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76)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76화(76/173)
여기도, 저기도 죄다 금색 드레스.
이러면 제가 입은 드레스가 눈에 띄지 않는 게 문제가 아니라 굉장히 흔한 색이 되지 않는가.
그것만 해도 죽도록 속이 상하는데 뭐?
“우, 우리가 드리블랴네한테 오, 옷을 받아 입었다고…….”
지금 당장 이 드레스를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돌아 나가서 다른 드레스로 갈아입고 오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아니, 지금 이 자리에서 나가는 것 자체가 참을 수 없이 치욕적이었다.
“어머나, 레이디 플로린. 보내준 선물은 너무 고맙게 받았답니다.”
“잘 어울리세요, 백작 부인.”
“오호홋, 제 딸에게도 고급 부채를 선물해 주시다니. 딸애가 어찌나 기뻐하던지요.”
“별말씀을요. 약소한 마음의 표현일 뿐이에요. 따님과 친해지고 싶어요.”
나는 이 꼴로 만들어 놓고 넌 그렇게 행복하게 웃어?
귀부인과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플로린을 노려보며 셀리나는 볼 안쪽 살을 콱 깨물었다.
억울하고 분해서 눈물이 다 났다.
“이리 일을 벌리셨으니……. 금색은 앞으로 드리블랴네의 색이라는 소문이 나겠어요.”
“그럴 리가요. 저기, 로이바이엄에서도 금색 드레스를 입었잖아요?”
그때, 약삭빠르고 못됐고 천하의 악녀 같은 플로린이 셀리나를 콕 집어 가리켰다.
“화합의 색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이제 봄이 왔지만요, 망가진 땅을 복구하고 온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귀족들이 한마음 한뜻이어야 하잖아요.”
“세상에나! 이렇게나 생각이 깊다니! 참 다들 보고 배워야 할 텐데 말이에요. 레이디 플로린은 또래 아이들의 귀감이로군요!”
저게, 저게 어떻게 귀감 같은 게 될 수 있어?
기품도 없고 우아하지도 않고 그냥 천박하게 돈을 풀어서 이런 상황을 만든 거잖아!
기가 막혀서 한 소리 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말려드는 것이다.
‘하녀를 감옥에 가두지도 못하고, 처형시키지도 못했고. 무엇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어, 왜!’
울컥한 셀리나는 발을 굴렀다.
당장 벨라디를 불러서 머리를 쥐어뜯어 놓고 싶은데 여긴 연회장이었다. 억지로 웃어야 하겠지. 이 모욕을 어떻게 되갚을지 고민이나 하면서!
‘숨을, 숨을 못 쉬겠어.’
제 ‘친구’들과 한쪽으로 몰려간 셀리나는 할딱이며 가슴을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진정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그런데 잠시 뒤. 어디선가 경박하기 짝이 없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또, 플로린 드리블랴네가 있는 곳이었다.
* * *
나는 아버님과 이난나 님께 수상한 곡예사에 대해 다 말씀을 드렸다. 그가 찾아온다고 했다는 것과 내 계획에 어떤 쓸모가 있는지도.
만약 어른들이 반대하시면 아쉽지만 연회장에서 공연을 펼치게 하는 건 포기하려 했는데 의외로 허락이 떨어졌다.
“잘한다!”
“와, 머, 멋있어.”
“더 해봐! 더!”
그리고 이게 그 결과였다.
나는 흐뭇한 얼굴로 꼬맹이들을 둘러보았다.
이번 연회에 온 아이들 중 90% 이상이 지금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럼 나머지는 어디 있느냐고?
셀리나와 함께 저어어기에 있다. 이쪽에서 자꾸만 깔깔거리니까 궁금한지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그럼 이쯤에서 슬슬 회유해 볼까.’
입에서 불길을 내뿜는 묘기는 손에 땀을 쥐게 할 정도였다. 이걸 가까이서 보고 싶지 않은 어린애가 어디 있어?
