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82)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82화(82/173)
‘아직 내가 주는 사랑을 모두 다 보일 만큼은 자라지 못했구나. 몸이 작으니 그만한 신성력을 내면 힘들어 하는 게야.’
천신은 자신의 공간에서 플로린을 바라보다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그의 화신은 실로 잘 해주었다. 악신의 화신이 이 세상에 남겨둔 수많은 저주를 저 애가 없앨 수 있을 터였다.
악신의 화신, 라흰이 봉인되어 있는 동안 차근차근 하나씩 없애두어야지.
‘네가 고생을 좀 하겠구나. 사랑한다, 나의 아이야.’
천신은 벽면에 비치는 플로린의 모습을 향해 키스를 날렸다.
신의 입술을 통해 흘러나온 신성력은 빛가루가 되어 화신의 몸에 흡수된다. 이미 오랫동안 악신의 화신으로 가호를 받아온 라흰에게 대항하려면 플로린 역시 수없는 가호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가호는 화신이 신성력을 사용해 몸속에 빈자리가 생겨야만 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신성력을 사용해 누군가의 저주를 풀거나 치료를 해줄 때마다 플로린은 더 강해질 수 있다.
악신의 화신이 저주를 걸 때마다 더욱 강해지듯이.
‘라흰의 봉인이 깨어지기 전까지 최대한 강해져보자꾸나.’
사뿐사뿐 걷는 플로린의 뒤로 빛가루가 퐁실퐁실 떨어져 내렸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오랜만에 갖는 양어머니와의 산책 시간에 나는 뜻밖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국 최대 보석 축제요?”
“그래요, 따님. 그 축제를 방문하고 귀빈 축사를 하는 게 이번 달의 공식 일정이랍니다.”
양어머니가 내게 팸플릿을 주셨다.
받아 든 나는 일단 축제가 어디에서 열리는지부터 확인했다.
“따르티에 령……. 여긴 분명 가문에서 가지고 있는 영지지요? 광산이 많은 곳이요!”
“맞아요. 이 김에 직속 영지를 방문해 보는 거예요.”
“우와. 그러잖아도 궁금했어요!”
드리블랴네는 공작 가문이니만큼 산하에 많은 영지를 가지고 있었다.
개중에서도 이곳, 따르티에는 마도 제국 최고의 에메랄드 광산이 있는 곳으로 그 외에도 스피넬이니 오팔이니 가넷이니 하는 것도 꽤나 나온다고 배웠다.
그러니까 보석 축제를 여는구나.
“값비싼 것들을 잔뜩 판매하는 시기이니 안전을 위해 가문에서도 기사들을 많이 내려보낼 거예요.”
“어머니도요?”
“네. 그리즐리 경도 갈 테고, 신입 기사들도 경험을 늘리기 위해 함께 갑니다.”
“아! 그……, 살아남은 신입 기사들……. 누가 살아남았는지 궁금해요.”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 미친 선발 시험을 뚫고 살아남은 독종이 있긴 있단 말이야?!’
흑륜 기사단은 얼마 전에 신입 기사 55명을 선발했다. 들어보니 선발 방식은 극악하기 그지없었는데, 일단 시험 장소가 험준한 얀테로사 산맥이었다.
시험 방식은?
알아서 생존하기 서바이벌 7일!
만약 도저히 못하겠어서 포기하고 싶다면 언제든 제공한 구조 귀걸이를 빼서 부수면 된다고 했다. 그러면 가문의 마법사가 찾으러 간다고…….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죽었다 다시 살아나도 기사는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올해는 썩 마음에 드는 인재가 없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 네, 아니에요.”
그 시험에서 살아남는 게 미친 것 같은데요…….
양어머니는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천사 같았지만 훈련할 땐 아마 180도 바뀌시는 것 같았다.
종종 산책을 하다가 마주치는 기사들이 완전히 얼어붙어서 경례를 하고 가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갈고 닦으면 봐줄 만한 신입은 있었답니다. 영지로 내려가는 길에 따님도 만나게 될 거에요.”
양어머니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나는 그 말씀 속에 숨은 의미를 알아채곤 조심스레 반문했다.
“저어, 마법이 아니라 마차를 타고 가나요?”
“봄이 온 뒤로 세상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둘러보는 목적도 있기에 마차로 가는 여정입니다. 신입 기사들이 행군에 익숙해지기도 해야 하고……. 귀한 분을 모시는 법을 배우기도 해야 하니 마차로 결정이 되었어요.”
“그럼 야영도 해요?”
“네, 사흘 정도는 야영을 하겠네요.”
“기대돼요!”
한 번도 안 해본 건 역시 궁금하다.
‘아직 황후 쪽에서는 아무 소식도 없고, 당장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서 답답하던 차였어.’
그런데 이렇게 여행을 떠나게 되다니. 몹시 기뻤다.
“참, 이번에는 단테 도련님과 앙드레 도련님이 함께 갈 거랍니다.”
“앗……!”
“가주께서 그리 결정하셨어요.”
이번에는 내게 선택권이 있는 게 아니구나.
‘하긴, 정식으로 기사들이 움직이는 거니까 그 둘을 붙여주셨나 봐.’
엄청 신나하겠네, 앙드레.
‘그런데 이안도 검술을 배우는데. 이안은 같이 가지 않는 건가?’
그 궁금증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해결되었다.
“나는 그때 하필 원정 훈련이 잡혀서.”
“아하.”
“조심히 다녀와. 마음이 영 놓이진 않지만……. 위험한 곳은 아니라고 들었어. 보석 생산지이자 판매지이기도 해서 치안이 굉장히 좋대.”
