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5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56화(56/173)
“이리 와, 플로린.”
“단테, 화났어?”
“플로린은 내 거야.”
탁.
낮게 중얼거리던 단테가 내 손목을 잡아챘다. 갑작스레 당기는 힘이 지나치게 강해서 나는 곧바로 눈살을 찌푸렸다.
“놔, 단테. 아파.”
“……치사해. 내가 먼저 만났더라면 널 나눠 갖지 않았을 텐데.”
“내가 물건이야? 나눠 갖니, 마니 하게?”
처음엔 이해해 보려 했는데 단테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와락 화가 돋았다.
언제 한번은 따끔하게 말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이 그 날인가 봐.
“그 손 놔, 단테. 플로린이 아파하잖아.”
두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던 이안이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단테는 이미 눈이 반쯤 맛이 가 있었다.
‘저건 분명 폭주할 때 봤던 그 눈인데……!’
아버님이 단테의 병을 돌봐주고 계신 거 아니었나?
‘아, 아니. 이럴 게 아니라, 꽃을 피워야지!’
그런데 당장 주변에 잡히는 게 없었다.
연성술은 대가를 지불해야만 하는데 이런 복도에 뭐가 있겠어.
“놓으라고 했어. 좋은 말 할 때.”
내가 더 다칠까 봐 걱정되는지 이안이 화가 난 어조로 싸늘하게 경고했다.
방금까지 키득대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위압감이 복도를 꽉 메우듯 무겁게 내려앉았다.
“내 거야. 안 뺏겨.”
그에 대응하듯 단테의 전신에서도 우성 페로몬이 확 분출되었다.
날카로운 이를 드러낸 검치호가 사나운 울음을 내뱉는 듯한 느낌에 힘들어진 건 내 쪽이었다.
“우욱.”
토, 토할 것 같아.
두 개의 강력한 페로몬이 마치 용과 호랑이처럼 서로를 물어뜯으려 하며 부딪쳤다. 오직 페로몬만으로 온 대기가 부옇게 보일 지경이니 말 다 했지.
‘어지러워.’
꽃을 피워내야 하는데. 그래서 단테를 진정시켜야 하는데……. 눈앞이 헤롱거려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 내 몸을 꽉 짓누르는 것만 같아. 진짜로 숨을 못 쉬겠는데, 나.
“너, 정말 싫어.”
그때, 단테가 나지막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내 귓가에 내려앉았다. 동시에 내 손목을 거머쥔 단테의 손이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내게 하는 말인지, 이안에게 하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이제 단테의 청록색 눈동자에서 이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다.
아마도 자신의 의지로 폭주를 제어하려던 것도 집어치운 것 같은데…….
‘아, 어떡…… 어떡해.’
숨을 헐떡이던 나는 다리에 힘이 풀리는 걸 느리게 알아차렸다.
미쳐서 날뛰는 두 사람의 페로몬은 너무 강력했기에 알비노인 내가 견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플로린!”
눈앞이 흐려졌다. 도저히 더 버틸 수 없어 무릎이 풀썩 꺾이던 바로 그 찰나-
“놓으라고, 했지!”
파아앗!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눈앞이 하얗게 점멸했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건 이안에게서 어마어마한 페로몬이 터져 나왔다는 것. 그리고 이안이 짐승화 한 단테를 바닥에 때려눕히는 광경이었다.
‘음…… 개판이네…….’
나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눈을 감았다.
온몸이 지끈거리고 아팠다.
* * *
“플로린, 눈 좀 떠봐!”
“신중해야 합니다. 지금 작은 마님의 몸은 부서지기 직전이나 다름없어요. 마법으로는 안 됩니다!”
“마법이 오히려 독이 될 겁니다. 자연적으로 이겨내시게 둘 수밖에는…….”
그날 새벽. 플로린의 침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소란스러웠다.
탕약을 끓이는 냄새가 가득 들어차고 가문 내의 마법사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논의를 했다.
가문의 주치의는 맥을 짚고 뒷목도 짚었고 린다와 유모, 에반젤린은 곁에 붙어 앉아 작은 소녀의 얼굴을 물수건으로 연신 닦아주고 있었다.
새액, 새애액.
폐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거칠고 힘겨운 호흡이 이어지자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이난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외부 일정 탓에 나가 있었던 가주, 임마누엘은 돌아오자마자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왔다.
뒤이어 달려온 것은 하필이면 오늘 견습 기사들을 이끌고 수도 바깥의 훈련지까지 다녀온 살로네스였다.
“아아,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날카로운 질책에 무릎을 꿇은 채 두 팔을 들고 있던 두 소년이 움찔했다.
변명할 여지없이 그들의 잘못이다. 플로린이 저렇게 된 것은.
