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5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54화(54/173)
이미 어른들이 다 보셨는지 뜯어져 있었기에 난 손쉽게 안에 든 카드를 꺼낼 수 있었다.
그리고 첫 줄을 읽자마자 난 눈을 휘둥그레 떴다.
“황궁 봄 연회요?! 전 아직 데뷔당트도 치르지 않았는데 가도 돼요?”
“본래는 안 되지만…… 10년 만에 봄이 온 걸 축하하기 위해 오랜만에 열린 공식 연회랍니다. 이번만큼은 마도 제국 내의 모든 귀족이 참석할 수 있어요. 단, 열 살 이상만요.”
이상이니까…… 나도 포함되네! 그러네!
‘황궁에는 유리가 있어! 만날 수도 있겠다!’
나는 잔뜩 신이 나서 발을 동동 굴렀다.
뭐 입고 가지? 어떻게 꾸민담?
“그리고…… 따님은 황제 폐하를 접견할 거예요.”
“우와……!”
“20대 드리블랴네의 안주인 예정자로서 황가에 얼굴을 보이고 인사하는 건데…… 너무 걱정할 것 없어요. 오늘부터 황제를 대하는 예법을 별도로 익힐 테니까요.”
“네, 네에.”
엄청 부담스럽지만 안 하면 안 되는 거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내게 양어머니가 이번엔 주홍색 초대장을 내밀었다. 봉투의 겉면에는 기교 넘치는 흘림체로 ‘로이바이엄’이라고 적혀 있었다.
“로이바이엄은 저희와 같은 또 다른 고대종 가문이라고 배웠어요.”
“맞아요. 용암 와이번 일족이지요.”
그때 라피렌이 뭐라고 했더라.
“융통성 없고, 다혈질이고, 자존심이 센……?”
“바로 그게 와이번이지요. 맞아요, 따님.”
“그런데 저한테 먼저 초대장을 보냈어요?”
이거 예감이 안 좋은데.
어쨌거나 무시할 수는 없으니 나는 초대장을 열었다.
‘윽. 향수를 얼마나 많이 뿌린 거야?’
로이바이엄을 상징하는 오렌지색 봉투 안쪽에서 강한 향기가 훅 퍼져 올랐다.
코를 거머쥘 뻔했지만 일단 참고 카드를 열자 그 안에서 말린 꽃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정말 로이바이엄답다…….’
자기 과시 욕구가 대단한 것 같은데, 누가 이 카드를 보낸 거지?
나는 내용은 대충 훑고 시선을 쭉 내려 이름부터 확인했다.
“셀리나라면 분명 로이바이엄의 첫째 영애지요?”
“맞아요. 좀 복잡한 사정에 대해서는 배웠나요?”
“네. 배웠어요.”
현재 로이바이엄에는 딸만 둘이었다.
첫째의 이름은 셀리나.
둘째의 이름은 벨라디.
놀랍게도 둘째 쪽이 본부인의 딸이었고, 첫째인 셀리나는 후처가 데려온 자식이었다.
그러니까 원래 벨라디는 외동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새어머니랍시고 데려왔고, 그 밑에 딸이 딸려 있었다는 거지.
“로이바이엄 공작은 정략혼을 했는데, 공작 부인이 죽고 나서 원래 연인이었던 마담 카리나를 두 번째 공작 부인으로 데려왔다고 했어요.”
“맞아요. 첫째인 셀리나 역시 공작의 혈육이 맞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 집안에 약간의 문제가 생기게 됐지요.”
양어머니가 건조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둘째인 벨라디는 올해로 열 살. 따님과 동갑이에요. 셀리나는 세 살 많습니다.”
“이 카드를 보니까 셀리나는 벌써 사교계에 친구가 많을 것 같아요.”
“로이바이엄의 첫째 딸이 나름대로 자신의 세력을 구축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 있어요.”
역시나. 이 정도 성격이면 사교계의 꽃 자리를 노릴 만도 해.
게다가 공작 영애잖아.
“어머니, 제가 사교계에 나가서 편하게 지내려면 셀리나와 친해지는 게 좋을까요?”
