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79)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79화(79/173)
제 6장. 전국 최대 보석 축제에 가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황궁의 봄 연회가 끝난 지 어느덧 한 달이 흘렀다.
슬슬 낮에는 더워져서 평상복 재질도 훨씬 가벼운 것으로 바뀌고 잘 때 입는 네글리제는 민소매가 되었다.
사람들은 봄이 무르익어 여름이 오려는 징조라고 기뻐서 떠들어댔고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늘은 보슬비가 내렸다.
[난 한 번도 비를 맞아본 적 없는데. 궁금해요.]나는 허공에 뽀득뽀득 쓰이는 글씨를 보며 마음속으로 대꾸했다.
‘거기서 나오기만 하면 뭐든 하자.’
[정말?]‘응, 정말.’
어떻게 내 마음의 소리를 읽는 건진 모르겠지만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날 이후로 유리를 다시 만나러 갈 수 없었다. 일단 대체 어떻게 내가 거기까지 간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돌아온 건지도 모르겠으니까.
애초에 홀린 듯 움직일 땐 내 의지가 아닌데다 정신이 혼몽해서 길을 기억하는 건 무리였다. 그래서 다시 가보는 건 불가능했다.
아버님께 살짝 말씀드리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만 하시고 말이야.
물론 나는 가만히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즉각 반발했다.
“가문의 힘을 이용해 황가를 압박해서 유리를 수조에서 빼낼 수는 있단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마치…… 황가가 드리블랴네의 아래에 있는 것처럼 보여지지.”
“그게 왜 그렇게 돼요?! 애초에 유리가 그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 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졌고 황후는 황족이란다. 드리블랴네에 의해 황후가 밀린다는 인상을 주면 그건 곧, 황후가 자신의 세력을 불려서 미래에 유리를 공격할 수단을 주게 돼.”
“……전 이해 못 하겠어요. 왜 그렇게 되는 건지…….”
속이 답답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니까 아버님 말씀은, 지금 유리를 빼내 봤자 그게 나중에 유리에게 날아갈 화살이 된다는 것이다.
현상 유지가 낫다고 판단한 데는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아버님이 막아줄 순 없어요……?”
“우리는 수인이잖니. 보호받기만 하는 자가 어찌 통치를 할까.”
“그래도……. 그래도.”
“유리가 희생양이라는 건 부정하지 않으마. 유리가 황후의 손아귀에 있기에 세력 간의 균형이 유지된다. 일종의 볼모같은 거지.”
“그게 뭐예요…….”
내가 기운이 쭉 빠져선 웅얼거리자 아버님이 안타까운 표정을 잠시 지었다.
“하지만 유리는 황태자가 되고, 차후 황제가 될 거다. 지금의 수모를 갚아줄 기회는 많이 있어.”
그런다고 유리가 지금 불행하지 않은 건 아니잖아요. 황제의 관을 쓴다고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이도저도 안 되어서 풀이 죽어버린 내게 유리가 메시지를 보내온 게 오늘이었다.
[누나가 나랑 있어만 준다면 나는 수조에 좀 더 갇혀있어도 돼요. 얼마든지 기다릴게요.]‘바보 같으니라고. 바보같이 착해.’
나는 사라지는 메시지를 보며 유리가 과연 수조에서 나왔을 때 자기 밥이나 챙겨먹을 수 있을지 걱정했다.
저렇게 순해서…… 어쩜 좋아.
“작은 마님, 로이바이엄 영애가 도착했습니다!”
“아, 내려가야지. 한 시간이나 일찍 왔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미간에 주름을 만든 채 고민하던 내게 린다가 다가와서 소식을 전해주었다.
원래 오늘 두 시경에 만나기로 한 벨라디가 벌써 도착했다고 한다.
비가 더 많이 올까 봐 일찍 왔나?
“어서 와, 벨라디!”
“프, 플로린…….”
“좋은 오후야. 일찍 왔네!”
“네에. 저…… 기다리기, 힘들어서…… 혹시 바쁘면 가만히 있을게…….”
연한 복숭앗빛 원피스를 입은 벨라디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솜인형 같았다.
나는 연회가 끝난 이후로 벨라디와 벌써 네 번째 만나고 있었는데, 로이바이엄 공작은 의외로 이 만남을 방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벨라디의 말을 통하자면 ‘그런 쓸모라도 있어야지’라고 했댔나.
‘뭐, 이쪽 사정을 벨라디를 통해 빼내보려는 속셈인 것 같긴 한데.’
혹은 셀리나가 쓸모없어질 때를 대비한 보험이거나.
어느 쪽이든 난 상관없었다.
벨라디와 친해질 기회를 떠먹여 주니 고맙지.
“하나도 안 바빠. 오늘도 그림 그릴 거야?”
“네에.”
“그러면 나는 퍼즐 맞출래!”
우리의 만남은 보통 귀족 영애들의 만남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벨라디와 노는 시간을 휴식 시간으로 정했고, 하고 싶은 걸 했다. 벨라디는 거의 숨도 쉬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그런 나를 그렸고.
