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6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60화(60/173)
“있지, 난 두 사람이 부럽다?”
“부러워?”
“응. 나는 가족이 없잖아. 지금은 양어머니도 계시고 아버님도 계시고 할아버님도, 이난나 님도 다 계시지만…… 그래도 딱 하나, 없는 존재가 있어.”
“…….”
“형제, 자매. 내 동생이나 언니나 오빠. 그건 내가 영원히 가질 수 없겠지. 그래서 난 두 사람이 부러웠어. 이부 형제라도…… 형제잖아.”
두 사람이 친해지게 하기 위해 꾸며낸 말이 아니었다. 이건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온 진심이다.
그걸 알아차렸는지 이안이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럼……. 내가 네 가장 친한 친구가 되고, 오빠가 되고, 또 남편이 될게. 내가 모든 역할을 다 해주고 싶어, 플로린.”
내 손을 가져가 뺨에 가만히 댄 이안은 평소보다 훨씬 가라앉은 분위기였다.
장난이나 농담으로 들리지가 않아서 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나, 이제 우성 페로몬을 각성했으니까……. 네 남편 후보가 될 수 있어.”
“으응……. 응? 뭘 각성했다고?”
“우성 페로몬!”
대답과 함께 이안이 환하게 웃었다.
내내 어둡던 표정이 확 펴지는 광경은 마치 겹겹이 쌓인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고개를 빼꼼 내미는 것처럼 그렇게 귀했다.
‘아니, 내가 알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널 지키고 싶어서 그랬나 봐. 네가 나를 구해줬듯이.”
이안의 금색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희망이 반짝였다. 그건 삶에 대한 희망이었고 확신이었다.
보는 내가 다 홀릴 정도로 강렬한 반짝임이 이안의 안에 자리를 잡았다.
얼떨떨했지만 난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축하해, 이안! 정말 잘됐다!”
난 이안을 확 껴안으며 기쁨을 분출했다.
이안은 좋으면서도 어쩔 줄 몰라 했는데 그래도 결국 나를 얼싸안아 주었다.
“자, 단테도 이리 와! 다 같이 안자!”
비록 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단테도 결국 이안에게 팔을 뻗었다.
보기만 해도 으르렁대던 두 사람이 억지로나마 서로에게 닿기도 하는 걸 보니 왜 이렇게 뿌듯한지.
‘쓰러진 것 정도는 충분히 치를 만한 대가였잖아?’
그때였다.
꼬르르륵.
내 배에서 천둥 같은 소리가 울렸다. 그와 동시에 한 박자 늦게 이안의 배에서도, 단테 역시도 꼬르륵하는 소리가 났다.
그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간 웃음을 터트렸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하나로 묶어졌음을 알 수 있었다.
‘응, 앞으론 괜찮을 거야.’
어색해도 둘이 같이 잘 지내보려 하겠지.
무겁던 짐이 덜어진 느낌이라 마음이 몹시 가뿐했다.
‘그런데 뭘 잊은 것 같은데…….’
고개를 갸웃하던 난 침실에 들이닥친 한 무리의 사람들에 정신이 팔려 뭘 기억해 내려 했는지 금세 잊고 말았다.
* * *
‘행복해졌구나.’
그 시각, <책>을 덮은 유리는 수조의 유리 천장을 향해 가볍게 뛰어올랐다.
이곳을 나가고 싶다. 갑갑한 수조를 벗어나 내가 여기 있다고 알리고 싶었다.
‘하지만…… 좀 더 기다려야겠지.’
물결 아래에서 보는 태양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쥘 수만 있다면 놓고 싶지 않을 만큼.
하지만 세상에 햇볕을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제아무리 가까이 다가가도 결국 추락할 뿐.
유리는 서서히 바닥으로 가라앉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플로린이 행복해진 건 바라던 일이다.
그는 자신이 불행한 처지에 놓였다 해서 플로린이 똑같이 괴롭기를 바라는 소인배는 아니었다.
다만…… 조금 속상했다. 저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 같아서.
‘내겐 너뿐인데…….’
그에게 있어 세상과 소통할 창구는 오직 <책>뿐이다.
이따금 물기로 글씨를 쓰면 <책> 속 인물에게 닿을 순 있지만 한 번 소통을 하고 나면 오랜 시간 기다려야 했다. <책>의 일정 페이지 수가 채워진 뒤에야 다시 소통을 시도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 유리는 이 많은 물속에 있으면서도 발작적으로 목이 말랐다.
‘그래도 네가 싫어하는 게 뭔지, 네 이상형은 어떤지 알게 되었으니까…….’
유리의 눈꼬리가 우아하게 휘었다.
그는 ‘실수’하지 않을 것이다. 그의 친애하는 이부 형제들처럼.
* * *
새가 짹짹 지저귀고 산들바람이 온화하게 불어오는 어느 날이었다.
“신실한 사도가 가로되, 세상에 이리 많은 생명이 있사옵니다. 믿는 자와 의심하는 자가 한데 섞여 있사온데 어찌 구별하실 수 있나이까 하니 하늘에서 천둥과도 같은 음성이 내려오되 내 너희를 위해 구원자를 보내었다. 그는 몇만의 날짐승과 길짐승 그리고 물짐승 속에서 오롯 너를 알아보리라.”
나는 낭랑한 목소리로 또박또박 문장을 읽어 내렸다.
“거짓을 고한들, 그는 너희를 꿰뚫어 보리라.”