“친해두면 나쁠 건 없을 거예요. 따님은 이미 혼인을 한 상태긴 하지만 나이가 어리다 보니 아무래도 영애들과 많이 어울리게 될 테니까요.”
“으음, 그렇죠?”
“하지만 셀리나가 만약 따님을 제 아래에 두려는 기색을 보인다면…….”
복도를 느리게 걷던 양어머니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망설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
나는 우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휘어지는 창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하필 양어머니와 걷던 복도에 갑옷과 함께 창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어머니가 그중 하나를 쥐더니 그대로 찌그러트려 버린 것이다.
“이런, 또 혼나겠네.”
아니, 방금 같은 행동을 전에도 하신 적 있으세요?!
‘저 정도 괴력은 있어야…… 기사 단장을 하는구나.’
난 당혹스러운 마음을 달래며 양어머니에게서 한 발짝 슬쩍 물러섰다.
갑자기 양어머니께 훈련받는 기사들이 가여워졌다.
힘내세요. 난 죽었다 깨어도 기사는 안 해야지.
“여하간, 적이 될 거라면 확실하게 적이 되세요. 이미 셀리나는 자신의 세력을 구축했습니다. 적이 될 거라면 따님의 세력을 빠르게 불려야 하니까요.”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어요.”
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공작가 며느리고, 그쪽은 공작가 딸이다.
내가 만약 드리블랴네 공작 부인이라면 로이바이엄 영애인 셀리나보다 내 지위가 좀 더 높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애매하게 비슷했다.
만약 좋은 친구가 된다면 다행이지만 셀리나가 내 위에 올라서려 한다면?
‘그때부턴 전쟁이지.’
제발, 친구하기에 괜찮은 애이길!
양어머니와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나는 어떤 방의 문 앞에 도착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가 본 적 없던 방이었기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문제는 따님의 첫 티 파티 파트너와 황궁 봄 연회 파트너를 누구로 정할지에요.”
“아.”
“그건 며칠 내로 잘 생각해서 정해보도록 해요.”
와, 이 이야기 들으면 단테랑 이안이 난리가 나겠는데.
그런데 그렇다고 후보가 그 둘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일단 공식적으로 지금 가문 내에 남아 있는 후계자는 모두 다섯 명이잖아.
이안, 단테, 그리고 이름 모를 세 명. 유리야 황자니까 별개로 치고.
‘다른 세 명도 바보가 아니면 이번 파트너를 자기가 하고 싶다고 할 것 같은데…….’
후보는 다섯, 자리는 둘.
어떡하면 좋을까?
“드디어 오셨군요오오옹!”
그런데 나름 심각했던 나의 고민은 문을 열자마자 와장창 깨졌다.
“기다리고 있었답니다앙! 제대로 모시겠습니다아아앙!”
“……엥, 엑, 윽?!”
반질반질하게 빗어 넘긴 머리칼에 색색의 핀을 꽂고 온 어깨에 수십 개의 실크를 두른 아저씨가 두 손을 꼭 모아 쥐며 내게 빙그르르 달려왔다.
그다음, 나는 정신 차려 보니 어느새 치수를 재고 있었다. 그리고 눈 깜빡할 사이에 발 사이즈를 재고 잘 어울리는 옷 색을 고르고…….
“봄 연회에 입고 갈 드레스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힘내요, 따님.”
소파에 앉아서 차를 호록 들이켜며 양어머니가 싱긋 웃었다.
으아악!
* * *
내가 황궁 연회에 초대받아서 후계자들 중에서 파트너를 구한다는 소문은 하루 만에 저택을 뒤덮었다.
“어느 분과 티 파티에 가실까?”
“역시 이안 도련님 아닐까? 솔직히 후계자님들 중에서 제일 어른스럽잖아.”
“그럼 이안 도련님은 황궁 연회에 같이 가셔야 하는 거 아냐?”
“아, 그렇긴 하지!”
빨래터에서 하녀들이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당연히 단테 도련님과 가시겠지! 얼마나 뛰어나신지 사관 학교 조기 졸업생이시잖아!”
“맞아, 맞아.”
“단테 도련님이야말로 기사를 대표하는 분이시지! 드리블랴네의 상징과도 같은 분이야!”
