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69)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69화(69/173)
* * *
“와, 쟤 좀 봐.”
“반짝반짝해. 공주님 같아…….”
“예쁘다. 누군지 알아?”
“몰라. 근데 알비노 아니야? 우리 아빠가 알비노는 천하댔는데…….”
“쟤는 하나도 안 천해 보이는걸?”
“그건 그래.”
지루함에 죽어가던 아이들의 눈에 소년과 소녀의 춤은 굉장히 멋져 보였다. 소년 쪽도 잘생겼고 소녀 쪽은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깜짝 놀랄 만큼 예뻤으니까.
하지만 아이들 중 그 누구도 소녀에게 감히 다가가지는 못했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그 옆에 선 소년의 눈빛이 소름이 쭉 돋을 만큼 무서웠던 탓이다.
까딱하다간 죽는다.
생명의 위협을 당해본 적 없는 아이들이지만 그렇다 한들 수인이다 보니 생존 본능은 있었다.
소녀에게 말을 걸면 안 된다. 그랬다간 어떻게 될지 몰라.
그걸 깨달은 아이들은 그저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동화 속 공주님 같은 드레스를 입은 은발 소녀는 그렇게 알게 모르게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지금보다 더 작게 만들어서 내 주머니에만 넣고 다니고 싶다.’
그리고 그러한 묘한 기류를 만든 장본인인 이안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불온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뭘 보는 거지? 당연히 눈이 있으면 플로린에게 눈길이 가겠지만 왜 쳐다보는 거야? 나만 보고 싶은데.’
이안도 자신이 말이 안 되는 모순적인 생각을 한다는 건 알았다. 단지 요즘 들어 키락서스에게 심히 물든 탓에 점점 더 뻔뻔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래도 오늘 이안은 대단히 기분이 좋았다.
플로린의 첫 춤.
이건 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는 거였는데 단테는 보기 좋게 떨어져 나갔지.
‘고작 티 파티에 같이 갔다고 희희낙락하는 꼴이란.’
이안은 자신이 어른스럽고 성숙한 모습을 유지하면 플로린이 어려운 상황에서 저를 택할 것임을 약삭빠르게 알아차렸다.
황제를 만나는 자리에 제 감정조차 조절하지 못하는 어린애를 데려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물론 에스코트는 황제 앞까지 함께 갈 수 없는 거였지만…… 공작 부인이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
그래, 그건 일부러 그를 위해 만들어주신 기회였다.
‘황제에게 눈도장은 찍었고. 공작 부인께서도 요즘 나를 주목하고 계셔.’
플로린이 뽑아둔 다른 후계자인 메르엠과 앙드레, 슈리는 그와 단테를 상대로 가주 자리를 빼앗을 만한 그릇이 되지 못한다.
결국 넘어트려야 하는 건 단테뿐.
쉽진 않겠지만 단테가 기사들의 지지를 받는다면 그는 가신들의 지지를 얻어낼 계획이었다.
지금처럼 차분하고, 다정하고, 어른스러운 모습으로. 차근차근 가문의 영역을 제 것으로 만들어야지.
어느 날 단테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는 행정 전반에 대한 권한을 쥐고 있을 터였다.
“저기 봐, 플로린. 장식이 예쁘지 않아?”
“아, 그러네! 꼭 이안의 머리칼 색이랑 닮은 꽃이야!”
스윽. 이안은 플로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일부러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때마침 플로린에게 부딪치려고 다가왔던 웬 여자애가 휘청거렸지만 그건 이안이 알 바가 아니었다.
“악단을 구경하러 갈까?”
“가까이서 보고 싶어? 이안이 보고 싶으면 갈래.”
“응, 가까이서 보고 싶네.”
그 뒤로도 심술궂게 생긴 웬 남자애가 주스 잔을 들고 다가오는 것. 얼굴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 새끼가 플로린의 발을 밟으려 하는 것, 등등.
이안은 수많은 위협을 떨쳐냈다. 플로린이 전혀 모르게.
‘이런 건 내가 알아서 없앨 테니까.’
너에게 오늘 행복한 기억만 남았으면 좋겠어.
‘나와’ 행복했던 밤으로.
하지만 그로부터 약 두어 시간 뒤. 저녁 아홉 시가 되어 미성년자들이 모두 제 침실로 돌아가던 바로 그때.
분위기는 급반전되었다.
* * *
“비켜요! 범인이, 범인이 아니면! 당당하게 방을 보여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요!!!”
너무 기분이 좋아서 구름 위를 걷는 것 같은 그런 날이었다. 아마 그렇게 끝이 날 수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의 개입이 아니었더라면.
‘무슨 일이지?’
이안과 함께 침실로 돌아온 나는 우리의 방 앞에 와글거리며 모여든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처음 보는 하녀 하나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면서 울먹거리고, 그 하녀를 막아선 린다가 절대 못 들어간다고 마주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어디 감히!!! 여긴 드리블랴네 가문의 귀애들이 머무시는 곳입니다! 절대로!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저를 죽이고 들어가세요!”
“총에 맞았다고요! 우리 아가씨가 총에! 그쪽이 모시는 분만 귀해요? 내가 모시는 분도, 후작 가문이에요. 그냥 방만 보여달라는데 그게 뭐가 어렵다고요!!!”
