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84)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84화(84/173)
“내 건 없어? 뭐, 꼭 달란 건 아니고. 보석이 갖고 싶은 것도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정말 기를 쓰고 관심 없는 척하는데 이미 말투에 기대감이 폴폴 묻어난다. 안 줬다간 시무룩해져선 일주일은 토라져 있을 게 눈에 선했다.
‘하지만 어쩐지 냉큼 주겠다고 하기 싫단 말이지.’
헤죽 웃은 나는 눈을 데로록 굴렸다.
“모르겠는데에. 줄까, 말까아.”
“꼬, 꼭 갖고 싶은 거 아니거든?”
“그럼 안 줘도 안 삐질 거야?”
“그건 아니지만…….”
귀엽기는.
새초롬한 표정으로 입을 비죽이는 단테를 보던 난 어떤 보석이 어울릴지 잠깐 고민했다.
‘역시 눈동자 색과 닮은 에메랄드겠지만 만약 돈이 얼마 없으면 녹니석을 살까 봐.’
여기 오게 될 줄 알았으면 영애들에게 부채는 돌리지 말걸 그랬네.
나는 조금 후회하며 앙드레가 내려놓은 팸플릿을 집어 펼쳤다.
여기엔 각종 원석에 대한 소개도 간략히 나와 있었는데, 녹니석은 에메랄드에 우유를 탄 것 같은 색이었다. 하지만 종류와 등급에 따라 조금씩 달라져서 어떤 건 돌 안에 커다란 산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무늬를 띠기도 했다.
‘만약 녹니석을 주게 되면…… 귀걸이는 별로일 것 같아.’
왜냐면 귀걸이는 너무 눈에 띄잖아.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닌데.
‘단테는 제복을 자주 입으니까, 커프스단추로 줘야지. 그러면 재킷 안에 살짝 가릴 수도 있어서 좋을 거야.’
일단 그렇게 결정!
그다음은 이안과 유리인데 나는 둘을 생각하며 머리를 쥐어 싸맸다.
이미지로만 따지자면 내게 있어 단테는 푸른 나무가 떠오르는 녹색이었다. 이안은 화염 속에 서 있던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그런가 붉은색이었고.
그리고 유리는…….
나는 유리의 보라색 눈동자를 가만히 떠올렸다. 나를 바라보던 꿈꾸듯 몽환적인 표정과 달콤하던 눈빛을.
그 애는 한 가지 색으로 딱 정의 내려지지가 않았다. 수많은 색이 한데 모여 팽창과 소멸을 반복하는 것처럼 느껴져. 꼭 오팔처럼.
‘아, 다 정했다.’
단테에겐 녹니석을, 유리에겐 오팔을 줘야지. 그리고 이안에게는 가넷이 어울릴 것 같았다.
모두 다이아몬드보다 반짝임이 덜하지만 아직 어려서 그런가, 내 눈엔 그것도 충분히 예뻤다.
다들 좋아해 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야.
“마음에 드는 원석이 있으면 공방에 가져가서 바로 만들어 달라고 할 수도 있구나?”
“어어어엄청 재밌을 것 같아. 공방에 꼭 구경 가자, 플로린!”
앙드레가 작은 푸들 강아지처럼 신이 나선 발을 동동거렸다.
나는 팸플릿 가장 뒷면에 나와 있는 공방의 위치를 눈여겨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저택에 당도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시간은 금방 흘러 우리는 이윽고 따르티에에 있는 가문 저택에 도착했다.
“와, 여기 저택은 아담하고 예쁘게 생겼네.”
마차에서 쪼르르 내린 나는 지금껏 못 보던 양식으로 지어진 저택을 보며 입을 헤 벌렸다.
수도의 본 저택보다야 규모는 작지만 대신 훨씬 더 아기자기하게 잘 가꿔져 있는 집이었다.
수도 저택은 여기도 뾰족, 저기도 뾰족한데 이곳은 여기도 둥글고 저기도 둥근 차이랄까.
“입구 보이는 방은 내 거야!”
