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7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74화(74/173)
‘역시 유리는 지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거야.’
어디서 어떻게 있는 걸까.
설마 내게 이따금 메시지를 보내오던 아이가 너인 걸까?
‘사실 반쯤 확신하곤 있었지만…….’
그런데 그러면 넌 어떻게 나를 알아? 그렇게 허공에 물기 어린 메시지를 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는데.
미래에 내 남편이라고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다니. 정말로?
‘모든 건 유리를 만나야 알게 될 거야. 꼭 찾으러 갈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해결해서.
“그럼, 이만 나갈까?”
계획은 세웠으면 잊어야 한다.
그리고 당장, 오늘,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하는 것부터 해결해야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의 첫 번째 단계는 다름 아닌, 내 통장 털기였다.
* * *
룩소리아를 황제에게 사기 쳐서 뜯어낸 돈. 거기서 내 몫으로 받은 일부가 이렇게 쓰일 줄은 솔직히 상상하지 못했는데.
“이 가게에 파는 금색 드레스, 전부 다 사겠어!”
“역시 드리블랴네 가문이십니다!!!”
내 호기로운 외침에 도열해 있던 직원들이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나는 곧이어 점장을 보며 벌써 여덟 번째 반복하는 말을 이어 붙였다. 이젠 거의 숨도 안 쉬고 기관총처럼 내뱉을 수 있었다.
“대금은 가문 은행에 내 이름으로 청구하면 돼. 수표를 써줄 테니.”
“예에. 그러면 배송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아무래도 연회 기간이다 보니 황궁에서 많이들 머물고 계실 텐데요, 거기로 배송을 할까요?”
“응. 오늘 안에. 그리고 ‘내일’ 이 드레스를 입기를 바란다는 카드도 동봉해 줘.”
“알겠습니다!”
이걸로 얼추 숫자는 맞췄네.
나는 이안과 함께 시내로 나오자마자 거리에 늘어서 있는 모든 의상실을 들러 금색 드레스의 유무를 확인했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색인 금빛은 무도회의 단골 색이었으므로 대부분 보유하고 있었지만 그 값이 결코 저렴하지는 않았다.
일단 금빛을 내는 천 자체의 단가가 높으므로 만들어진 드레스가 다른 색보다 더 비싼 거야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수요가 많지는 않아서 의상실마다 해봤자 열 벌 이하로 보유하고 있었다.
‘덕분에 발에 물집 잡히도록 여기저기를 다녀야 했지!’
황궁으로 이 많은 숫자의 점장들을 불러들였다간 대번에 소문이 날 거다. 그리고 그러면 아무 소용 없어진다.
어디까지나 셀리나가 모르게 해야 하니까.
“다음은 부채 가게였지?”
“응, 이안…….”
“너무 피곤하면 잠시 쉬었다가 갈까?”
“아냐. 부채 가게엔 그래도 부채가 많이 있겠지. 그건 아무 색이나 상관없으니까.”
앞서 같은 색의 드레스를 산 이유는 그걸 드리블랴네파는 물론이고 중립파에 속한 귀부인들에게까지 다 보내기 위함이었다.
측근 하녀라면 기본적으로 가봉을 할 줄 아니 선물받은 드레스를 체형에 맞추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면 충분했다.
다들 내일 저녁엔 금색 드레스를 입고 올 수 있을 테지.
그럼 부채는 또 뭐냐고?
‘이건 어린애들 회유용.’
자고로 어린이는 자기가 어린이란 소리를 듣기 싫어하는 법!
나는 새하얗고 예쁜 어른용 부채를 사서 여자애들에게 죄다 뿌려버릴 예정이었다.
이건 황후파 가문도 상관없다.
케이크 하나 더 안기는 게 뭐가 어려워서.
‘단, 로이바이엄 가문을 따르는 이들만 쏙 빼고.’
내게 선물을 받은 소녀들은 결국 나를 아주 적대할 수는 없게 된다. 대쪽 같아서 선물을 돌려보내는 황후파 가문도 있겠지만 ‘친구’가 되고 싶다는 단서가 붙으면 대부분은 받을 터였다.
‘금빛은 이제 네 색이 아냐.’
오직 셀리나만을 빛나게 해주던 색이 드리블랴네에 대한 ‘소속’의 의미로 바뀔 것이다.
금색 드레스를 왕창 준비했을 텐데 그걸 입고 나온 순간 얼마나 우스워질지 기대가 된다.
‘내 통장 잔고가 바닥날 때까지 어디 한번 해보자고.’
역시 기 싸움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법이었다.
* * *
“아, 시원해!”
이윽고 나와 이안은 아이스크림콘을 하나씩 손에 들고 광장 벤치에 앉았다.
이안은 컵이 아니라 콘을 들고, 심지어 가게가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핥아 먹는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듯했지만 내가 떼를 쓰니 결국 져주었다.
‘이제 완전히 플로린이 되었는데도 이따금 현실의 내가 떠오른단 말이지.’
아이스크림콘을 들고 먹는 게 로망이었는데 이렇게 이안과 함께 하니 참 좋았다.
“어제 다른 애들, 엄청 심심해 보이더라. 오늘도 다들 심심해하겠다.”
“아아. 아무래도. 할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치. 먹는 것도 한계가 있는데.”
어느덧 온 하늘이 노을로 달구어졌다.