벨라디는 추상화를 좋아하는 것 같은데 나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 건지 궁금했지만 한사코 보여주지 않았기에 억지로 훔쳐보려고 하지 않았다. 그냥 좀 궁금해하고만 있을 뿐.
“따뜻한 레몬차예요.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엔 레몬이 좋답니다.”
“유모, 생강은 안 들어 있는 거 맞지……?”
“그럼요.”
“다행이다.”
유모가 맛있는 레몬차를 가져다주었다. 새콤한 것 안에 달달한 꿀을 잔뜩 부으면 이보다 더 맛있을 수가 없었다. 생강만 안 들어가 있으면 말이야.
“플로린은…… 생강, 싫어해요……?”
“좋아하는 애도 있어?”
“저는…… 좋아해요. 생강, 아삭하고…… 매워서…….”
“……설마 생강을 생으로 씹어 먹었단 소리는 아니지?”
기겁한 내 질문에 벨라디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더니 손으로 울퉁불퉁한 생강의 모양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겼는데…… 가끔, 주방 하녀들이 줘서…….”
“……뭐?”
미친 것들이 애한테 뭘 먹인 거야.
순간 열이 빡 뻗쳐서 잔을 쥔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맛있어요.”
“그렇구나. 그래도 오늘은 생강 말고 레몬차 마시자. 그리고 저녁도 먹고 가고.”
“네에…….”
벨라디가 수줍게 웃으며 찻잔을 양손으로 쥐었다. 마치 다람쥐나 토끼처럼 무해하고 여리고 조그만 벨라디를 보며 나는 남몰래 가슴을 쳤다.
저렇게 연약한 애한테 생강?
새애애앵강?
내가 옆에 있었으면 그 하녀들 머리털부터 꼬리털까지 죄다 뽑아버렸을 텐데!
‘우리 애가 이렇게 착해요. 어쩌면 좋아.’
하지만 다른 가문의 일에 내가 손을 댈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저 올 때마다 최대한 배불리 맛있게 먹이고 집에 돌아갈 땐 간식거리를 숨겨갈 수 있도록 해줄 뿐.
그리고 대회에 출품을 해보라는 말을 계속하면서 응원하는 것만이 내가 줄 수 있는 도움이었다.
궁극적으로 셀리나를 내치면 벨라디의 지위가 올라갈 테고, 그럼 모든 게 해결된다. 모든 게.
사각사각.
이윽고 벨라디가 연필을 들더니 열심히 뭔가를 그렸다. 나는 그 앞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로 퍼즐의 무늬를 맞춰보고 있었고.
‘산드레아 가문에선 가주가 직접 와서 무례를 저지른 것을 사과했지. 너그러이 용서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황후파에서 나오겠다고 선언했어.’
딸깍.
한 조각이 맞춰졌다.
‘황후가 감싸준 로이바이엄이 범인인 걸 모를 수가 없으니까. 더는 로이바이엄에 붙지 않겠다는 뜻이지.’
그렇게 드리블랴네는 산드레아 가문을 얻었다.
‘동쪽 너울 기사단 소속의 볼리스 리프만이 평민 불량배들에게 두들겨 맞은 채로 하수구에서 발견되었단 기사가 엊그제 나왔어. 전치 12주의 부상이고 다리가 완전히 뒤틀려서 기사 노릇은 앞으로 못하게 될 거라고 했지.’
간단히 말하자면, 폐인으로 직행. 그게 누가 사주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받아야 할 벌을 받은 것이다.
‘그날 린다를 윽박지르는 꼴을 보니 제 지위를 내세워서 지금껏 여기저기서 원한을 많이 샀을 상이던데.’
딸깍, 딸깍.
나는 퍼즐 두 개를 집어서 동시에 맞추었다.
‘볼리스 리프만에 대한 그 신문 기사 아래에 아주 조그맣게 황실 의사가 자살했다고 나와 있었는데……. 아무래도 입막음 당한 거겠지.’
정치는 명쾌하지 못하다. 어딘가는 잿빛이고 어딘가는 핏빛이었다. 하지만 결국 가장 위에 선 자들은 오늘도 맛있는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고 있겠지.
‘비비안 산드레아 영애 피격 사건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어.’
떠들썩하게 기사가 나오지도 않은 채로 조용히 덮였다.
비비안은 마법으로 목숨도 건지고 흉도 남지 않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까지 괜찮은 건 아니었다. 어머니와 함께 요양을 갔다고 했는데 과연 다시 중앙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아, 이제 남은 퍼즐은 세 개야.’
하나. 신성력을 다룰 수 있게 될 것.
둘. 황후를 만나 거래할 것.
셋. 유리를 그 빌어먹을 수조에서 빼낼 것.
그런데 문제는 ‘황후의 저주를 낫게 해주는 것’과 ‘로이바이엄을 황후가 내치는 것’이 등가 교환이라는 점이었다. 그 사이에 ‘유리를 수조에서 당장 빼내줄 것’은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아버님도 생각이 있으시겠지만……. 그 때라는 건 대체 언제 와?’
유리는 벌써 아홉 살인데. 열아홉 살은 되어야 때가 오는 건 아니겠지, 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