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5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55화(55/173)
* * *
하지만 나는 단테의 독점욕을 너무 얕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이튿날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 만찬장에 내려간 나는 굉장히 의아해졌다.
분명 식기는 나와 이난나 님까지 포함하여 일곱 개가 차려져 있는데…… 왜 앉은 사람은 단테랑 이안뿐이야?
나머진 어디 가고?
“어서 와, 플로린. 오늘 하루는 어땠어?”
내 심신 안정에 큰 도움을 주는 이안이 언제나 그렇듯 다정하게 물어왔다.
“어……. 좋았어. 그런데 다들 늦게 오는 거야?”
나는 일단 내 이름이 쓰인 카드가 놓인 자리를 찾아 거기에 앉은 다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만찬에 늦으면 이난나 님이 별로 안 좋아하실 텐데.”
“음, 그게 사실은…….”
이안이 곤란한 미소를 머금으며 단테를 눈짓했다.
그러자 단테가 만찬장이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헹’ 하고 코웃음을 쳤다.
“약해빠진 새끼들.”
“……단테, 뭐 했어?”
“심심해서 대련하자고 했을 뿐이야.”
“대련? 너랑?”
“너무 먹고 놀았더니 찌뿌둥해서.”
입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하다니!
나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가증스레 대답하는 단테를 멍하니 쳐다봤다.
그러니까 지금 만찬 자리에 다른 애들이 나오는 게 싫어서 다 패버렸다는 거 아냐.
“난 대련한 거다? 그리고 비겁하게 대련을 피한 건 네 옆에 앉은 그놈밖에 없어.”
“형이라고 해야지. 그리고 대련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해서 비겁한 건 아냐!”
맙소사. 네가 왜 원작에서 가문을 말아먹었는지 잘 알겠어…….
나는 뒷목을 잡으며 한숨을 뱉었다. 잠시 후면 이난나 님이 오실 텐데 뭐라고 설명하려고.
“엄밀히 말하면 대련도 아니었지. 다짜고짜 목검을 들고 머리부터 내려쳤잖아.”
“뭐어어어?!”
쾅!
이안의 증언에 흥분한 나는 식탁을 그대로 내리쳤다.
“단테! 그럼 안 돼!”
“아, 그건 너니까 그랬고. 다른 애들한테는 정식으로 대련 신청했거든?”
“이안한테도 그러면 안 돼!”
얘를 어떻게 사람 만들지?
이렇게 무작정 안 된다고 해봤자 귓등으로도 안 들을 텐데.
‘어떻게든 사람으로 만들어놔야 해. 안 그러면 내 노후, 장담할 수 없어…….’
나는 울상이 되어서 포크를 노려보았다.
내가 생각했던 미래 대비 계획이 조금씩 수정되고 있는데 그건 단테 탓이 제일 컸다.
‘처음엔 라흰을 막기 위해 내가 이 집안 사람들과 먼저 친해지면 될 줄 알았어. 원작 남자주인공과도 내가 먼저 친해지고.’
근데 지금 보니 그래 봤자 소용없다. 내가 아무리 잘한들 문제는 단테였다.
그나마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게 참을성 많고 어른스러운 이안이라서 겨우 이 정도에 그친 걸지도 몰라.
‘하지만 어른이 되면…… 유리를 만나게 될 테지.’
그리고 단테와 유리는 사사건건 부딪힌다. 라흰은 당연히 둘을 중재할 힘이 없었고.
“너와 싸워서 얻을 게 없는데 내가 왜 싸워야 하겠어, 동생.”
“말끝마다 동생, 동생 하지 말랬지.”
“하지만 동생인걸? 억울하면 좀 더 일찍 태어나지 그랬어.”
이안이 싱긋 웃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기가 사악 도는 게, 역시 화가 났구나.
“이안, 목검에 맞진 않았어?”
“응. 그렇지만 많이 놀랐어.”
“나라도 크게 놀랐을 거야…….”
“이따 나랑 식사하고 같이 산책하지 않을래? 플로린이랑 잠시 걸으면 놀란 마음이 진정될 것도 같아.”
화난 마음이겠지.
난 속으로 이안의 말을 정정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산책하면서 이안이라도 달래야겠다. 단테는…… 나중에 생각하자.
“비겁한 여우 새끼.”
끼이이익.
단테가 나이프를 들더니 몹시 끔찍한 소리가 나도록 빈 접시를 긁었다.
심술이 덕지덕지 묻어나는 행동에 나는 제발 이난나 님이 어서 오기만을 빌었다.
숨 막혀요!
“식사하다 체하겠구나.”
그때, 구원이 나타났다. 이난나 님께서 오신 것이다.
“보기 싫으니 일단 때려눕혀서 치워버린다니. 어찌나 네 어미를 닮았는지.”
“제가 엄마를 많이 닮았어요?”
“그래. 하지만 칭찬이 아니다.”
“칫. 그래도 좋아요. 엄마를 닮은 거잖아요. 제가 엄마 아들이니까.”
단테는 유독 ‘아들’을 강조해서 말했다. 마치 아들이 저 하나밖에 없다는 것처럼.
이안은 묵묵히 듣고만 있었는데 그 모습이 더 짠해서 나는 남몰래 손을 뻗어 이안의 손을 쥐었다.
“!”
움찔한 이안이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모른 척하며 테이블 안쪽으로 손을 당겨와 숨겼고.
이건…… 그래, 동질감이었다.
희희낙락하며 부모님과 여행 갔던 얘기를 하는 친구들 앞에서 할 말이 없어 조용히 입을 다문 채 있어야 했던 게 갑자기 떠올랐거든.
이안은 항상 이렇게 내가 김아람이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식사를 내오게.”
