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7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72화(72/173)
* * *
결국 동쪽 너울 기사단은 별 소득 없이 돌아갔다.
‘이안의 말대로 폼폼을 켜두길 잘했지.’
저쪽으로선 폼폼이 있을 거란 예상을 못 했을 테니 기습의 성공을 점쳤을 것이다.
‘오늘 밤, 좀 짜증 나겠네.’
나는 피곤한 눈가를 꾹꾹 누르며 침대에 기어 들어갔다. 그러나 오늘 밤, 침대에는 나 혼자가 아니었다.
먼저 취침 준비를 끝내신 이난나 님이 쿠션을 여러 겹 겹쳐 기대어 앉아 계셨다. 나는 이난나 님의 왼쪽에 파고들었는데, 침대 오른쪽은 이안의 자리였기 때문이다.
“흐아암.”
하품을 하고 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이안이 나타났다.
물기 젖은 머리칼에 파자마를 입고 쭈뼛거리는 모습이 평소보다 훨씬 어려 보여서 괜히 쿡쿡 웃음이 났다.
“이리 오렴, 이안.”
“……저, 할머니. 저는 여기 앉아 있어도 될까요?”
“그러지 말고 이리 누우렴. 오랜만에 손주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눠보자.”
“그, 예. 알겠습니다.”
망설이던 이안이 결국 조심스레 누웠다.
이난나 님은 나와 이안을 동시에 껴안고는 등을 토닥여주셨다.
“오늘 고생 참 많았다. 이리 어린 나이부터 황궁의 권모술수를 감당해야 하는 게 드리블랴네란다. 많이 무서웠을 텐데도 잘 견뎌주었어.”
“그렇게 무섭진 않았어요. 그냥 화가 많이 났어요.”
“그랬니?”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또 하품을 했는데 그러면서 인간화가 약간 풀려 퐁 하고 동글 귀가 솟았다.
이난나 님은 내 귀를 가만가만 만져주며 말을 이었다.
“황궁에는 여러 기사단이 있단다. 개중에서도 동쪽 너울, 서쪽 포말, 남쪽 파도, 북쪽 풍랑. 이렇게 넷이 1군 기사단이지.”
“그럼 동쪽 너울이 제일 힘이 세요?”
“서로 비슷하단다. 맡은 직무가 조금씩 다른 건데…… 주의해야 할 점은, 동쪽 너울은 황후의 직속 기사단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로 황후파 사람들이 많이 들어가 있다는 거야.”
“아하.”
“볼리스 리프만이란 자가 특히 나서서 윽박질렀다고 했지. 리프만 가는 유명한 황후파란다.”
“……그럼 이 일에 결국 황후가 엮여 있는 거네요.”
“그래. 그리고 그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는 거지. 그러니 동쪽 너울의 부기사단장을 보내 린다를 데려가려 한 거야.”
린다도 오늘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
나는 사람들 참 못됐다는 생각을 하며 볼을 부풀렸다.
“생각해 보니 볼리스 리프만에게도 사과를 받았어야 했어요. 그런데 그 동쪽 너울의 부기사단장이란 분이 데려가 버렸죠.”
“그건 걱정하지 말거라. 그자에게는 사과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걸 받을 생각이니.”
이난나 님이 상냥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나는 볼리스 리프만의 명복을 빌어주며 그 이름을 머릿속에서 제거했다.
그런 놈,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지. 흥.
“그런데 이 일요, 셀리나 로이바이엄이 꾸민 게 틀림없는데 그걸 왜 황후가 덮어준 거예요? 셀리나가 그렇게 중요해요?”
“로이바이엄 공작이 움직인 게지. 그리고 황후는 언제고 우리 가문에 경고를 하고 싶어 했단다. 유리가 황태자가 되도록 돕지 말라는 경고로 생각하면 돼.”
하나의 사건 뒤에도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그러니 제국의 정치 상황, 사교계의 상황, 외교 상황 등을 면밀히 알지 않으면 권력 구도를 연결해서 이해하기 어려우리라.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곤 조용히 속삭였다.
“저는요, 셀리나가 못된 영향력을 과시하지 못하게 하고 싶어요. 저대로 두면 앞으로 사사건건 저를 방해하고 귀찮게 굴 것 같아요.”
“아주 드리블랴네 가문의 일원다운 말이로구나. 그래, 거슬리는 건 치워야지.”
“치울 방법은…… 하암, 내일 생각해도, 돼요?”
“그래. 푹 자려무나.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리 함께 잠드는 것일 테니…….”
이난나 님의 목소리가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난나 님을 꼭 껴안고 눈을 감았다. 그런 내 손가락 끝에 이안의 손가락이 와 닿았다. 그건 내게 아주 큰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어린이치고 힘든 일을 함께 겪은 것에 대한 동지애 같은 것도 조금은 있었다.
‘앞으로도 이안은 믿고 기댈 수 있어…….’
오늘 일만 봐도 그렇잖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꿈속으로 깊이, 아주 깊이 빠져들었다.
* * *
“헉!”
어찌나 깊이 잤는지 입가에 침이 질질 흐르는 채로 나는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떨어지는 꿈을 꾼 거 같은데 어느새 기억이 휘발되어 머릿속이 멍하기만 했다.
어, 그러니까…… 어제 황궁에 왔고? 그리고 이안의 품에 안겨서 잔 것 같은데.
어디까지가 꿈이었을까?
눈을 비비던 나는 색색거리는 고요한 숨소리에 무심코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거기엔 이안이 정말 예쁘게도 잠들어 있었다.
알파가 된 뒤로 귀나 꼬리가 나온 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동물 귀가 솟아 있네.