“플로린은.”
그때였다. 침대 가까이에 기대어 서 있던 사내가 피가 식을 만큼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알비노 족이다.”
“…….”
“알비노 족은 이큘리스가 태어날 때부터 거의 없으며…… 그 체질상, 페로몬에 면역이 없다. 분명 너희도 알 텐데.”
플로린이 앓게 된 이유는 어떻게 보면 간단했다. 제어하지 않은 정순한 우성 페로몬을 흠뻑 뒤집어썼기 때문이다. 한 놈도 아니고, 두 놈의 것을.
키락서스는 고개를 푹 숙이는 단테와 이안을 보며 입매를 비틀었다.
“제아무리 플로린이 씩씩하게 군다 한들, 저 아이는 너희 생각 이상으로 연약하다. 이런 상황에 남들은 다 편히 쓰는 마법 치유조차 못할 정도로.”
이번엔 단테의 고개가 좀 더 내려갔다.
단테는 지금 그냥 딱 죽고 싶었다.
이안과 함께 행복하게 웃고 있는 플로린을 보자마자 속에서 뭔가가 비틀렸다. 때마침 폭주할 것 같은 기운이 감돌자 그걸 막으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폭주라는 핑계를 대고 이안을 때려눕히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내가 생각이 짧았어. 내 잘못이야. 전부…….’
정신이 나간 채 이안에게 달려든 단테는 플로린이 쓰러지는 것도 몰랐다. 그저 눈앞의 상대를 찢어발기고 싶어서, 그 욕망에 몸을 내던졌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안이 그 순간 우성 페로몬을 각성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막아내 주었다. 플로린이 더 다치지 않도록.
그리고 단테는 긴급 상황을 알아차리고 나타난 숙부에 의해 완전히 제압당하고 정신을 차렸다.
너무 당연하게도 남은 건 자괴감뿐.
플로린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싶은데 벌써 세 시간이 지나도록 깨어나질 못했다.
“처음부터 어른에게 알렸어야지, 이안. 그게 먼저가 아니었더냐? 네가 맞서 대응하지 않고 유연히 넘겼더라면 이런 상황까진 오지 않았을 거다.”
“……잘못했습니다.”
키락서스의 질타에 이안이 깍듯이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이후, 키락서스는 곧바로 단테에게 시선을 던졌다.
“너는.”
흠칫.
두 눈을 질끈 감은 단테가 혀를 깨물며 몸의 떨림을 멈추려 애를 썼다.
“네 기분이 좋을 때만 아내를 챙기는 사내가 될 모양이구나.”
“……!”
“네 기분이 나쁘면 멋대로 굴고, 다치게 할 셈인가?”
결국 단테는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인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사관 학교에 있을 땐 이런 일에 대해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제 기준에서 약하다고는 해도 모두 훈련을 받은 아이들이다. 페로몬 자체에 면역이 없는, 우성 페로몬을 뒤집어쓰기만 해도 앓아눕는 정도라면 사관 학교의 근처도 오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이 또한 다 변명이겠지.
‘지켜, 지켜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뭐야.
뚝, 뚝.
커다란 눈물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단테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 채 그저 후회하고 반성했다.
“너무…… 내지 마세…….”
그때였다.
미약한 음성이 엉망진창이 된 분위기 속으로 살며시 내려앉았다. 그건 마치 한 오라기 털실 같았으며 비 온 뒤에 슬그머니 걸린 무지개 같았고 마른 땅에 툭 떨어진 첫 빗물같이 여렸다.
“제가, 혼낼 테니까…….”
끝으로 갈수록 사그라드는 목소리에 덜컥 겁이 난 단테는 팔을 들고 있어야 하는 것도 까먹고 울면서 무릎걸음으로 기어갔다.
“흐어엉, 플로리이이인! 죽지 마아. 내, 내가 잘못했어.”
하지만 그 울음을 들어줄 플로린은 다시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여기까지 하지. 우선 아이가 쉬어야 하니 돌볼 사람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돌아가도록.”
이윽고 임마누엘이 엄중히 상황을 정리했다.
이렇게 옆에서 떠들어 봤자 플로린의 상태가 나아지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을 테니 필수 인력을 제외하고는 제 방으로 썩 꺼지는 게 답이었다.
“저는 남겠습니다.”
“네가 제일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만, 키락서스.”
“눈을 뜨면 저를 찾을 겁니다.”
“그래, 네 고집을 누가 말리겠느냐.”
키락서스는 허공에서 의자를 불러내 침대 옆에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앉았다.
아까부터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게 페로몬을 갈무리하고 있는 키락서스는 플로린에게서 조금도 눈을 떼지 않았다. 아주 작은 징후라도 모조리 발견하겠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