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81)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81화(81/173)
‘지금 말씀하신 모든 게 문제라면, 결국 황제가 유리를 보호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는 건데.’
결론적으로 황제가 유리를 보호하면 되는 거잖아.
그냥은 보호를 못하겠다면, 보호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만들거나 그런 거래를 하면 되는 건데.
‘당장은…… 황제를 움직일 수단이 없단 거겠지.’
잘 알겠다. 뭐가 문제인지.
이 모든 건 황제의 등에 꽂아서 감을 태엽이 없다는 소리였다.
“듣자 하니 네가 황후에게 은혜를 입힐 생각이라고?”
“네. 신성력을 어떻게 쓰는지 공부도 많이 했어요.”
“보여주려무나.”
아버님은 내게 어느 날 갑자기 파문 사제를 데려다주었다.
굉장히 불량하고 심각하게 술을 좋아하는 이상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신성력 수업만큼은 제대로 해주고 갔다. 덕분에 나는 이제 어느 정도 ‘보글보글’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손을 가져다대고요, 속으로 보글보글 하고 생각하면 돼요. 소독약 거품 올라오듯이…….”
포옹.
내 손끝에서 작은 신성력 방울이 솟았다. 그건 둥실둥실 떠다니다가 할아버님의 어깨에 닿아 톡 하고 터졌다.
“흐음. 이거, 어깨가 갑자기 시원한 느낌이 드는구나.”
“근육이 뭉쳐서 결리던 부분에 신성력을 주입해서 그래요.”
“으음, 꽤나 편리한데…….”
할아버님은 ‘신성 제국에 가서 사제 몇 놈쯤 납치해 올까’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주무르셨다.
정말 그렇게 하시기 전에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얼른 말렸다.
“제가 자주 해드릴게요!”
“고맙구나.”
“다음 주에도 또 와서 해드릴게요. 아무튼 아버님이 눈을 가린 환자들도 데려와 주셔서 시험해 봤는데 대부분 많이 나았어요.”
“보고는 받았다만 놀랍더구나. 성녀가 났다, 성녀가 났다 했지만 이리 대단한 능력일 줄이야.”
그러게요.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나는 대부분의 찰과상은 물론이고 장기에 생긴 병도 어느 정도 낫게 할 수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신성력을 쓰고 나면 꽤 지치긴 했지만 그 외에 딱히 부작용은 없었다. 파문 사제님도 신성력의 대가가 목숨이란 이야긴 하지 않았고 경전에도 그런 무서운 소린 적혀 있지 않으니까.
‘말 그대로 천신을 배터리로 삼아서 동력을 무한으로 끌어다 쓰는 거지.’
제대로 된 신관들이 들으면 신성 모독이라며 입에 거품을 물고 뒤집어질 만한 생각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며 나는 히 웃었다.
저기, 어디 계실 신 님. 듣고 계신가요?
‘저한테 이런 힘을 주셔서 감사해요. 그리고 앞으로도 잘 쓸게요!’
“황후 폐하는 이틀 뒤에 뵈러 가기로 했어요.”
“만약 네가 성공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괜찮으니 주눅 들지 말고 잘 다녀오거라.”
“네, 할아버님!”
하지만 꼭 성공할 거예요.
“그런데 할아버님. 제가 황후가 임신할 수 있게 해버리면, 유리는 유일한 황자가 아닌 거잖아요. 그럼 가만히 있어도 황제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아요?”
“음.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 혹은 반대로…… 유리에게 쏠릴 암살을 반으로 나눌 수도 있겠고.”
“헉.”
오싹해.
내가 깜짝 놀라서 부르르 떨자 할아버님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농담이다.”
“……진짜요?”
“그러엄, 농담이지.”
아닌 것 같은데요.
찜찜하긴 했지만 이후로 나는 20분 정도 더 할아버님과 담소를 나누다가 침실로 돌아갔다.
‘나는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 너무 많은 걸 생각하니까 머리가 터져버릴 것 같아.’
일단은 황후에게 은혜를 입히는 것부터.
나는 이를 악물고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일어났을 땐 턱이 얼얼할 정도였다.
* * *
황후 폐하를 만나러 가는 날엔 폭풍우가 휘몰아쳤다. 마치 오늘이 아주 중요한 날인 걸 하늘도 아는 것만 같았다.
‘내 컨디션은 나쁘지 않아. 어디 아픈 곳도 없고.’
아침에 긴장은 했다지만 그래도 밥을 맛있게 잘 먹었다. 크루아상도 두 개나 야무지게 해치우고 버섯 수프도 홀랑 다 먹었거든. 그 다음엔 포슬포슬한 감자 샐러드와 대게 찜도 맛을 보았다. 힘을 내기 위해서였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황후궁에 도착하니 시녀장이 나와 이난나 님을 정중하게 안내해 주었다. 미리 사람을 물린 듯 복도는 텅 비어 있었고 그 탓에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소리가 더 크게 울리는 듯했다.
‘적막해.’
수많은 문을 스쳐 지나고 긴 복도를 지나는 동안 호위병 하나 없다니. 물론 우리도 호위 없이 비밀리에 오기야 했지만…….
“이곳입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은 어떻게 봐도 황후 폐하가 본래 쓰는 침실이 아닌 듯했다.
왜냐면 좁기도 좁고 내부 장식도 별로 없거든. 비밀스럽게 누군가를 만나기 위한 공간 같달까?
“어서 오시게.”
“존귀하신 황후 폐하를 뵙습니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황후 폐하가 보였다.
예법에 어긋나지 않도록 얼른 고개를 숙였지만 한순간 스쳐 지난 장면에 나는 솔직히 조금 얼어붙었다.
‘곰인형을 아기처럼 안고 어르고 있어…….’