“예, 큰 마님.”
음식이 나오면서 손을 놓아야 했지만 그래도 내가 잠깐의 위로를 준 거였으면 좋겠다.
나는 이안이 많이 서럽지 않기를 바라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식사는 충분히 맛있었다.
* * *
후식으로 나온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캐러멜 시럽을 듬뿍 뿌리고 절인 체리까지 얹어 먹은 나는 배를 통통 두드리며 정원으로 나섰다.
단테가 재빨리 일어서서 나를 따라오려 했지만 이난나 님이 적절하게 막아주셔서 다행이었다.
이난나 님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으시다는데 어떻게 무시하겠어?
“우리 둘이서만 걷는 거, 오랜만이다. 그치.”
“그러게. 이안도 훈련하느라 많이 바빴지?”
“응. 얼마 전에는 가주님이 따로 부르셨어.”
“뭐어?”
“잘하고 있다고 칭찬해 주시더라.”
“잘됐다!”
할아버님께 인정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건 나 역시 잘 알았기에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었다.
“축하해, 이안.”
“애기가 축하해 주니까 기분 좋네.”
“아이, 참. 애기라니. 나, 두 살밖에 안 어리다?”
“두 살이나 어린 거야.”
이안은 왜 자꾸 나더러 애기라고 부른담. 나도 밖에선 귀부인 소리 듣는데.
‘뭐, 이안은 진짜 큰 오빠 같은 느낌이어서 싫진 않지만.’
그래도 난 괜히 볼을 부풀렸다.
“이런, 삐졌어?”
“아니. 그냥 장난이었어.”
하루 종일 날씨가 좋더니 밤이 되었는데도 달이 밝았다.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이 뺨을 부드럽게 간질이고 파릇한 싹을 틔운 나무들이 선선하면서도 시원한 향을 내뿜었다.
몇 걸음 앞서 걸어가 이안을 지나친 나는 몸을 빙글 돌리며 환하게 웃었다.
“이안 오빠!”
“!”
“어때? 오빠 소리 들으니까 좋아?”
“……응. 너무 좋은걸.”
이안이 놀란 듯 살짝 눈을 치떴다가 사르르 웃었다.
단테가 이안더러 여우, 여우 하는데 사실 고백하자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이따금 저렇게 웃을 때면 정말 여우 같아서.
어쩌면 아버지 쪽이 여우 족이었을까?
“이안은 아빠를 만나보고 싶은 생각은 없어?”
“아버지라……. 글쎄. 어머니가 선택한 사람이니 아마 썩 괜찮은 사람일 테지.”
“으응.”
“그래서 지금은 만나고 싶지 않아.”
이안의 얼굴에 음영이 드리웠다. 그래서 그런지 퍽 진지하게 느껴져서 나는 숨 쉬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아마 아버지는 내 존재를 모를 거라고 생각해.”
“응.”
“내가 태어났을 시기는 전쟁이 한창 격화되던 때였어. 내 아버지가 누구인지에 대해 가문에선 최대한 쉬쉬해야 했을 거야. 내 친부는 어쨌든 간에 적이니까. 게다가 어머니 성격도 한몫했겠지. 그 어머니가 괜히 일 복잡해지게 알렸을 리 없어.”
시니컬한 어조. 처연한 표정.
그 두 가지가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왜냐하면…… 왜냐하면 정말 괜찮은 아이는 저런 표정을 짓지 않으니까.
“아버지, 보고 싶구나.”
“뭐…… 이제 전쟁도 끝났으니 언젠가는. 어머니가 내 친부에 대해 뭘 남겨놓았나 싶어서 유품을 다 뒤져봤는데 역시 그런 건 없었어. 내 친부가 누구인지 절대 못 찾게 하고 싶으셨던 거겠지.”
“대체 누구기에 그렇게 꽁꽁 숨기신 걸까?”
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나야 첩자에 불과한 신세였으니 친부모라 해봤자 그리 대단한 인물은 아닐 터였다. 평민이겠지.
어쩌면 알비노가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나를 돈을 받고 팔았을지도 몰라.
어떤 경우의 수를 따져 봐도 부정적인 결과만 도출되었기에 난 내 친부모에 대해 좋은 감정이 전혀 없었다.
별로 만나고 싶지도 않고, 평생 모르고 지냈으면 좋겠어.
만에 하나 나중에 어디서 나타나선 고구마 천억 개 막장 드라마처럼 내 발목을 잡으면 어떡해?
하지만 이안은 나와 사정이 좀 달랐다.
“글쎄…… 아직 어려서 내가 알 수 있는 정보가 제한적이더라. 다만…….”
“다만?”
“당시 전쟁 때 신성 제국에서 병력이 모자라니까 용병을 대거 고용했대. 그리고 이건, 얼마 전에 알게 된 건데.”
커다란 나무 앞에 멈춰 선 이안이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런 이안의 앞에 걸린 달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꼭 그가 방금 달에서 내려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용병왕의 머리 색이, 나처럼 붉은 빛깔이래.”
“와, 정말? 그럼 이안이 용병왕의 아들일 수도 있는 거네!”
“그랬으면 좋겠다 싶을 뿐이야.”
이안이 쿡쿡거렸다.
잠시 뒤, 우리는 정답게 웃으면서 건물로 돌아왔다.
어디서 배운 건지 이안이 자꾸 농담을 던져서 웃음이 날 수밖엔 없었어. 마지막엔 너무 웃겨서 깔깔거리다 눈물마저 글썽였다니까.
그런데 현관을 통과하자 거기엔 단테가 있었다.
이미 침실에 갔을 거라 생각했기에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뭣보다 이난나 님께 혼이라도 났는지, 단테의 표정이 영 안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