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6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68화(68/173)
* * *
“플로린, 그 폼폼이라는 거 말인데.”
“응?”
“분명 녹화가 되는 골렘이었지? 스스로 움직이고.”
“응!”
마지막 준비까지 마치고 방을 나서기 전, 이안이 내게 다가오더니 살짝 물었다.
“그럼 그거, 켜두고 갈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잖아.”
“아……!”
이안, 진짜 똑똑하다.
난 그 생각까지는 못했는데!
“맞아요, 작은 마님. 제가 거실을 잘 지키고 있긴 할 테지만 그래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요!”
이번 연회의 두 번째 규칙은 호위기사를 동반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손님들이 머무는 침실이 있는 복도에 호위병들이 있고, 한 층마다 기사가 대기하고 있지만 그게 다였다.
개인 호위기사가 없으니 어떤 일이 생겼을 때 대처하기가 어려울 테고…….
난 생각을 빠르게 끊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린다, 만약 위험한 일이 생기면 여기다 대고 냅다 소리 질러. 그럼 아버님이 오실 거야.”
“그럴게요.”
비장한 얼굴로 내 가방에서 폼폼을 꺼낸 린다가 냅다 날려 보냈다.
폼폼은 켜지자마자 침실이며 화장실, 거실을 마음대로 날아다니며 호위기사 만큼의 몫을 톡톡히 했다.
‘폼폼을 증거로 쓸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래, 여긴 집이 아니니까.
“너희는 오늘도 비슷하게 입었구나.”
밖으로 나가자 이난나 님이 계셨다.
우리는 어미 호랑이를 따르는 아기 호랑이들처럼 이난나 님의 뒤를 졸졸 따라갔는데 길은 금세 외울 수 있을 만큼 쉬웠다.
아무래도 우리가 연회장과 가까운 귀빈실을 받았기 때문이겠지.
“이번 연회의 주제는 봄과 꽃, 나비란다. 들어가면 제법 놀랄 광경이 펼쳐져 있을 거야.”
이난나 님이 상냥하게 설명을 해주며 문 앞에서 허리를 바로 펴셨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문을 지키는 사람도, 입장을 알려줄 하인도 없었는데…… 나는 이유를 곧 알게 되었다.
“방금, 방금 눈! 눈이 움직였어요!”
거대한 연회장의 문에는 물결과 같은 머리칼을 지닌 여인이 양각되어 있었다. 대단히 섬세하게 파낸 것이라 눈길이 갔는데 그러다 하필 조각과 눈이 딱 마주치고 말았다.
아니, 진짜 움직이잖아?!
목소리는 누군가 입력을 해둔 것인 듯 기계적이고 건조했다.
이번만큼은 이안도 놀랐는지 뻣뻣하게 굳었는데 여기서 충격을 받지 않은 건 오직 이난나 님뿐이었다.
“귀여운 녀석들. 이 문은 마탑에서 만들었다. 연회장을 둘러싸고 다섯 방향에 존재하지. 손님들은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 연회장에 들어갈 수가 없단다.”
“와……. 문이 얼마 만에 연회에 참석했는지도 알려주는 거예요?”
“그래. 데뷔당트를 하면 다섯 문의 중심인 <나룬>에게 인사를 하게 된단다. 그때 나룬이 각각의 개인을 인식하고 기억하지. 연회에 입장할 때도 나룬이 알려준단다.”
도대체 이건 얼마나 고차원적인 마법 기계 공학인 거지?
지금까지 마법에 관심이 있긴 해도 그건 추상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렇게 눈앞에서 신기한 것을 보니 그 충격이 상당했다.
“물론 나룬은 단순한 기억 저장 장치이기 때문에 이지가 깃들어 있는 건 아니란다. 원리는 어찌 보면 쉬워. 하지만 그걸 연회장 문에 설치할 생각을 했다는 게 대단한 거지.”
“발상의 전환이네요……. 이러면 누가 들어왔고 언제 나갔는지가 다 기록되는 거잖아요.”
“나룬에 등록된 귀족이라면, 그렇지.”
모습이 좀 다르고 크기가 다르긴 한데, 원리 자체는 폼폼과 비슷했다.
“그래. 열어다오, 나룬.”
끼이이익.
마침내 문이 열리고 환한 빛과 함께 달콤한 향기가 훅 퍼져 나왔다.
드리블랴네 가문의 입장이었다.
* * *
오늘 연회가 열리는 장소는 일명 ‘프라이빗 정원’이 딸려 있다고 했다.
오직 연회장에 초대받은 손님만 갈 수 있는 곳인지라 평소에는 개방되지 않는 정원인데, 왜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출입금지였다.
아무튼 정원까지 포함하면 이 연회장은 유사시 백성 오천 명은 넘게 동시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다.
“진짜 넓다. 그치.”
“그러게. 여기서 누구를 잃어버리면 못 찾을 것 같아, 플로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게 꼭 붙어 있자. 정말 못 찾겠네.”
이난나 님은 처음엔 우리와 함께 계시면서 여러 귀족에게 소개를 해주셨지만 영원히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오랜만에 사교계에 복귀하시는 것이다 보니 여기저기서 이난나 님을 찾아댔던 것이다.
결국 나와 이안은 방해되지 않도록 얌전히 나와 있기로 했는데 키가 작은 내 입장에서 여긴 거의 드레스의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이! 앞이 안 보여!
‘유리를 찾고 싶었는데. 기왕이면 벨라디 로이바이엄도.’
결국 인파에 밀려서 우리가 향한 곳은 먹을 것 근처였다.
