.”
하지만 다음 날, 나는 굉장히 실망스러운 대답을 듣게 되었다.
무려 라피렌이 모르는 게 있을 줄이야!
“그러엄, 경전을 구해줄 수 있어? 이 책에 보니까 신성 제국에는 경전이라는 게 있다던데!”
“구해다 드릴 수야 있지만…….”
“있지만……?”
“안타깝게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그들의 경전을 읽으실 수 없습니다. 황제 폐하께서 법으로 지정하셔서요.”
으악!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한대?
“금서를 원하시면 이 라피렌, 감옥에 갈 것을 각오하고 구해드리…….”
“아, 아냐. 괜찮아! 그렇게까지 보고 싶은 건 아니었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호기심이 있긴 하지만 누구를 범법자로 만들면서까지 궁금함을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었다.
어른이 되면 경전을 읽을 수 있을 테니까 기억해 뒀다가 그때 읽어야지.
“따님, 수업 마쳤나요?”
오늘치 공부를 끝낼 즈음 양어머니가 오셨다. 그런데 평소와는 차림이 조금 달라.
“어머니! 어디 다녀오셨어요?”
“황궁에 다녀왔답니다.”
“헉!”
어쩐지, 평소에 훈련을 하실 땐 간소하게 입으시는데 오늘따라 엄청 완벽한 차림이다 싶었어.
“아이다호 경께서 오셨으니 수업을 5분 일찍 마치겠습니다.”
“고마워, 라피렌!”
나는 라피렌에게 큰 소리로 인사하곤 쪼르르 달려 나갔다. 양어머니께서 황궁에 다녀온 이야기가 너무 궁금했던 것이다.
“따님이 읽어야 할 초대장이 두 개 있어요. 하나는 보라색 초대장이고 다른 하나는 주홍색 초대장이에요. 무엇부터 읽겠어요?”
복도로 나서자 양어머니가 등 뒤에 감추고 있던 두 개의 초대장을 내밀어 보여주셨다.
보라색 초대장 쪽이 좀 더 크기도 크고 화려해 보였기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선택했다.
“보라색이요!”
“자, 읽어봐요.”
보통 고급 종이가 아닌지 보라색 초대장은 묵직하다는 느낌이 바로 들 정도였다.
‘게다가 이건…… 황실 문장?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상어 문양이면 분명 황실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