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llain’s Daughter-in-law is Inherently Powerful RAW novel - Chapter (85)
악당의 며느리는 권력자 체질입니다-85화(85/173)
“어떻게 새가 놀라지 않아?”
“기척을 죽이고 이 나무랑 하나가 되면 돼. 숙부님께 배웠어.”
우리가 좀 더 소곤거리자 파랑새는 짜증이 난 듯 휙 하고 고개를 들었다.
움찔한 난 얼른 입을 막고 숨소리조차 내지 않으려고 했다.
찌르르, 찌르르.
그렇게 나무에 가만히 앉아 있으니 인간에 의해 밀려났던 자연의 소리들이 귓가에 스며들었다.
풀벌레의 울음, 어느 새의 뻐꾹- 뻐꾹- 하는 노랫소리. 커다란 나무를 터로 삼아 잠든 작은 다람쥐의 숨소리와 바람에 스치는 잎사귀의 소음까지.
‘아, 평온하다.’
며칠간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이동했더니 고요하다는 게 어떤 건지 잊고 있었어…….
“나한테 기대도 돼. 잠깐 낮잠 잘래?”
“으응. 은행 가야…… 하는데.”
“괜찮아. 여기 은행은 늦게까지 연대. 내가 알아봤어.”
“정말……? 그럼…….”
뺨에 닿아오는 바람이 왜 이렇게 보드랍고 따스한지 모르겠다.
나는 저도 모르게 단테의 품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플로린, 내일 행사 끝나면 나랑 데이트할래?”
“데……하암.”
“응 하고 대답하면 돼. 그럼 내가 모시고 다닐게.”
“으응…….”
뭐지. 가물거리는 시야에 단테가 씩 웃는 모습이 들어온 것 같기도 한데……
조금만…… 자고…….
“헉!”
은행이 무슨 밤늦게까지 열어?!
정신을 확 차린 나는 벌떡 일어서다가 다리가 꼬여 그대로 우당탕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아야야…….”
엉덩이야.
너무 놀란 탓에 이큘리스에 혼동이라도 온 건지 담비 귀와 수염이 뿅 하고 튀어나왔다.
나는 동글 귀를 문질러 다시 넣으려고 애를 쓰며 비척비척 일어섰다.
“어라, 방이네……?”
단테가 옮겨놨나?
아무도 안 보이기에 나는 일단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그러자 응접실에 불이 환하게 켜진 것이 보였는데 거기엔 양어머니와…… 처음 보는 인물이 있었다.
“어머니?”
“일어나셨군요, 따님. 긴 여정이 많이 피로했나 봅니다.”
“너무 잘 자서 얼굴이 부었어요.”
난 낯선 사람을 흘긋 보곤 양어머니께 총총 다가갔다.
늦은 시각인 것 같은데 누구지?
“이쪽은 골드러시 은행의 따르티에 지점 지부장입니다. 따님이 은행 업무를 봐야 한다고 해서 호출했어요.”
“아?”
내가 은행에 가야 하는 게 아니고, 오는 거야?
드리블랴네에서 살면서 여러 가지 특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또 새롭네.
기꺼이 찾아오는 출장 은행 서비스라니.
“처음 뵙습니다. 머니만 삭스러라고 합니다.”
와, 이름 되게 신뢰감 있네요.
난 지부장 삭스러 씨와 악수를 하곤 소파에 얌전히 앉았다.
“어떤 것이 궁금하십니까?”
“아, 그게…… 내 계좌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서.”
이렇게 직접 와줄 만큼 많진 않은 돈일 텐데.
나는 조금 멋쩍어져선 뺨을 긁적였다.
“여기 오기 전에 서류를 확인해 보니 플로린 드리블랴네 님의 성함으로 두 개의 계좌가 있었습니다. 둘 모두 잔액을 확인해 드리면 되겠습니까?”
“어? 둘? 하나뿐일 텐데?”
“확실히 둘입니다. 첫 번째 계좌를 신청하신 분은 라피렌 제르바이츠 님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계좌를 신청하신 분은…….”
“?”
“단테 드리블랴네 도련님이군요.”
“어어?”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진심으로 당황해서 눈을 커다랗게 떴다.
“약 보름 전에 수도의 골드러시 은행 본점에서 계좌를 신청하셨습니다.”
“내 동의 없이? 그게 가능해?”
“예. 단테 도련님의 경우에는 본인의 건물 자산에서 발생하는 수입을 투자 예치할 계좌를 열기 위해 은행에 방문하셨습니다. 그리고 해당 계좌의 수익자를 플로린 드리블랴네 님으로 지정했습니다.”
이게 다 무슨 소리지?
그러니까 단테한테 건물이 있었고, 그 건물에서 발생되는 월세를 금융 상품에 투자하려고 했다는 것 같은데-
거기서 수익자가 왜 나야?!
“수익자를 본인이 아닌 플로린 드리블랴네 님으로 지정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배우자에게는 모든 것을 주어야 하는데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가벼운 것이 수입이다. 이렇게 자필로 쓰여 있군요.”
세상에.
나는 삭스러 씨가 내놓은 서류를 보며 할 말을 잃었다.
놀라기도 크게 놀랐지만, 솔직히 단테가 나를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줄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가벼운 게 돈이라니. 누군가에겐 그게 가장 큰 것이라 못 준다고 난리일 텐데!’
