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7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75화(75/173)
“어른도 함께 와도 됩니다. 대신 거부할 수는 없는 것으로 합시다. 저도 지금 사실상 거부할 수 없잖습니까?”
“오해야. 당신이 원한다면 언제든 거절할 수 있어. 거절하지 않길 바라는 거지.”
“흐음, 그렇게 무서운 호위를 줄줄이 달고 와서 그런 말씀 하시면 지나가는 구름개가 웃습니다. 어디 보자, 호위만 서른두 명이군요.”
구름개……?
아니, 그전에 호위를 줄줄이?
나가기 전에 아버님이 나와 이안, 둘 다에게 보호 마법을 걸어주시긴 했다.
소설을 보면 이럴 때 보통 납치 사건이 벌어지더라고. 그걸 방지하기 위해 이안을 제외한 사람이 내 몸에 손을 대면 무시무시한 소리로 알람이 울리는 마법도 걸어두셨다나.
그런데 호위까지 붙이셨을 줄은 몰랐다.
‘아니, 둘이서 시내를 나가보는 것도 경험이니 해보라면서요.’
너무 과보호 아냐?
……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확실히 그냥 넘어가기에는 좀 이상한 상황이기는 했다.
‘곡예사가 힘을 숨김……?’
어떻게 나도 몰랐던 내 호취들을 눈치챈 걸까?
나는 곡예 명인을 꽤나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정체가 진짜 곡예사는 아닌 모양인데 황궁에 데려가도 되나?
“뭐, 어쨌든 내일 황궁이라는 거죠.”
“어디 머무는지 말해주면 사람을 보낼게.”
“그럴 것 없습니다. 제가 드리블랴네 가문이 머무는 곳에 찾아갈 테니 어른들에게 그리 말씀만 해두십쇼.”
“아무래도 역시 수상한데. 진짜 곡예사 맞아?”
“아이고, 그러믄요. 곡예사입니다. 평범한 곡예사요.”
더 수상쩍어졌어.
이안을 슬쩍 돌아본 나는 이안의 표정이 제법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 사람에겐 페로몬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걸. 굉장히 평범해.’
일단 겉으로는 말이다.
‘에이, 모르겠다.’
나쁜 사람이었으면 당당하게 드리블랴네 저택에 오겠다고 말하지 않았겠지.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돌아가자, 플로린.”
“으응.”
이안이 내 손을 꼭 쥐더니 몸을 돌렸다. 곡예 명인은 웃는 낯으로 손을 살랑살랑 흔들었고.
이윽고 대기하고 있던 가문의 마차에 오른 나는 이안에게 슬그머니 말을 건넸다.
“이안, 저 사람. 많이 위험한 사람이기라도 해?”
“……밖에 세지 못했어.”
“응?”
“나는, 호위를 스무 명밖에 세지 못했어.”
이안보다 기감이 뛰어난 일개 평민?
그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버님께 잘 말씀드려야겠다.’
그 정도로 뛰어난 인재라면 우리 가문에서 스카우트할 수도 있는 거잖아. 그리고-
“이안. 자책하지 마.”
“…….”
“이안이 단테를 보고 자극받아서 더 강해지고 싶어 하는 건 알겠어. 하지만…… 이안에겐 이안의 속도가 있어. 그리고 아마 그 속도도 엄청 빠른 편일 거야.”
“음.”
“더 빨리 달리다간 넘어진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이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런 뒤 하나하나 깍지를 끼며 흥얼거리듯 말했다.
“천, 천, 히, 가기! 그게 더 멀리 가니까.”
“천천히…….”
“응. 앞으로도 이안보다 더한 강자들은 많이 나올 거야. 이안이 그 사람들을 다 이길 수 있으면 좋은 일이겠지만 난 그보다…… 이안이 그들을 어떻게 다룰지를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
이안은 조급해하고 있다.
그걸 모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제 몸 다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 아버님께 달려드는 저 성질머리……가 나중엔 창끝을 돌려 이안 스스로를 치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인 거지.
스스로를 몰아치고 또 몰아쳐서 벼랑 끝에 세운 뒤 아슬아슬한 상태로 살아가는 건, 당장 성과는 나올지 몰라도 정신 건강에 상당히 나빴다.
“단테를 따라잡으려고 하지 말고, 이안은 이안의 길을 가자.”
“나의, 길…….”
“응. 사람이 어떻게 다 똑같겠어? 다 자기만의 속도가 있는 거지.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재능도 다 다르잖아.”
“플로린, 너는 정말…….”
이안이 입술을 달싹이다 다시 닫았다.
나는 깊은 생각에 잠긴 이안을 방해하지 않고 그냥 창틀에 기대 바깥을 구경했다.
완전히 어두워진 밤거리 곳곳에 마법 조명이 켜졌다. 이상하게도, 내 눈엔 황궁의 연회보다 이쪽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 * *
‘이야, 허탕 몇 번 치고 이제 어쩌나 싶어서 몸이나 풀고 있었는데 이게 웬 떡이지?’
천공국 아르칼리크. 그중 세 번째로 크고 부유한 대장장이 섬인 화 섬의 주인, 화이란.
그는 그 어느 섬의 주인보다도 지상의 일에 많이 관여를 하는 편이었다.
추방령을 받은 범죄자가 생기면 지상까지 끌고 가 내쫓는 것도 그의 일이요, 지상의 동향을 살피는 것도 그의 일. 때때로 땅의 나라들과 교류를 하는 것 역시 화이란의 임무다.
