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67)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67화(67/173)
나는 표정 관리를 하기 위해 애를 썼지만 점점 미간이 좁혀졌다.
그런데 그때 이안이 내 앞으로 한 걸음 나서 황후를 향해 뭔가 말을 건넸다. 키 차이 덕분에 나는 자연스레 이안에게 가려졌고.
‘고마워라.’
제발 저를 주목하지 마세요.
나는 옅게 심호흡을 하며 울렁이는 가슴을 가라앉히려 노력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곧 적응했는지 괜찮아졌기에 나는 허리를 바로 펼 수 있었다.
“그래, 듣자 하니…… 성녀라고 했지요?”
“예.”
“폐하께서 공식적으로 인정하셨다는 말은 들었어요. 그래도 여긴 신성 제국이 아니다 보니 특별한 대우는 없겠지만.”
그러니 특별 대우 받을 생각 따윈 조금도 하지 말라는 말씀, 잘 알아들었습니다.
딱히 그런 걸 바란 적도 없었으니 서운하지도 않았다. 처음에 드리블랴네에 정착하기 위해 한 변명에 불과했으니 사실 이젠 좀 사라져도 될 칭호인데…….
성녀에 대한 마도제국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세 가지로 갈렸다.
1번. 신기해한다. 그걸로 끝.
2번. 신도, 신성력도 믿지 않으므로 그다지 내켜 하지 않는다.
3번. 평민의 경우, 기사에게 붙는 ‘경’처럼 그냥 귀족이 만든 칭호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 1번이었지만 이따금 2번이 있었기에 골치 아팠다.
“뭐……. 덕분에 신성제국을 재미나게 도발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쪽의 교황이 마도제국에 성녀가 있을 리 없다고 길길이 날뛰었다지요.”
황후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극비리에 성녀를 납치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니 고마운 일입니다. 그렇게 국경을 넘는 자들을 잡아 정보를 잘 취하고 있다는 소식 또한 내 들었습니다.”
……그런 일도 있었나요?
‘내가 그런 방식으로 황가에 쓸모가 있을 줄은 몰랐네.’
뺨을 긁적이다 아버님을 슬쩍 올려다본 나는 1초 만에 고개를 휙 내렸다.
‘힘줄! 힘줄 튀어나왔어!’
아마 이건 내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나 보다.
나는 황급히 두 손으로 눈을 가렸다.
에비, 아무것도 못 보고 못 들은 거야 나는.
“그러고 보니 황후 폐하. 오늘은 황제 폐하께서 아기님의 태명을 지어주신다던가요.”
아버님이 차분하지만 분명 속으로 이를 갈고 있는 말투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러자 황후의 표정이 꿈이라도 꾸는 것처럼 곧바로 몽롱해졌다.
“아……! 맞아, 그랬지.”
황후는 바보가 아니었다.
이성적 판단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면 황후 자리에 머물 수 없었겠지.
‘정말로 아기에 대한 것만…….’
그럼 진짜 임신하게 되면 그 아기는 대체 얼마나 예쁨을 받게 될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그냥 문득, 황후에게 상상 임신이 아니라 정말 아기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 분명 드리블랴네에선 귀찮아질 테지만, 저렇게 소중히 여기는데 누구라도 태어나서 저 사랑을 다 받으면 좋잖아.
“모시겠습니다.”
황후의 행렬이 떠난 다음, 우리는 마침내 머물 곳으로 안내받을 수 있었다.
“쓸 만한 방이로군.”
이곳도 사관 학교 때와 마찬가지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중앙에 거실이 있고, 두 개의 방이 나왔다.
이안과 내가 한 호실을 쓰고, 옆 호실은 이난나 님이 단독으로 쓰시기로 되었는데 도착해 보니 벌써 린다가 잽싸게 짐을 다 풀어두었다.
“여기서 분수 정원이 엄청 잘 보여요, 작은 마님!”
“와, 밤에도 예쁘겠다!”
“그렇죠? 아쉬우시면 방에서 같이 놀아요.”
어린이들은 연회 참석을 허락받았지만 9시까지만 머물 수 있었다. 그 이후부터는 어른의 시간.
나와 이안은 밤 9시가 되면 여기로 돌아와야만…….
“아!”
“응? 왜 그러셔요?”
“황후 폐하가 왜…… 황궁에 묵어야 한다고 하셨는지 알 것 같아서. 이번 연회에는 아이들도 대거 참석하는데 다들 밤늦게 부모님 없이 집에 돌아가면 위험하잖아.”
비록 황후 폐하가 내게 다정히 대해주시진 않았지만 사람이 나쁜 것 같진 않았다. 오히려 어느 면에서는 굉장히 자애로운 것 같아.
“그런데 모든 집 아이들이 다 사랑받고 있는 건 아니니까. 어떤 아이는 집에 데려다줄 마차도 마부도 없어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될지도 모르고.”
멀리 갈 것도 없이 로이바이엄의 둘째 영애만 생각해 봐도 답이 나오잖아.
셀리나 로이바이엄이 심술을 부려서 ‘넌 걸어와’라고 한마디만 해도 둘째는 정말 걸어가야 할 것이다. 아니면 황궁 정원 어귀에 몸을 숨기고 찬 이슬을 맞으면서 아침까지 기다리거나.
어느 쪽이든 최악이었다.