앙드레가 그렇게 외치며 호다닥 달려가고 나와 단테는 서로를 돌아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무슨 방이 됐든 자고 일어날 수만 있으면 됐지, 뭐.
“어서 오십시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곳, 따르티에의 저택을 관리하는 집사. 엘버트라고 합니다.”
“반가워, 엘버트. 나는 플로린 드리블랴네야. 여기 있는 동안 잘 부탁해.”
할아버지 집사가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내 머리 색과 눈 색을 보고 아주 잠깐 놀란 눈치긴 했지만 곧바로 표정을 감추는 걸 보니 좋은 집사였다.
‘주인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게 집사의 덕목이거든.’
아마 여기 있는 동안 즐거울 것 같단 예감이 확실히 들었다.
“이 몸은 단테 드리블랴네다.”
“아, 어쩐지. 단테 도련님은 아리아드네 님의 어린 시절을 쏙 빼닮으셨습니다.”
“그래?”
“예. 이 저택의 집무실에는 아리아드네 님의 어린 시절 전신화도 있습니다. 하인들이 짐을 정리하는 동안 집무실을 구경하시겠습니까?”
“응! 당장 보고 싶어. 같이 가자, 플로린.”
단테가 내 손을 조심스레 쥐었다.
예전 같으면 이대로 확 끌고 갔을 테지만 지금의 단테는 조금 달랐다. 내가 걸음을 옮길 때까지 기다린 다음 내 속도에 맞추는 식이었다.
내가 한 번 쓰러진 그날 이후로 단테는 나를 설탕공예품처럼 대하고 있었는데 사실 그렇게까지 연약한 건 아니라고 몇 번이고 말을 했지만 믿지 않는 투였다.
“와, 엄마 어릴 때는 처음 봐!”
이윽고 도착한 집무실엔 한쪽 벽면을 액자 하나가 완전히 차지하고 있었다.
엘버트가 그림에 햇볕이 닿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달아둔 벨벳 커튼을 걷어내자 엄청 오만해 보이는 한 소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소녀의 두 눈엔 그림임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장난기가 어려 있었고, 전신에선 발랄함과 생기가 넘쳤다.
대부분 귀족 여성은 전신화라 해도 앉아 있는 자세로 그림을 그리는데 아리아드네 님은 당당하게 서 계셔서 더 활기차게 느껴지나 봐.
“진짜 나랑 많이 닮았네?”
“신기해. 코도, 눈도 닮았어. 장난기도, 서글서글한 것도!”
단테는 엘버트의 말대로 아리아드네 님을 쏙 빼닮았다. 아빠 쪽 유전자는 어디로 간 건지 모를 지경으로.
소녀 아리아드네 님의 전신화를 얼굴부터 시작하여 이리저리 살피다가 나는 이내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아리아드네 님이 짚고 서 계신 것이 지팡이가 아니라…… 장검이었던 것이다.
아니, 누가 장검을 이런 식으로 짚어요?
“거의 몸만 한 검이잖아?”
“허허, 아리아드네 님께서는 어린 나이부터 검에 관심이 많으셨습니다. 그래서 이때도 지팡이가 아니라 검과 함께 그림을 그리도록 명하셨지요.”
“와…….”
“보통은 선 자세의 그림을 그릴 때 지팡이를 짚지만 아리아드네 님이 어디 보통 분이십니까.”
음, 보통 사람이 아니긴 하죠.
단테는 제 어머니의 모습에 크게 감명을 받은 듯 똑같은 자세로 서기도 하고 그림에 빨려 들어갈 것처럼 가까이 가기도 했다.
온 얼굴 가득 뿜어져 나오는 존경심과 사랑을 본 나는 깨금발로 살금살금 집무실에서 물러났다. 생각할 게 이것저것 많아 보이는데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작은 마님, 짐 정리가 다 끝났어요!”
“고생했어, 린다. 나, 은행에 가야 하는데 존은?”
“아래층에 있는 걸 봤어요.”
축사는 내일하니까 오늘은 자유 시간이었다.
긴 시간을 달려와서 피곤하긴 해도 이것저것 사려면 오늘 은행까진 가두는 게 좋겠지.