그렇기에 그는 처음 지상으로 내려왔을 때만 해도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금세 해결될 줄 알았던 ‘연성술사 찾기’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기만 했다.
알비노라고 해서 다 연성술사는 아니다. 특히 지상에 떨어져 버린 죄인의 후손들은 아주 특수한 경우가 아닌 이상 연성술을 깨우칠 수 없었을 터였다.
그러니 이번에 천공국을 들썩거리게 한 인물이 왕의 잃어버린 자식일 거라 유추한 건데…….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누가 의도적으로 숨겨놓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랬는데 여기서 딱! 마주치다니.’
제 공연을 보고 있는 새하얀 소녀를 발견한 화이란은 소리를 지를 뻔했다.
틀림없다. 틀림없어. 돌아가신 왕비님과 너무 똑같이 생겼잖아!
‘그런데 골치 아프게 됐네. 대단한 권문세가에 머물고 계신 모양인데…….’
그냥 빼돌려서 될 일은 아닌 것 같고?
‘무엇보다 공주님……으로 유추되는 분이 야무지고 또랑또랑한 것이, 설명 없이 데려갔다간 자칫 천공국에 반감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 같고.’
왕비님과 그렇게 닮은 얼굴로 ‘아빠, 미워!’ 같은 말씀이라도 하신다면…….
‘역시 나, 죽겠지?’
식은땀이 삐질 흘렀다.
‘흐음. 일단 공주님으로 유추되는 분의 보호자들과 접촉하는 게 우선이다.’
판단을 내린 화이란은 제 모습을 감추기 위해 썼던 인피면구를 벗었다.
그러자 새하얀 머리칼에 짙붉은 눈동자가 어둠을 밀어내며 화려하게 드러났다.
대충 챙긴 도구들을 어깨에 얹은 화이란은 하품을 하다가 이내 모습을 감추었다.
“어디 갔지?”
“방금 여기 있지 않았나!”
그가 많이도 수상쩍었는지 공주님의 호위 중 몇 명이 남아서 감시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없어지면 일단 보고하러 가겠지.’
화이란은 그들을 길잡이로 편리하게 이용할 생각이었다.
* * *
“엄마아. 오늘도 그 계집애가 금색 드레스를 입고 나오면 어떡해?”
황궁, 로이바이엄의 거처.
한껏 멋을 부린 셀리나는 머리 손질을 받고 있는 엄마의 옆에 앉아서 징징거리고 있었다.
“어제는 그것이 연회에 오지 않았잖니. 어쩌면 오늘도 안 올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오늘 오면 어떡해?”
셀리나는 이번 봄 연회를 위해 금색 드레스를 총 열다섯 벌 맞췄다.
연회용 일곱 벌과 평상복 일곱 벌. 그걸 입고 다니면서 ‘금색은 셀리나의 색’이라는 이미지를 완전히 굳히는 게 목표였다. 그러라고 아빠가 사준 거고.
사교계에선 어떤 색이나 보석을 선점하는 게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걸 독점하는 것으로 다른 사람의 행동에 제약을 걸고 다룰 수 있게 되니까.
또한, 어떤 색이나 보석을 떠올리는 즉시 ‘셀리나’가 연상되게 하는 건 정치적으로도 성공적인 일이었다.
정치는 이미지를 만드는 일이다. 아빠는 늘 그렇게 말씀하셨다.
“금색은 내 건데. 내 머리칼이랑 제일 잘 어울리니까 금색을 내 걸로 만들려고 했는데…….”
말하자면 셀리나는 사교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다. 드리블랴네에서 갑자기 어쭙잖은 알비노를 들이밀며 방해하지만 않았어도 성공적이었으리라.
이미 대부분의 또래 소녀들은 셀리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다들 눈치를 보며 살살 기었고 티 파티에 초대받고 싶어 안달을 냈다.
그걸 어른이 될 때까지 유지하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드리블랴네에서 내세울 만한 딸이 없어 다행이라 여겼건만……. 그렇다고 며느리를 데려와서 딸처럼 대하다니. 역시 근본도 없는 것들이야.”
로이바이엄 공작 부인은 짜증을 내는 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일어섰다.
“천한 것이 틀림없단다. 그러지 않고서야 굳이 아이다호 가문에 집어넣을 이유가 어디 있겠니.”
“그치?”
“신경 쓰지 말거라. 네가 원하는 대로 다 될 것이니.”
연회 셋째 날.
공작 부인은 딸과 함께 금빛 너울이 아름다운 드레스를 맞추어 입었다.
이렇게 연회장에 들어가면 모녀가 똑같은 드레스를 입은 게 참으로 특별하다는 칭찬을 받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어머나! 로이바이엄 공작 부인께서도 드리블랴네 가문이 선물한 드레스를 입고 오신 거예요?”
뭐라고?
순간, 로이바이엄 공작 부인은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건 셀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셔요? 저런……. 어제 드리블랴네에서 선물을 크게 보내왔거든요.”
이 모멸감을 어찌해야 할까!
“감히……. 감히.”
사람을 드리블랴네에서 옷이나 얻어 입은 것처럼 만들어!
뿌드득.
로이바이엄 공작 부인이 쥐고 있던 부채가 반으로 쪼개졌다. 셀리나 역시 이를 꽉 악문 채 분노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연회장이 온통 금빛 물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