“안녕.”
“레, 레이디 플로린.”
“너희도 저기 와서 같이 볼래? 아직 자리 있어.”
곡예사가 눈에 띄게 화려한 묘기를 펼치자 이제 어른들도 관심을 보였다. 그 정도인데 애들은 어떻겠어. 다 마음으론 벌써 저기 둘러앉았지.
몇몇 소녀들은 상기된 얼굴을 감추지 못한 채 셀리나를 돌아보았다.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애들도 있었는데 셀리나는 그 모든 걸 굳건히 무시 중이었다. 놀랍지도 않았다.
“쩨쩨하기는…….”
나는 고개를 옆으로 살짝 돌리곤 중얼거렸다. 그러자 셀리나가 크게 움찔하더니 이를 빠드득 갈며 웃었다.
“저런 경박한 공연, 대체 누가 허락한 거지요?”
“폐하가 허락하지 않으셨으면 가능했겠어요? 머리를 좀 써보세요.”
“이익, 제 지능 걱정을 할 시간에 본인의 기품 걱정부터 하시죠!”
내가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한심하단 표정을 짓자 셀리나의 표정에 금이 갔다.
철저하게 승기를 쥐고 있을 때야 괜찮지만 반격을 당해본 적이 없어서 이렇게 상황이 뒤집히면 당황하는구나, 너.
나는 히죽 웃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오기 싫다면 알겠어요. 저희끼리 재밌게 보죠, 뭐.”
나는 팔랑팔랑 손을 흔들며 빙글 돌아섰다.
‘아, 꼬시다!’
아주 그냥 흑임자참깨강정맛이네!
‘복수! 좋아!’
나는 주먹을 움켜쥐며 바르르 떨었다.
이따 린다에게 셀리나의 표정을 나노 단위로 조각조각 내서 설명해줘야지!
“……부러워.”
그렇게 플로린이 몸을 돌리자 결국 꾹꾹 참고 있던 어떤 소녀에게서 속내가 터져 나왔다.
“뭐라고요?”
그에 셀리나가 눈에 불을 켜고 홱 노려보았으나 한 명이 속마음을 밝힌 순간, 그건 전염되기 마련이다.
어른 흉내를 내고 있을 뿐이지 어쨌거나 모두 아이들이니까.
“나는 가서 볼래요.”
“……그럼 나도…….”
“다리도 아프고, 더 이상 못 서 있겠어요. 셀리나는 앉아 있잖아요…….”
“그리고 부채도, 부럽고.”
셀리나의 세력은 크기는 했으나 견고하지는 못했다.
일단 덩치를 키우는 데 주력을 한 탓에 무리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 그러니 모두와 친하게 지낼 수는 없었고, 셀리나는 지금껏 백작 가문 이상만 티 파티에 초대해 왔다.
‘가난한 자작가 영애나 지체가 많이 낮은 남작가 영애는 무시당하기 일쑤였지.’
지금도 셀리나는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다른 아이들은 모두 서 있어야만 했다. 감히 셀리나와 함께 앉을 만한 신분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물론 그게 잘못된 방향은 아니었다. 황녀도 없고 다른 공작 영애도 없으니 오히려 괜찮은 전략이었다.
로이바이엄이 말하는 바는 명확했다.
‘셀리나에게 불만이 생기더라도 그래서 뭐 어쩔 건데?’
어차피 셀리나가 사교계의 주축이 될 것임은 자명한데, 왕따 당하기 싫으면 숙여야지?
여태 그런 취급을 당하면서도 아이들은 입도 벙긋하지 못했다. 하지만…….
“저 애들이 전부 부채를 받았대.”
“셀리나는 손수건 한 장 준 적 없잖아…….”
“게다가 다 같이 앉아 있고.”
“나도 앉고 싶어! 나도 집에선 오냐오냐 해주신단 말이야!”