굉장히 난해하게 쓰인 이 문장들은 모두 어떤 책에 나와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 책을 한 장 한 장 훑으며 꼼꼼하게 독서 중이었는데, 사실 고백하자면-
“이게 다 뭔 말이야아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나는 책상에 뺨을 꾹 눌러 대며 경전을 흘겨보았다. 좀 쉬운 말로 알아듣게 써두면 어디가 덧나냐고요!
누구든 붙잡고 이게 무슨 말 같으냐고 물어보고 싶었지만…… 응, 여긴 마도 제국이다. 경전에 대해 제대로 배운 사람도 없고 그걸 믿는 사람은 더 적은 곳.
어제 은근슬쩍 린다에게 신을 믿느냐고 물어봤다가 엄청 귀여움 당하기나 했다니까.
“어머, 어머! 작은 마님께서 벌써 그런 고차원적이고 철학적인 생각을 하시다니요! 역시 똑똑하세요!”
“……그래서 린다는 믿는 거야, 안 믿는 거야?”
“당연히 안 믿죠! 신이 어디 있어요? 만약 있는데 이렇게 모두가 굶주리는 걸 지켜보고만 있었던 거라면…….”
순간, 린다의 표정이 몹시 싸늘해졌었지. 나는 린다가 그렇게 경멸스럽고, 원망스러운 눈을 하는 걸 처음 봤다.
“……글쎄요. 그런 신, 저는 필요 없네요.”
“으, 으응.”
“그래도 우리 작은 마님께서는 나중에 신성 제국 놈들과도 만나게 되실 테니까요! 이런 철학적인 고민을 하시는 건 좋은 일이에요. 그놈들은 정말 신밖에 모른다니까요?”
그렇게 대화는 내 칭찬으로 귀결되었다.
그리고 나는 큰 교훈을 얻었다.
‘앞으로 절대, 내가 경전을 보고 있다는 걸 들키지 말아야지…….’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뭐, 나라고 딱히 신의 존재 유무를 믿는 건 아닌데……. 경전을 들고 있는 걸 보이면 왠지 린다가 또 그런 표정을 지을 것 같아서.
그리고 린다 외에도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이 들었다.
‘에휴.’
결국 경전을 덮은 나는 그 두꺼운 책을 빤히 바라보며 그래서 이걸 대체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 고민했다.
처음엔 있는 줄 몰랐는데 자기 전에 발견했거든.
‘아버님이 갖다 두셨나? 아니면 라피렌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구해준 건가?’
그도 아니면…… 이 집에 신성 제국에서 보내온 첩자가 있는 건 아니겠지…….
“야아, 밀지 마!”
“너나 밀지 마!”
“이러다 들켜!”
“너나 들키겠지!”
……음, 오늘의 사색은 여기까지 할까.
나는 경전을 품에 안은 채 벌떡 일어나 도도도 달려갔다. 그러곤 몸을 숙여 침대 밑에서 보물상자를 꺼냈다.
이 보물상자는 내 환영 연회 당시에 누가 준 건데 지금 같은 상황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여기에는 말이야, 내 비밀이 들어 있어. 손대면 안 돼.”
“아으으으, 귀여우셔라! 이제 비밀을 만드실 때가 되셨군요! 절대 손 안 댈게요! 지켜드릴게요!”
그렇게 린다와 유모의 약속도 얻어내 놓았다.
어차피 이 방을 청소하는 건 린다라서 린다만 이걸 열지 않으면 돼.
이윽고 나는 치마에 묻은 먼지를 팡팡 털곤 문가로 척척 다가갔다.
“너희들!”
“으아악!”
“여기서 뭐 해?”
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도망치려다 다리가 꼬였는지 서로 얽혀서 넘어져 버린 남자애들이 보였다.
“아. 안녕. 플로린.”
벌써부터 안경을 끼고 길게 기른 머리를 하나로 묶고 있는 녀석의 이름은 메르엠 드리블랴네.
초록색 눈이며 밀짚색 머리칼, 어딘가 엉성한 차림 따위가 왠지 보호 본능을 불러일으키는데……
저래 봬도 수학에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수학에‘만’ 재능이 있어서 게르드 같은 애들에게 사사건건 괴롭힘을 당했다나.
애초에 가주가 될 생각은 전혀 없고, 장래희망은 드리블랴네에서 운영하는 은행의 총은행장이 되는 거였다.
“일어나, 메르엠.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오늘은 이안도, 단테도 훈련을 갔다고 해서…… 찾아와 봤어.”
……순하기도 하지. 어떻게 이 집안에 이런 애가 태어났나 몰라.
나는 메르엠의 손을 붙잡고 일으켜 세워준 다음 옷깃을 툭툭 털어주었다.
“나빠, 나쁜 놈들이야! 자기들만 플로린을 독차지하고! 나도! 같이 놀고 싶은데!”
씩씩거리며 복도가 떠나가라 항의하는 이 녀석은 앙드레 드리블랴네.
자존심도 세고, 경쟁심도 세고, 시끄럽기도 했지만 게르드에게 가담하지 않은 아이였다.
게다가 이 집안 애들은 하나같이 제 나이보다 성숙한데…… 제일 그 나이 같달까. 욕이 아니라 칭찬이다.
나는 앙드레의 어두운 흑갈색 머리칼을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미래에 흑륜 기사단에 들어갈 거라며?”
“응! 흑륜 기사단은 최고로 멋지니까! 내가 언젠가 기사단장이 될 테야.”
“그럼 앙드레도 지금 훈련하러 가야 하는 거 아냐?”
“……윽, 그게.”
앙드레가 몹시 찔린 표정을 지으며 시선을 회피했다.
왜 저러나 싶었는데 답은 의외로 메르엠 쪽에서 나왔다.
“그 둘이 훈련받을 땐 근처에도 못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