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8)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8화(8/173)
* * *
‘진짜일까?’
가문 회의로부터 일주일 뒤.
나는 니나가 가져다준 퍼즐을 착착 맞추며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 내 옆에는 엄청나게 맛있는 쿠키와 사탕, 젤리, 케이크 같은 게 가득 있었는데, 내가 성녀라는 걸 덜컥 믿어버린 순진한 장로 할아버지 몇 명이 보내온 선물이었다.
‘그때 그냥 나를 도와주려고 한 말일 거야. 나한테 신성력 같은 건 없잖아.’
휴우. 짧게 한숨을 내쉰 나는 그날의 일을 잠시 회상했다.
“조기에 봄이 와요. 그걸 아는 게 제 능력이애오.”
난 분명 이렇게 말했었지.
난 그냥 어디에 투자해야 하는지 아는 게 내 능력이라는 뜻이었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내가 또 다른 성녀라서 어디에 봄이 올지 미리 알고 있다’로 흘러갔다.
‘공교롭게 됐긴 해. 키락서스는 그걸 노린 거겠지만.’
근데 성녀라는 건 너무 큰 거짓말 아냐?
그저 ‘알비노 수인’에서 무려 ‘마도 제국의 성녀’로 지위가 파격 상승한 것이니 내쫓길 걱정이야 없다지만 어떻게 감당하려고…….
‘아, 감당은 내가 하는 건가……?’
내가 ‘또 다른 성녀’라는 말을 듣자마자 회의장은 벌집을 들쑤신 것처럼 난장판이 되었다.
믿을 수 없다, 봄이 진짜 오면 그게 증거지 않겠느냐, 거짓말하지 마라 등등.
근데 봄은 정말 올 것이다.
‘그럼…… 나는 이제 가짜 성녀가 되는 걸까?’
아니, 그런 연극을 할 거면 당사자인 나한테 미리 설명이나 해주든지! 회의 끝나고 설명해 줄 거라 여겼는데 그냥 사라졌어!
뽀닥. 울컥해서 손에 힘을 주었더니 쥐고 있던 퍼즐이 반으로 접혔다.
“아챠.”
“힘이 좋으시네요, 플로린 님. 퍼즐이 재미없으셨나요?”
“아니, 구냥 빡쵸서…….”
“그러시군요. 하필 오늘 눈이 많이 내리는 바람에 침실 안에만 계셔서 답답하셨나 봐요. 제가 놀아드릴까요?”
“갠타나. 니나, 바뿌자나.”
나는 어른스럽게 고개를 내저었다.
물론 니나랑 술래잡기랑 숨바꼭질하는 거 엄청 재밌지만…… 그렇지만 바쁠 텐데 방해하지 말아야지.
알고 보니 니나는 키락서스의 유일한 하녀였다. 처음에 그 사실을 알았을 땐 한 사람에게 일을 다 몰아 시키다니, 키락서스가 진짜 나쁜 놈이라 생각했는데 사건의 전말을 듣고 나니 감탄이 나왔다.
‘자기를 죽이러 온 암살자를 잡아다 강제로 10년 복종 계약 마법을 걸다니…….’
……나중에 나도 꼭 그런 마법 가르쳐 달라고 해야지!
이렇게 악당 가문에 적응해 나가는 방법을 찾은 나였다.
‘슬슬 가주님 쪽에서 연락이 올 때가 됐는데.’
이미 일이 너무 커져 버려서 발을 뺄 틈이 보이질 않는다.
결국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된 나는 퍼즐을 옆으로 치우고 크레용 하나를 끌어안았다. 크레파스와는 달리 내 하얀 털에 잘 묻어나지 않는 크레용은 가지고 놀기에 딱 좋았다.
‘내 목표나 정리해 보자.’
나는 니나가 주었던 스케치북에 대고 왕관 모양을 열심히 그렸다. 이게 바로 내 결론이었다.
‘이왕 이렇게 됐다면 그깟 가짜 성녀이자 며느리, 한번 해보는 거야!’
내 남편이 누가 될진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 나왔던 녀석들 중 하나겠지, 뭐.
물론 소설 후반부가 되면 내 남편도 라흰에게 푹 빠져 헤롱거릴 것이다. 원래 그런 소설이니까.
‘남편을 사랑하지 않으면 되니까 그건 상관없는데, 치정 싸움으로 드리블랴네가 몰락하는 건 곤란해.’
그야, 이 가문이 망하면 안주인인 나도 같이 거리에 나앉게 되는 거잖아?
‘그럼 어디 보자……. 남편과 전혀 관계없는 나만의 세력을 구축하고, 내가 가문을 지탱하면 돼.’
그러다 남편이 어디서 칼 맞고 죽으면?
‘내가 공작 하지 뭐.’
난 음흉하게 키들거렸다.
‘하지만 가능한 한 이 소설이 피폐물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자체를 없애는 게 좋을 거야.’
어디서 어떻게 변수가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난 길쭉한 상자에서 분홍색 크레용을 꺼내 하트 세 개를 그렸다. 그건 소설 후반부의 남자주인공들을 의미했다.