사실 신성력으로 치료를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걸 보면 현실 부정을 극심히 하고 있을 뿐, 속 깊은 곳은 어느 정도 제정신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또 이렇게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알쏭달쏭해.’
나는 이해를 포기하고 그냥 얌전히 자리에 앉았다.
오늘도 여전히 황후 폐하의 페로몬은 탁했으며 속에는 시커먼 뭔가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약속은 지키겠네. 조만간 합방일이니 결과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게 되겠지.”
“예, 황후 폐하.”
“은혜는 잊지 않겠다.”
“원망이 되지 않을 겁니다.”
“그리 자신 있게 말하니 믿어보지. 어디 준비한 것을 내놓아 보게.”
황후의 눈빛은 그다지 곱지 않았다.
애써 현실을 등한시하려 노력했는데 차마 쥐지 않을 수 없는 기회를 들이밀어 현실을 보게 만든 게 기분이 나쁜 듯했다.
나는 황후의 품에 다소곳이 안겨 있는 곰돌이 인형엔 시선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며 조심히 다가갔다.
“성녀가 말하길, 황후 폐하의 몸속에 강한 저주가 있다고 합니다. 그 저주를 신성력을 통해 밀어내는 것이온데 혹 몸이 불편하시거든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내 평생 신성력을 부정해 왔다. 헌데 그것의 도움을 받는다니……. 제 노력 하나 없이 그저 운 좋게 생긴 힘에 불과하지 않나.”
하지만 그건 신분도 그런걸요.
나는 속으로 입을 비죽거렸다.
어쨌거나 마도 제국 사람들의 신성력에 대한 불신, 신에 대한 의심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것이었기에 당장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럴 생각도 없고.
‘나와줘, 보글보글.’
나는 나름 내가 붙여둔 기술명을 읊으며 황후의 배 부근에 가만히 손을 가져갔다.
시녀장이 아주 도끼눈을 뜨고 저 뒤편에서 노려보고 있는 걸 보니 함부로 옥체에 손을 대면 안 될 것 같아 어느 정도 거리를 띄운 채였다.
“물거품인가.”
“비슷합니다.”
“나쁘진 않군. 간지러워.”
포롱포롱.
내 손에서 흘러나온 신성력 방울들이 황후에게 스며들었다.
나는 내 눈에 보이는 새카만 것이 밀려날 때까지 온 힘을 다했다.
조금씩…… 또 조금씩.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알고 보니 신성력을 퍼붓는 건 우아하게 웃으면서 샤라랑 하면 끝나는 그런 게 아니었다. 온 정신을 집중해 내 안에 있는 낯선 힘을 끌어내는 작업은 그저 길고 또 길었다.
‘황후가 낫기를 바라.’
그래서 태어날 그 누군가가 지극한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
‘내가, 그렇게 바라고 있어.’
다시 황후를 보면서 느낀 건데, 황후가 원하는 건 자식이었다. 그래, 황태자가 아니라 자식.
‘그냥 후계자만 낳으면 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아기를 원한다는 게 내 눈에조차 보일 지경이야.’
그게 아마 내가 지금 황후가 낫기를 바라는 이유인 것 같았다.
‘신이 있으면 도와주세요. 저를 사랑하셔서 제게 신성력을 주신 거라면요.’
그때였다.
화악!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를 만큼 커다란 힘이 내게서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아까까지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이었으면 지금 내 안을 휘감는 건 격랑이다. 어마어마한 신성력이 터져 나와 홍수를 이루기 시작했다.
‘으악! 잠시, 떠내려갈 것 같아요!’
내가 울상이 된 채 속으로 그렇게 외치자 신성력이 조금 줄어들어 어느 정도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
황당해진 나는 머리 위로 물음표를 천 개 쯤 띄웠다.
‘아니, 진짜로 신이 내 기도를 들은 건가?’
그래서 방금 화답한 거고? 그럼 또 기도 하면 또 들어주나?
‘잘 모르겠지만 나중에 고민하자. 어쨌든 지금은 다 끝난 것 같아.’
황후에게서 손을 뗀 나는 변화를 느꼈다.
우선 역겨움을 유발하던 ‘그것’이 완전히 사라졌다. 더는 찾아볼 수 없었기에 나는 처음으로 황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아, 생각보다…… 앳되구나.’
말투나 옷차림이 나이가 많은 귀부인을 연상시켰는데 아니었다.
‘많아봤자 이십대 초반처럼 보이는데 실제로는 중반이긴 하다고 했지.’
허나 그래봤자 이십대다.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아직 어리디어렸다.
‘유리를 그렇게 대해서 마귀할멈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색색거리며 잠이 든 황후의 얼굴은 마치 아기처럼 편안해 보였다.
시녀장은 얼른 황후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주곤 내겐 찌릿하는 시선을 보냈다. 빨리 꺼지라는 거겠지.
‘그런데 황후가 진짜 아기가 생기면 그건 내 덕일 테니, 시녀장 당신. 그땐 나한테 고맙다고 고개를 조아려야 할걸.’
코웃음을 친 나는 까치발을 들고 조심조심 물러 나왔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요, 이난나 님.”
“고생했단다. 돌아가서 맛있는 딸기 생크림 케이크를 먹을까?”
“좋아요!”
아까 신이 내게 화답한 것 같다는 말은 하지 않는 게 낫겠지? 마도제국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할 만한 말이잖아.
나는 뒤를 흘긋 돌아보다 후다닥 이난나 님의 옆에 붙었다.
‘오늘 내가 한 일에 대한 결과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될 거야.’
만약 정말 아기가 생긴다면……. 그땐 다시 찾아가서 유리를 너무 미워하지 말아 달라고 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플로린이 떠난 자리. 플로린을 지켜보는 시선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