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80)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80화(80/173)
“플로린……. 저어.”
그때, 벨라디가 말을 걸었다.
“응?”
“화났어……? 폭죽이 튀어서…… 더 눈부셔졌어…….”
아, 참. 벨라디는 사람의 얼굴을 볼 수 없고 빛을 본다고 했지. 그 빛이 너무 눈부셔지면 눈을 뜨기 힘들 정도라고도 내게 살짝 알려준 적 있었다.
나는 후우 하고 숨을 뱉어서 진정하곤 미소를 지었다.
“아. 화 안 났어, 안 났어. 괜찮아.”
아니, 사실 화났다.
어떻게 해야 유리를 빼낼 수 있을까?
‘황후가 하는 일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하나뿐이야.’
황제. 황제가 움직여야 한다.
‘그럼 황제는 대체 뭘로 움직인담?’
끙끙거리던 나는 결국 포기하고 퍼즐에 말랑한 뺨을 푹 대버렸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벨라디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내 머리를 토닥토닥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역시 가만히 있는 건 성미에 맞지 않지.’
한 달 동안 신성력이나 연습하면서 차분히 고민해 봤지만 역시 나는 유리를 거기에 두고 나 혼자 즐거울 수가 없었다.
‘모르면 몰라도 봤는데 어떻게 그래.’
눈을 굴리던 나는 테이블 아래에서 주먹을 콱 쥐었다.
‘그래, 할아버님께 가봐야겠어.’
아버님이 설명을 해주셨는데 납득하지 못하고 움직이는 거라 조금 찔리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저녁에 할아버님을 찾아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 * *
“할아버니임. 저 플로린이에요. 들어가도 돼요?”
이리저리 알아보니 할아버님은 요즘 새벽 세 시까지 업무를 보신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밤 열 시쯤에 쿠키 하나와 초콜릿 두 개 그리고 진하게 끓인 차를 드시는데, 당연히 그건 집사의 업무였다.
‘집사는 자주 만난 적 없어서 엄청 어색하고 어려웠지만!’
그래도 오늘은 내가 간식을 가져다드리고 싶다고 하니 기꺼이 트롤리를 양보해 주었다.
“플로린? 네가 웬일이냐. 어디 보자, 키가 좀 더 자랐느냐?”
내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문이 벌컥 열리더니 할아버님이 나타났다.
놀란 눈초리에 나는 배시시 웃으며 깜찍하게 애교를 부렸다.
“매일 힘들게 일하시잖아요. 그래서 오늘은 제가! 차를 드리고 싶었어요.”
“허허, 이래서 손자 놈들 있어봐야 소용없구나. 손주며느리가 열 손자 놈보다 낫다.”
“지금은 잘 끓이진 못하지만요, 서툴러도 제가 매주 끓여드리면 실력이 늘지 않을까요?”
나는 그렇게 아양을 떨며 집사에게 속성으로 배운 차 끓이기를 시도했다.
“이번에 연회장에서 꽤 큰일이 있었다지?”
“네에, 어떤 애가 총에 맞았거든요! 그런데 그걸 린다에게 뒤집어씌우지 뭐예요. 아, 린다가 누구냐면요……. 제 하녀예요.”
“아주 당혹스러웠겠구나. 헌데 잘 대처했다.”
“히히. 제가 가문에 도움이 됐다면 기뻐요. 그런데 이안이 있어서요, 그래서 안 무서웠던 거예요. 혼자였으면 무서웠을 거예요.”
나는 깨알같이 이안의 칭찬도 덧붙였다. 내가 잘나서 잘 됐다고 하기보다는 이안의 공도 있음을 어필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리고 사실이기도 해.’
이안이 여러 번 나를 보호해 줬으니까.
연회 이후로 나와 이안 사이에는 몹시 끈끈한 고리 같은 게 생겨있었다.
이렇게 생각이 잘 맞는데다 다음에 어떤 수를 놓을지가 일치하는 사람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일이겠지.
나는 차를 다 끓인 다음 호호 불어서 할아버님의 앞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 몫의 찻잔도 슬그머니 쥐었고.
그걸 보시던 할아버님이 눈으로 웃으며 말씀을 건네셨다.
“녀석, 궁금한 게 있는 모양인데.”
“아앗! 혹시 너무 바쁘시면 그냥 차만 드리고 가려고 했어요. 다음에 또 오려고요.”
“오늘 이야기를 들어줄 테니 다음 주에도 또 오너라.”
할아버님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차를 머금었다.
나도 내가 끓인 걸 한 번 맛봤는데…… 음. 진짜 맛없었다.
‘그런데 할아버님은 잘 드시는데……?’
그냥 어린애 입에만 맛없는 건가?
심란하게 찻잔을 보던 난 슬쩍 내려놓고는 모른 척했다.
“요번에 폐하를 뵈었는데요, 엄청! 잘생기셨더라고요.”
“낯가죽은 반반하시지.”
“크흠, 네에. 그래서 요즘 황제 폐하가 갖고 싶어 하시고, 관심이 있으신 게 뭔지 궁금해요!”
알려주세요, 알려주세요.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손을 꼬옥 맞잡은 난 발마저 동동 흔들었다.
제발 제발 알려주세요!
“흐음……. 황제는 요즘 헛짓거리에 집착을 하고 있다.”
“헛……이요?”