그 말인즉, 단테는 돈보다는 마음을 더 중요하고 귀하게 여긴다는 의미였다.
‘조금 부끄럽네.’
단테는 녹니석 커프스 단추를 받는다고 해도 자랑하며 내놓고 다닐 게 분명한데 내가 왜 지레 남부끄러우니 가려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나는 내 생각을 크게 반성하는 것과 동시에 단테를 좀 다르게 보게 되었다.
마냥 철없는 어린애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속 깊은 구석이 있구나.
‘굉장히 멋지기도 하고.’
그런데 건물이라니.
건물은 어디서 났지?
‘부친인 디엔 글란스 님에게 물려받은 걸까? 아리아드네 님에게 물려받은 거라면 이안도 건물이 있어야 하는데, 이안은 없잖아.’
역시 다이아몬드 수저는 다르구나.
고아는 서러워서 살겠나. 훌쩍.
나도 다이아몬드 광산 아빠 주세요! 흑흑!
“그러면 이어서 두 계좌에 보유된 현금을 확인하시겠습니까?”
“……응.”
나는 조금 긴장한 채로 일단 첫 번째 계좌의 서류를 확인했다.
예상했던 대로 처참했다.
‘가슴이 아프다.’
이내 나는 숨을 가다듬고 두 번째 서류를 훑어 내렸다. 그러다 난 눈을 비볐다.
‘응? 잘못 봤나?’
아직 열 살인데 벌써부터 눈이 침침하고 그러네.
나는 서류를 눈앞에 바짝 가져와선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그런데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있는 숫자는 바뀔 생각을 하질 않았다.
“이거 도대체 0이 몇 개야???”
충격을 받고 꽥 소리를 지르자 내 반응을 보던 삭스러 씨가 허허 웃으며 서류를 다시 거두어갔다.
“단테 도련님께 모든 유산을 남기신 디엔 글란스 님께서는 생전 투자의 귀재셨습니다. 저희 은행의 보배였지요.”
“!”
“헌데 단테 도련님 역시 아직 어리신데도 상품을 보는 눈이 몹시 예리하신 모양입니다.”
“와…….”
진짜 새로운 모습이다.
아무리 원작에서 남자주인공 중 하나라지만, 이건 너무 밸런스가 안 맞는 거 아냐?
조연들 서러워서 살겠냐고!
“즐거운 쇼핑을 즐기신 후, 저희 골드러시 은행 따르티에 점에 대금 지불 문의를 주시면 언제든 친절히 모시겠습니다.”
삭스러 씨는 이내 정중하게 일어나 허리를 숙이고는 물러갔다.
나는 어버버하다가 이마를 짚으며 소파의 등받이에 몸을 푹 묻어버렸다.
이게 꿈이야, 생시야?
“어머니. 저 지금 꿈속이에요?”
“아니에요. 분명한 현실이랍니다.”
“그렇지만……. 단테가 저한테 계좌를 줬어요! 통째로요!”
맙소사. 세상에. 신이시여!
나는 내가 뱉을 수 있는 모든 감탄사를 쏟아내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너무 대단한 숫자를 목격하는 바람에 가슴이 콩당콩당 뛰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조심스레 손을 내렸다.
“저어, 그런데 제가 진짜 받아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너무 큰 돈이어서…….”
“그런가요? 이 정도는 일반적인 일일 텐데요.”
“……일반적이라고요?”
“공작 가문이잖아요.”
양어머니는 진심으로 뭐가 문제이고 뭐가 마음에 걸린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연 설명을 해야 했다.
“단테는 그런 애가 아니기도 하고, 애초에 그런 생각도 안 해봤겠지만요. 가주가 되기 위해서 뇌물을 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리고 제가 그 뇌물을 받은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에요.”
“가주가 되기 위한 뇌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적지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따님. 무엇보다 뇌물이 나쁘다는 건 굉장히 신성제국인 같은 생각이에요.”
“……아?”
“마도제국에서 뇌물은 일반적인 일이니까요. 허나 이 경우엔 뇌물도 아니고 애교라고 봐야겠군요.”
양어머니는 무심하면서도 차분하게 대꾸하셨다.
그런데 그게 너무 정곡을 찌르는 바람에 난 뜨끔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건 마도제국에서 태어난 게 아니기 때문인가?
‘그야, 신성제국이 넣어놓은 첩자이니까…….’
이젠 내가 첩자였다는 사실이 들킬까봐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잠이 오지 않겠지만 내일 행사가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자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따님.”
“네에…….”
“그럼 올라갈까요?”
나는 양어머니의 손을 잡고 걸었는데도 넘어질 뻔했다. 너무 놀라 다리에 힘이 풀린 탓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코까지 이불을 덮고도 얼떨떨함이 가시지 않아서 나는 오랫동안 뒤척여야만 했다. 그리고 그렇게 긴 시간 잠들지 못하게 한 감정의 정체는, 아마도 설렘이 맞는 것 같았다.
‘누가 직진남 키워드 아니랄까 봐!’
밀어붙이는 게 불도저 급이네.
이렇게 어린데도 일단 직진하고 보는 거면,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된다는 거야?
‘이러니 원작에서 단테 골수팬이 어마어마했지…….’