이 셋 중 단테만이 유일하게 이 가문의 직계고, 나머지 둘은 아니다.
게르드는 리첸비움 왕실의 피가 섞인 방계. 유리는 마도 제국 황실의 피가 섞인 아리아드네 님의 막내아들이었다.
‘이 셋은 어린 시절에 상처가 깊어. 그리고 그 상처를 이해하고 공감해 준 라흰에게 속절없이 빠져들지.’
뻔한 구원 클리셰였다.
‘그 구원 클리셰를 내가 라흰보다 일찍 가로채면?’
그럼 라흰의 영향력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난 이번엔 빨간색 크레용을 꺼내 숫자를 썼다. 앞으로 내 삶의 구체적인 목표였다.
“아주 됴아.”
꼬불꼬불한 글씨를 보며 나는 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브라우니 한 조각을 부자처럼 빠르게 먹어치웠다.
손에 묻은 초콜릿도 쪽쪽 안 빨아먹었어.
‘이게 성녀에게 해주는 대접이라면…… 성녀인 척, 계속할래!’
황홀한 맛에 나는 볼록 배를 드러내며 발라당 누웠다.
“플로린 님 계십니까?”
그런데 그때였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가주 할아버님의 호출이 드디어 왔다.
크레용을 팽개치며 벌떡 일어선 나는 밤톨 손을 움켜쥐며 달려 나갔다.
“저 요기떠요!!!”
가자! 신성 제국 정보 팔아치우러!
* * *
“저거 보십시오! 새순이 돋았습니다!”
“정말로, 정말로 봄이 왔습니다. 플로린 님께서 짚어주신 바로 그곳에만 말입니다!”
“이게 그 증거입니다, 가주님!”
“진짜 소가주님 말씀대로 저희 마도 제국에도 성녀가 난 것 아니겠습니까?”
가주의 방에 딸린 개인 회의실.
지금, 이곳의 열기는 어마어마했다.
흥분한 가신들의 외침 속에서 가주, 임마누엘 기욤 드리블랴네는 영상석 속의 풍경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영상석이 보여주는 새순이 돋은 땅과 꽃눈이 생긴 마른 나뭇가지를. 봄의 증거를.
그는 약 일주일 전, 속는 셈 치고 룩소리아 백작령을 사들였다. 땅뙈기가 아니라 그 전체를. 그리고 이게 바로 투자에 대한 결과였다.
“가주밈!”
이윽고 문이 열리고 집사가 바구니에 담아 정중히 모셔온 흰 담비가 나타났다.
테이블 위에 내려온 녀석을 물끄러미 보던 임마누엘은 주변을 향해 호통을 쳤다.
“당장 레드 카펫을 깔지 않고 뭣들 하느냐!”
드리블랴네는 철저한 성과제다. 설령 후계자들이라 할지라도 그 법칙은 무조건 지켜졌다.
기본적으로 책정된 용돈과 품위 유지비는 몹시 적었으며 정치적, 사업적인 어떤 결과가 있어야만 성과급을 받는다.
‘그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확실히 겪게 되다니.
융으로 만든 카펫은 너무나 보드라워서 자칫하면 미끄러질 것만 같았다. 그런 게 오직 나만을 위해 깔렸다는 건 한 가지만을 의미했다.
내 능력을 인정하셨다는 것!
악당 가문의 장점이라면 아무래도 이득이 되기만 하면 출신 같은 건 눈을 감아버린다는 점이리라.
복잡하게 꼬치꼬치 따지고 드는 건 신성 제국 스타일이지.
신성 제국은 돈보다 명예, 혈통, 고귀함, 기품 따위를 중시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마도 제국은 그렇지 않았다.
돈이 최고지!
“아이야. 네 이름이 무어라고?”
“플로린이에요.”
“플로린이로구나. 네 이름을 이제 기억하마.”
잠시 뒤.
나는 가주 할아버님의 앞에 당당하게 앉아 꿀을 탄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커다란 컵에다 얼굴을 넣고 할짝이는 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외면하자니 꿀 냄새가 너무 유혹적이었다.
“흠, 그래. 알비노라 인간화하기가 어려울 테지. 네가 쓰기 편한 식기와 컵을 제작하라고 일러두겠다.”
“감다합니댜.”
“껄껄, 그럴 것 없다. 이제 보니 네가 보배로구나!”
“헤헤, 구럼 사양 안쿠…… 식탁두 만드러 주데요! 이쁘구 반짜반짜한 것두 박아주세요!”
준다는데 그걸 뭐 하러 거절해? 더 얹어 받았으면 받았지.
나는 가주가 무려 ‘제작’해서 주겠다는 내 전용 물건들이 절대 싸구려일 리 없다고 확신했다. 분명 어디 박물관 같은 데 전시될 만큼 예술적 가치를 지닌 미니어처겠지.
난 헤실 웃으며 컵에다 말랑 뺨을 착 기댔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이들에게 날 좀 보라고 한 행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