기사들은 모여서 그렇게 숙덕거렸고-
“물론 이안 도련님도 단테 도련님도 뛰어나지만…….”
“크흠. 글쎄…….”
“내 생각에는…….”
이안과 단테가 아닌 다른 후계자를 미는 가신들이 모여서 입방아를 찧었다.
“이난나 님, 다들 벌써 파벌을 만들었나 봐요.”
나는 오랜만에 이난나 님과 함께 산책을 하다가 그런 수군거림들을 예기치 않게 듣게 되었다.
아니, 어쩌면 이난나 님은 저런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위해 산책을 하자고 부르셨을지도 몰라.
“가문의 내정을 돌볼 때는 잘 듣는 것도 중요하단다, 아가.”
“네……!”
“항시 귀를 열어두렴. 측근 하녀가 해주는 말, 유모가 해주는 말. 그 모든 걸 들어야 하되 네가 직접 듣기도 해야 하지.”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단테와 이안, 두 아이와 친하다지?”
“네, 맞아요.”
“둘 다 괜찮은 자질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지. 허나 나는 모든 후계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할 수밖엔 없구나. 나중에 뒷말이 나오지 않도록 말이야.”
이난나 님의 말씀이 옳았기에 나는 이번에도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내일 만찬을 준비했단다. 네가 직접 선택한 다섯 명의 후계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좋겠지.”
“네, 이난나 님. 내일 식사 자리에서 다른 애들과 고루고루 대화를 해볼게요.”
“착하기도 하지.”
짧은 산책을 끝낸 이난나 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나는 겉으로는 헤헤 웃고 속으로는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맙소사. 단테가 가만있을 리가 없는데……. 무슨 신이 됐든 굽어 살펴주세요.’
제발, 제발 아무 사고 없이 끝나라.
안 그래도 요 며칠 단테의 불만이 차곡차곡 쌓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다. 왜냐하면…… 내가 너무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수업은 수업대로 다 받아야 하는데 연회와 티 파티에 입고 갈 드레스는 물론이고 장갑, 양말, 구두까지 맞추느라 오전 시간을 내내 빼앗겼다.
물론 단테는 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것조차 허락받지 못했다.
그렇잖아. 치수를 재느라 내내 속 원피스만 입고 있는데 남자애가 근처에 돌아다니면 싫단 말이야.
그런데 문제는 그게 끝나고 나면 점심을 간단히 먹은 뒤, 곧바로 수업을 받으러 가야 한다는 거였다.
내 하루 일과표는 원래도 그리 여유롭진 않았다. 그런데 황실 예법 수업까지 추가되는 바람에 이제 진짜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밤이 되면 단테와 있을 수 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일단 나는 종일 시달린 사람이기에 밤엔 조용히 혼자 있고 싶었다. 그리고 아무도 안 볼 때 몰래 예법을 복습하고 싶었고.
뭘 그렇게까지 하냐고?
‘황제는 절대 날 좋아할 리 없거든.’
이제 다들 잊어버린 것 같지만…… 그, 룩소리아 영지 사기 건 말이야.
‘그게 내 머리에서 나온 걸 알고 있지 않을까?’
나는 가신 아저씨들이 눈물을 닦아가며 박장대소했던 걸 잊지 않고 있었다.
“이게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지 알면 그 황제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크하하핫, 상상만 해도 속이 시원하군요!”
분명 이렇게 말했었지.
‘황궁에 가면 내 작고 귀여운 머리통. 안전할 수 있는 거 맞냐고요…….’
어흐흑, 무서워요. 무서워요.
‘엿 먹일 땐 좋았지, 이렇게 끌려갈 줄은 몰랐단 말이야!’
아무튼 그래서 나는 단테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최대한 완벽하게 예법을 익혀서 흠 잡히지 않는 게 먼저니까.
덕분에 찬 수프 신세가 된 단테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식사 시간마다 찾아와 뚱하니 날 쳐다보곤 했는데…….
‘내일 다른 애들과 다 같이 밥을 먹는다면…… 그것도 모자라서 내가 다른 애들과 더 대화를 많이 한다면.’
음, 난 모르겠다.
어떻게든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