멍하니 내 얼굴을 쓸고 지나가는 바람결과 울긋불긋한 석양을 감상하던 나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곡예사가 왔대!”
“얼른 가자!”
곡예사? 그것참,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직업을 가진 사람 같은데.
때마침 아이스크림이 줄줄 흘러내려 콘을 적시고 있던 차였기에 나는 얼른 과자 부분을 입에 욱여넣었다. 그러곤 식수대에서 대충 손을 씻고 이안을 불렀다.
“우리도 가자!”
“아까도 곡예사를 찾았었지?”
“응. 생각해 봐. 연회장에 온 애들은 다 심심하잖아. 그런데 그렇게 지루한데 갑자기 재미있는 공연이 펼쳐지면 어떻겠어?”
“아, 거기로 시선이 쏠리겠지. 플로린, 넌 천재야. 그래서 물어본 거였구나.”
“맞아. 아무리 안 보는 척하려 해도 자꾸 눈길이 갈걸? 애들은 원래 웃는 걸 좋아하니까.”
곡예사가 있는 곳을 찾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어린애들이 우글우글 몰려서는 엄청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어허이! 들어보소, 사람들. 오랜 옛날! 진정한 왕께서 이곳에 계셨으니……. 어질고 현명하게 사람을 다스리셨네!”
흰옷을 입은 줄타기 곡예사는 굉장히 평범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너무 평범해서 슥 스쳐 지나면 그대로 잊을 듯한 인상이랄까.
그런데 그런 사람이 부채를 양손에 들고 줄 위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게 너무 신기했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이쪽 나무에서 저어어쪽 나무까지 이어진 줄은 굉장히 튼튼해 보이긴 했지만, 그렇다고 그게 바닥은 아니잖아.
“이안, 이안도 저거 할 수 있어?”
“응? 응. 그런데 저 사람만큼 능숙하지는 못해.”
“저 사람은 아주 잘하는 거야? 별점을 매기면 얼마나? 10점을 만 점으로!”
“그럼 10점. 나는 3점 정도.”
“와.”
그 정도 평이라면 줄타기 명인이네.
사실 10점일 만한 게, 명인은 이제 부채가 아니라 단검을 가지고 저글링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동시에 입으로 불을 뿜네……?
아이들은 즐겁다며 박수를 치고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그래, 저 사람이야. 저 사람을 황궁 연회에 데려가야 해.’
황궁엔 아무나 초대할 수 없고 평민은 더더욱 들어갈 수 없는데 어떻게?
‘됐고, 권력으로 밀어붙여.’
아, 왠지 점점 아버님을 닮아가는 것 같은데……. 기분 탓이겠지?
이후, 공연이 끝나자 나는 명인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명인은 곡예에 쓰였던 도구를 낡은 가방에다 열심히 쑤셔 넣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곤 허리를 폈다.
“으응? 돈 좀 있어 보이는 꼬맹이들이 무슨 일로 나를 찾으셨나?”
“와, 명인은 보는 눈도 정확하네!”
“딱 봐도 돈 냄새가 날 듯한 제안을 하려는 모양이고?”
독심술이라도 하나? 아니면 이런 일을 많이 겪었나?
후자라면 내게 아주 좋은 일이었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제안을 했다.
“나는 플로린 드리블랴네라고 해. 황궁에서 공연을 부탁하고 싶어. 훌륭한 예술가에게 어울리는 조건을 부르면 최대한 맞춰줄게.”
“흐응, 싫은뎁쇼.”
명인은 새침하게 1초 만에 거절을 뱉었다. 그러나 나는 상대가 거절할 것도 이미 염두에 두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난 말이지, 부들부들 떨면서 ‘우리 가문이 얼마나 대단한 줄 아느냐!’라고 외치는 그런 애는 아니거든.
‘실력이 진짜 좋은 명인이나 장인일수록 귀족 가문이든 황가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존심을 세운다잖아.’
그래서 나는 머뭇대지 않고 바로 다음 말을 이었다.
“지루해서 죽어가는 아이들이 황궁에도 있어. 귀족 아이들도 아이들이잖아. 웃음을 줬으면 해.”
“그건 좀…… 구미가 당기네요.”
“내일 밤, 딱 한 번만 공연을 해주면 돼. 들어가는 절차 같은 건 귀찮지 않을 거야. 어차피 텔레포트로 쨘 하고 나타나게 할 테니.”
어린아이들이 웃는 걸 보는 게 좋아서 이런 일을 하게 된 걸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이 일이 성사될 여지는 충분히 있었다.
내가 귀족으로서의 자존심을 한 번 꺾기만 하면 들어줄 것 같은데.
“부탁할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난 로이바이엄이 아니라 드리블랴네거든!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무릎도 꿇을 수 있다. 고개를 숙이든 허리를 굽히든 무릎을 꿇든, 그런 건 내 긍지를 더럽힐 수 없었다.
오히려 그깟 자존심 때문에 내가 하고자 한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하는 게 더 나빴지.
“……부탁이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하는 수 없구만요. 제 이름은 화이란입니다. 그리고 제 조건은 지상의 돈 따위가 아니고…….”
“아니고?”
“다음에 제가 어디론가 초대하면 응해주시기만 하면 됩니다요.”
“초대를……?”
슬슬 수상쩍은데.
어디에 초대를 한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