그렇다고 황궁에서 자는 걸 선택적으로, 특히 지방의 힘없는 소귀족들만 하는 것으로 해버리면 로이바이엄처럼 세력이 강한 가문이 황궁에서 잘 리가 있나.
‘어, 잠깐만.’
그러면 이거 혹시 황후가 벨라디 로이바이엄을 배려한 건가?
너무 퍼즐이 딱딱 맞아 들어가서 소름이 돋았다.
“아버님, 황후 폐하는 벨라디 로이바이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세요?”
궁금한 건 바로 해결하는 게 좋다. 내 옆엔 만능 대답기가 있으니까!
그리고 아버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긍정하셨다.
“네가 유추한 그게 맞을 거다.”
“헉!”
“사람이란 양면적이지. 누군가에게 ♪♬♩같은 자가 내게는 지극히 좋은 사람일 수 있고.”
어, 중간에 이상한 게 끼어 있는데요.
아무튼 무슨 뜻인지는 이해했다.
“그러니까 내게 좋은 사람만 좋게 대하고, 내게 나쁜 사람은 그냥 나쁘게 대하면 된다는 거지요?”
“그래. 바로 그거다. 남의 사정 다 이해하려다간 머리가 터져버릴 테니.”
드리블랴네의 가르침은 어렵지 않아서 좋다니까.
그런데 아버님이 잠시 뜸을 들이더니 내 어깨를 툭 짚으셨다.
“하지만 그 상대가 적이라 하더라도, 만에 하나 네가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뒷감당은 내게 맡기고 너는 네가 옳다고 믿는 걸 하려무나.”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이요?”
“가문은 가문이고, 너는 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네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왜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지금은 모르겠지만 이유가 있으실 테지 싶어 난 그냥 마음 한켠에 차곡차곡 담아두었다.
“그리고 황후가 방금 한 말은 ♬♩♬♩소리이니 신경 쓸 필요 없다.”
“……네.”
살짝 겁을 먹은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그래, 착한 어린이는 알 필요 없는 것도 세상엔 많이 존재하는 법!
“착하지.”
아버님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자아, 그러면……. 작은 마님의 준비를 도와드려도 될지요?”
우두둑. 우둑.
기다리고 있던 린다가 주먹을 쥐고 뼈가 갈리는 소리를 내더니 이내 목도 이리저리 돌렸다.
“……!”
그로부터 세 시간 뒤.
나는 거울을 부여잡고 코가 닿을 정도로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이게 진짜 나야?”
“그럼요.”
“평소의 나랑 무지 다른데?”
“머리칼과 드레스 곳곳에 정령사슴 족이 독점 판매하는 빛나는 버섯 포자를 뿌렸어요. 샹들리에 아래에서 빛이 반짝일 거예요. 우리 작은 마님이 최고로 예쁠걸요?”
린다가 뿌듯함이 넘치는 얼굴로 휴 하고 숨을 뱉으며 땀을 닦았다.
난 도대체 린다가 뭘 한 건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입을 헤 벌릴 뿐이었다.
포자? 그게 어떻게 이렇게 빛이 나지? 아니, 그것보다 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대?
“온통 반짝반짝해……. 요정 옷을 입은 것 같아.”
연회 첫날 의상은 당연히 금색 드레스였다. 그런데 그러잖아도 예뻤던 드레스에 반짝임까지 더해지니 연회장 저어어어기 끝에서도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셀리나가 뭐 얼마나 대단한 드레스를 맞췄는지 몰라도 이 버섯 포자까지 준비했을까?
“요즘 대세는 이거거든요! 보석 같은 거 달아봤자 무겁기만 하죠. 근데 이 빛나는 버섯 포자는 보석보다 훨씬 비싼데 하나도 안 무거우니까요. 진짜! 존귀한 분만 뿌릴 수 있는 거예요.”
“린다, 대단해.”
“오호홋, 첫! 연회신데…… 이 정도 예산은 써도 된다고 다들 입을 모아 말하더라고요.”
내가 정식으로 며느리가 된 이후, 내 앞으로 매달 품위 유지비가 나왔다.
난 그걸 유모와 린다가 알아서 운용하도록 했는데, 그럼 어느 날 목걸이 하나가 새로 생겨 있고 구두 몇 켤레가 늘어나 있곤 했다.
나는 드레스와 머리칼을 한참 쓰다듬다가 몸을 돌려 린다에게 폭 안겨들었다.
“정말 고마워, 린다.”
“어머,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그리고 제가 더 감사해요. 작은 마님을 모시는 일이 얼마나 기쁘고 즐거운지 모르시죠?”
린다가 진심을 담은 눈으로 나를 보더니 천천히 등을 쓸어주었다. 그러더니 이내 잔뜩 삐진 목소리로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절대! 작은 마님을 꾸미는 기쁨을 그딴…… 요술봉에게 빼앗길 수 없죠. 요술봉은 포자를 뿌릴 생각을 못했을 걸요?”
“……으응.”
어쩐지. 내가 요술봉을 들 때마다 그걸 원한 서린 눈빛으로 노려보더니.
나를 직접 꾸며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이번만큼은 나도 편리한 요술봉 사용을 포기했는데 그러길 잘한 듯했다.
“자, 당당하게 가셔서 다 무찔러 버리는 거예요.”
다정한 손길과 그렇지 못한 말이었지만 실로 드리블랴네의 하녀다웠다.
나는 마지막으로 실크로 만들어진 꽃송이가 달린 장갑까지 끼고는 문 앞에 섰다.
출격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