저녁 식사 때 만난 이안이 함께 가지 못하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나는 노릇노릇한 스테이크를 썰다가 멈칫했다.
“원정 훈련? 설마 얀테로사에 가는 건 아니지?”
“아니야. 국경 지대에 간대.”
“국경? 엄청 위험한 거 아냐?!”
요즘 들어 눈치챈 건데 이안은 한 주에 하루씩 꼭 사라졌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언제 오는지도 모르지만 그냥 없어지면 ‘아, 비밀 훈련을 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됐다.
단테나 앙드레는 그런 것 없이 기사들과 함께 훈련하는데…….
‘아마 이안은 기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는 게 아닐 거야.’
망설이던 나는 아직 썰지 않은 스테이크를 그대로 집어서 이안의 그릇에 놓았다.
“플로린, 잠깐.”
“어허! 많이 먹어. 많이 먹고 무사히 와야 해.”
“이런.”
이안이 난감한 듯 입가를 가렸다. 하지만 싫진 않아 보이니까, 뭐.
“고마워, 잘 먹을게.”
그렇게 식사가 끝났다.
이후로 시간이 흘러 드디어 떠나는 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뚫고 나는 앙드레, 단테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따르티에로 향하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 * *
비 오는 날의 야영이란 어른들에겐 싫은 일일지 몰라도 세 명의 아이들에겐 더할 나위 없이 흥분되는 일이었다.
고여 있는 웅덩이들이며 푹 팬 바닥, 개굴개굴 우는 소리들!
아무리 점잖은 척하려 해도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웅덩이를 밟고 싶은 건 어린애의 본능 같은 건가?
“난 기사들이랑 같이 밖에서 잘 거야!”
식사도 끝내고 막사도 다 펼쳐서 슬슬 자야 할 시각.
기사들을 졸졸 따라다니던 앙드레가 제 몫의 침낭을 끌어안곤 당당하게 선언했다.
“진짜 기사다운 게 뭔지 보고 배울 기회라고. 마차에만 있을 수야 없지!”
하긴, 첫 번째 야영 지점까지 오는 동안 지루함에 말라 죽어가던 앙드레였으니 기사들 틈에서 멋진 전투 이야기를 들을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여기저기 모닥불을 피운 기사들은 양철통에 끓인 물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아마 앙드레의 눈엔 저것조차 멋있어 보일 게 분명했다.
“난 안 가. 너나 가.”
“뭐야, 너 설마 플로린이랑 같이 자려는 건 아니지?”
“아, 아니거든?”
앙드레가 단테를 놀리며 폴짝폴짝 뛰고, 단테는 얼굴이 시뻘게진 채 그 뒤를 쫓았다.
‘어휴. 남자애들이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나는 끙차 하고 기지개나 쭉 켰다.
‘그럼 나도 슬슬 나가볼까.’
사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계획이 하나 있었다.
케케묵어서 먼지가 쌓인 계획이지만 다시 꺼내들 때가 됐다.
바로, 라흰 대비 성녀 방지 계획!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기사들이랑 친해질 절호의 기회야.’
요즘 셀리나에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더니 라흰이란 이름을 까먹을 뻔했지 뭐야.
나는 헤죽 웃으며 의자 밑에서 바구니 하나를 꺼냈다. 떠나오기 전에 미리 주방에 말해서 따로 받아둔 초콜릿이 가득 들어 있는 바구니였다.
야영을 하는데 기사들이 제대로 식사를 할 리도 없고, 신입 기사들에게 못 먹고 못 자는 행군은 아무래도 힘든 일이다.
이때 초콜릿 하나를 따악 건네면 얼마나 좋아하겠어?
“작은 마님, 비가 오는데 마차에 계시지 않고요.”
“이거, 챙겨주고 싶었어!”
“아니, 이건…… 초콜릿 아닙니까!”
제일 먼저 마주한 기사에게 초콜릿을 내민 나는 이윽고 와글와글 몰려드는 기사들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눠주었다.
“엇, 작은 마님.”
“존! 존은 두 개 줄게.”
존은 나와 후계자들이 탄 마차를 지척에서 호위하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존도 사람인데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갈 순 없거든.
나는 존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를 노려서 슬그머니 나온 거였다.
“이야, 부럽다?”
“이 귀한 걸 두 개나 받고 말이지.”
“오늘 불침번은 네놈이 서야겠다!”
나이 많은 기사들이 존의 옆구리를 마구 찌르며 놀려댔다.
나는 그런 기사들을 뚫고 나와선 새내기 기사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은 신입에 불과하지만 결국 이 기사들이 미래에 나와 내가 선택한 가주가 이끌어나갈 가문을 지켜줄 기사들이 되는 거야.’
선배 기사들 사이에서 잔뜩 긴장한 티가 여실한 신입 기사들은 나를 발견하곤 엉거주춤 일어섰다.
“안녕! 처음 만나지?”
“좋은 밤입니다, 작은 마님!”
“응. 이거 주려고 왔어. 다들 많이 피곤할 텐데 간식 먹어.”
신입 기사들은 굉장히 쭈뼛거리면서 다가왔다. 이걸 받는 게 군기에 어긋나는 건지 받지 않는 게 어긋나는 건지 헷갈린다는 표정이었다.
“야, 야. 작은 마님 팔 떨어지시겠다. 얼른 안 받고 뭐 하냐?”
그때였다.
유들유들한 말투의 신입 기사가 다가오더니 엄청 능글맞은 동작으로 내 손에서 초콜릿을 받아 들었다. 그런 다음 가슴에 손을 얹고 내게 정중히 인사를 올렸다.
“다시 뵙네요, 작은 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