“존! 나랑 은행 가자!”
계단을 팔랑팔랑 뛰어 내려간 나는 큰 소리로 존을 불렀다.
그런데 모퉁이에서 불쑥 나온 건 존이 아니라 빅토르였다.
“오, 작은 마님! 저도 가도 됩니까?”
“빅토르는 할 거 없어?”
“이제 막 도착했으니 신입 기사들이야 휴식이지요.”
“그럼 단장님한테 허락받고 와.”
내가 마음대로 같이 가자고 할 순 없잖아?
“플로린, 어디 있어?”
“앗, 나 여기……!”
존이 올 때까지 방문을 하나하나 열어서 구경하고 있는데 때마침 단테가 나를 찾았다.
나는 곧바로 중앙 계단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손을 붕붕 흔들었는데, 머리꼭지만 보이던 단테가 갑자기 난간을 넘어서 그대로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닌가.
“헉! 지금 뭐 하는 거야, 위험하게!”
너무 놀란 나는 그대로 단테의 등짝을 후려치고 말았다.
“하나도 안 위험해. 저깟 높이가 뭐가 위험하다고.”
“그래도! 그러다가 다치는 거야! 3층 높이를 뛰어서 내려오는 사람이 어디 있어?!”
얘가 정말, 큰일 나려고.
나는 화난 눈썹을 만들며 잔소리를 이어갔다.
하지만-
“한 번 삐끗해서 다리라도 부러지면 어쩌려고!”
“와, 지금 나 걱정해 주는 거야?”
“아니, 걱정은 당연히 하지?”
“엄청 좋다. 더 해줘.”
“……?”
미쳤니?
나는 그런 눈빛으로 단테를 째려봤다.
단테는 킥킥 웃더니 뒷짐을 지고 슬그머니 내게 상체를 숙였다.
“너 요즘 키 컸다고 되게 날 내려다본다?”
“음. 키가 좀 크긴 했지. 넌 여전히 작고.”
“와, 키 작은 사람 서러워서 못 살겠네요.”
“키가 이만큼 크면 저기서 떨어져도 되는 거야.”
“그런 억지가 어디 있어?”
나와 단테는 투닥거리며 앞뜰로 나섰다.
이 저택은 딱히 정원이랄 게 없었지만 긴 겨울에도 살아남아 잎을 틔운 고목이 몇 그루나 있었다. 이제 막 꽃씨를 뿌린 듯한 화단도 있었고.
조그맣게 올라온 싹을 구경하던 내게 단테가 손을 내밀었다.
“새집 구경하러 가자. 어때?”
“새집? 나무 위에? 그럼 새가 놀라잖아.”
“새가 놀라지 않을 만큼 조용히 올라가면 돼. 보여줄게.”
정말 새가 안 놀랄 수 있나?
‘에이, 설마.’
그런데 단테라면 진짜 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고민하던 나는 새침하게 단테의 손 위에 내 손을 얹었다.
“그럼 간다?”
“꺅!”
그 순간. 나를 공주님 안기처럼 안은 단테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나뭇가지에 올라앉았다.
나뭇잎이 푸드덕거릴 거라 생각한 것과는 달리 엄청나게 가벼운 움직임이라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쉿. 엄마 새가 자고 있어.”
“……와.”
경이롭다.
놀란 것도 잠시. 나는 파랑새와 파랑새가 낳은 조그만 알들을 보곤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사랑스러워서 비명이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예쁘지?”
“이런 거, 자주 보고 다녔어?”
“응. 어느 나무에 어떤 새가 둥지를 트는지도 대충은 알아.”
파랑새는 우리가 소곤거리는 소리에 슬쩍 날개를 움직였지만 크게 불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나야 워낙 페로몬이 열성이다 보니 위협으로 느껴지지 않았을 테고 단테는…….
‘얘, 언제 이렇게 성장했지?’
무서울 정도로 완벽하게 페로몬을 감추고 있었다. 매일 밥도 안 먹고 페로몬을 갈무리하는 훈련만 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