결국 불만이 터진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서 공연을 하는 쪽으로 가버렸다. 삽시간에 사람이 거의 남지 않은 소파 자리에서, 셀리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비참함을 느꼈다.
‘용서 못 해.’
빠드드득.
손톱이 소파의 가죽을 긁어내렸다.
플로린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셀리나는 결국 벌떡 일어서서 연회장을 벗어났다.
등에서 자꾸 와이번의 가죽 날개가 치솟으려 했다. 이러다 이성을 잃고 정말 연회장에서 동물화 하기라도 하면…….
‘똑같은 꼴, 당하게 해주겠어.’
셀리나는 자신이 플로린에게 한 짓은 새카맣게 잊고 그저 지금 당한 것에 화가 나 길길이 날뛰었다.
아주, 아주 기대했던 연회가 이렇게까지 망쳐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었다.
* * *
‘오, 갔네. 갔어.’
등에 화살 다발이 꽂히는 것처럼 따갑던 시선이 드디어 사라졌다.
승리감을 만끽하던 나는 곧바로 다음 계획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유리는 오늘도 역시나 안 왔어. 황족 자체가 다 안 왔지.’
그러니 유리는 빠르게 포기하고 벨라디를 찾자.
‘그런데 온 동네 애들 다 모았는데도 벨라디는 안 보인단 말이지…….’
설마, 정원에 있나?
지금 시각은 아직 여덟 시였다.
어른들이 ‘아이는 정원 금지’라고 하긴 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욱 벨라디가 정원에 나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오늘 오전에 가문에서 뽑아다 준 벨라디 로이바이엄에 대한 정보를 다시금 되새겼다.
이름: 벨라디 로이바이엄
나이: 10살
외모: 주홍색 눈, 주홍색 머리칼, 심한 곱슬머리
특기: 회화(그림 그리기)
내가 회화라는 단어를 모를까 봐 친절하게 옆에 부연 설명까지 달려 있었지.
성격: 유순하고 조용한 편이나 엉뚱한 행동을 곧잘 한다는 소문이 있음.
상황: 가문 내에서 몹시 미움받는 중. 셀리나 로이바이엄이 때린다는 소문이 있음.
기타: 영혼의 색이 보인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함. 회화 실력은 미상.
실력은 미상이라니.
못 그리면 못 그린다, 잘 그리면 잘 그린다지 왜 미상이지?
잘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그렇다면 그 그림을 출품하게 해야겠다.
드리블랴네의 이름으로 대회를 열어서 상을 타게 하는 방식이면 어떨까?
적대 가문인 드리블랴네의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하면 오히려 벨라디가 실력이 있다고 인정받게 될지도 모르지.
상식적으로 사이가 안 좋은 집안 딸이 출품한 것에 일부러 상을 줄 리가 없잖아? 그리고 살롱같은 데서 로이바이엄 공작이 다 듣도록 벨라디를 추켜세우면…….
“저기요, 지금도 저를 지켜보고 계시죠? 벨라디가 있는 곳에 데려다주세요.”
테라스로 몰래 나온 나는 다소 뻔뻔하게 외쳤다.
어른에게는 그리 넓지 않지만 아이 걸음으로 여길 다 뒤지고 다녔다간 쓰러질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영악하게 머리를 썼다.
“어어, 서른두 명이나 저를 호위한다면서요! 오늘도 여기 계신 거 아니에요? 다 아는데에!”
누가 보면 머리가 좀 이상해진 줄 알겠지만 난 꿋꿋하게 불러댔다.
“…….”
그리고 잠시 뒤.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지, 뭐.’
나는 얕게 한숨을 내쉬며 난간에 발을 턱 걸쳤다. 치맛자락이 치렁치렁한 게 영 귀찮았지만 계단을 찾는 게 더 귀찮았다.
“……이러시면 위험하잖아요.”
그러나 내가 난간에 매달려 넘어가려던 바로 그 순간!
누군가가 나를 달랑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