차마 헛짓거리라고 말할 수는 없어서 나는 앞 음절만 발음하고 뒤는 우물거렸다.
“그래. 듣자 하니 아르칼리크에서 매해 보내오던 사절단 대표가 지금 황성에 있다고 하더구나. 교류할 해도 아닌데 말이지.”
“아르칼리크……. 폐하는 아르칼리크에 어떤 걸 원하시는 거예요?”
“가보고 싶은 것 같던데.”
“그,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나라로 인정된 나라를요?”
아르칼리크에 관심이 있는 줄은 몰랐네.
하지만 이건 안다고 한들 써먹을 수 없는 정보였다.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키곤 할아버님께 바른 대로 밝혔다.
“저요, 유리 황자님을 만났거든요.”
“호오.”
“그런데 수조에 갇혀 있었어요. 집에 돌아와서 책을 찾아보니까 뿔고래 족이나 톱니 상어 족은 바다에서 태어나서 바다에서 자라야 한대요. 그런데 수조는 바다가 아니잖아요.”
“그렇지.”
“바닷물만 있다고 그게 바다는 아니니까요. 그런데 왜 아무도 유리를 꺼내주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집안 어른들이라고 좋아서 그렇게 두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 빼낼 방법이 아무것도 없는 걸까?
“유리는 황자란다, 플로린.”
잠시 침묵이 지난 뒤, 할아버님이 무겁게 입을 여셨다.
“미래에 황제가 되어야 할, 황자지.”
“!”
“허나 당장 황제는 황후를, 그리고 황후의 파벌을 버릴 수 없단다. 준비를 해나가고 있으나 아직은 때가 아니지.”
“그건 황궁의 사정인 거잖아요!”
“그래, 네 말이 맞다.”
할아버님이 허허 웃으며 서랍을 여셨다. 그러더니 그 안에서 캐러멜을 꺼내 포장 종이를 까더니 내 입에 쏙 물려주셨다.
“흠, 이걸 어찌 설명해야 쉬울꼬?”
“으양얼영애우애오(그냥 설명해 주세요).”
캐러멜은 딸기 맛이었고 정말 달콤했다. 하지만 유리는 이걸 못 먹는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맛있지 않아.
할아버님은 이내 양피지 하나를 놓더니 슥슥 이름을 써내려갔다.
“자 보거라. 이게 유리가 갇힌 수조다.”
“네에.”
“그리고 이 동그라미가 황가. 이 세모가 드리블랴네. 그리고 이 별 모양이 황후라고 치자꾸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첫째. 황후와 그 파벌은 황후가 아이를 낳기를 원한다. 그리고 황후는 유리를 몹시 미워하고 있지.”
“둘째는요?”
“둘째. 유리는 그 수조를 나오는 순간부터 암살 위협에 시달릴 거다. 먹는 것, 입는 것은 물론이고 잠조차 제대로 잘 수 없어질 게야.”
“!”
그건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바짝 굳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면서 할아버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그 수조는 누구도 유리를 빼낼 수 없도록 장치가 되어 있으니 오히려 보호라고 봐야 한다. 거기서 나오는 순간 신성제국에서도 유리를 노리게 될 테니까.”
“평화 협정…… 하지 않았어요?”
“아직 진행 중이지. 그리고 평화 협정을 한들 전쟁을 하지 않겠다고 했지 황실을 무너트릴 계획을 세우지 않겠다고는 안 했단다. 이쪽에서도 암살자를 보내니 그쪽에서도 올 테지.”
“……맙소사.”
황자라는 거, 왜 이렇게 불행해?
‘엄청 좋은 것만 먹고 좋은 것만 입고, 권력을 누리는 자리 아니었어?’
“셋째. 아무튼 황후는 아이를 갖지 못하지 않으냐. 로이바이엄 쪽에서 술수를 써서 어디서 황자를 구해올지 모르겠지만, 그게 가짜임을 우리 쪽에서도 무슨 수를 쓰든 밝혀낼 게다. 즉, 유리는 가만히 목숨을 보전하고 있기만 하면 황제가 될 수 있다.”
“……아.”
“헌데 위험하게 나와 있을 이유가 없지. 현 상황을 유지하며 1년에서 2년 정도, 협상이 마무리 되고 마도제국에 들어와 있는 첩자와 암살자들을 최대한 처리한 다음에. 드리블랴네에서 믿을 만한 이들을 황궁에 넣게 되면, 그때. 유리는 세상에 나올 거다.”
아버님이 해 주신 설명보다 할아버님의 설명이 훨씬 이해하기 쉬웠다.
단순히 하나의 장면만 볼 게 아니라 그 뒤의 일까지 다 생각해야 하는구나.
‘그래도…… 유리도 알고 있는 걸까? 유리가 참겠다고 한 걸까?’
아닐 거잖아.
막무가내로 움직여서 가문을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버님의 기묘하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상대가 적이라 하더라도, 만에 하나 네가 누군가를 구하고 싶다면…… 그래도 된다. 뒷감당은 내게 맡기고 너는 네가 옳다고 믿는 걸 하려무나.”
“제가 옳다고 믿는 것이요?”
“가문은 가문이고, 너는 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면…… 네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된다.”
그래서 난 아버님을 믿고!
내 마음이 옳다고 가리키는 대로 뚜쉬뚜쉬 걸어 나가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