새하얀 꽃을 폭포수처럼 장식해 둔 벽 앞에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이 쌓여 있었다. 우리 말고도 벌써 아이들이 여럿 주변에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구석 쪽에 앉아서 쉴 만한 작은 스툴이 여러 개 있었다.
“황후 폐하께서 배려하신 건가 보네.”
이안 역시 스툴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애들을 보곤 그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애들은 장시간 서 있기 힘들지.
“아, 플로린. 이것 좀 먹어 봐. 굉장히 예쁘게 생겼어.”
“우와. 이게 뭐지? 꽃 과자……?”
“그러게. 신기하니까 먹어보자.”
마침 배도 고팠던지라 나는 이안이 접시에 담아주는 걸 기다렸다.
‘다 먹고 나서 연회장을 한 바퀴 돌아봐야지. 여기 말고 어디 구석에 있을지도 몰라.’
어른들에겐 어른들의 싸움이 있고 아이에겐 아이의 싸움이 있는 법.
자존심 강한 셀리나의 복수가 무엇일지 몰라도 나의 다음 수는 벨라디와 친해지는 거였다.
‘그것만큼 셀리나의 복장을 뒤집어 놓을 수 있는 수단이 없거든.’
그러려면 일단 벨라디를 발견하기부터 해야 하는데…….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요리를 열심히 먹어치우며 플로어를 구경하던 나는 문득 음악이 경쾌하게 바뀌었다고 생각했다.
뭐랄까, 금세라도 춤을 춰야 할 것 같은……?
“헉, 진짜 춤추나 봐!”
“그러네. 구경해 볼까?”
“응, 응!”
슬슬 옷이 불편한지 목깃을 슬쩍 당기고 있던 이안은 나를 돌아보며 손을 내밀었다. 난 그걸 우아하게 못 본 척해주며 손을 잡았고.
‘그러고 보니 의외로 이안이 불편한 옷을 못 견디는구나. 단테는 제복도 그냥 잘 입고 있던데.’
이안, 은근히 귀여운 부분이 있단 말이지.
굉장히 어른스러운데 그 사이사이에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건 아마 나밖에 모를걸.
“황제 폐하와 황후 폐하가 첫 춤을 이끄시네.”
“엇, 그러게!”
어느새 귀족들이 양쪽으로 물러서서 중앙을 비웠다.
내가 본 황제는 춤 같은 걸 출 이미지가 전혀 아니었는데, 역시 저런 것도 다 어른의 사정이라는 걸까.
아무튼 음악이 너무 좋았기에 나는 발을 까딱거리며 박자를 맞추었다.
‘앗, 황제 춤 끝났네.’
찬란한 용안을 지닌 황제가 황후의 손을 잡고 황좌로 돌아가자 곧바로 온갖 신사들이 레이디의 손을 잡고 나와 플로어를 차지했다.
꽃이 따로 필요가 있나 싶을 만큼 저기서 춤추는 사람들이 전부 꽃으로 보였다.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다 예쁘게 차려입고 있잖아.
황제의 용안이 준 영향인지 몰라도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귀걸이 정도는 착용하고 있는데다 남성용 예복도 색이 화려했다.
‘하긴, 멀리 갈 것도 없이 아버님만 봐도 와인색 슈트를 제일 자주 입으시잖아.’
오히려 검은색이나 흰색처럼 점잖은 색을 입는 걸 거의 못 봤지.
“플로린.”
“응?”
그때였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드레스며 슈트를 구경하고 있는데 옆에 있던 이안이 나를 불러왔다. 왜 그러나 싶어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안이 짙은 미소를 짓고 있는 게 보였다.
이안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 입술을 달싹였으나 곧 닫았다. 그러곤 가볍게 웃음을 뱉으며 살짝 허리를 숙여왔다.
“레이디 플로린.”
“으, 으응.”
“첫 춤의 영광을 제게 주시겠습니까?”
두근.
정말 순간이지만 가슴이 내려앉을 뻔했다.
갑자기 왜 이렇게 분위기를 잡아서는!
“춤을 못 추셔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리드할 테니까요.”
아, 이걸 어떻게 거절해…….
갑작스러운 존댓말에 혼이 나가버린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린이들도 춤을 춰도 되나? 나, 엄청 박치여서 발을 밟으면 어쩌지? 이안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삼켰을까?
그보다 나 지금 얼굴이 너무 빨갛지 않나…….
“애기야.”
“어, 으, 응!”
“내가 얼른 클게. 그러니까, 나만 봐.”
“…….”
“넌 아직 어려서 내가 무슨 말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한텐 네가 유일해서…….”
이안이 말꼬리를 늘였다. 그 탓인지 음악에 맞추어 심장이 콩콩거렸다. 달을 닮은 이안의 금색 눈동자가 나를 사로잡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내가 옆에 있는데도 다른 것에 집중할 때마다 볼썽사납게 질투가 나.”
“!”
“나랑 있을 땐 나만 봐줘. 응?”
진짜 여우 같아…….
이안이 내 허리를 살짝 끌어안더니 예쁜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너무 잘생기고 예쁘고 혼자 다 해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미모인데 그걸 이용하다니.
“치사해…….”
“난 더 치사해질 거야. 네가 나를 선택하도록. 나 말고 다른 선택지는 생각조차 못하게.”
몸이 붕 뜨는 것만 같다.
춤을 춘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구나.
어른이 되어서 어른인 이안과 함께 저 플로어 중앙에서 춤을 추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이안이 해주는 대로 손을 높이 들어 쥐고 빙그르르 돌며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