‘황금빛 털 표범……. 언젠가 나한테 동물화한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구름무늬 표범은 내가 진짜 좋아하는 동물이기도 했다. 검치호 족의 표범 수인이니까 검치도 얼마나 웅장하고 멋있을까.
나는 이안의 동물화를 슬쩍 상상해 보며 아주 조심스럽게 귀로 손을 뻗었다.
그러니까 이건 불가항력이다. 솔직히 동그랗고 작고 귀엽단 말이야.
“으음…….”
내가 표범 귀를 살짝 건드리자 이안이 움찔하며 뒤척거렸다. 놀라서 홱 손을 뗀 나는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시도했다.
‘진짜 예쁘다…….’
한참을 그렇게 장난을 치고 있는데 이안이 갑자기 팔을 뻗더니 나를 풀썩 눕혔다.
“??”
“까꿍. 놀랐지.”
“……헉, 안 자고 있었어?!”
“방금 깬 거야.”
아닌데! 그런 것 치곤 눈에 졸음기가 없는데요!
나는 당황해선 재빨리 손을 내렸다.
“귀 안 만졌어.”
“그랬어?”
이안이 쿡쿡 웃더니 내 뺨을 쿡 찔렀다. 나는 괜히 민망해선 시선을 피했고.
“일어나자. 오늘은 할 일이 많으니까.”
“으응.”
귀를 만진 게 아주 나쁜 일도 아닌데 왜 이렇게 잘못한 것 같지?
이게 무슨 느낌인지 잘 설명할 수가 없는데 뭔가 들킨 것만 같고, 그래서 얼른 호다닥 달아나야 할 것만 같았다.
결국 나는 먼저 일어나선 문을 열고 포르르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렇게 플로린이 사라진 자리.
이안은 이불을 한가득 끌어안고 거기에 얼굴을 묻어버렸다.
“……아.”
성공했네.
사실 이안은 한참 전부터 깨어 있었다. 아니, 거의 자질 못했다.
원래 불면증이 심했기에 아침 해가 뜨고서야 겨우 잠을 청하는 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니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었을까. 그 사람이 심지어 플로린인데.
공작 부인은 여명이 밝아오자 슬쩍 자리를 빠져나갔고 남은 건 이안과 플로린, 둘뿐.
이안은 그때부터 일부러 이큘리스에 혼동을 주어 동물 귀를 꺼내놓았더랬다. 이러면 플로린이 좋아하는 것 같아서.
그리고 계략은, 약간은 성공한 것 같았다.
* * *
“지금부터 플로린의 앞길을 위한 대책 회의를 열겠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이난나 님의 주관하에 나는 회의를 열었다.
사실 그래 봤자 참석자는 몇 없었지만 이난나 님은 미약하게나마 흉내를 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다. 어쨌든 언젠가 내가 가문 내정 회의를 주관하게 될 테니까.
“아버님!”
“예에.”
“이안!”
“네.”
“그리고 이난나 님!”
“그래.”
“오늘의 안건은 일명 치밀하고 확실한 복수입니다.”
몹시 발랄하게 외쳤지만 사실 그럴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나는 내가 뒤끝이 길다는 걸 알고는 있었다. 그런데 내게 소중한 사람을 건드리는 게 이 정도나 화가 날 줄은 미처 몰랐지.
나는 웃고 있었으나 속으로는 이를 닥닥 갈고 있었다.
“셀리나 로이바이엄이 어제의 일과 같은 걸 꾸밀 수 있는 건 힘이 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아직 어린아이니까 그 힘이란 결국 어른들이 부여해준 거죠.”
“음.”
“셀리나는 미래에 사교계를 주름잡을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어요. 그리고 미래에 황후가 될 거란 기대도 받고 있죠. 황후가 낳은 황자가 없는데도 말이에요.”
지금 나누는 대화가 바깥으로 유출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아버님을 부른 거니까.
몇 겹으로 소리가 새어 나가는 걸 방지하는 마법을 걸어주셨으니 안심이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더라고요. 황자라곤 우리 가문의 유리밖에 없는데…… 다들 황후가 아이를 낳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거예요?”
“글쎄, 그건 아니지. 하지만 낳지 못하면 결국 양자를 들이는 방법도 있거든.”
내 질문에 대답을 해주신 건 아버님이었다.
“물론 공식적인 양자는 아니겠지. 어떻게든 구해올 거고…… 뭐, 상세한 방법은 어린이가 알 필요는 없는 내용이다. 여하간 로이바이엄은 황후에게 아들이 생길 거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된다.”
“그으렇군요. 그러면 황제 폐하는요? 그걸 그냥 내버려 두는 거예요?”
“그래. 그 이유는, 드리블랴네가 너무 큰 힘을 가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황제는 균형을 맞추길 원하거든. 지금으로서는 시소 반대편에 놓을 것이 로이바이엄뿐이고.”
어른의 사정은 복잡하다.
나는 이맛살을 찌푸리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럼 결국 로이바이엄이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를 앉힐 수 있기만 하면 되는 거네요.”
“이론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로이바이엄뿐이다. 정치 명문가인 로이바이엄은 드리블랴네에 필적할 만큼 쪽수…… 가 아니라, 자기편이 많거든.”
탁자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괸 아버님이 빙글빙글 웃었다.
‘로이바이엄을 제거한다’라는 손쉬운 수가 막힌 내가 뭘 어떻게 할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 나는 로이바이엄 자체가 없어지길 바라는 게 아니었다. 셀리나가 죽기를 원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무섭고 악독한 생각은 하지 않았어.
단지, 나는 앞으로 내가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방해가 될 것 같으니 치우고 싶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