“안 된다고 했죠. 감히 드리블랴네를 지금 범인으로 모는 건가요? 나중에 이건 공작 부인께 말씀드리겠어요. 절대 못 들여보냅니다!”
이게 다 무슨……?
시끄러운 고성 속에서 정보를 빠르게 추출해 낸 나는 상황을 금세 파악했다.
이안 역시 그랬는지 나를 잠깐 돌아보다가 곧바로 앞서 나갔다.
“소란스럽군.”
나직한 음성에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짙은 안개처럼 퍼져 나가는 우성 페로몬이 모여 있던 사람들을 꾸욱 짓눌렀다.
“비켜라. 누구 앞을 막는 거냐.”
“윽……!”
화났나 봐, 이안.
내 앞에서는 자상하기만 한 이안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안도 이제 우성 페로몬을 각성한 알파였다.
타인을 짓누르는 게 익숙한 자들.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 위에 서는 게 당연한 사람. 존재만으로도 수많은 이들을 겁에 질리게 만들 수 있는-
“구경났나?”
“아, 아닙니다.”
눈을 번뜩이는 이안의 한 마디 한 마디가 겨울바람처럼 스산했다. 모인 채 린다를 위협하던 이들이 저마다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내리깔기 바빠.
나는 그 틈을 타서 얼른 린다에게 달려가 꼭 끌어안았다.
“혼자 무서웠지, 린다.”
“오셨어요, 작은 마님……. 저는 괜찮아요. 이 사람이 글쎄, 자기가 모시는 아가씨가 총에 맞았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갑자기 방을 수색해야 한다고 난리를 쳐서…… 못 들어간다고 막고 있었어요.”
“언제 몰려왔는데?”
“방금 전이요!”
하필이면 딱 아홉 시?
그것참 공교롭네.
나는 눈썹을 까딱이며 꺼이꺼이 울고 있는 하녀를 흘긋 보았다.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에 거짓은 없는 것 같지만…….
“총에 맞은 게 누구인데? 너, 말해봐.”
이안의 기세에 눌렸던 하녀가 지목을 받자 울음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산드레아 후작가의 비비안 아가씨예요. 아, 아가씨는 너무 피곤하셔서 일찍 연회장에서 나오셨는데…… 갑자기 누군가 총을 쐈어요!”
“그래서?”
“그래서…… 그래서 제가 소리를 지르니까 병사들이 놀라서 달려오고, 화, 황궁 의사를 부르고…….”
“그리고?”
“황궁 의사가 이건 총상이 맞다고 했어요! 살 수 있을지 돌아가실지 모른다고요!”
하녀가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정신을 놔버린 듯한 모습이 안타깝긴 했지만 그렇다 해서 감히 드리블랴네를 의심해?
‘어이가 없네.’
나는 싸늘해진 눈으로 하녀를 쳐다보다 그 주변을 둘러싼 인간 벽을 하나하나 살폈다. 그중에는 기사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당신은 뭐야?”
“저, 저는 동쪽 너울 기사단 소속의 볼리스 리프만입니다. 비비안의 사촌 오빠 됩니다.”
“그래? 그렇다면 기사의 권한을 남용하여 내 하녀를 압박하고 있었던 거네?”
“……말씀이 지나치군요. 그저 침실에 총기가 있는지 한번 확인을 해보겠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게 그리 큰 요청입니까?”
내가 따질 줄 몰랐는지 볼리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이를 갈며 린다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황궁 의사는 불렀지만 아직 연회장 내에 소문이 퍼지진 않았어. 즉, 비비안은 여덟 시 반에서 아홉 시 사이에 총에 맞았을 거고. 연회장의 음악 소리가 크니 다른 손님들이 격발 소리를 못 들었을 거야. 어쩌면 소음기를 썼을 수도 있고. 그래서 근처에 있던 사람들만 비비안이 쓰러진 걸 본 거지.’
근데 그거랑 우리 가문이 무슨 상관인데?
나는 팔짱을 턱 낀 채로 고개를 비딱하게 꼬았다.
어차피 이건 아이들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어른이 와야 하지. 헌데 굳이, 아홉 시에 맞춰서 이들이 여기에 있었던 건…….
‘나를 엿 먹일 의도? 아니면 내 첫 연회를 망칠 의도인가?’
보통 이런 일이 생기면 당황하게 된다. 애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크게 놀랄 테지.
‘당황하면 당황한 대로 범인으로 몰고 침착하면 침착한 대로 범인으로 몰 거야. 그런 식으로 나를 괴롭히고 싶은 거구나.’
꽤나 과감한 수인데.
나는 이 사건의 뒤에 서 있는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비비안은 로이바이엄에서 열린 티 파티 때 내 쪽으로 넘어오려고 했던 애다.
‘그게 마음에 안 드셨겠지. 자존심이 강한 로이바이엄의 아가씨께서는.’
나는 연둣빛 머리칼을 지녔던 우유부단해 보이는 소녀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이내 지워냈다. 지금 중요한 건 그 애를 동정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와 이안은 어차피 방금까지 연회장에 있었고, 그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
그렇다면 이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가려는 건…….
‘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